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토리텔링] 전라남도 신안군
혹시 행정구역 전체가 섬으로만 이루어진 곳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물론 섬 자체가 하나의 행정구역인 곳은 많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나 울릉군과 거제시가 있죠. 하지만 만약 같은 시나 군인데도 불구하고 섬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면, 시청에 가기 위해서 혹은 옆 동네 친구 집에 놀러 가기 위해서, 심지어 학교에 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배를 타야만 할 겁니다. 그런 곳에서는 마치 물의 도시 베네치아처럼 바다가 길이고, 배가 택시나 버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이 정말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전라남도 남서쪽 바다에 흩뿌려진 보석 같은 섬, 신안군입니다.
신안군은 유인도 72개와 무인도 900여 개, 무려 1,000개가 넘는 섬으로 구성된 행정구역입니다. 그래서 ‘천사(1004)의 섬’이라는 별명이 있죠. 신안군의 무수히 많은 섬과 섬 사이의 얕은 바다에서는 염전이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천일제염업이 가장 발달한 신안군은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같은 군이라 할지라도 다른 섬에 살고 있다면 배가 아니고서는 이동할 수 없었습니다. 단어 그대로 신안군민들은 가깝지만 먼 이웃인 셈이죠. 태풍이 부는 날이면 꼼짝없이 섬에 갇혀 바다가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려야 했죠. 이번 장에서는 이러한 천 개의 섬들이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섬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알아보겠습니다.
신안으로 떠나는 여행은 전라남도 무안에서 시작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육로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과거 신안은 섬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섬에서 다른 섬으로 이동할 때 배를 이용해야 했지만, 이제는 주요 섬들이 다리로 연결되어 차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차를 몰고 ‘육지’인 무안에서 칠산대교를 건너 지도라는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분명 다리를 건너 섬으로 갔는데 행정구역을 넘어갈 때 나오는 '전라남도 신안군'과 같은 초록색 간판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상식적으로 무안군에서 다리를 건너면 당연히 신안군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내비게이션에서는 아직도 '전라남도 무안군'이라고 나옵니다.
얼른 지도 앱을 켜서 현재 위치를 살펴보았습니다. 이곳은 신안군 북쪽에 위치한 '지도'라는 섬인데, 섬의 절반은 전라남도 무안군, 나머지 절반은 전라남도 신안군으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보통 하나의 섬이라면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되어있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일단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섬을 내려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하나의 섬에 두 개의 주소가 공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섬의 중앙을 가르고 있는 물줄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경계로 동쪽이 무안군, 서쪽이 신안군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죠.
원래 하나의 행정구역이었던 무안군은 1969년 여러 섬 지역으로 분리되면서 신안군이 신설되었습니다. 그때 바로 이 지도를 반으로 가르는 물줄기가 자연스럽게 경계선 역할을 했던 것이죠. 바다도 강도 아닌 이 물줄기는 당연하게도 작은 다리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비록 다른 행정구역이지만 마치 옆 동네처럼 쉽게 오갈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곳이 다리로 연결되기 이전에는 이 얕은 물이 두 지역 주민들의 이동을 방해하고 생활권을 분리하는 하나의 장벽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상상해봤습니다. 물론 워낙 얕은 물이라 간조 때는 갯벌로도 변하기 때문에 양쪽에 사는 주민들이 동일한 생활권을 이루며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연히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발견한 지도의 사례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지도 위의 선 하나에 많은 지리적, 역사적 사연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는 다시 차를 몰고 서쪽으로 향했습니다. 임자대교를 건너 수도라는 작은 섬을 지나 신안군의 최북단 섬 임자도에 도착했습니다. 임자도 서쪽 끝에 위치한 대광해수욕장은 매년 승마대회가 개최될 정도로 드넓은 백사장을 자랑합니다. 12km에 달하는 드넓은 백사장 뒤에는 해당화, 해송, 아카시아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고, 쾌적한 캠핑 시설도 갖추고 있습니다. 캠핑장에서 해 질 녘 노을과 바다를 바라보며 구워 먹는 고기의 맛은 꿀맛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평생 봤던 노을 중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신안군은 목포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신안군에서 목포시와 가장 가까운 섬은 압해도입니다. 원래도 목포와는 굉장히 거리가 가까워서 배로 10분이면 왕래할 수 있었는데, 2008년 목포와 신안 압해도를 잇는 압해대교가 놓이면서 압해도의 입지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상승했습니다. 차로 손쉽게 왕래가 가능해지면서 접근성이 좋아진 압해도로 신안군청이 이전했습니다. 그 덕분에 압해도는 명실상부 신안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된 것이죠. 하나의 다리가 섬 안에서의 권력과 삶의 중심을 옮긴 셈이죠.
압해대교가 신안군과 육지와의 '첫 만남'이었다면, 천사대교는 신안의 여러 섬들을 하나로 연결한 '따뜻한 포옹'이었습니다. 2019년에 개통된 천사대교는 총 길이 10.8km로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긴 다리입니다. 국내 최초로 하나의 다리에 사장교와 현수교, 두 가지 공법이 동시에 적용된 다리입니다. 특히 그 높이는 200m에 달하는데 이는 아파트 60층 높이입니다. 그래서 이 천사대교 위를 차로 달리면 마치 구름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양옆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와 곳곳에 있는 갯벌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수많은 섬들의 조화가 환상적입니다.
