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와 젠트리피케이션
#9. 어떻게 건물주는 예술가와 사랑에 빠졌을까?
"태초에 가난이 계셨다. 이 가난이 힙스터와 함께 계셨으니 힙스터는 곧 유행이니라. 힙스터 가라사대 카페가 있으라, 바가 있으라, 벽화를 그리라, 자전거를 타라, 빈티지를 입으라, 메이슨병에 마시라, 문신을 하라, 이국적인 음식을 먹으라. 그대로 되니 보기 좋았더라."-힙스터 제네시스
생산을 멈춘 공장, 혹은 공동화된 주택이 모여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동네가 표적이다. 이런 기운이 퍼지기 시작하면 노숙자들이먼저 하룻밤 이상 몸을 누일 곳을 찾아 들어선다. 다음 순서 역시 사회 구조에서 가장 아랫부분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일자리를 찾아 갓 상경한 어수룩한 시골청년이거나, 무허가 주택에서 쫓겨나 또 다른 무허가 주택을 찾는 이들일 수 있다. 집도 없고 돈도 없으며, 당연히 뒷배도 없고 보장된 직업도 없는 이들이다. 무법지대에서 그들만의 법을 만들어가며 제법 공동체의 모양새가 갖춰진다. 어느 날, 최소한의 돈으로만 삶을 살기로 선택한, 그러므로 미래의 가난이 보장된 이들이 이 지대에 발을 들여놓는다. 바로 젊은 예술가들이다. 동네의 어른들은 혀를 차기 시작한다. 예술가연하는 치들이 그렇잖아도 심난한 동네 분위기를 하 수상하게 만들고 있다고 수군댄다. 예술가입네하고 돌아다니는 청년들은 한량 같은 생김과 다르게 부지런하다. 하루는 으슥한 창고를 커피숍으로 만들어놓더니, 다음날엔 공장을 펍으로 바꿔놓는다. 비슷비슷하게 괴기한 외양을 한 친구들이 모여 그 공간들에서 죽치고 놀더니, 어느 날엔 또 버려진 창고에서 전시라는 걸 한다. 그런데 그 전시엔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좋은 차를 타고 와서 구경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다음 날 봤더니, 유명한 신문에 이 전시가 소개되고, 무려 텔레비전 전파도 탄다. 엇비슷한 커피숍과 레스토랑이 점점 더 늘어나고, 낡고 괴상한 옷을 파는 가게도 많아진다. 결국 이 콩과 팥처럼 비슷하고도 다른 젊은이 인구가 점점 늘어가다가 동네의 대부분을 점령한다. 별난 이들이 만든 문화라는 걸 본답시고 관광객들이 찾아든다. 가난한 동네라 예산 운운하며 청소라곤 도통 안 되던 곳인데, 갑자기 시인지 주인지 알 수 없는 곳 주관으로 깨끗하게 도로청소도 해준다. 우둔한 이들마저 그 이상함을 감지할 즈음이 되면, 역시 이상하리만치 집값이 치솟는다. 동네 분위기가 낯설어진 가난한 이들이 다른 곳을 찾아 떠나고, 집세를 감당 못하는 예술가들도 떠난다. 거주민들을 내쫓는 데 성공한 허름한 건물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엔 멀끔하고 비싼 콘도가 지어진다. 장사 잘되는 카페와 바의 주인이 건물주인이라는 이름의 대머리 아저씨로 바뀐다. 콘도에 사는 이들은 증권맨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부자 젊은이들로 대체된다. 이전 거주민과 세대는 같더라도 수입은 전혀 다른 이들이다. 예술가 동네라며 유명세를 얻은 이 구역에 이제 예술가는 없다. 예술도 없다. 돈만 남는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두고 전문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시 재활성화)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 순차적인 도시 재개발 진행과정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굴까? 적어도 싼값에 놀이터와 재미있는 커뮤니티를 가질 수 있던 예술가들은 아니다. 번잡한 동네에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진 노숙자나 무허가 주민들도 아니다. 비싼 렌트비를 내면서라도 힙한 동네에 살아보려는 스트레스에 찌든 증권맨도 아니다. 위험한 구역의 범죄율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지역 국회의원도 아니다. 