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을 대표하는 특이한 서점들
항공권을 예약하고 D-day를 기다리는 여행객의 설렘을 어떤 기쁨과 견줄 수 있을까. 오랜 구애 끝에 마침내 연인 사이가 된, 사랑하는 이와의 첫 데이트를 준비하는 마음 정도면 비슷하려나? 아무튼 나는, 그 신나는 두근거림을 진정시키기 위해 타국에 도착해 있는 내 모습을 수차례 시뮬레이션했다. 블로그와 카페 그리고 SNS에 사는 수많은 전문가로부터 제공받은 양질의 정보들로 완전 무장까지 마쳤다. 한데, 그렇게나 많은 정보 속을 허우적대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싱가포르에 도착해서 단 한 곳의 장소만 갈 수 있다면,
내가 반드시 방문해 보고 싶은 장소는 어디일까?
당신의 여행에 여유를 불어넣는 여행 액티비티 플랫폼, 클룩(klook)!
센토사 섬, 유니버설 스튜디오, 칠리 페퍼 크랩으로 유명한 점보 레스토랑과 노싸인보드를 비롯한 유명 맛집들, MBS(Marinabay sands) 호텔의 인피니티 풀, 그 호텔 지하의 카지노, 클락키 로드의 화려한 클럽과 Bar들….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현지의 대형서점을 가자!
난 원래 서점을 좋아한다. 작은 서점도 좋아하지만 큰 서점도 좋다. 특히나 대형서점들이 꾀하고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의 다양한 변화가 반갑다. 더욱 많은 사람이 서점을 방문해 그 공간을 즐기는 걸 볼 수 있어서다. 서점엔 책의 향기가 있고 그걸 읽는 사람의 향기가 있다. 그것들이 어우러져 한 나라의 향기를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서점을 꼭 방문하고 싶었다. 서점에 가 현지인들과 섞여 책을 구경하면, 잠시 여행객 신분에서 벗어나 현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것만큼 그 나라를 깊숙이 탐방하는 일이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곧장 싱가포르의 대형서점을 찾아봤다. 그러다 보니 싱가포르 외 동남아 국가에 있는 서점까지 검색하게 됐다. 각 나라엔 우리나라만큼 괜찮은,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발전된 형태의 서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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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엔 두 개의 유명한 서점이 있다. 파퓰러(Popualr)와 키노쿠니야(kinokuniya)다. 파퓰러가 좀 더 원조 격이고 키노쿠니야는 신흥 강자랄까? 구관이 명관이란 말과는 달리, 싱가포르를 관광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서점은 키노쿠니야인 것 같다. 물론 오래된 전통을 가진 만큼 싱가포르 곳곳에 크고 작은 지점들을 많이 갖고 있는 파퓰러에 비해 키노쿠니야는 상대적으로 점포가 적긴 하다. 오차드로드에 있는 Ngee An City점, 부기스역 근처 Bugis Junction점, 클락키역 근처 liang court점, 주롱 이스트역 근처 Jurong 점의 4곳이 전부다. 하지만 현재 모든 브랜드를 통틀어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서점은 키노쿠니야의 Ngee an City점이다. 타카시마야 백화점 3층에 위치한 이 지점은, 심지어 동남아에서도 가장 큰 서점이라고 한다. 투자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듯싶다. 두 곳 다 영어 및 중국어로 된 서적이 대부분이지만, 일본 브랜드인 키노쿠니야는 당연히(?) 일본 잡지와 일본 서적들 또한 많이 보유하고 있다.
자기계발서와 같은 실용서가 잘 팔리는 우리나라완 달리, 싱가포르에선 소설이나 문학이 인기가 좋다. 우리나라 서점과 차이가 있다면, 키노쿠니야에는 ‘베스트셀러’ 코너가 없단 거다. 대신 Highlights라는 섹션이 마련 돼 있다. 어차피 똑같은 거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많이 팔리는 책’ 과 ‘주목할 만한 책’의 뉘앙스는 꽤 크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웬만해선 서점에 가지 않을 게 뻔하다. 하지만 불황 속 출판계에선, 그들이야말로 구매력이 있는 잠재고객이 될 수 있다. 그들을 서점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뭘까? 다른 목적을 갖고 방문하게 만든 뒤 ‘어? 여기서 책도 살 수 있네.’라는 식의 인식을 하게 하는 수밖에 없을 거다. 너무나 간단한 진리지만, ‘서점엔 책만 있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파격적으로 해체한 결과다. 그리고 그 실행의 선두주자가 바로 서점 츠타야(Tsutaya)다.
서점의 미래라는 별칭까지 붙게 된 츠타야는 일본 내 매출 1위의 서점이다. 1983년 ‘히라카타점’으로 시작하여 현재 일본 전국에 1400여 곳 이상의 매점을 가진 츠타야의 연 매출은 2조 원. 돌풍의 시작은 2003년 롯폰기 점이었다. 서점에 카페를 결합한 매장을 즐겨 방문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가능성을 점친 CCC(컬처 컨비니언스 클럽)는 ‘다이칸야마 프로젝트’를 통해 급속도로 성장했다.
