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처음 해외여행을 하면 그 나라의 수도나 최대 도시를 선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인구가 많은 도시나 수도에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가 집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즐길거리도 많기 때문이겠죠. 저 역시 영국 여행의 시작은 런던이었고, 일본 여행의 시작은 도쿄였습니다. 또한 외국인 여행자의 경우에도 대한민국을 찾을 때 대부분 서울을 시작점으로 잡습니다. 하지만 여행에 정답은 없는 법이죠. 가끔씩은 중심 도시가 아닌 주변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나라의 색다른 문화와 매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만약 그 도시가 오랜 기간 1등 도시와 라이벌 관계에 있으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온 2등 도시라면 더욱 흥미진진하겠죠. 오늘 떠나볼 도시는 바로 영국의 대표적인 2등 도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입니다.
제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떠난 이유는 어찌 보면 조금 단순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매우 즉흥적이었습니다. 시점은 독립영화 ‘잉여들의 히키하이킹’를 본 직후였습니다. 이 영화는 돈 한 푼 없는 4명의 대학생들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겪는 1년 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전공한 이 청춘들은 자신들의 전공을 살려 유럽의 숙박업소들의 홍보 영상을 제작하여 자급자족 여행을 계획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여행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어느새 어려움에 빠지고 말죠. 유럽에서 생존하기 위해 온갖 잡일을 하면서 버티면서 영화 속 청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현실이 너무 현실 같아서 지금 이 상황이 꿈같다."
영화를 보고 있던 저 역시 당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던 현실에 있던 청춘이었습니다. 영화 속 그들과 저는 닮아있었고, 그 때문인지 그들의 메시지는 마음을 강하게 울렸습니다. 그리고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저는 영화 속 그들이 머물렀던 장소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영국(The Great Bratain)은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그리고 스코틀랜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코틀랜드의 중심 에든버러로 가기 위해 우선 영국의 수도이자 잉글랜드의 중심 런던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런던은 벌써 다섯 번이나 여행 왔을 정도로 익숙하면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템즈강을 걸으며 랜드마크인 런던 아이와 빅벤을 마음속에 담았습니다. 런던 킹스크로스 역(King`s Cross Station)에서 출발한 기차는 브리튼 섬을 다섯 시간 동안 관통하여 에든버러 웨이벌리 역(Edinburgh Waverley Station)에 도착했습니다. 눈앞에는 런던보다 훨씬 더 파란 하늘과 파란색 2층 버스,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파란색 국기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가 보입니다. 런던에서 빨간 2층버스만 보다가 파란색 2층 버스를 보니까 비로소 스코틀랜드에 온 것이 실감이 납니다.
숙소는 구시가 중심에 위치하고 창문을 열면 에든버러 성이 바로 앞에 보이는 호스텔로 정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정치적 중심지 에든버러는 인구 48만으로 스코틀랜드의 경제적 중심지 글래스고보다 인구가 적지만,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아 설립된 스코틀랜드 자치 의회와 오랜 기간 잉글랜드로부터의 침략을 막아낸 에든버러 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에든버러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경제학의 아버지 에덤 스미스와 대표적인 공리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같은 사상가들이 활동한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판타지 소설 작가 J.K 롤링도 이곳 에든버러에 서서 영감을 받아 해리포터를 집필하였다고 하니 가히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를 너머 영국의 문화적 중심지로 불릴만합니다. 숙소를 나와 천천히 에든버러 거리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에든버러의 구시가를 걷는 것만으로도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문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에든버러의 시가지는 마치 고대 그리스 폴리스처럼 언덕 위에 웅장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에든버러를 '북방의 아테네 (Athens of the North)'로 불렀나 봅니다. 하지만 에든버러에 이러한 별명이 붙은 이유는 단시 도시의 경관 때문만은 아닙니다. 에든버러는 유럽 문화의 뿌리가 되었던 아테네에 버금갈 정도로 문화가 발달한 곳이기도 합니다. 에든버러는 영국의 중심 런던의 변두리에 위치한 이유로 오히려 독립적이면서도 독특한 문화가 움텄습니다. 에든버러는 에든버러 대학교를 중심으로 수많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활약한 곳이자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중심지로 칼뱅주의 종교개혁자 존 녹스(John Knox)가 활동한 장로회(Presbyterian church)의 탄생지이기도 합니다. 에든버러에 이와 같은 문화적 자산이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마스 제퍼슨이 '세상 어디에도 에든버러만 한 곳은 없다'라고 말했나 봅니다.
북방의 아테네 에든버러 거리에서 들리는 영어는 확실히 남쪽 런던의 영어와는 다른 강렬한 악센트가 인상적입니다. 호스텔 벽면에는 과거 스코틀랜드 인들이 쓰던 게일어와 영어의 대조표를 붙여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영어를 쓰고 있지만 스코틀랜드의 언어에서도 그들의 정체성이 아직은 남아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면서 역사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죠. 에든버러 거리에는 스코틀랜드의 국기만큼이나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포스터가 눈에 띕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배우 멜깁슨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맞서 싸우던 시절을 담고 있습니다. 잉글랜드보다 앞선 843년 왕국을 설립한 스코틀랜드였지만 국력이 훨씬 강한 남쪽의 잉글랜드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습니다.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이기도 한 스코틀랜드의 전쟁 영웅 월레스는 뜨겁게 자유를 외치며 잉글랜드의 침략을 힘겹게 막아냈지만 결국 1706년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합병되고 맙니다.
