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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피곤 Oct 31. 2023

비효율적이지만 계속하는 것 '글쓰기'

언제나 담담하게

2023 5월 초 어느 날


그날은 너무 완벽했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라 늦잠을 잤다. 오후 12시쯤에 정신을 차리고 이불 안에서 휴대폰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다. 위장은 밥을 달라고 했지만 귀찮아서 대충 패스트푸드를 넣어줬다. 정신도 차릴 겸 커피도 마셨다. 그 후에는 게임 세상에서 몬스터를 혼내주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저녁쯤에 이유 모를 헛헛함이 몰려왔다. 혼술을 마시며 유튜브를 봤다. 그렇게 2시간 동안 술잔에는 소주를 따르고,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보며 내 감정도 자연스레 흘려보냈다. 그러고 나서는 내일 출근을 대비해 숙취해소제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다음은 별거 없다. 대충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참 알차고 완벽한 하루였다. 기억에 남을 하루는 아니지만. 이게 바로 보통의 휴일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시곗바늘의 속도는 동일하다. 하지만 시간은 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그대로 사라지기도 한다. 나의 지난 5월의 기억은 너무 쉽게 떠나갔다. 그 시간들은 나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고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내 모든 시간의  의미가 이렇게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메모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시간을 잡아끌기 위해 나는 글쓰기를 배우기로 다짐했다. 마침 내가 자주 보는 작가님이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거의 1초도 고민을 하지 않고 연락을 드려 수업을 시작했다. 그 시간 이후로 나의 시곗바늘은 흔적을 남기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감각이 예민해질 때가 있다. 바로 무언가에 관심을 가질 때다. 배가 고플 때 유난히 음식이 눈에 들어오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글쓰기를 막 시작하고 나서 머릿속 안테나 감도를 더 예민하게 세팅했다. 사소한 모든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평소에 보는 풍경, 먹는 음식, 들리는 소리, 스치며 보는 유튜브 숏츠까지 눈여겨본다. 글은 기록 효율성이 떨어진다. 사진은 셔터만 누르면 되지만 글쓰기는 오감을 한글로 변환해야 하기 때문에 힘을 더 써야 한다. 바늘을 의미 있게 돌리는 건 이렇게 힘이 든다.


백색의 종이에 까만 글자를 적는 건 쉽지 않다. 첫 시도가 두렵듯 서론 적는 게 어렵고, 다리를 놓은 게 중요하듯 본론 적는 게 어렵고, 매듭을 깔끔하게 지어야 하듯 결론 적는 게 어렵다. 직장 생활로 따진다면 출근-일하는 시간-퇴근이 힘든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다행인 건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글이 완성되었을 땐 나름 뿌듯한 감정이 올라온다. 이 글로 인해 내 시간에 숨을 불어넣었다. 이로써 나의 기억은 살아 숨 쉬게 되니 고생한 게 아깝지 않다. 


오늘도 비효율적인 일을 한다


에세이를 자주 쓰고 있지만 여전히 힘든 건 내 이야기를 적는 일이다. 분석 위주의 글을 많이 써서 내 이야기를 드러내는 건 좀 인색하다. 처음에는 어디까지가 내 이야기인지, 중간에 글이 산으로 가는 게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굳이 ‘내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글을 계속 쓰다 보니 감정을 꺼내기 위해서는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걸 알았다. 문제는 이야기를 할 때 자기 검열을 해서 더더욱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에세이를 딱딱한 제품설명서처럼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힘을 빼자.’


무언가를 잘하려고 집착을 하게 되면 더 안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힘 빼고 편하게 하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꺼낼 때면 흘러가듯 아무 말이나 일단 적고 나중에 수정을 했다.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 작가님이 최근에 쓴 글들은 나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글이 훨씬 좋아졌다는 평을 주셨다. 설마 수업 전에 내가 빵을 사드려서 말하신 건 아닐 거다 크흠!


저번 수업을 마치고 작가님이 해준 말이 있다. 내 글은 담담하게 감정을 표현해서 좋은 것 같다고. 담담은 나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노력하는 편이고, 부정적인 감정의 표출을 자제하는 편이다. 큰 소리를 치는 것보다, 읊조리며 말하는 게 귀에 더 잘 들리는 법이다. 앞으로도 비슷한 로 내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다. 내가 하던 대로 하는 게 제일 편하고, 힘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생각하고 보니 여행에 대한 글을 써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나중에 여행을 간다면 여행+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으면 좋지 않을까? 



나는 종종 꿈보다 해몽이라는 단어를 쓴다. 꿈은 컨트롤할 수는 없지만 해석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벼랑 끝에서 떨어지는 꿈도 ‘아~내일은 바람이 많이 불어 시원한 날이겠구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글쓰기 역시 그렇다. 이미 눈앞에 벌어진 현상은 내 손을 떠난 일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하지만 현상을 글자로 변환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꾸어 나간다. 언제나 그렇듯 기록하면서 내 시간을 의미 있게 해몽할 것이다.


필요 없는 흔적은 없다. 시곗바늘의 자취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뜻깊은 일이다. 그것들이 모여 미래에 걸작을 만들어낼 테니 나는 꾸준히 글을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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