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분명히 말했잖아요."

말로 한 약속, 법적효력 있을까.

by 송혜미

상담을 할 때 많이 마주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이런 사람이다.

"계약서도 없는데 무슨 계약이에요. 그냥 한 말 아닌가요?"


두 번째는 정반대다.

"걔가 분명히 말했어요. 나도 들었고, 하늘도 알고 땅도 알아요. 우리 둘밖에 없었지만 걔가 한 말이 맞다고요."


둘의 법적인 효력은 어떨까?


= 첫 번째 오해: "계약서 없으면 계약도 없다"


이 생각을 가진 분들은 두 부류다. 하나는 억울한 피해자고, 하나는 그걸 악용하는 가해자다.


억울한 피해자는 이렇게 말한다.

"계약서도 없는데 제가 뭘 주장할 수 있겠어요."

이미 싸우기 전에 포기한 상태다.


반대쪽은 그걸 잘 안다. 그래서 일부러 계약서를 안 쓰는 경우도 있다.

구두로 약속해 놓고, 나중에 "그런 말 한 적 없다"라고 버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법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계약을 서면으로 정리한 것이 계약서이지, 계약서가 있어야만 계약인 것은 아니다. 즉 당사자의 의사합치가 있다면 계약은 그 합의로 성립한다.


"이 조건으로 하겠어?"

"응, 그렇게 하자."


이 두 마디가 오가는 순간, 이미 계약은 생긴 것이다.

말로 했든, 전화로 했든, 고개를 끄덕였든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계약서가 없다고 먼저 포기할 필요 없다.

그러니까 반대로, "계약서만 안 쓰면 나는 안전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착각이다.


= 두 번째 오해: "내가 들었으니까 된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많은 경우다.

둘만 있었다. 분명히 들었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안다. 근데 상대방은 "그런 말 한 적 없다"라고 한다. 귀신이 곡할 노릇의 이 상황, 법정에서는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다른 증거가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다면 매우 힘들다.


법정은 마음을 판단하는 곳이 아니다. 증거를 판단하는 곳이다.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는 곳이 아니기에, 아무리 억울해도, 아무리 확신이 있어도, 내가 들었다는 사실을 내가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말한 적 없다"라고 똑같이 강하게 나오면, 그 순간 그냥 말 대 말의 싸움이 된다.


판사는 그 자리에 없었다. 둘 중 누가 맞는지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법원은 쉽게 한쪽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증거가 없는 싸움에서 현실적인 결말은 대부분 청구 기각이다. 입증 책임을 청구하는 쪽에 있으므로.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도, 법정은 모른다. 법정이 아는 건 눈에 보이는 것뿐이다. 판사에게 심증이라도 줘야 지푸라기라도 쥐어볼 수 있다.


= 그러면 뭐가 있어야 하나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 답이 있다.

구두 약속이 법정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말 이외의 흔적이 필요하다.


가장 강력한 건 의외로 카카오톡이다. 많은 분들이 카카오톡을 구두 약속과 비슷하게 생각하는데, 전혀 다르다. 카카오톡은 훌륭한 서면 증거다. 때때로, 지인의 사실확인서보다 강력하다.


"앨범 나오면 수익 40%는 네 몫이야. 이번 앨범부터 수익 정산되는 익월 말일에 줄게."라는 메시지는 그대로 계약서 역할을 한다. 특히 거기에 숫자(=40%)나 구체적인 조건(시점: 이번 앨범부터 수익 정산되는 익월 말일에 줄게)이 담겨 있다면 더욱 그렇다.


녹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참여한 대화를 녹음하는 건 통신비밀보호법상 법적으로 문제없다. 중요한 협의 자리라면 녹음을 습관화하는 게 나쁘지 않다. 의뢰인들에게 실제로 권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간과하기 쉬운 것이 이행 흔적이다. 구두 계약 전에 불행하게도 카카오톡으로도 이를 남기지 못했더라도, 상대방이 이미 한두 번 약속대로 움직였다면, 그게 계약의 존재를 말해준다. 입금 내역, 이체 확인증, 거래 명세서. 계약서는 없어도 이런 기록들이 쌓이면 계약의 윤곽이 드러난다.


= 반대로, 아무리 억울해도 안 되는 경우


추상적인 것은 계약이 될 수 없다. 구체적이지 않은 약속은 법이 잡아주지 못한다.


"열심히 하면 데뷔시켜 줄게", "잘 되면 더 줄게", "나중에 챙겨줄게."


이런 말들은 법적으로 그냥 응원이다. 계약이 되려면 내용이 특정돼야 한다. 언제, 얼마를, 어떤 조건으로라는 게 없는 말은, 아무리 진심으로 한 약속이라도 법정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예 서면의 형태를 요구하는 계약도 있다. 이 경우엔 구두로 아무리 잘 합의했어도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렵다. 이 영역에서만큼은 "계약서 없으면 계약도 없다"는 말이 실제로 맞는 경우가 된다.


=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중요한 약속을 구두로 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문자 한 통을 보내라.


"아까 말씀해 주신 대로, 수익 배분은 50:50으로 이해했습니다. 맞죠?"


이 한 줄이 나중에 수천만 원의 차이를 만든다. 상대가 "응"이라고 답했다면, 절대 지우지 마라. 그게 계약서다. 반대로 내가 이런 확인 문자를 받았다면, 내용이 다르다면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냥 "응"이라고 넘어가는 순간, 그 내용에 동의한 것이 된다.


계약서가 없다고 무조건 포기할 것도 없고, 내가 들었다고 무조건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도 계약이 된다. 단, 객관적인 흔적이 있을 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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