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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Dec 21. 2016

 [그림] 수태고지 명화 속으로

- 신을 잉태한 여자, 마리아




신을 잉태한 여자

 이스라엘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한 처녀가 있었다.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 그녀는 혼례를 앞두고 천사의 방문을 받는다. 천사가 말한다. ‘은혜를 받으신 자여. 평안하십시오. 주께서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존재에 놀라고, 다음으로 왕후장상이나 받을법한 인삿말에 놀란다. 천사가 다시 말한다. ‘당신은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는 신의 아들이라 불려질 것입니다.’ 마리아는 당혹하여 반문한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겠습니까.’ 천사는 말한다. ‘신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습니다’ 마리아가 순명하는 순간 말씀이 임하고 태기가 비친다. 신의 아들인 예수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얻게 되는 첫 순간이자, '신을 잉태한 여자'로서 마리아의 새로운 삶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Sandro Botticelli _ <수태고지>   15세기. 우피치 미술관


수태고지(Annunciation)는 '알리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아눈티아레(annuntiare)'에서 유래한 고유명사이다. 기독교 전통에서 수태고지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를 예고한 사건을 가리킨다. 수태고지를 주제로 그려진 회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15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보티첼리의 작품일 것이다. 그가 화폭에 옮긴 수태고지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살짝 눈을 내리깔며 상체를 앞으로 숙인 마리아의 자세를 보라.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의 맞은편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분위기가 고상함을 넘어 어떤 애수를 자극한다. 천사의 손과 마리아가 미처 수습하지 못한 손이 무척 가깝다. 성령으로 잉태되리라는 '말씀'이 그대로 마리아에게 이뤄지고 있는 거룩한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두 인물 간의 조화가 아름다우면서 친밀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각각의 얼굴 표정과 제스처는 물론 창 밖의 풍경 또한 뜯어볼수록 세심하기 짝이 없다. 화가 보티첼리는 웬만한 여성보다 더욱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Orazio Gentileschi  <수태고지>   16세기. 토리노 사바우다 갤러리


신의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순종의 상태'가 돋보이는 수태고지이다. 한쪽 손을 가슴에 대고 다른 한 손을 가만히 들면서 순종을 표하는 마리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의 얼굴을 가까이서 올려다보며 말하고 있다. 천사가 들고 있는 백합은 수태고지 전통에서 처녀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한다. 마리아의 얼굴은 소녀처럼 애잔해 보인다. 그들이 있는 공간은 마리아의 침실이다. 열린 창문으로 빛과 함께 성령의 비둘기가 등장한다.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됨'을 암시하는 것이다. 수태고지 장면에서 마리아는 성모의 이미지 때문에 처녀임에도 엄숙하게 그려지지만 사실 마리아는 고작 이십여 년을 살아온, 어쩌면 소녀에 더욱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천사의 방문을 받고 신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느꼈을 놀라움을 상상해본다. 다음 그림에는 마리아가 놀라는 모습이 희극의 한 장면처럼 포착되어 있다.




Lorenzo Lotto  <수태고지>   16세기. 레카나티 시립미술관


상당히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놀라서 황급히 몸을 피하는 마리아의 모습이 정면으로 그려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을 마리아. 갑작스러운 천사의 방문이 평범한 일상을 순식간에 연극 속 한 장면으로 바꾸어놓았다. 몸을 움츠리며 튀어나가는 고양이 또한 다분히 익살스러운 장치 이다. 베란다 밖에는 천부 하나님이 구름을 타고 내려다보며 이 모든 상황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막 도착한 듯 숨가쁜 기색의 천사 가브리엘은 행여 혼날세라(?) 급히 손을 쳐들며 말씀을 전달한다. 수태고지를 한편의 해프닝으로 묘사한 화가의 재치가 범상치 않다.




Caravaggio <수태고지> 16세기. 낭시 보자르 미술관


발견 당시 원화가 상당히 훼손된 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복구한 그림이다. 카라바지오의 수태고지는 그의 여타 작품들처럼 어둡고 강렬한 흡입력이 돋보인다. 기묘한 자세로 공중에 떠 있는 천사는 몸의 절반, 즉 왼편이 짙은 어둠 속에 묻혀있다. 천사의 표정이나 눈빛을 확인할 수 없는 탓에 전체적으로 불안분위기가 흐른다. 맞은편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마리아를 향한 무언의 손짓에는 거부할 수 없는 권위가 실려있다. 순명을 표하는 마리아의 겸허한 자세와 대비되는 천사의 압도적인 분위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El greco  <수태고지> 16세기.  빌바오 벨라스 아르떼 미술관


야성적인 장엄함이 화폭 가득 펼쳐진 수태고지 명장면이다. 하늘에는 천상의 관현악단이, 머리 위에는 쇄도하는 성령의 비둘기가, 지상에는 구름을 타고 내려온 천사 가브리엘이 자리하고 있다. 아래에는 흡사 불꽃에 사윈 것처럼 마른 백합들이 피어있다. 수태를 고지받는 순간 마리아의 영적인 눈이 열리기라도 한 듯 초월적이며 계시적인 분위기가 흘러넘친다.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신성의 순간! 마리아가 서 있는 장소는 이 지상에 속한 한계를 뛰어넘어 영적 세계의 일부분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마리아는 이 모든 광경을 아우르는 존재감을 발하며 서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온갖 장엄한 장치는 모두 주인공인 마리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 아닐는지. 17세기 그림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유분방한 표현 방식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Matthias Stomer <수태고지> 17세기. 우피치 미술관


마리아와 천사 가브리엘이 마치 데면데면한 친구 사이처럼 그려졌다. 어딘가로 먼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거의 잊어버린 친구가 갑자기 집에 쳐들어온 느낌이랄까. 시각은 모두가 잠자리에 든 한밤중. 말씀을 묵상하고 있던 마리아에게 불청객이 들이닥친다. 촛불에 환히 드러나는 마리아의 얼굴 표정이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이 작자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반대로 천사 가브리엘의 표정은 온화하기 짝이 없다. 수태고지 전통의 상징들이 최대한 생략된 표현 방식이 신선하다. 특히 두 사람의 상반된 제스처가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리아의 솔직한 표정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분이 되는 수태고지 그림이다.





