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가 한국에 상징되는 특이성(Uniqueness)
광고 속 90대 여성은 ‘어릴 때 어떤 옷을 입으셨느냐’라는 질문에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라 답한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과 홍콩은 물론, 전세계 25개 이상의 국가에서 유니클로의 매장을 만나볼 수 있다. ‘유니크하고 저렴한 옷’인 유니클로는 전세계적 장기 불황을 기점으로 가성비를 인정받아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세계적인 의류기업으로서 캐주얼 글로벌 브랜드의 대표성을 갖게 되었다. 2005년에는 롯데와 합작하여 서울에도 진출하였고, 2019년 현재 200개가 넘는 유니클로 매장이 대한민국 곳곳에 위치하여 매출기준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일본, 중국을 이어 전세계 3위를 기록해주고 있다.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지난 7월 일본발 무역 규제의 반발로 시작된 NO재팬운동, 불매운동의 여파로 유니클로 역시 뭇매를 맞았고. 우익단체를 후원한다는 카더라식의 이야기들과 불매운동을 비하하는 임원 발언은 유니클로를 타겟으로 삼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유니클로를 기꺼이 소비하면서도 유니클로를 언제든 배척할 준비가 되어있는 우리가 대한민국이다.
“나이, 성별, 직업, 국적, 그리고 사람을 구별하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듭니다.” 유니클로의 옷은 심플하고 필수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양말과 속옷부터 시작해 청바지, 패딩, 파카, 재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류를 취급하기 때문에 심심하지만 무난한 제품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연령에게 유니버셜하게 적합한 브랜드로 사랑 받고 있다.
딱히 돋보이거나 튀지 않으려는 부분에서 일본 특유의 성향과 맞닿은 부분은 있겠으나 굳이 브랜드 아이덴티티에서 거북스러울 정도의 왜색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덕분에 대한민국에 유니클로가 이토록 깊게 뿌리를 내리는 동안에도 일제 침략의 역사에 대한 논의보다는 노멀하고 실용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미니멀하고 심플한, 동시에 충분히 기능적인, 게다가 다양한 칼라로 나만의 취향도 스타일에 반영할 수 있는 캐쥬얼함이 매력인 유니클로를 소비하는 소비자는 “IAM MORE IMPORTANT THAN THE BRAND I AM WEARING.”라는 셀프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다. 유니클로는 실용주의와 미니멀리즘의 세계적 흐름에서 상징적인 브랜드로서 입지를 견고히 해내고 있다. 대한민국도 실용적 소비의 영향을 받아 브랜드가 태생한 국적따위야 차치한채 제품이 가지는 고유의 특장점에만 주목하고자하는 소비층에게 상당한 로열티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
유니클로를 둘러싸고 우리는 오늘날 일제강점기의 독립투사와 친일파를 비교하며 들먹인다. 국가적 차원의 애국활동으로서 불매운동을 비추어 보는 것이며, 생계 형 친일과 같은 당시의 시대상황에 따른 합리화의 목소리가 지금의 실용적 개인선택으로 구분해보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청산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이와 같은 여파가 남는 것이 크게 무리는 아니긴 하다. 우익단체를 후원하는 기업으로 리스트에 올라있다면 그 기업을 제품을 지각없이 소비하는 것은 결국 과거의 친일 행보와 다를 바 없다는 것.
다만 일본의 기업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닌, 과거의 우리 민족을 탄압하였던 문화정서를 오늘날 까지도 대를 이어 존립하게 하는 세력에게 자금지원을 하는 것은 결국 독립투사들의 의열정신에 대한 투지를 꺾어버리던 친일 세력의 무책임한 선택과 완전히 다르지는 않을 수 있다.
맞으면 딱히 부상을 입는 것은 아니지만 끈적함과 불쾌감, 시각적인 효과와 비랜내를 전달하는 계란 투척. 상대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상징적인 의미로서 실용적인 계란은 종종 그렇게 던져진다.
브랜드의 로고와 간판 역시, 그 브랜드의 대표적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유니클로가 일본 우익후원 기업들의 나름의 대표성을 갖는 것에 더해져 유니클로의 간판을 향한 계란 투척은 시위성격의 퍼포먼스로 기자들이 기사화하기에도 충분히 자극적이다
사실 유니클로의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것 역시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의 퍼포먼스이며 선언적 행동에 가깝다. 일본의 정치적 움직임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이며 우리의 의지를 알리기 위한 도구로서 기능하는 것일뿐. 직접적인 충격파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고 그 활동의 참여자들 역시 그 부분을 인지하고 있다.
이처럼 유니클로를 향한 불매의 움직임과 의지, 그 반대편에선 실용적 자기선택에 대한 주장 양측을 비교하여 보았을 때. 불매운동 자체는 일본정부에 계란을 던지는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 관련한 모든 행보는 상징적인 차원에서 구성되며 그 의미 자체에 더 큰 목적이 있을 것.
브랜드의 이미지를 소비하기 보다는 제품의 특장점과 나만의 취향선택에 집중하는 실용주의 자들에게는 이 퍼포먼스 자체가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바위에 계란치기” 이란격석(以卵擊石)처럼 비실용적인 움직임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자기 선택적인 결론.
우리 집 냉장고에서 계란 하나 꺼내 던져 불쾌감을 표할 것인지, 그것을 후라이팬에 얹어 저녁반찬으로 알뜰하게 끼니를 해결할지는 그 개인이 보다 국가적 차원 혹은 단체적 행동에 의미를 중요시하는지, 아니면 보다 당장 눈앞의 실리에 집중하는 편인지에 따를 경우가 클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어느 것이 더욱 많은 계란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게 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성숙한 국가시민으로서 국가와 국민들의 하나된 의지에 힘을 실어주는 의미롭고 상징적인 한 명, 한 명의 시민이 될지, 또 한 명의 성숙한 낱낱의 사람으로서 개인의 일반의지와 생활편의에 집중하여 실용적인 경제인이 될지를 단 하나 유니클로를 현재, 그리고 당분간으로 한정할지라도 구매의사가 있는지로 양분 할 수는 있겠다.
유니클로 불매운동 사태에 빌어 우리는 유니클로가 가지는 브랜드의 국가, 그리고 어떠면 그 국가의 생활양식에서 파생된 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나아가 그 아이덴티티가 글로벌하게 시장성을 가지며 전파되는 그 국가의 신념체계를 소비하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케 되는데 유니클로는 기호로서 충분히 작용했다.
또 하나의 측면으로는 브랜드를 브랜드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인지하고자 하는 분리적 사고를 통해 글로벌 시장환경에서의 상품들을 실제 기능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 실제적으로 당장 나에게 제공되는 실리에 집중하는 형태의 소비패턴과 그 합리적인 기준에 대한 자기 위안까지도 이해해볼 수 있는데 유니클로가 주요한 코드가 되었다.
유니클로의 기호해석과 불매운동을 둘러싼 코드의 분석을 관련하여 우리 개개인이 결과론적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결국 계란을 그럼에도 계속하여 던져볼 것인가, 혹은 그 계란으로 저녁반찬을 차려낼 것인지에 대한 선택뿐. 단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대중의 행동은 두 가지 대척점에서 나름의 밸런스를 맞춰가며 지배적인 방향과 대안적인, 대항적인 담론으로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갈 것이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계란이라도 던지겠는가, 계란뿐이라면 먹기라로 할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