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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룩 KLOOK Oct 24. 2017

제9화. 홋카이도에서 단 한 끼만 먹어야 한다면?

현지인이 추천하는 삿포로 수프 카레

홋카이도 수프 카레


녹아내리듯 부드러운 샛노란 우니, 진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기가 막힌 우유, 버터를 발라 먹으면 그 고소한 향이 더욱 배가되는 감자, 삶지 않아도 알알이 달콤한 옥수수... 이 모든 것을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도시가 있다. 늘 보던 크래미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굵은 오리지널 대게살을 무한으로 흡입 가능한 곳. 맨밥에다 김으로 만든 젓갈만 얹어 먹어도 맛있는 곳. 바로 먹방의 천국 홋카이도(북해도)가 그곳이다.  



홋카이도 먹방의 바다에 빠져 본 사람은 안다. 음식의 맛을 좌지우지하는 건 재료의 힘이라는 걸. 그래서 농경이나 목축과 같은 1차 산업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걸. 헌데 그러한 진리는 값비싼 요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삿포로 시내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단 한 그릇의 국물 요리만 먹어봐도 알 수 있다. 그 요리의 이름은 수프 카레다. 



수프 카레는 북해도에서 태어나 북해도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다. 말 그대로 수프처럼 묽게 만든 카레에, 현지의 싱싱한 재료들을 큼지막하게 넣어 만든, 일본 카레의 한 종류다. 물론 우리가 일본 카레 하면 흔히 생각하는(‘코코이찌방야’나 ‘아비꼬’와 같은 브랜드로 떠올리게 되는) 맛과는 많이 다르다. 한국식으로 변형된 레토르트 카레나 인도나 태국의 카레와도 다른 이 음식은, 수프라곤 하지만 오히려 전골을 연상케 한다. 보통의 카레엔 토막 난 재료들이 들어가지만 수프 카레는 재료를 거의 통째로 넣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자, 아스파라거스, 토종닭, 호박, 당근, 옥수수, 피망 등이 담긴 수프 카레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속이 엄청나게 든든한 것이 일종의 보양식을 섭취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맛도 좋고 영양에도 좋은 음식이니 만큼 홋카이도에서 반드시 먹어야 할 현지 음식으로 추천이긴 한데... 문제가 하나 있다. 홋카이도엔 수프 카레집이 너무나 많다는 거다. 수프 카레의 원형을 처음 만들어낸 레스토랑이라고 알려진 ‘아잔타’를 비롯하여 삿포로에만 해도 200여 개나 되는 점포들이 있다. 한국의 블로그나 카페에 많이 소개된, 수프 카레 맛집으로 검색을 하면 등장하는 점포들은 대충 다음과 같다.


‘로지우라 커리 사무라이’, ‘스아게 플러스’, ‘가라쿠’, ‘옐로우’, ‘오쿠시바쇼텐’, ‘라비’


아무리 수프 카레 맛이 좋다고 한들, 다른 음식을 다 제쳐두고 끼니마다 먹을 수는 없을 거다. 그러니 보통의 여행객이라면 한 끼 정도만 수프 카레에 할애하려는 게 대부분일 터. 이때 선택해야 할 단 한 곳의 레스토랑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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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 살고 있는 지인들이 그 질문에 직접 답해줬다. 단 한 번의 끼니이고 그 한 번이 처음이라면, 그래서 스프카레를 먹고 싶은 마음이 한 번이고 두 번이고 이어지게 하려면, 다른 레스토랑보단 ‘로지우라 커리 사무라이(Rojiura curry SAMURAI, 이하 사무라이)’로 갈 것을 추천한다고.



‘사무라이’는 번화가인 스스키노거리 와의 접근성, 카레에 들어가는 재료의 신선함, 메뉴의 다양성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서 결정했다고 한다. 수많은 수프 카레 가게들 중 이곳을 꼽은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오리지널 수프 카레를 좋아하는 사람도 수프 카레라는 새로운 요리에 겁을 바짝 먹고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좋아할 수 있는 조화로운 맛을 가진 레스토랑이라는 것.


이 곳의 위치는 관광객들이 주로 묵는 가성비 좋은 비즈니스호텔들과 각종 상점들이 모여 있는 타누키 코지의 중심 골목(일본 〒060-0063 Hokkaidō, Sapporo-shi, Chūō-ku, Minami 3 Jōnishi, 6 Chome−1−3 ティアラ36)이다. 밋밋한 갈색 벽에 다소 생뚱맞게 걸려 있는 가게 이름과 영업시간 알림판만 봐선 맛 집인지 의심 갈 법 한데, 일단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문을 열자마자 후각을 자극하는 카레 향을 느끼며 계단을 조금 걸어 올라가노라면, 활기찬 표정의 종업원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응대를 해준다. 카운터 근처의 Bar석엔 혼밥 중인 사람들도 보인다. 그들은 다른 손님의 방문에는 일절 관심을 가지지 않고선, 한 방울의 수프도 남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그릇을 깨끗이 비워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직감할 수 있다. 아, 맛집 맞구나!



