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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리는 강선생 Jun 26. 2023

외국인 노동자의 첫번째 여행

[낭만 여행기] 캐나다 토론토

2003년 봄, 수능을 망치고 도피 유학을 떠났습니다. 장소는 캐나다 중부 매니토바 주 위니펙.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곳에는 한국사람이 거의 살지 않아서 영어 공부하기에는 제격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은 아니어서 스스로 생활비와 학비를 모두 벌어야 했기 때문에 일식집에서 접시를 닦았습니다. 그렇게 20살 대한민국 청년은 캐나다 외국인 노동자가 됩니다.

열심시 접시를 닦던 일식집 Mooshiro


처음 해보는 주방일은 힘들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영어 실력과 통장 잔고도 점점 늘어갔고, 운 좋게 공립대학에도 합격했습니다. 다양한 친구들이 생기면서 바닥으로 꺼졌던 자신감도 점점 회복되었습니다. 여름 방학이 되자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 여행을 떠날만한 경제적 심리적 여유는 없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처음으로 스스로 모든 돈으로 캐나다 동부 토론토로 여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21살 여름이었습니다.


토론토는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온타리오의 주도이자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광역권의 인구는 700만 명이고 위성도시까지 합치면 1000만 명에 육박합니다. 캐나다 깡촌에서 유학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한국 문화와 음식이 너무도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대도시 토론토에 도착하자마자 제가 처음 간 곳은 크리스티역에 위치한 코리안 타운이었습니다. 거기서 감자탕에 소주로 인생 첫 혼술을 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곡명은 요즘 다시 조명받고 있는 임창정의 소주 한잔.

창정이형 왜 그랬어 ㅠㅠ


제가 여행했던 당시 토론토는 재즈 페스티벌 기간이었습니다. 다운타운인 킹 스트리트와 퀸 스트리트의 수많은 펍에서는 재즈 공연이 열리고 있었죠. 저는 마치 영화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처럼 매력적인 재즈 선율에 이끌려 들어간 재즈바에서 재즈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었지만 즉흥적으로 연주하며 관객과 호흡하는 재즈는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고 술을 마시는 경험도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인생 처음 뮤지컬에 입문한 곳도 토론토였습니다. 빠듯한 여행 경비를 쪼개서 뮤지컬 맘마미아를 봤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저만의 여행 특징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나를 재즈에 입문시켜준 토론토의 재즈바 The Rex


그 외에도 토론토의 랜드마크 CN타워 전망대에 올라갔고, 토론토 시티 라인이 한눈에 보이는 온타리오 호수의 센터 섬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세계 3대 폭포로 불리는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폭포수를 흠뻑 맞으며 그 짜릿한 순간을 동영상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롤러코스터가 유명한 원더랜드에서 혼자 놀이기구를 타며 혼자 놀기 만렙을 찍었죠. 마지막 날에는 남은 돈을 모두 털어 고급 일식 레스토랑에서 플렉스 하며 그동안 일식집에서 접시를 닦으며 겪었던 설움을 달랬습니다.


약 일주일 간의 캐나다 동부 여행의 마무리는 인도 바라나시 숙소처럼 허름한 차이나타운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했습니다. 뿌듯하게 그동안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인생 첫 여행을 뿌듯하게 회상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도 낡아서 삐그덕 대던 침대의 가운데 부분이 푹 꺼지며 카메라의 버튼을 잘 못 눌렀습니다. 'Erase All?' 당황한 나머지 No가 아닌 Yes를 눌러버렸고, 그렇게 저의 첫 번째 여행의 추억들은 모두 지워져 버렸습니다.

인도 바라나시 같았던 토론토 차이나 타운의 숙소




본 여행기는 제가 쓴 여행 에세이 '여행이 부르는 노래'의 에피소드 중 일부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다음 이야기 혹은 전체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여행이 부르는 노래'를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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