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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1. 2016
[영화] 미녀와 야수 (2014)
단상들.
"누가 내 장미를 꺾었지?” 무참하게 꺾인 것은 한낱 장미 따위가 아니다. 야수는 장미를 꺾은 상대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할 만큼 진지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무려 상대방의 목숨이다. 이게 뭘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러니까 피흘림에는 피흘림으로 보상을...? 야수가 정말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은 어쩌면 목숨 같은 사랑일 수도 있다.
키워드1 #장미
장미를 꺾은 것이 함정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뻗어나간 손... 아니, 마음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만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사랑 없이도 쉽게 가진 것이야말로 손바닥을 파고드는 장미 가시만큼이나 괴로운 것이다. 일단 내 것이 되어버린 것을 놓아버리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가시의 극렬함이 먼저인지 살갗의 아픔이 먼저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어서 혼란스럽다. 장미의 억울함은 또 어디에 호소할 수 있을까. 아무렇게 피어난 흔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남의 손 안에서는 아플 수밖에 없다.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지천에 구르는 돌멩이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키워드2 #야수의 성
헤아릴 수 없는 긴 세월 동안 홀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일일까. 자신을 투사할 대상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영원히 목숨을 이어가야 한다면? 자기 분열이 답이다. 야수의 쪼개어진 자아들이 곧 살아있는 성(成)이고 장원(莊園)이다. 은유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홀에서, 침실에서, 빛이 떠다니는 후원과 산책로에서... 벨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반응하는 야수의 성을 둘러보며 놀라워한다. 아무도 만나지 못해서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사실 언제나 야수와 함께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야수가) 왜 기척을 숨긴 채 지켜보고만 있었는지는 뻔하다. 그는 벨을 탐색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쩌면 죽게 될까?그럼 이 세계는?' 그에게 타인의 존재란 갑자기 찔러 들어온 쇠붙이와도 같아서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해가 될지 득이 될지 전혀 알 수 없다.
키워드3 #벨(Belle)
벨은 호기심이 많다. 알고 싶은 것도 많다. 그저 눈을 감고 싶더라도 저절로 알게 되는 우연을 연달아 만난다.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 확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처음에는 자신이 책처럼 읽히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녀가 뭘 제대로 알고서 그러는 게 아닌 줄 알면서도 당혹스럽다. 이런 부류의 사람과는 모쪼록 적당히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이 세상이 터무니없이 좁다.
키워드4 #두 번째 삶
신화적 존재가 평범한 인간이 되어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 혹은 평범한 인간이었던 자가 불멸의 삶을 부여받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 어느 쪽이 선물이고 어느 쪽이 형벌일까. 오랜 세월 동안 고통받은 야수라면 기꺼이 짧게 타오르는 삶을 바랄지 모른다. 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선택할 기회가 찾아온다. 사랑은 이어지고 저주는 풀리고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인생에서 두 번째 삶이 주어지는 것은 얼마나 드문 일인가. 야수가 되찾은 인간으로서의 삶은 별일 없이, 무탈하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