Henry Ossawa Tanner <수태고지>   19세기.  필라델피아 박물관


천사 가브리엘과 말씀이 상서로운 빛으로 표현되었다. ‘성령의 임재’, '성령으로 잉태됨'을 묵상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아름답고 경건한 그림이다. 빛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표정에 의구심과 두려움, 순수한 감탄이 잔잔히 드러나있다. 영적인 기운에 압도되어 납작 엎드릴 법도 하지만 마리아는 단지 두 손을 그러쥐고 침대 한편에 앉아있다. 그녀의 눈과 귀를 비롯한 오감이 온통 빛에 붙들린 것처럼 보인다. 침실이라는 사적인 공간이 주는 느낌 때문일까. 빛으로 임재한 말씀과 마리아 사이에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친밀함이 흐르는 듯하다. 잠들기 전, 고요한 기다림 가운데 찾아오는 말씀의 참된 속성. 화려한 장치가 없는 깊은 서정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은밀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으로서의 수태고지를 엿볼 수 있는 그림이다.





 Maurice Denis  <수태고지>  20세기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방 안. 금색 자수실의 거룩한 옷을 입은 천사 가브리엘이 경배하듯 무릎을 꿇고 있다. 살짝 내리깐 눈과 높이 쳐든 손이 고요한 기쁨에 감싸여있다. 마리아는 면사포를 연상하게 하는 머리 가리개와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결혼식을 앞둔 예비 신부와도 같은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흘러넘친다. 날씨 좋은 오월의 어느 날 구혼 소식을 가지고 찾아온 천사와,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는 신부와도 같은 마리아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녀가 내놓은 답변은 빛으로 물든 얼굴만큼이나 확고하다. 어차피 그녀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며 그녀만이 감내할 수 있는 시련이다. 하얀 드레스는 영광과 고난으로 꽃 장식한 긴 웨딩마치를 예고하는 듯하다. 신부 마리아의 사랑스러움을 따스한 눈길로 포착한 화가에게 찬사를 !





Maurice Denis  <수태고지>  20세기. 개인 소장


모리스 드니의 또 다른 수태고지이다. 회랑의 한 곳에 기대앉아 있는 푸른 옷의 마리아. 기둥 뒤에서 마리아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천사 가브리엘. 인물도 장소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선상에 있는 듯 모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단순한 고요를 뛰어넘는 침묵이 화폭을 담담하게 물들이고 있다. 예민한 듯, 아무렇지 않은 듯, 모호하게 묘사된 마리아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녀의 정처 없는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천사의 방문을 알고 있기는 한 건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방문객을 오래 세워둘 수밖에 없는 자기 사정, 어쩔 수 없이 혼란한 자기 속을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는 것인지. 그녀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천사 가브리엘은 오랜 시간 서성이고 있었을 것이다. 이방인처럼, 타인처럼, 조금은 쓸쓸하게. 어떤 드라마틱한 장치도 존재하지 않지만 보면 볼수록 마음을 뒤흔드는 수태고지 장면이다.





John Collier  <수태고지> 21세기


21세기 현대판 수태고지라고 할 수 있을까. 발목이 드러난 푸른 원피스 차림에 머리를 질끈 묶은 소녀와 아무 장식이 없는 단순한 옷을 두른 젊은 천사가 만났다. 천사의 모습이 젊은 가톨릭 수습 수도사를 떠올리게 한다면 소녀는 문학소녀를 떠올리게 하는 수수함이 인상적이다. 길 가다가 마주쳐도 이상한 조합인데 여느 집의 현관 앞에서 딱 마주친 그들! 고만고만한 또래 같은 분위기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마리아가 손에 쥐고 있는 빨간 책은 의심할 바 없이 성경책일 테지만 앳된 모습 때문에 아끼는 소설이나 시집처럼 보인다. 전통적으로 수태고지가 그리는 마리아는 평소 영성에 밝을뿐더러 신의 섭리를 알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를 고지했을 때, 놀라고 고민하면서도 기꺼이 순종한 것은 단순히 성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믿음의 과정이 은 결실이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화하다
 기독교 전통에서 예수의 탄생은 말씀이 육신으로 화化한 사건으로 정의된다. 즉 태초부터 영원까지 존재하는 '말씀'이 인간의 육신을 입어 지상에 현현한 사건이 예수의 탄생이다. 때문에 수태고지는 처녀의 몸에서 비롯된 예수의 인성과 말씀의 육화(肉化 :incarnation)라는 신성을 아울러 의미한다. 사람의 아들이면서 신의 아들인 예수의 놀라운 신비… 믿음이란 것은 신비를 경외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성탄절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이렇다 할 부침이 없었던 평화로운 한 해였다. 다만 나이를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 철없음이(…) 걱정된다. 혼탁한 사회를 보며 큰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은 연말이다. 시끄럽고 아픈 속내들이 아물기까지는 더욱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모든 것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 되길. 정의를 부르짖듯이 주변 사람들을 뜨겁게 돌아보지 못해서 늘 미안하다. 한 주가 채 남지 않은 올 한 해, 미련 없이 보낼 수 있을까. 감사함과 아쉬움을 비롯해 여타의 이름 없는 감정들이 자꾸만 솟구쳐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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