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간을 그리워한다.
그 일은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예고는 되어 있었지만 내가 외면했다. 딱히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은 시험문제가 아니라서 답을 적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 2022년 대학을 졸업했고 자연스럽게 나에게는 질문이 들어왔다. ‘너 어디 취업해?’하고 말이다. 대학 졸업 직후에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취업 준비를 할 때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부러웠다. 그때 나는 사회에서 0인분인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인분을 책임지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취준생(백수)의 신분은 죄악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힘이 들었다. 백수여도 내 몸은 배고프지 않게 밥을 먹여줘야 하고, 적당히 운동도 시키고, 청결을 위해 씻겨줘야 했다. 이런 과정은 당연히 공짜가 아니다. 세상에 공기를 제외하고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취준생 기간에는 대학생 시절을 그리워하고, 직장인의 시간을 동경하면서 살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도전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사실 자체로도 나름 축복(?) 받았다고 생각했다. 지인들은 대부분 휩쓸리듯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고 싶은 일을 못 찾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게임기획’ 파트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원하는 일을 공부한다는 것은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서류를 적고 면접을 본 끝에 작은 게임회사에 입사했다. 입사를 할 당시에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내가 해냈어!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일에 마주쳤을 때 자주 쓰는 단어가 있다. 그 단어는 ‘막상’이다!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쓴다. “막상 해보니까 내 생각과는 달랐어요.” 그렇다. 나 역시도 이 말을 자주 사용했다. 분명 게임기획은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일인 줄 알았지만 ‘막상’ 해보니 내 생각과는 달랐다. 내가 하는 기획은 지금 유행하는 게임을 비슷하게 베끼는 일이었다. 재미는 둘째치고 이럴 거면 기획자가 왜 필요할까? 하는 의문만 생겨나게 되었다. 그렇게 원했던 일이 재미없어지고, 지루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차라리 취준생이었으면 발이라도 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늦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백수의 시간이 그리워졌다.
수습기간이 끝날 때쯤, 계약을 두고 회사 측과 이견이 있었다. 결국 나는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어쩌면 속으로 퇴사를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늦게 알았을 수도 있고, 내가 다닌 회사와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퇴사 절차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수인계 서류를 작성하고, 작업 내용 파일을 정리했다. 다음에는 Pc 비밀번호 해제, 메신저 자동로그인 해제, 텔레그램방 나오기 등 차근차근 절차를 진행했다. 마지막은 슬리퍼와 휴대폰 충전기를 가방에 넣고 개발팀 한 분 한 분에게 인사를 한 것으로 회사 생활이 끝났다.
퇴사를 한 후에 가장 적응이 안 되는 일이 있다. 바로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다. 루틴을 맞추기 위해 7시에 일어난다. 이제는 일어나도 할 게 없다. 평소 같으면 샐러드를 꺼내먹고, 바로 씻고, 뉴스레터를 읽다가 출근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이제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루틴이지만 쓸모가 없어졌다. 동시에 나도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가기 싫었던 회사가 다시 가고 싶었다. 퇴사 직후에 나는 회사의 시간을 그리워했다.
사람은 참 신기하다. 본인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모든 게 다르게 느껴진다. 취업을 준비할 때가 그랬다. 취준생 때는 대학생의 시간을, 직장을 다닐 때는 취준생의 시간을, 퇴사 후에는 회사 다닐 때의 시간을 그리워했다. 과거의 시간을 그리워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과거의 시간이 좋았으니까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닐까? 참 웃긴 건 당시에는 정말 싫은 시간이 미래에는 돌아가고 싶은 시간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의 모든 시간은 가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아마 나중에는 현재 이 시간을 다시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행이다. 지금 숨 쉬는 시간도 가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