바로 그 지역의 땅주인, 집주인이다. 쿨한 예술가는 별 다른 대가 없이 생산성과 창의성은 어찌나 높은 존재들인지. 여기저기서 재미있는 물건들을 잘도 가져다 꾸며 놓고, 쓰러져가는 외벽에 예쁜 그림도 그려놓는다. 이즈음 부동산업자들의 마음에 기쁨이 깃들기 시작한다. 우중충한 공장지대가 예술지구로 격상돼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하면 건물주인들의 심장이 기대감으로 쿵쾅거리게 된다. 비단 직업이 예술가가 아닐지라도, 힙스터(hipster)라 불리는 신비로운 생명체가 온몸으로 뿜어내는 '힙함'은 '가난의 때'를 '값비싼 빈티지'로 변모시킨다. 언제나 음악, 문학, 요리, 디자인, 패션, 미술 등 문화적인 것이라면 무엇이던 열정적인 관심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반문화를 추구하는 모순적 존재. 이 '아티스트-워너-비'인 힙스터 중에서 다시 예술가가 탄생하는 법이다. 실제 힙스터와 예술가의 라이프스타일은 대동소이하므로 이 글에선 힙스터와 젊은 예술가를 큰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다.
힙한 도시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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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건물주들의 사랑스러운 뮤즈로서 예술가의 역할이 입증되기 시작했을까? 부동산 거래가가 지구 상 최고이자, 인구의 30%가 예술가라는 설이 있는 뉴욕의 경우를 예로 드는 게 좋겠다. 지난 역사를 통해 아트 씬의 움직임과 연계한 부동산의 고저를 가장 선명히 드러내 준 지역이기도 한 까닭이다. 역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범죄와 마약으로 들끓던 맨해튼의 다운타운 지역, 즉 소호와 이스트 빌리지 지역을 아우르는 차이나타운과 인접한 동네에 예술가들이 터를 잡으면서 시작된다. 피난과 전쟁 피해로 주인이 없어진 건물에 스쾃(squatting, 무단거주)을 하면서, 가난하지만 넓은 작업실이 필요한 작가들이 모였다. 소호 일대가 쇼핑단지로 변모하면서 스쾃이 불가능했던 다음 세대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대안으로 떠오른 곳은 미트패킹 지역이자 창고와 자동차 정비소 등이 있던 첼시. 또다시 시간은 흘러 고급진 갤러리 지역으로 완전히 자리 잡은 첼시를 피해 터를 잡아야 하는 그다음 세대 예술가들은 다리 건너 브루클린에 시선을 돌렸다. 이제 예술인 구역은 덤보 -> 윌리엄스버그 -> 부쉬윅 -> 그린포인트로 이어지며 사실상 브루클린전 지역으로 확장된다. 브루클린의 남쪽에 위치한 선셋 파크에는 '산업도시(Industry City)'라 불리는 창고가 있었다. 창고 주인은 전략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공간을 예술가에게 임대했다. 그리고 갑자기 임대료를 급격하게 올리면서, 이를 감당 못하는 예술가들을 내쫓았다. 이 창고의 입주민 중 25%가 작가였단다. 따라서, 이젠 브루클린 아랫동네에서도 쫓겨나게 된 아티스트 군집들의 이동은 기차 타고 가야 하는 업스테이트 뉴욕의 허드슨 밸리와 퀸즈의 리지우드까지 확장된다. 그래도 이탈리아 마피아들이 근거지로 삼았던 우범 지대를 문화지역으로 바꾼 레드 훅과 캐롤 가든 지역의 경우도 있다. 다나 슈츠(DanaSchutz), 줄리앙 슈나벨(Juian Schunabel), 리사 유스카비지(Lisa Yuskavage), 앨리슨 쇼츠(Alyson Shotz) 등 유명 작가들의 작업실이 많은 지역이다. 공장들을 고급 맨션으로 바꾸려던 건물주인들 대신 예술가의 편을 들어준 지역 정부의 선택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힙스터의 성지인 윌리엄스버그의 강변 끝자락에 위치해 곧 철거될 예정이던 도미노 사탕공장에서 가졌던 카라 워커(KaraWalker)의 <설탕 조각> 전시는 힙스터 문화의 정점을 찍었다. 유명 작가의 공장 전시에 한 시간 이상 줄을 서고 관람을 원하던 뉴요커들과 관광객들의 열정과 갈망. 이것이야말로 근처 부동산을 올리는 최대 동력이다.
