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이 없는 나라 부탄으로
여자 친구와 이별하는 중입니다. 2년여를 만나왔었는데, 헤어지잔 얘긴 1시간밖에 안 걸리더군요. 씁쓸했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피 튀기는 전쟁을 벌였던 건 아니었거든요. 떳떳하지 못한, 그러니까 바람을 피웠다든지 하는 그런 행동을 했던 것도 아니고요. 서로에게 지쳤다거나 대단히 싫어하게 된 것도 아닙니다. 저흰 그냥 행복하지 않아서, 아니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헤어졌어요.
제가 먼저 헤어지잔 얘길 꺼냈습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취업문제 때문입니다. 최근 저는 가고 싶던 회사의 최종면접에서 낙방하고 말았거든요.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연애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성급한 결론일 수 있단 걸 알지만... 그래도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연애하는 건 서로에게 힘든 일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맛있는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싶고, 더 멋진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은데 현실은 그럴 수가 없을 테니까요.
여자 친구는 그저 함께 있는 게 좋은 거라며, 제게 그런 부담을 가질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 그런 고인 물 같은 행복은 한계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애든 결혼이든, 뭐든 그런 것 같습니다. 남들보다 대단히 뛰어난 뭔갈 가지려는 게 아니라 해도, 보통사람들만큼 따라가는 것조차 어려운 게 요즘 세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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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제, 여자 친구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여행을 다녀오자더군요. 우린 서로 미련이 있지 않느냐며, 여행을 통해 우리의 결론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겠냐는 여자 친구의 제안에 마음이 혹했던 게 사실입니다. 제 미래, 우리의 행복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저 역시 여자 친구와 굳이 헤어지고 싶진 않거든요. 그런데 겁이 납니다. 이런 상태로 그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지. 그녀의 사랑을 제대로 받을 수나 있을는지. 그녀 역시 절 예전처럼 믿어줄지. 서로가 함께하는 게 행복일지 떨어지는 게 행복일지... 참 어렵네요. 정말로 여행을 다녀오는 게 좋을까요? 여자 친구는 저보고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하라고 하는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답답합니다.
칼럼니스트의 조언
연애에도 신호등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싸움은 언제쯤 멈춰야 하는지, 사랑하는 표현의 속도는 언제쯤 더 내도 좋은지, 관계의 상태를 알려주는 그런 신호등 말입니다. 그럼 싸움도 줄어들 거고 괜한 이별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만남이 그랬듯, 이별 역시 아무런 신호 없이 등장한다는 게 얄밉습니다. 깜박이나 좀 키고 들어올 것이지.
아무튼, 두 사람의 사연을 듣는 순간 떠올린 나라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호등이 없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세계 유일의 금연 국가, 은둔의 왕국, 마지막 샹그릴라, 그리고 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가 아시아 1위·세계 5위라는 수식어도 있습니다. 바로 ‘부탄’입니다.
부탄의 정식 국가명은 ‘부탄 왕국(Kingdom of Bhutan)’입니다. 히말라야 산맥 동쪽 인도와 티베트 사이에 위치한, 남한 면적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국가죠. 모국어는 티베트어와 발음이 유사한 종카어입니다. 영어도 쓰니까 여행객들에겐 큰 불편함이 없습니다. 통화는 '눌트눔(Ngultrum)'과 '체트눔(Chetrums, 1/100눌트눔)'인데, 인도 돈이 통용되기도 합니다. 직접 환전하긴 어려우므로 이중 환전을 하는 게 보통이에요. 먼저 달러로 환전한 후 부탄 현지 우체국에서 눌트눔으로 교환하는 게 좋습니다.
부탄은 은둔의 왕국이란 별명답게 외부 세계에 알려진 게 불과 20년이 채 안 됩니다. 가정에 인터넷과 TV가 보급된 것도 1999년부터고요. 부탄의 유일한 공항인 파로(paro) 국제공항에 들어갈 수 있는 항공편은 부탄의 국영항공사인 드룩 항공(Druk air)이 유일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인도의 델리, 네팔의 카트만두, 태국의 방콕까지 직항으로 간 후에 거기서 환승을 해야 해요. 비행기 표만 있다고 해서 입국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닙니다. 여행 일정과 왕복 항공권 등의 서류를 현지의 여행사로 미리 보내 허가(초청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온전한 자유여행보단 여행사를 통한 관광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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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자유 여행에 익숙할 테니, 가이드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이 될 거예요. 자유시간은 충분히 주어지니까 걱정 마요. 관광지로의 이동 및 안내를 가이드가 해 줄 뿐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가이드와 친해져서 부탄의 친구들을 사귀어보는 것도 좋고요.
