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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리는 강선생 Mar 16. 2024

같은 나라, 다른 도시

[도시를 걷는 시간] 라싸, 에든버러, 호노룰루, 바르셀로나

도시를 걷는 시간 1부에서 살펴본 네 도시 - 중국 시짱 자치구 라싸,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에스파냐 카탈루니아 바르셀로나,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소속 국가와 다양한 이유로 구별되는 특징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티베트로 알려진 중국 시짱 자치구의 수부도시 라싸는 비록 중국의 서부 개발로 대규모 한족들이 유입되면서 중국 본토 문화와의 동질성이 짙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토번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티베트 불교문화 전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인들의 심장 에든버러 역시 18세기 잉글랜드에게 합병되며 대영제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1000년 동안 이어져오는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역사와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문화는 스코틀랜드인의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카탈루니아의 심장으로도 불리는 FC 바르셀로나는 수도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레알 마드리드가 벌이는 세계적인 축구 라이벌 경기 '엘 클라시코'를 통해 카탈루니아의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전 세계의 축구팬들을 흥분시킵니다. 'The Aloha State' 하와이는 미국에 편입된 이후 본국의 자본주의, 의회 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결국 미국의 50개 주 중 하나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화산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미국 본토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축구 라이벌 경기 '엘 클라시코'


이처럼 '같은 나라인데 다른' 도시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습니다. 우선 이 도시들은 국가의 중심이 되는 도시, 즉 수도와 물리적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한 국가의 수도는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인 중심에 해당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국가의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반면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에 위치한 도시의 경우 중심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는 덕분에 독특한 특성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든버러가 '북방의 아테네'로 불리며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킨 이유도 런던과 멀리 떨어져 있는 덕분에 오히려 중심 문화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하와이가 독특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이유 역시 오랜 기간 독립적인 문화를 유지하다가 비교적 최근 미국에 편입되었고 있었다는 점도 있겠지만, 지리적으로 미국 본토와 수천 km 떨어져 있다는 점이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에스파냐의 북동부 지중해에 접해있는 바르셀로나와 중국 서부의 끝자락에 위치한 라싸 역시 수도와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에든버러에 위치한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 동상


또 하나의 공통점은 네 도시 모두 오랜 기간 자신만의 문화를 유지해다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거나 국가를 확장하던 시기 인위적으로 편입되었다는 점입니다. 티베트는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한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에 편입되며 시짱 자치구가 되었습니다. 카탈루니아는 18세기 스페인 왕위 전쟁이 벌어지면서 오랜 기간 라이벌이었던 카스티야 지방을 중심으로 한 스페인 왕국에 의해 바르셀로나를 점령당했고, 결국 아라곤 왕국으로부터 유지해 오던 자치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스코틀랜드와 하와이 역시 오랜 기간 독자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었으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영국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강대국으로 급부상한 '천조국' 미국에 각각 합병당하고 맙니다. 물론 네 도시는 오랜 기간 끈질긴 저항을 했지만 결국 상대적으로 강력한 국가의 힘에 무릎 꿇고 편입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5세기 카스티야(자주색)와 아라곤 왕국(빨간색)의 영역


이처럼 한 국가에 편입된 도시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 즉 '지역성(Locality)'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성 덕분에 이 도시들은 같은 나라에 속하면서 그 나라와는 차별되는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고, 그에 따른 색다른 경관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런 지역성은 때로는 국가의 중심 문화에 의해 억제와 차별의 대상, 융합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독특성을 인정받아 특색 있는 관광 상품과 같은 문화 콘텐츠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하와이는 미국과 구별되는 자연환경과 특유의 열대기후 문화로 전 세계 신혼여행지의 메카가 되었고, 에스파냐의 구석에 위치한 바르셀로나는 축구와 건축을 비롯하여 특색 있는 카탈루니아 문화를 바탕으로 수도인 마드리드보다 오히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 도시가 되었습니다. 영국과 차별되는 스코틀랜드 문화를 간직한 에든버러 역시 에든버러 성과 같은 역사 경관, 프린지 페스티벌과 같은 문화 콘텐츠 덕분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고, 달라이 라마와 같은 고유한 티베트 불교문화와 웅장하면서도 신비한 포탈라 궁전을 간직한 라싸 역시 관광지로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혼여행의 메카 하와이 호놀룰루 쇼핑 거리


그럼 이 네 도시들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세계의 다른 도시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토리노, 밀라노 같은 이탈리아 북부 파다니아 지역의 도시들은 로마 이남의 남부 이탈리아 도시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월등하게 발전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독립하고 싶어 하는 지역이면서 경제적으로 열악한 남부 이탈리아 지역과의 갈등도 벌어지고 있는 지역입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캐나다와는 달이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퀘벡은 그 덕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퀘벡몬트리올 캐나다의 다른 도시와는 다른 유럽적인 경관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상당히 발전한 지역입니다. 이 때문에 이곳에는 퀘벡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존재할 뿐 아니라 캐나다에서 분리독립하고자 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최북단 섬 홋카이도의 삿포로는 과거 아이누족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본섬(혼슈)에 살던 일본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정복되면서 지금은 완전히 일본화된 곳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누족의 문화와 특색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고(삿포로라는 지명이 아이누어), 겨울 내내 엄청나게 내리는 눈을 활용한 축제를 비롯하여 일본의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독특성으로 많은 관광객이 유입되고 있는 곳입니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유럽을 닮은 도시 몬트리올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서로의 문화가 점점 비슷해져 가는 세계화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지역의 고유한 특성이 가치를 지닙니다. 이런 지역의 독특성은 문화, 역사, 자연 콘텐츠들로 상품화되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처럼 '같은 나라인데 다른' 도시들은 오랜 기간 중심에 의해 지배당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독특하고 가치 있는 주변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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