그렇게 스코틀랜드는 대영제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1000년 가까이 투쟁하던 스코틀랜드 인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습니다. 1999년에 70%가 넘는 찬성표로 스코틀랜드 의회가 설립되어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자치권을 인정받았고, 2014년에 유럽연합에서 영국이 탈퇴하는 브렉시트가 통과되자 스코틀랜드 인들은 이에 반대하며 영국에서 분리독립하자는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스코틀랜드는 현재 영국에 속해있지만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입니다. 이러한 1000년 넘게 이어온 스코틀랜드 인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정체성을 느껴보기 위해 스코틀랜드 자치 의회 앞 잔디밭에 앉아서 영화 ‘브레이브 하트‘ 영상을 감상했습니다.
에든버러는 주요 건축물들과 관광지 대부분이 구시가에 몰려있어서 걸어서 여행하기 좋습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된 에든버러 구시가는 에든버러 성을 둘러싸고 있는 로얄마일로 상징됩니다. 로얄마일은 에든버러성 서쪽 캐슬락에서부터 동쪽 홀리루드성으로 이어지는 1.8km의 돌길을 말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로얄마일은 귀족들만 통행할 수 있던 거리였다고 합니다. 평민들은 로얄마일 뒤편 좁은 골목으로 걸어야 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사람들이 종로로 행차하던 양반들의 가마를 피하기 위해 다녔던 좁은 골목 피맛골이 생각납니다.
로얄마일의 양쪽에는 고풍스러운 고딕양식 건축물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마치 스코틀랜드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듯합니다. 거리 곳곳에는 에든 버러 출신의 유명인들의 동상 또한 줄지어 있습니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에덤 스미스, 공리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이곳 에든버러가 예사로운 곳이 아닌 것을 짐작케 합니다. 로얄 마일을 걷다 보면 익숙한 백 파이크 연주 소리도 들립니다.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멜로디와 음색을 따라 걷다 보면 과거 스코틀랜드의 역사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에든버러 성 쪽으로 계속 걷다 보면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St Giles' Cathedral)이 나타납니다. 12세기에 건축된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은 16세기 종교 개혁의 중심이 된 곳입니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존 녹스의 동상이 세인트 자일스 성당 앞 광장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장로교의 발상지로도 유명합니다. 과거 가톨릭의 전통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잉글랜드 성공회와는 달리 스코틀랜드는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를 정립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과거를 간직하고 있는 로얄마일을 걸어 에든버러의 상징 에든버러 성으로 향했습니다. 캐슬 록이라는 바위산 위에 세워진 에든버러 성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 중 하나입니다. 스코틀랜드 왕국시절 왕족들이 거주하던 곳이지만 적들의 침입을 막는 요새로서의 기능이 중시되다 보니 화려함보다는 튼튼함을 더 강조하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스코틀랜드의 기나긴 독립 전쟁 시절 에든버러 성은 자주 잉글랜드 군에 포위되었는데, 성곽에 놓인 대포가 당시 상황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지금도 매일 오후 1시에 대표 사격을 하고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듭니다.
에든버러에서는 매년 8월 세계적인 축제가 열리는데요. 대표적으로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과 프린지 페스티벌이 있습니다.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The 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은 1947년부터 시작된 축제로 춤, 클래식 음악, 오페라 등의 장르에서 활약하는 공연 팀들을 초청하여 진행하는 공연 축제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축제 프린지 페스티벌(The Edinburgh Fringe Festival)이 시작됩니다. 사실 프린지 페스티벌은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에 초청되지 못한 예술가들이 거리에서 공연을 펼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프린지 페스티벌이 오히려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로 거듭났습니다.
프린지 페스티벌 기간에는 인구 50만 명이 안 되는 에든버러에 그보다 몇 배나 많은 인파가 몰린다고 합니다. 마침 제가 에든버러를 방문하였을 때 프린지 페스티벌이 막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로얄마일은 세계 각국에서 온 공연팀들과 관광객들이 가득 차있었습니다. 프린지 페스티벌 공연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무대에 초청조차 받지 못해서 거리에서 공연을 펼치던 2등 공연팀들이 결국 세계 최고의 축제를 만든 것처럼,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강점을 발전시킨다면 반드시 1등이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것을요.
에든버러가 한눈에 보이는 아서의 의자(Arthur's Seat) 언덕으로 향했습니다. 걸어서 40분쯤 오르면 시원한 바닷바람에서 헤엄치는 갈매기가 맞이해 줍니다. 그리고 북방의 아테네로 불리는 에든버러의 시가지와 오랫동안 스코틀랜드의 심장을 지켜온 에든버러 성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북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생각해 봅니다. 비록 스코틀랜드의 영토는 잉글랜드에 지배당했지만 그 정신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비록 2등이지만 1등이 갖지 못 한 자신만의 강점을 간직하고 발전시켜 온 것이 지금의 스코틀랜드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