부탄은 관광업이 특수화된 나라예요. 심지어 박사학위를 딴 사람보다도 가이드의 수입이 더 좋답니다. 그러니 현지 가이드의 친절 및 성실함은 걱정하지 마세요. 지나친 시설 낙후에 대해 걱정도 할 필요 없어 보입니다.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국가 정책상, 호텔의 외관이 화려해 보이진 않더라도 내부 컨디션은 꽤 좋거든요. 식사 역시 입맛에 잘 맞을 거고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당연히 있고, 한국 음식들을 파는 레스토랑까지 있답니다.
부탄에서 가봐야 할 도시는 팀부, 파로, 푸나카 정도입니다. 부탄은 전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대승불교의 보루답게 불교와 관련된 관광지가 대부분이에요. 사원과 정부청사가 함께 있는 ‘드종’,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사찰인 ‘라캉’, 그리고 민가와 떨어져 숲이나 산속에 있는 수도원인 ‘곰파’는 꼭 둘러보면 좋아요. 드종을 보려면 현 국왕의 집무실이 있는 ‘타시초 드종’을, 라캉이나 곰파라면 ‘파로 계곡 벼랑(해발 3144m)’에 매달리듯 지어진 ‘탁상 곰파’가 유명해요. 탁상 곰파는 탁상 라캉이라고도 합니다. 라캉 중 산 깊숙하게 있어서 곰파라고 부르는 게 더 잘 어울리지만요. 이 ‘탁상 곰파’는 트레킹 코스로 꼭 가보는 게 좋습니다. 남미 여행의 꽃이 ‘마추픽추’라면 부탄은 ‘탁상 곰파’거든요. 부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키츄라캉’도 추천할게요. 서기 659년, 신라의 삼국통일 전에 지어진 건물이니 사원의 벽만 만져 봐도 신비롭지 않을까 싶네요.
부탄에 대한 정보를 찾고 나면 ‘왜 이곳이 가장 행복한 나라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부탄이 자체적으로 의도한 행복지수다.’, ‘정부의 통제와 관리로 인해 개방이 덜 되다 보니 뭘 몰라서 행복한 거다.’라는 의견도 있죠. 그곳이 정말로 행복한 곳인지 아닌지는 직접 사는 국민만 알겠죠. 국민마다 의견도 다를 수 있고요.
그런 평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전, 부탄이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서 추천한 게 아니에요. 그곳에 가면 행복을 반드시 찾을 수 있다든지, 행복의 기운을 받고 오란 얘기도 아니고요. 부탄으로 입국할 때 초청비자가 필수라지만, 전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는 수식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과정이죠. 행복은 상대적이에요. 나의 행복과 남의 행복, 그리고 부탄의 행복을 비교할 수 없는 거예요.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라서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행복지수는 어떨까?’, ‘나의 행복의 형태란 무엇일까?’라는 걸 생각해보게끔 해주는 여행지임에는 분명해요. 사연자님은 지금, 본인이 원하는 행복이 뭔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명예로운 직장에 취업하는 건지,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계속 만나야 할지, 그녀가 사라져도 좋은지 말이죠. 혹시 성공한 다음에 그녀를 다시 찾아갈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죠? 그건 너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그녀가 함께하자 할 땐 매몰차게 거절하고, 본인에게 여유가 생긴 후에야 찾아간다는 건 이기적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함께 여행을 떠나세요. 그리고 두 사람이 각자 원하는 행복을 찾아봐요. 부탄을 다녀오면 흔히들 뭔갈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고 하죠. 내려놓는다는 건 참 어려워요. 기껏 내려놓는다고 해도 손에는 그 무게감이 여전히 남아있으니까요. 그런데 전, 꼭 부탄에서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들고 있는 게 더 편한 사람도 있잖아요? 내가 어떤 것에 더 행복을 느끼는지, 그걸 배우는 시간이 될 거예요. 여행이 끝나고 나면 두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지점이 다를지도 몰라요. 오히려 여자 친구분이 ‘난 소박함보단 화려함이 어울리나 봐.’하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고, 사연자님이 ‘난 저렇게 현재에 만족하며 살래.’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죠. 그 가치관이 맞아야 앞으로의 연애를 잘해 나갈 수 있어요.
두 사람은 그동안의 연애를 통해 분명한 성장을 했고, 이별의 갈림길에서 다시 한번 성장통을 겪고 있습니다. 아직은 끝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여자 친구에게 부탄으로의 여행을 추천해 봐요. 마침 한국과의 수교 30주년 기념으로 여행비가 50%나 할인되거든요. 개인적으론... 여자 친구를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쉽게 만나기 힘든 정말 멋진 여자 친구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연애만한 여행이 있으리.
연애&여행 칼럼니스트 김정훈
tvN 드라마 <미생>,
OCN <동네의 영웅> 보조작가,
책 <요즘 남자, 요즘 연애>,
<연애전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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