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동네, 티옹바루
세상엔 쉬운 일이 없다. 단지 쉽지 않은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알고 있는 맛 집을 누군가에게 소개시켜주는 일이다. 상대방의 취향을 완벽히 모르는 상태에서 내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간 그쪽도 곤란하고 나도 곤란한 상황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그 대상이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천금 같은 시간을 들여 관광 온 사람이 아닌가. 그들이 정말로 만족할만한 최고의 장소를 선물해야 한다는 압박은 만만치가 않다.
며칠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 친구 A가 일본인 3명을 데리고 술자리에 나타났는데, 일본 여행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상당히 들뜬 표정으로 ‘오늘 저녁을 완벽하게 보낼 수 있는 맛 집, 술 집 코스’를 알려 달라고 했다.
어디를 알려줘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
‘요즘 즐겨 찾는 맛 집을 알려줘?’
‘아니지. 오히려 내가 3년 전에 즐겨 찾던 집이 더 만족도는 좋았는데.’
‘1년 전에 갔던 거기도 괜찮았잖아? 아, 거긴 너무 외국 느낌이 많이 나서 별로인가.’
대체 어딜 가야 할까 고민하던 끝에 결국 그들에게 되물었다.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느냐고. 그들은 내게 손 때 묻은 관광책자를 보여주며, 서울을 좀 다녀본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방문하지 않을 삼겹살 집 한 곳을 꼭 가보고 싶다 얘기했다. “거기 말고 더 맛있는 곳이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그곳에서 만족을 못줬다간 ‘우리가 가고 싶었던 곳에 갔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을 남길지도 모르니 꾹 참았다.
이처럼, 관광객이 좋아할 만한 장소와 현지에 사는 사람이 즐겨 찾는 곳에는 은근히 갭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현지인이 좋아하는 맛 집’에 큰 기대를 하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처음 방문하는 나라의 관광계획을 짤수록, 구관이 명관이란 속담을 잘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그런 이유다.
하지만! 여행은 호기심의 결정체 아닌가. 오랜 시간 인기 있는 장소도 좋지만 요즘 뜨는 장소 역시 가보고 싶은 게 당연하다. 서울을 예로 들자면 전통적인(?) 유흥가인 홍대나 강남역도 좋지만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부상한 연남동이나 망원동, 성수동과 같은 동네에도 호기심이 간다는 얘기다. 이태원도 좋지만 그 옆 동네인 해방촌이나 경리단길에 대한 정보도 알고 가면 훨씬 풍족한 여행이 될 건 확실할 테니까.
여행 갈 때 꼭 필요한 여행 액티비티 예약 플랫폼, 클룩 KLOOK
싱가포르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센토사 섬이나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장소 외에, 흔히 얘기하는 핫 플레이스(젊은 층이 즐겨 찾는)가 궁금했다. 싱가포르 젊은이들이 찾는 동네 하면 떠오르는 건 클락키나 오차드로드 밖에 없었다. 타카시마야 백화점이 있는 쇼핑의 천국 오차드로드, 많은 레스토랑과 펍·Bar·클럽이 모여 있는 유흥의 클락키. 싱가포르를 꽤 다녀봤다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곳들 외엔 딱히 추천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젊은 연인들은 대체 어디로 데이트를 갈까?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오차드로드나 클락키 밖에 없을까?
그래서 찾아낸 곳이 티옹바루다. 싱가포르 현지에 살고 있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티옹바루는 전통적으로 오래된 주거지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개성 있는 카페나 부티크샵, 작은 규모의 디자이너 샵들이 들어서며 변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은 싱가포르의 젊은 층이 가장 즐겨 찾는 핫한 동네로 떠올랐다고 한다. 서울로 치면 연남동, 망원동과 같달까? 싱가포르 관광은 대부분 초고층빌딩과 현대적인 건물들이 있는 동네에서 이뤄지기 마련인데, 티옹바루와 같이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멋이 있는 동네를 방문해 봐도 좋을 듯하다. 가는 방법은 MRT를 타고 Tiong Baru 역에 내려 도보로 15분 정도 걸으면 된다. 혹은 ‘5, 16, 33, 63, 123, 195, 851번’의 버스를 타고 ‘티옹바루 플라자’나 ‘블록 BLK55’에 하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티옹바루에서 꼭 가봐야 할 장소 몇 곳을 추려봤다.
Tiong Bahru Bakery
티옹바루를 유명하게 만든 1등 공신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트립어드바이저 싱가포르 카페 부분 1위, 전체 레스토랑 50위의 순위를 유지하는 유명한 베이커리다. 이곳에서 유명한 건 단연 크로와상이다. 플레인 크로와상은 물론이고 아몬드 크로와상과 비프 크로와상 샌드위치가 인기가 좋다. 구아카몰 번과 풀드포크 번과 같이 한 끼 식사로도 든든한 메뉴는 물론이고 에끌레어와 조각 케이크 등의 디저트까지 갖추고 있는데, 싱가포르 물가에 비해 그리 비싼 편이 아니니 안심하고 방문해도 좋다. 1층 천정이 부분적으로 오픈되어있는, 채광이 좋은 구조라 젊은 층에게 더 인기를 끄는 것 같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아침 8시에 오픈해서 저녁 8시에 문을 닫지만, 금요일과 토요일은 저녁 10시까지가 영업시간이다. 유명한 베이커리의 특성상 너무 늦게 가면 원하는 빵을 먹을 수가 없을지도 모르니 일찍 가는 편이 좋을 것 같긴 하다.