부동산과 예술가 관계의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오래다. 예술을 사랑하는 척하는 부동산업자와 그들을 주시하는 예술가의 이야기는 1971년 한스 하케(HansHaacke)의 <샤폴스키외.맨하탄 부동산 보유 상황, 1971년 5월 1일 실시간 사회 구조(Shapolsky et al. Manhattan Real Estate Holdings, A Real Time SocialSystem, as of May 1, 1971)>란 작품으로 설명해 볼 만 하다. 하케는 샤폴스키그룹의 부동산 투기를 취재해, 지도, 사진, 차트 등으로 가시화했다. 이 작품이 뉴욕의 할렘을 중심으로 저렴한 부동산을 독점한 뒤에 임대료를 올리는 식의 투기를 밝혀냈기에, 구겐하임에서 열릴 예정이던 작가의 개인전에 선보일 수 없게 됐다. 샤폴스키 그룹이 다시 미술관의 큰 후원자였기에 당시의 관장이 사전에 전시를 막았기 때문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후원자들은 과연 그들 자신이 주인공이 된 예술작품에 관대하지 않았을까? 그 점 궁금하다. 한 미술관의 관장이라는 이가 예술과 예술작품의 편에 서지 않고 후원자의 편에 선 탓에, 정작 샤폴스키 측의 입장을 듣지도 못한 이야기.
근래엔 힙스터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인종문제를 다루는 영화를 주로 제작하는 스파이크 리(Spike Lee)는2014년초,<뉴욕매거진>을 통해 육성으로 백인들이 아프리칸-아메리칸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고 따졌다. "왜 사우스 브롱스, 할렘, 베드 스터이, 크라운 헤이츠에 백인 뉴요커가 유입되면서 시설들이 더 좋아지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내가 워싱턴 파크 165번가에 살 때만 해도 젠장할 쓰레기가 매일 치워지진 않았다. 공립학교도 좋지 않았다. 경찰도 주변에 없었다. 125번가에서 새벽 3시에 백인 엄마가 유모차를 밀면서 지나가는 걸 본다는 것을 당신에게 뭔가를 말해줄 것이다... 빌어먹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신드롬이 도래했다. 이건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 있었으니까! 단순히 와서 자기 것으로 만들 순 없단 말이다." 가난하고 다소 위험했더라도, 특색 있던 지역 문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힙스터가 고유문화를 망친다고 말한다. 존 맥호터(John McWhorter)처럼 '힙스터'란 흑인들이 백인들을 격하시키는 말로 쓰던 '홍키(honkey)'라는 단어의 다른 말이라고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백인들이 '니그로'라는 인종차별 발언 대신 '떠그(thug,건달)'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과 상응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그 명암도 존재하지만, 힙스터와 젠트리피케이션의 상관관계는 명확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본인들이 집값을 올려주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도 남은 세입자들은 왜 아직도 그 권리를 요구하지 않는가가 의문이다. 본인들이 살던 집과 가게를 주인에게 권리금을 받으며 넘겨도 모자랄 상황임이 밝혀졌는데도, 왜 무력하게 쫓겨나는 신세를 감내하는가? 힙스터들은 보기보다는 셈에 어둡지 않다. 이 신인류의 특징으로 '정치적으로는 자유롭고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인들의 경제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혹독한 개인주의에 훈련된 이들은 단결의 힘을 모른다. 하여 그들의 미약한 힘을 모으면 집주인보다 큰 힘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려 한다. 단결, 투쟁, 동맹 따위 그다지 쿨하지 않다. 2012년 '반짝'하는 희망의 빛을 보여줬던 '월가 점거'가 결국은 공권력과 1%의 힘에 눌려, 이슈만 남기고 실효를 거두지는 못한 까닭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젠 보다 못한 정부가 나섰다. 집값이 괴물인 데다, 10세대 중 7세대가 월세로 생활하는 뉴욕주는 집주인에게 이용되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이트를 운영한다. '임대 가이드라인 위원회(
