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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1. 2024

귀족놀이

바흐 평균율 3번, BWV 848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만들어 피아노앞에 앉자마자

유령처럼 건반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언제라도 되풀이하고 싶은 시간

풀잎이 이슬을 머금고

아직 열리지 않은 튤립 송이들이

자신들을 발음해보라며 재촉한다

튜-할때 입술이 키스해달라는 것처럼 보이지 않냐고

그것을 잊고

길을 계속 미끄러지듯

손가락이 부드러운 작은 망치들처럼

빠르게

건반을 내려칠때


아치모양으로 굽은

작은 다리를 건너니

그 아래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독이 들은 수액을 뻗쳐올리는

신비한 덤불이 산책자를 맞이한다

밀어내고 밀어내고

헤치고 헤치고 나아가면


다시 햇살이 따뜻한

이름모를 허브들이 자라는 곳

풀벌레들이 가볍게 여기저기서 튀어오르는

작은 언덕을 지나


세상이 전체적으로 반음씩 올라간다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 아침은 잘 드셨나요,

백작님

- 오늘의 모닝커피는

맛이 쓰군요

- 그게 커피의 묘미죠

밤엔 잘 주무셨나요,

백작님

- 그럼요

이시간이 너무 그리워서

일찍 잠에 들었답니다

- 그러시군요

정원에 고양이들도 그러하죠

그들은 아침에

쫓고 쫓기기 위해서

밤에 몸을 한껏 웅크린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친구가 잘 있나 나와보는 거죠

그리고 변함없이 그가 그 자리에 보이면

쏜살같이 도망치는 겁니다

그러면 뒤이어 그가 쫓아오는 놀이를

하는 겁니다

그럴때 그들은 얼마나 조심스럽고 유연한가요

우리 피아노 치는 사람들은 그걸 배워야합니다

그들의 몸짓을 연구하세요

- 아니요 전 이미 그들을 보는 순간

제 몸이 긴장을 풀고

손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답니다

정말 신기하죠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닮아갑니다

-그래요

그래서 오늘 산책은 어떠셨는지?

- 아주 좋았어요

다만 왜 여기서 갑자기 독풀들이 나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 그게 삶이죠

백작님

피해갈수 없는 거 아시잖아요오

- 저도 이해해보려고 노력중이랍니다

왜 천국같은 곳에

이런 골짜기가 있는지






https://youtu.be/INfgHUn-y0I?si=1yg2CS84WrGGM3Gt

바흐 평균율 3번, BWV 848, András Sch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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