기억해야 할 건 이곳의 위치인데, 기왕이면 택시를 타고 찾아가는 것이 좋다. MRT티옹바루 역과 아웃램파크역 사이의 애매한 위치기 때문이다. 주의할 건, 택시기사에게 정확한 주소(56 Eng Hoon Street, #01-70, Singapore 160056)를 알려주는 편이 좋단 거다. 이곳이 젊은 층에게 인기이긴 하지만 전 연령층의 택시기사가 알고 있을 정도의 관광지는 아니다. 괜히 웅얼웅얼 거리다간 ‘티옹바루’라는 단어만 들은 택시기사가 티옹바루 쇼핑몰과 같은 생뚱맞은 장소에 내려줄 수도 있으니 유의하도록...
Tiong Bahru Market
개인적으론 각 나라의 전통 재래시장을 보는 것은 관광의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만 파는 과일이나 채소도 구경하고, 그걸 사고파는 현지인들의 표정도 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모르는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 냄새는 물론이고 뭔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의 일관성이 느껴진달까. 그러다 출출해지면 길에서 파는 로컬푸드의 맛도 좋다.
싱가포르에도 다양한 재래시장이 있다. 티옹바루 역시 오래된 주거지역이니 만큼 꽤 큰 재래시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재래시장이 2006년 5월, 웻마켓이라는 이름을 가진 깔끔한 마켓으로 탈바꿈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재래시장이 아닌, 호주·뉴질랜드 스타일의 건물로 재탄생한 것이다. 거의 낮 12시까지만 하는 영업시간 등 내부의 모습은 재래시장의 그것과 동일하다. 음식의 신선도는 물론 건물의 깔끔함까지 갖추고 있어 재래시장관광을 싫어하는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동남아 재래시장의 백미는 역시 열대과일 구경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시장에선 잘 볼 수 없는 과일인 Dragon Fruit이나 passion Fruit, African cucumber등을 구경하고 즉석에서 고른 과일로 만든 생과일주스를 먹는 경험은 재래시장만이 주는 큰 매력이다. 물론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2층의 호커 센터에서 파는 다양한 로컬푸드겠지만.
Book's Actually
티옹바루 거리의 외벽에는 다양한 벽화들이 있다. 가게마다 외벽의 그림들을 통해 자신들만의 특색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그 그림들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곳이 바로 티옹바루 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샵 중 한 곳인 북스 액츄얼리다.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빈티지한 소품들 역시 만만찮게 구비해놓고 있다.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들을 갖춰 놓은 독립 서적 전문 서점 정도랄까. 직접 출판을 하기도 하고 자체 제작 소품을 판매하기도 하는 게 이곳의 특징이다.
책의 종류는 사장님의 선택에 따라 소설과 같은 문학 서적, 여행서적 등이 많은데, 판매하는 소품 역시 그 감성이 이어져있다. 오래된 컵, 옛날 코카콜라병, 오래된 와인이나 사케병과 같은 빈티지한 소품은 물론이고 앤틱 한 소품들도 많다. 이곳의 마스코트 격인 고양이들까지 어우러진 이곳에 가면, 정말로 서울의 연남동이나 망원동의 어느 한 로드샵을 방문한 듯한 친근한 기분이 들 듯 싶다. 인스타그램(@booksactually)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으므로 그 감성을 미리 맛 본 후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Forty Hands
티옹바루 거리를 걷다 보면 대형 커피컵이 보이는 카페가 있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맛있는 라떼를 먹을 수 있는 카페, ‘포티핸즈’다. 한 잔의 커피가 나오기까지 40명의 손을 거친다고 해서 포티핸즈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그 이름만큼이나 커피 맛이 좋다. 사실 싱가포르의 전통적인 커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는 꽤 달다. 카야 토스트와 함께 먹는 바로 그 연유 커피들은 어딜 가나 맛있지만, 우리가 즐겨 먹는 아메리카노나 카페라떼를 맛있게 하는 곳이 별로 없다. 그러니 달달한 싱가포르의 커피가 조금 물린다면 반드시 이곳은 방문하길 추천한다.
아침 7시 30분에 오픈해서 저녁 7시에 닫으므로 아침을 해결하기에도 좋다. 팬캐잌이나 에그 베네딕트 같은 서양식부터, 콩박파우(kong bak pau, 동파육과 같은 삼겹살 조림과 스팀드번이 함께 나오는 요리)와 같은 동양식까지 브런치 메뉴도 다양하다. 생각보단 실내가 좁고 시끌벅적하니, 조용한 분위기보단 현지의 젊음을 느낀다는 기분으로 방문하면 좋을 듯하다.
Woods in the Books
북스액츄얼리와 상점 하나를 두고 나란히 있는 서점이다. 북스액츄얼리가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라면 우드인더북스(Woods in the books)는 아이들과 함께 가면 딱 좋은 곳이다. 어린이 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서점인 이 곳에는 우리나라에서 사기 힘든 다양한 그림책들이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뿐 아니라 성인용 그림책들도 많다. 만화나 그래픽이 다양한 책들은 물론이고 장난감 교구들도 다양하게 갖추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이런 아이템들이 선물하기에도 딱 좋을 것 같단 생각이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도 꽤 어울리는 선물이랄까.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은 확실히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 지인들에게 맛 집을 소개하여주려다 보면 난관에 봉착한다. 최근 인기 있는 곳들이 대부분 외국의 색깔(심지어 일본이 너무 많다)이 많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한국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기본으로 한 맛 집· 멋 집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문득 든다.
연애만한 여행이 있으리.
연애&여행 칼럼니스트 김정훈
tvN 드라마 <미생>,
OCN <동네의 영웅> 보조작가,
책 <요즘 남자, 요즘 연애>,
<연애전과>의 저자
싱가포르 여행 갈 때 꼭 필요한 여행 액티비티 예약 플랫폼, 클룩 KL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