대부분의 손님들은 2층의 테이블에서 식사를 한다. 2층 한 구석엔 단체손님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좌식 룸도 하나 있는데, 갈 때마다 현지의 대학생들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 없다. 그래도 그들 덕분에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란 확신이 한 번 더 든다.


이제 메뉴를 선택해야 할 시간. 주문을 하는 절차는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우선 메뉴(라 부르고 토핑이라 읽는다)를 정하고, 기본 베이스가 되는 소스를 정한 뒤, 맵기와 밥의 양을 정해야 한다. 토핑은 무척 다양하다. 하루 영양에 필요한 20가지 야채가 들어 있는 베지터블 카레를 비롯하여 양고기, 소고기, 소시지, 치킨까지 육식·초식·잡식성 손님을 모두 고려한 메뉴다. 



개인적으론 시레토코 치킨 토핑을 추천한다. 일반 닭이 아닌, 홋카이도에서 유명한 시레토코 산 닭다리가 통째로 들어있는 메뉴다. 이 메뉴를 선택하면 닭의 굽기를 선택할 수 있다. 크리스피(Crisp)와 텐더(Tender)인데, 크리스피는 껍질을 아주 얇게 구운 방식이고 텐더는 부드럽게 삶은 찜닭 방식으로 서빙된다. 둘 다 먹어본 결과 크리스피를 2배 정도 더 추천하는 바이다. 물론 텐더도 맛있었지만, 닭 껍질 본연의 고소한 맛을 잘 살려서 바싹하게 구운 크리스피가 훨씬 좋았다.      



다음은 소스 차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카레맛과 비슷한 ‘레귤러’와 soy bean을 베이스로 한 ‘마일드’, 태국 카레에서 주로 쓰이는 코코넛 밀크를 이용한 ‘코코넛’, 그리고 마일드와 코코넛을 섞은 ‘마일드 앤 코코넛’의 4가지의 선택권이 있다. 뿌빠뽕커리의 맛에 특별한 거북함이 없는 사람이라면, ‘코코넛’이나 ‘마일드 앤 코코넛’을 선택하자. 훨씬 풍부하고 감칠맛 나는 수프 카레를 맛볼 수 있다. 맵기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될 듯하고, 밥은 치즈밥과 일반밥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물론 치즈밥엔 추가금액을 내야 하지만 카레와 치즈는 꽤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맛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서 지나치게 큰 소리로 알바생을 부르진 말자. 테이블 위엔 귀여운 종이 하나 놓여 있는데, 주문을 하려면 종을 살짝 흔들면 된다. 식사를 하는 다른 고객들을 방해하지 않게끔 종업원을 부르도록 하는 디테일한 배려가 놀랍다. 


아참, 한 가지 스페셜한 팁이 있다. ‘사쿠사쿠 브로콜리’ 토핑을 반드시 추가해서 먹어야 한다는 거다. 마늘 맛이 나게 브로컬리를 살짝 튀긴 토핑인데, 그 맛이 끝내준다. 다른 토핑 추가도 많지만, 이것만큼은 다른 수프 카레 집에선 보기 드문 조리법이니 꼭 추가해서 먹어보면 좋을 듯싶다. 일본어가 서툴러도 ‘사쿠사쿠 브로콜리 플러스’라고 하면 다 알아듣는다. 



사무라이와 함께 박빙의 승부를 펼친 Top2의 가게는 스아게 플러스다. 스아게 플러스 역시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수프 카레 집인데, 사무라이보다는 수프 카레의 원형에 가깝긴 하다. 하지만 그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육개장 형태의 수프 카레에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라 2위로 밀려났을 뿐 맛이 좋다. 시간만 있다면 더 다양한 수프 카레집을 맛보는 걸 추천한다. 수많은 수프 카레집은 각각 개성을 갖고 저마다의 맛을 뽐내기 때문이다. 삿포로의 수프 카레집은 도쿄나 오사카 등지에도 분점을 내는 추세다. 오늘 소개한 로우지라 카레 사무라이 역시 도쿄에 분점이 있다고 한다. 


삿포로에서 그 많은 음식을 맛보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생각나는 건 정말이지 수프 카레다. 시레토코 치킨의 바싹한 껍데기와 부드러운 속살, 아삭한 아스파라거스와 튀긴 브로콜리의 맛이여... 



연애만 한 여행이 있으리.
연애&여행 칼럼니스트 김정훈

tvN 드라마 <미생>,

OCN <동네의 영웅> 보조작가,
책 <요즘 남자, 요즘 연애>,
<연애전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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