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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Apr 05. 2016

[애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

숨겨진 의미 읽어내기 (2)



- 이상에 붙들린 남자 vs 현실에 충실한 여자 


 소피와 하울의 대조적인 구도 역시 눈여겨볼만하다. 하울을 만나기 전의 소피는 소도시의 평범한 모자 가게 점원이었다. 여성 모자를 주로 파는 작은 점포가 소피의 세계이다. 가게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기도 하다. 동생들은 원하는 일자리를 찾아 나갔지만 맏딸인 소피는 아버지의 가게에 남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를 박차고 나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소피의 최선은 현실을 계속 꾸려나가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익숙한 역할, 즉 맏딸이며 가게의 상속인이며 두 여동생의 언니인 자신의 역할을 계속 수행해나가는 것이다. 썩 만족스러운 생활은 아니지만 공공연하게 불평할 정도는 아니고, 어쩌면 이렇게 사는 것이 자신의 본성에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소피는 규격화된 현실에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녀는 전쟁 같이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본능적으로 꺼린다.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보살피고, 유지시키면서 자기 가치를 느끼는 사람이다. 그녀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정원에 씨를 뿌리고 꽃을 틔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애정이지 드높은 이상이나 신념, 대의명분 같은 것이 아니다. 하울의 마음이 유성을 쫒는다고 한다면 그녀의 별은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조용히 빛을 내며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울의 성에서 소피는 처음에 오갈 데 없는 청소부 노릇을 하다가 곧 주방을 장악하고 나중에는 성의 내부를 총괄하는 안주인으로 격상한다. 성의 본래 주인인 하울 만이 할 수 있는 이사(혹은 건물 파괴?)를 감행한 것은 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덕분에 눈속임 용의 모자 가게는 물론 본체인 움직이는 성까지 무너진다. 하울의 아이덴티티인 움직이는 성은 소피의 현실 감각이 개입되면서 중첩되고 왜곡된 공간으로서의 이미지를 탈피한다


 하울은 반대로 이상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 화신으로서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하다. 하울은 캘시퍼와의 계약으로 얻은 마력을 바탕으로 걷고 싶은 길만 걸어가면서 자아를 강화해 나간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기질 탓에 여러 사람을 만나고 때로는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뜻이 맞지 않으면 멋대로 절연한다. 때문에 적이 많고 항상 혼자이다. 본래 위험했던 그의 힘은 적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더욱 강력해진다. 금속으로 된 온갖 잡동사니로 이루어진 성은 방어의 거대한 심리이다. 타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철옹성이다. 당당하고 위압적인 과시이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하울의 가장 연약한 부분인 심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심장이-그리고 캘시퍼- 위해를 입으면 움직이는 성도 하울 자신도 타격을 입는다. 강대해진 마력과 이상(理想), 지나치게 팽창된 자아의 껍질 속에 존재하는 것은 이처럼 어이없을 정도의 연약함이다.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덩치만 키우는 것은 위험하다. 하울이 마법을 쓸수록 괴물이 되어가는 것은 마법적 힘의 정당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내면의 병든 상태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애니를 보면서 하울이 수행하는 전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울은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혹시 전쟁 그 자체를 상대로 저항하는 것이 아닌지 추측할 따름이다. 하울은 전쟁을 벌이는 위정자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설리만의 소환에 불응하면서, 굳이 전쟁터에 나가 전투기들을 공격하는 모습에는 흡사 자신만의 성전(聖戰)을 치르는 것 같은 결연함이 깃들어있다. 그렇게 싸우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성으로 돌아오는데, 어쩐지 회의만 더해진다.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인지, 얼마나 더 죽일 수 있을지, 과연 자신의 싸움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우울한 불확실이다. 전쟁에 반대하는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싸우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대체 왜?  



 - 적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원작 소설에는 전쟁이 등장하지 않지만, 애니에는 국가 간의 전면전이 묘사되고 있다. 거대한 전함이 출정식을 하는가 하면 하늘에는 기괴하고 육중한 비행 군함들이 폭탄을 잔뜩 싣고 떠다닌다. 폭격을 맞은 도시와 마을은 즉시 불길에 휩싸여 아비규환으로 변한다. 애니 속의 전쟁은 오직 대외적 팽창을 꾀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닮았다. 특히 하울이 홀로 거대한 비행 군함에 돌격하는 모습은 일본의 자살 특공대 가미카제를 연상시킨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가미카제는 일본 국가와 천황에 대한 충성의 아이콘이었다. “... 벚꽃 꽃가지를 꽂고 자폭 비행기나 인간어뢰에 오른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본 제국 최고의 엘리트 젊은이들이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전쟁터로 향하지만 정해진 죽음의 순간에 부딪혀 생각한 것은, 천황에 대한 충성심이나 제국 군인으로서의 사명이라기보다는 연인과 아들, 남편으로서의 의무감과 같은 것이었다.(미야자키 하야오_김윤아)” 하울이 싸우는 일을 계속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키고 싶은 사람-가족-이 아니었을까. 