천사대교는 이미 10여 년 전 압해대교로 첫 육지의 경험을 한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했고, 이는 다시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로 이어졌습니다. 천사대교는 신안군의 섬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묶여있던 섬에서의 시간을 풀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전에는 목포까지 배를 타고 2시간 넘게 가야 했던 암태도 주민들은 이제 천사대교 덕분에 차로 30분이면 군청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태풍과 같은 변화무쌍한 날씨 변화에도 병원 가는 것을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또한 교육 때문에 일찌감치 자녀를 육지로 떠나보내야 할 걱정도 크게 줄었죠.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바다의 시간에 갇혀 살던 섬사람들에게 이 천사대교는 단순히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원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을 선물해준 고마운 존재입니다.
자은도의 서쪽 끝자락 분계해변에서 드론을 날리면 신안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번에는 다시 차를 타고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를 거쳐 자라도까지 달렸습니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하의도, 이세돌 기사의 생가인 비금도도 방문하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의 콘셉트가 배를 이용하지 않고 갈 수 있는 신안군의 모든 섬들을 가보는 것이었고, 그 끝이 바로 자라도였습니다. 안좌도에서 자라대교를 건너면 지금까지 지나왔던 신안의 섬들 중 가장 작은 자라도에 도착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섬에 살고 있는 주민들 인터뷰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꽤 많을 것 같은 자라도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래도 배가 오가는 선착장이고 근처에 보건소도 있어서 조금만 기다리면 지역 주민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록 관광객이나 공사하시는 분을 제외하고는 지역 주민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많은 농어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신안군 역시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섬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은 더 나은 교육과 일자리를 찾아 육지로 떠나고 섬에는 어르신들만 남아 점점 활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많은 섬들이 무인도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 신안군은 특별한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바로 섬에 색을 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이미 국내외에 많은 성공 사례가 있습니다. 국내에는 마치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연상케 하는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해외에는 파스텔톤의 벽과 지붕이 인상적인 이탈리아 베네치아 부라노섬이 있습니다. 이 두 지역 모두 건물에 알록달록한 색을 칠해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성공한 사례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곳이 바로 안좌도 옆의 작은 섬, 반월도와 박지도를 보라색으로 물들인 ‘퍼플섬’입니다. 안좌도를 지나가면서 '퍼플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다리의 철제 구조물도 길가에 있는 버스 정류장도 모두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이곳은 다리, 마을의 지붕, 도로, 심지어 공중전화 부스와 주민들이 사용하는 그릇까지 온통 보라색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들 겁니다. '왜 하필 보라색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섬에 사는 한 주민이 “우리 섬에 많은 도라지꽃처럼 보라색 꽃을 많이 심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한마디에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꿈은 현실이 되어 섬에는 라벤더와 아스터, 버들마편초 같은 보라색 꽃들이 만발한 거대한 정원이 꾸며졌습니다.
이후 섬에는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보랏빛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담으려는 관광객들이 점점 찾기 시작하면서 아무도 찾지 않던 조용한 섬에는 활력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섬에 사는 어르신들은 특색있는 식당과 카페를 열어 관광객들을 맞이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섬을 찾으면서 새로운 일자리도 생겼고, 자연스럽게 섬은 이전보다 훨씬 더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점점 사그라드는 섬을 살리면서 어떻게 하면 특색을 살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창의적이면서도 성공적인 답변이었습니다. 섬이 가진 지역성을 살리면서도 경제적인 풍요까지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사실 신안군은 꽤 오랫동안 '염전'이라는 지역 산업과 그로 인한 사건·사고로 인해 이미지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신안군은 2008년 압해대교가 건설되며 육지와 처음으로 연결되었고, 1,000개의 섬을 잇는 천사대교가 생기고, 최근에는 퍼플섬이라는 특색있는 전략을 발판으로 '천사의 섬'이라는 이미지로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흩어져 있던 섬들은 육로로 연결되면서 더 가까운 이웃이 되었고, 이제는 함께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통의 발달은 분명 섬사람들에게 축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결과 그로 인한 변화의 이면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지와의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섬이 갖고 있는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은 점차 희미해질 것입니다. 편리함에 익숙해지면서 불편함 속에서 피어났던 공동체 의식이나 독특한 생활 방식이 사라질 수도 있죠. 또한 인구 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섬을 관광지로 개발했고, 퍼플섬의 성공 사례에서 보듯 관광객의 증가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주지만, 동시에 과도한 상업화와 환경 문제라는 새로운 숙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천사의 섬 신안이 마주한 이 과제는 비단 신안군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인구 소멸과 지역 정체성의 상실은 대한민국이 마주하고 있는 보편적인 딜레마와도 같죠. 어쩌면 섬과 육지를, 섬과 섬을 잇는 거대한 다리를 놓는 것보다 더 어려운 숙제일지도 모릅니다. 신안군에게는 섬이 갖는 고유한 가치와 새로운 변화 사이에 조화로운 균형을 찾아야 하는 새로운 과제가 생긴 셈입니다. 신안의 진짜 이야기는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