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죽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주 큰 예배당 안에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서 손가락을 굴리고 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근엄한 인상의 어떤 목사님이 내게 악보 하나를 던져주고 연주를 지시하길래 필사적으로 초견을 했다. 잔뜩 겁에 질려서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손가락이 멋대로 흰 건반과 검은 건반들을 타고 넘어갔다. 사람들이 가득 찬 예배당에 기묘한 선율이 울려 퍼졌다. 어느 시점에서 그것은 더 이상 피아노의 음색이 아니었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낼 수 있는 소리보다도 더욱 크고, 힘 있고, 다채로운 소리였다. 마치 해안까지 밀려왔다가 다시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는 파도소리 같았다. 혹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빛의 새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 같았다. 이 세상에 속한 노래가 아닌 것 같은 선율이 공기를 뜨겁게 달구는 동안 사람들은 두 손을 높이 들고서 황홀경에 잠겼다. 나 역시 영적인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된 나머지 이 순간 죽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꿈이 아니라면 좋았을 텐데 꿈이어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현실처럼 생생했던 감각이 사라지고 대신 모호함이 자리 잡았다. 꿈에서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이 기막힌 멜로디를 꼭 기억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실패했다. 나중에는 과연 내가 꾼 꿈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2022.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