 하울은 왕국을 위해 힘을 보태달라는 설리만의 소환에 불응하며 반대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앞서 소피에게 자신의 변명을 대신하게끔 만드는데, 실제로 하울은 자신이 전쟁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불안한 이 소모전은 소피와의 관계가 무르익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하울은 소피에게 자신은 지키기 위해서 싸울 것이라고 말하며 그 대상이 소피라는 사실을 밝힌다. 하울의 전투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킨다는 명분이 더해지면서 정형화된 범주에 속하게 된다. 그것은 더 이상 특별한 밤나들이도 아니고 자신만의 거룩한 성전(聖戰)도 아니다. 마치 일터에 나가는 것과도 같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 이전의 하울이 적과 아군을 확실하게 규정하지 않았다면, 이제는 소피의 안전 여부가 적과 아군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결과적으로 하울은 점점 더 괴물이 되어간다. 더 이상 절제할 필요가 없기에 적을 격퇴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 이것을 깨달은 소피는 하울의 싸움을 막기 위해 움직인다. “그는 겁쟁이로 있는 편이 나아!” 그녀에겐 영웅이라던지 혁명 전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소망은 이처럼 소박하다.







- 되찾은 마음, 새로운 출발 


 소피는 우여곡절 끝에 하울에게 잃어버렸던 마음을 되찾아준다. 심장을 황무지 마녀의 손에서, 다시 캘시퍼에게서 빼앗아 본래 주인인 하울에게 돌려준다. 캘시퍼는 하울과의 계약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된다. 앞서 소피는 실수로 캘시퍼에게 물을 끼얹어버리지만 캘시퍼도 하울도 죽지 않고 다만 힘이 미약해진다. 계약을 맺음으로써 생사를 같이하는 운명에 묵였던 그들이 무사한 까닭은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소피였기 때문이다. 원작 속의 소피는 말로 생명을 불어넣는 힘이 있는데, 애니는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다만 사랑의 힘을 부각한다. “부디 캘시퍼가 천년을 살고, 하울이 마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소피)”
 사랑이었기에 죽었던 마음이 되살아나고 소멸될 수밖에 없는 생명이 새롭게 태어난다. 캘시퍼는 지는 유성에서 떠오르는 유성으로 변하여 하울의 심장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끝까지 하울의 심장-젊음과 남성성-을 고집하던 늙은 마녀는 소피의 당당한 권리 앞에 굴복한다. 소피는 건네받은 심장으로 하울을 무사히 소생시키면서 진정한 히로인으로 거듭난다. 줄곧 할머니와 중년 부인과 소녀를 어지럽게 오고 가던 소피는 본래의 젊음을 완전히 되찾는다. 단 한 가지 돌아오지 않은 것은 머리색인데, 하울은 소피의 희어진 머리색을 별의 색이라고 말한다. 하울의 이상향이 소피를 사랑하는 삶으로 귀결된 것이다. 여기에는 어렸을 적 떨어지는 유성을 쫓던 맹목적이고 순수한 마음이 반영되어 있다. 돌려받은 심장은 소년 시절의 것이기에 아기 새처럼 연약하고 따스하다. 하지만 이 마음이 보상받는 방법은 어떤 초월적 존재와의 무시무시한 계약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호의와 관심, 그리고 신뢰에 달려있다. 하울이 되찾은 마음은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되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출발이 아닐까.







 애니메이션의 에필로그에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성이 등장한다. 성의 안마당에는 강아지와 어린아이가 뛰어놀고 테라스에는 연인이 멋지게 키스를 나눈다. 소피와 하울의 첫 만남-공중 산책-을 떠올리다면, 사랑의 감정이란 온갖 방해물을 초월하여 날아오르는 일인것 같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그려내는 사랑은 분명 낭만적이지만 마음의 무게를 감내하는 것, 즉 '성숙한 마음가짐'을 전제로 한다. 때문에 이 이야기는 단순한 로맨스라기보다는 자아가 성장하는 과정이 그려진 신화적인 여정에 가깝다. 그 안에는 영웅과 마녀, 에로스와 타나토스, 개인과 세계의 대결, 자유와 그리움의 생생한 이미지가 살아 숨 쉰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갖고 있는 생명력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안에서 다른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단순한 자생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원작을 뛰어넘는, 원작보다 탁월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봉 당시와 지금의 감상이 다르듯, 십 년 후에는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되리라고 기대해본다.     
 






참고 서적: 미야자키 하야오_김윤아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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