‘다이칸야마’점을 비롯해 츠타야의 대부분 매장은, 음반이나 DVD까지 취급 하는 대형 서점 베이스에 카페와 도서관까지 믹스된 라이프 스타일 스토어 형태다. 그러다 최근에는 츠타야가전 이라는 라인까지 등장했다. 신흥 인기 주택지로 알려진 도쿄의 후타코타마가와에 오픈한 츠타야 가전은 1층과 2층을 합쳐 무려 2000평이 넘는 규모다. 이곳에선 가전, 가구, 미용, 인테리어, 모바일 등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 전문 컨시어지를 통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리델 와인 잔, 발뮤다 토스터와 휴롬 착즙기, 침대 매트리스와 커버를 한 곳에서 살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거실 인테리어에 대한 상담까지 받을 수 있단 얘기다. 그러면서도 서점 본연의 특성은 잃지 않고 있는 게 대단하다. 구비하고 있는 책의 양도 무려 12만 권이나 된다.
물론 모든 츠타야 지점이 동일한 규모나 형태는 아니다. 예를 들어 홋카이도의 삿포로 지점은 서적의 판매보단 음반이나 영화의 렌탈 업무를 주로 한다. 24시간 운영한다는 것도 특색이다. 보통의 츠타야 서점을 생각한다면 하코다테점을 방문하면 만족할 것이다. 이렇듯 매장마다 특색과 영업시간이 판이하니 목적에 따라 지점에 전화를 해보고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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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츠타야가 있다면 대만에는 성품서점이 있다. 성품서점은 2004년 뉴욕 타임지가 뽑은 아시아 최고의 서점으로, 츠타야와 마찬가지로 라이프 스타일 스토어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둔난점, 시먼점, 타이베이 뉴 호리즌 빌딩점 등 다양한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데 타이베이 본점(No. 245, Section 1, Dūnhua South Rd, Eslite, Taipei City)은 24시간 운영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성품서점의 각 지점에는 다양한 레스토랑과 편집샵 등이 운영되고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겐 타이베이 시청역 근처 신의점 내의 오르골 샵이 인기다. 원하는 스타일에 따라 DIY로 제작해 주는 오르골을 기념품으로 구매하는 한국 관광객들이 많다. 꼭 기념품이 아니라 해도, 성품서점은 꼭 한 번 방문해 볼 만하다. 우리 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대만의 출판계는 꽤 활성화 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보다 대만인의 개인당 독서량이 더 많다고도 한다.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책이 있는 성품서점에 들러 책 한 권쯤 구매하는 것도 여행의 좋은 추억이 될 듯싶다.
홍콩의 로컬서점은 커머셜 프레스와 페이지 원이 유명했다. 하지만 디자인 서적을 전문으로 취급했던 페이지 원의 홍콩 매장(하버시티 점)은 문을 닫아 버렸다. 커머셜 프레스는 여전히 건재하다. 침사추이 역의 B1 출구 근처 쇼핑몰 지하에 있는 커머셜 프레스가 접근성이 좋다. 하지만 홍콩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서점은 대만을 본점으로 한 성품서점이다. 코즈웨이베이역에 있는 쇼핑몰인 ‘하이산 플레이스’의 6~8층에 위치한 성품서점도 인기가 좋지만, 하버시티점이 훨씬 큰 규모를 자랑한다.
홍콩에서 책을 구매할 시 알아둬야 할 건, 홍콩의 책에 쓰이는 중국어에 대해서다. 홍콩에서 출간되는 서적들은 중국어와 영어로 인쇄되는데, 이때 광둥어 번체자가 쓰인다. 이 번체자로 쓰인 책들은 홍콩과 대만의 두 나라에서 유통된다. 그런데 비싼 홍콩의 물가는 책값에도 여실히 반영되고 있다. 만약 번체자로 쓰인 책을 살 거라면 같은 성품서점이라도 대만에 있는 지점에서 사는 게 이익이란 얘기다.
태국의 방콕이나 치앙마이의 큰 쇼핑몰에는 아시아 북스라는 서점이 있다. 생각보다 규모는 작지만 웬만한 책들은 다 구비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특히 이곳에선 태국과 베트남 요리에 대한 레시피 북을 많이 구매할 수 있단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광고판이 거의 없어 오롯이 책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지나치게 많은 욕심을 부리지 말자는 거다. 어느 나라든 도시든, 그곳을 평생 한 번만 방문할 것처럼 여행계획을 짜는 게 보통이긴 하다. 하지만 두 번 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일단은 한·두 가지의 컨셉을 정하는 선택과 집중을 하는 편이 좋은 것 같다. 그저 관광하는 것이 아닌, 진짜 여행이 되려면 말이다.
연애만한 여행이 있으리.
연애&여행 칼럼니스트 김정훈
tvN 드라마 <미생>,
OCN <동네의 영웅> 보조작가,
책 <요즘 남자, 요즘 연애>,
<연애전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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