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시간] 이탈리아 로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 등 서양 속담에는 로마와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그만큼 서양 문화에 로마가 미친 영향이 크다는 것이겠죠. 현재 로마는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도시이지만, 2000년 전에는 유럽 대부분을 차지했던 로마 제국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아직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와 같은 신대륙과 극동 아시아는 유럽인들에게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전 유럽과 아프리카 북부, 아시아 일부를 지배한 로마는 전 세계를 지배한 것과 다름이 없었죠. 로마 제국은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상당히 체계적인 도로망을 구축했고, 그런 이유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된 것이죠. 한때 초강대국이었던 로마 제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로마로 한번 떠나봅시다!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입니다. 한 국가의 수도인 만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인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로마는 과거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유럽의 중심이자 세계의 중심으로 불렸던 도시입니다. 또한 유럽의 문화적 정체성을 논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그리스, 로마 문화의 중심이 되는 곳이기도 하죠. 이 덕분에 현재에도 고대 로마 제국 시대의 수많은 유적들로 인하여 전 세계 사람들이 매년 6000만 명 넘게 찾는 관광 대국이기도 합니다.
테베르 강의 작은 도시 국가에서 시작한 로마는 자신들을 지배하던 에트루리아를 무찌르고 점차 힘을 길러 주변 도시 국가들을 정복했습니다. 결국 전 유럽과 지중해 연안 대부분을 지배하는 제국으로 성장했죠. 처음에는 왕정으로 시작한 로마는 원로원들을 중심으로 왕을 축출하고 공화정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이후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로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존엄한 자'라는 의미를 지닌 아우구스투스의 등장으로 황제가 통치하는 제정으로 변하면서 최전성기를 맞습니다.
저는 고대 로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원래 습한 저지대였으나 간척 사업으로 물이 빠지고 난 후에 인구가 증가하면서 점차 로마의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포로 로마노는 당시 로마를 양분하던 로물루스와 티투스 타티우스의 세력이 만나는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고, 두 세력이 이곳에서 교류하며 로마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떠올랐습니다. 정치인들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포로 로마노에서 연설, 선거운동, 재판 등을 열었고, 이에 따라 점차 포로 로마노는 정치적 중심지가 되기 시작합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포로 로마노를 제국의 중심에 맞게 변모시켰는데, 그는 아우구스투스 개선문과 율리우스 신전 등을 지었고, 이후 로마 황제들의 대관식과 중요한 정치 행사나 개선식이 바로 이곳 포로 로마노에서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포로 로마노에는 다양한 신전과 회당이 있지만 저에게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콘스티누스 개선문입니다. 로마에서 가장 거대한 개선문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황제가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건설하였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 로마 제국이 몰락하면서 포로 로마노도 쇠락해 갔습니다. 현재는 폐허로 전락하였지만 찬란했던 로마시대의 모습을 상상하며 거대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봅니다.
유럽의 도시를 걷다 보면 도로가 좁고 바닥이 울퉁불퉁한 벽돌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 많습니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그런 경향이 나타나는데,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로마 역시 도로는 좁고 불규칙합니다. 하지만 2000년이 넘은 도로가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의 기술력이 얼마나 대단했는 것을 알 수 있죠. 실제로 현재 역사가 오래된 유럽 도시 중심에 깔려있는 도로는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는 정복한 영토로 빠르게 군사와 물류를 이동시키기 위해 도로가 필요했고, 당시에는 압도적이었던 기술력으로 대규모의 도로를 건설한 것이죠.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로마의 기술력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바로 수도교입니다. 수도교는 깨끗한 물을 도시로 공급하는 수로의 일부인데요. 수원지에서 도시로 물을 끌어오는 중 수로가 계곡처럼 움푹 파인 곳을 지날 때 건설됩니다. 로마 시대에는 유럽 각지에 수도교를 건설하였고, 그중에는 19세기까지 사용된 수도교도 있다고 합니다. 그중 저는 로마 시내로 물을 공급했던 클라우디아 수도교를 찾았습니다. 클라우디아 수도교는 로마의 동쪽에 위치한 연못을 수원지로 삼았는데, 총길이는 약 70km, 수용력은 하루 최대 190,000 m³ 까지 달했다고 합니다. 무려 2000년 전에 시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이런 시설을 설치했다는 사실이 정말 획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로마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거대한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으로 향했습니다. 흔히들 콜로세움은 검투사들이 결투가 벌어지는 곳이라고만 알고 있는데요, 콜로세움은 로마 시민들에게 다양한 공연을 제공하는 종합문화예술시설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정치인들은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공연을 통해 시민들의 인기를 얻거나 혹은 불만을 잠재웠습니다. 