http://www.nycrgb.org/)'는 세입자의 권리를 알려주는 법조항등을 수시로 업데이트한다. 어떻게 집을 구하는 게 현명한지에 대한 지침은 물론, 질의문답 게시판까지 있다. 세입자의 신고가 많은 집은 공개해 버리고, 세입자들의 법적 대응까지 도와준다. '악덕집주인닷컴(http://shadylandlords.com/)'이라는 사이트도 나왔다. 진상 집주인을 고발하는 장소다. '빈대 등기소(http://bedbugregistry.com/)라는 사이트도 있다. 미국 전체에 빈대가 나왔던 건물을 기록한다. 밀도에 따라 빨간 마크가 짙어지는데, 당연히 뉴욕지역이 눈에 띄게 '빨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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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보니,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을 때가 기억난다.
맨해튼에서 5년 넘게 살았던 건물의 주인이 갑자기$200(20만 원가량)이나 월세를 올려버린 탓에, 말 그대로 쫓겨나듯 브루클린으로 이사했다. 참고 삼아 적자면, 맨해튼의 방 하나짜리 아파트의 평균적인 월세 시세는 최저 가격대를 기준으로 $1,800에서 $2,500 (180만 원-250만 원) 사이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방은 하나 거나 스튜디오고, '최저'로 분류되는 가격대를 기준으로 삼았을 경우다. 이런 집들은 대체로 2차 세계대전 전에 지어졌고, 엘리베이터가 없으며, 뉴욕의 상징과 같은 쥐과 바퀴벌레도 섭섭지 않게 출몰한다. 어찌 됐든 거친 맨해튼 시절을 지나 새로 이사 온 동네는 브루클린의 최남단에 위치한 베이 릿지라는 곳이다.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다. 무엇보다, 맨해튼에서 내던 월세와 비슷한 돈으로 세배는 넓은 공간에 몸을 둘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화가인 생활동반자 덕에, 건물 관리인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이웃들에게 우릴 소개하며 "우리 건물에 아티스트가 들어왔다. 이제 우리 건물도 팬시 해졌다!"라고 말한 기억도 있다. 건물주인은 친히 작업실을 방문해 그림을 감상하며 르네상스와 클래시즘을 거론하며 진지한 비평을 해주기도 했다. 미안하게도 집값을 올리는 데 일조를 해줄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실제로 이 동네의 집값도 매해 오르고 있다. 하긴 뉴욕에서 7년간을 머무르며 집세가 오르지 않았던 때는 월가가 무너지면서 미국 경기가 바닥을 친 2008년 한 해뿐이긴 했다. 과연 집값 안정화라는 환상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아, 힙스터든 아니든, 쫄바지가 어울리든 말든, 오늘도 일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다음 달 월세로 가져다 바치는 전 세계에 편재하는 세입자들이여, 단결... 해볼까?
추백: 아나키스트였던 작가 콜린 워드(ColinWard)의 유명한 말이 있다.
"지구적으로 봤을 때 상품들은 가능한 모든 자연권 원칙들을 위배하는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그들(토지 소유자들)은 모두 훔친 땅의 수혜자들이다."
SEAWEED x KLOOK
Written by.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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