최대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거대한 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의 격렬한 대결이 펼쳐졌고, 때로는 호랑이, 사자와 같은 맹수들의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재주를 부리는 서커스와 같은 공연과 코끼리, 하마, 기린과 같은 평소 로마에서 보기 힘든 동물들을 볼 수 있는 사파리 같은 공연도 있었고, 심지어 수도교를 통해 끌어온 물을 바닥에 채워 가상 해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콜로세움의 한가운데 서서 6만 명의 함성으로 가득 찬 2000년 전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마지막 일정은 로마에 둘러싸인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 바티칸으로 정했습니다. 바티칸은 가톨릭의 총본산 교황청이 위치하고 있어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성지와도 같은 곳입니다. 매년 1월 1일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장에서 교황이 세계 각 국가의 언어로 새해인사를 하는 것이 유명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건물인 성 베드로 성당이 있고,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 벽화가 유명한 시스티나 예배당,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세계 3대 박물관으로도 불리는 바티칸 박물관이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읍니다. 바티칸을 위성사진으로 보면 커다란 열쇠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의 제자이면서 초대 교황으로 여겨지는 베드로의 열쇠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바티칸 박물관을 들어서면 세계사 시간에 자주 봐서 익숙한 라오콘 군상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그리스 학자들의 모습을 다채롭게 그려 넣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까지 정말 유명한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교황을 선출하는 콩클라베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시스티나 예배당에 들어서면 좌우전후 벽에 가득히 성경에 기록된 장면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고, 천장에는 미켈란젤로가 무려 4년 넘게 프레스코 방식으로 한 땀 한 땀 그린 천장화가 있습니다. 아마 신과 최초의 인간 아담이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천지장조 그림은 한 번쯤 봤겠죠?
바티칸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입니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연민', '공경심'을 의미하는데, 십자가에서 사망한 예수를 안고 슬피 우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기독교 예술의 주제 중 하나입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이죠. 이 거장의 작품은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합니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인 예수와 아들의 죽음을 온몸으로 껴안고 슬픔에 젖어있는 마리아의 모습에서 숙연함을 느낄 겁니다. 저는 이 피에타를 마주했을 때 처음으로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했습니다.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은 뛰어난 예술 작품을 봤을 때 심장이 빨리 뛰고 심한 경우에는 어지러움증이나 환각 등을 경험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경이롭게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가슴이 뛰는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감동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자취를 따라가며 여행하다 보니 이탈리아는 조상 덕을 참 많이 보는 나라라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흔히들 이탈리아의 경제는 과거 조상들이 남겨 놓은 과거의 역사, 문화 유적들을 보러 온 수많은 관광객들의 수입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탈리아의 GDP 중 관광이 차지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물론 GDP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한해 이탈리아를 찾는 관광객이 6000만 명 이상인 것으로 보아 관광 산업이 이탈리아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이 관광 하나로 이탈리아가 한 때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탈리아를 먹여 살리는 것은 제조업입니다.
하지만 제조업이 발달한 도시들은 대부분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이긴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롬바르디아의 중심 도시 밀라노에 비해 한참 뒤처집니다. 이탈리아의 산업 기반은 밀라노, 토리노와 같은 북부 지역에 밀집하고 있고, 로마의 경우 고대 로마 제국과 가톨릭의 중심 바티칸이 있다는 상징성과 이를 모두 포함한 관광 자원이 풍부하다는 이점이 있죠. 또한 로마를 경계로 이탈리아의 남부와 북부의 경제력 차이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로 인해 두 지역 간의 갈등이 유발되고 실제로 북부 이탈리아의 파다니아 지역은 분리 독립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한때 전 세계를 지배하였고, 찬란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었으며, 모든 길이 통했던 로마는 이제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닙니다. 한때 G7국가로서 세계 경제를 이끌던 이탈리아의 경제 역시 점점 후퇴하고 있고,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하여 국가 부채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하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전 로마의 위대한 유산들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