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토리텔링] 경상남도 거제시
대한민국 지도를 들여다보면 한반도의 남쪽 끝, 리아스 해안의 복잡한 해안선 사이로 압도적인 크기의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제주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입니다. 거제도는 최근 부산과의 접근성 향상으로 화려한 해안 절벽과 에메랄드 빛 바다를 품은 휴양지로 변모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거제도는 대한민국 조선업의 중심으로 인식되곤 합니다.
이번 섬토리텔링 답사는 매우 특별한 인물과 함께했습니다. 바로 거제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료 지리 선생님입니다. 특히 조선소에서 평생 일하신 선생님의 아버지와의 인터뷰도 미리 준비했습니다. 내륙 도시인 세종을 출발해 경상남도 통영을 거쳐 거제도로 진입했습니다.
거제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이 커다란 섬의 정체성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눈 앞으로 거대한 대형 조선소뿐만 아니라 중소 규모의 조선소와 관련 업체들이 줄지어 나타났습니다. 흔히 거제 하면 '빅 2'라 불리는 한화오션, 삼성중공업과 같은 대형 조선소만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거제는 그 거대 기업들을 지탱하는 수많은 협력사와 작은 공장들이 얽히고설킨 거대한 조선 생태계 그 자체입니다.
거제도가 대한민국 조선업의 메카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남해안의 특성상 섬 주변의 수심이 깊고 파도가 잔잔한 만이 곳곳에 발달해 있어 거대한 배를 띄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국가 주도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은 이 평화로운 어촌 섬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주변의 얕은 바다와 갯벌은 도크가 되었고, 조용한 포구는 거대한 배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되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기위해 거제의 중심인 고현동으로 향했습니다. 거제 고현시장은 거제도라는 섬의 활기를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시장 안쪽에 위치한 길게 줄을 늘어선 순대국밥집 앞에 섰습니다. 그때 저와 함께 동행한 선생님이 앞쪽에 서있는 한 남자의 등을 가리키며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저 작업복이 거제도에서는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는 등뒤에 삼성중공업 로고가 선명한 작업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조선업이 최고 호황기를 누리던 시절 이 작업복은 거제에서 부와 안정의 상징이었습니다.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갈 때도, 선을 보러 갈 때도 이 작업복만 입고 있으면 프리패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거제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는 대한민국 평균을 훨씬 상회했습니다. 그래서 한때 석탄 산업으로 잘 나갔던 태백, 정선같은 도시에서처럼 '거제에서는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자연스러웠죠. 푸짐한 국밥 한 그릇을 비우며 특정 산업이 지역의 사회적 계급과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섬의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하늘에서 바라보는 것이 최고입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거제 파노라마 케이블카로 향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노자산 정상으로 올라가며 마주친 거제의 인상은 '섬'이라는 단어가 주는 고립감보다는 '산맥'이 바다에 잠겨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남해안 다도해의 풍경은 언제 봐도 절경입니다. 복잡한 해안선 사이로 수많은 섬들이 바다 위에 수를 놓은 듯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시선을 반대로 돌리면 거제만이 가진 독특한 풍경이 나타납니다. 바로 바다와 산이 만나는 계곡 사이사이로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비록 조선소는 주요 국가보호 시설이라 근접 촬영은 불가했지만, 드론을 띄워서 저 멀리 보이는 거제도의 심장을 바라봤습니다. "저기 멀리 보이는 게 삼성중공업이고, 저 반대편이 한화오션입니다." 동료 선생님의 손가락 끝에는 아파트 수십 층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들이 서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거제는 천혜의 자연과 거대한 중화학 공업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해질 무렵 거가대교를 조망할 수 있는 유호리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거가대교는 거제도를 대한민국의 제2 도시 부산와 직접 연결하며 섬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힌 상징적인 구조물입니다. 전망대에 도착하자 거대한 사장교의 실루엣이 노랗게 물드는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드론을 띄워 거가대교의 전경을 촬영했습니다.
거가대교의 개통은 거제의 생활권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부산까지의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면서 물류와 관광의 흐름은 빨라졌습니다. 많은 관광 수요가 몰리며 관광 인프라가 만들어지기도 했죠. 하지만 반대로 거제의 상권이 부산으로 흡수되는 빨대 효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섬이 육지와 연결된다는 것은 풍요와 편리함을 주지만 동시에 섬의 경제를 쇠락시키고 섬만이 가진 독특함을 희석하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동료 선생님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곳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한화오션이 위치한 옥포 일대의 아주동입니다. 조선소가 생기면서 계획적으로 조성된 이 주택단지는 전형적인 컴퍼니 타운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초등학교가 제가 나온 곳입니다. 저는 바로 옆에 있는 이 아파트에 살았어요." 아주 초등학교 근처에는 한와오션의 옛 이름인 대우해양조선의 이름을 딴 대우초등학교와 대우고등학교도 위치하고 있습니다.
거제는 따뜻한 남쪽 지방이라 겨울에도 눈 구경을 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눈이 내리는 날이면 거제는 그야말로 비상사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거제 사람들은 눈길 운전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고작 몇 센티미터의 눈이 내렸을 뿐인데 섬 전체의 버스가 끊기고 학교가 휴교했습니다. 눈이 학교를 가지 않아도되는 아이들에게는 축제였지만, 조선소로 출근해야 하는 아버지들에게는 고역이었죠."
저녁 식사를 위해 다시 찾은 고현동은 과거의 명성에 비해 다소 차분한 분위기였습니다. 한때 조선업의 활황으로 전국에서 가장 돈이 흔했던 이곳도 최근에 경기 침체를 피해 가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과거 고현동과 관련된 기사들을 아카이브를 통해 찾아봤습니다. 그 중 지방 소도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최신식 시설을 갖춘 대형 백화점이 이곳에 들어섰다는 2000년대 초반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당시 거제는 서울 부럽지 않은 소비 도시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거리가 쇠퇴했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이 낡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곳을 채우던 젊은 노동자들이 떠나고, 그 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워지며 도시의 구매력이 약해졌음을 의미합니다. 쇠락한 거제의 밤거리를 걸으며 산업 구조의 단일성이 한 도시의 운명을 얼마나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산업의 흥망성쇠가 도시개인의 삶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어쩌면 이번 거제도 답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분을 만났습니다. 바로 평생 거제도 조선소에서 일하신 선생님의 아버지입니다. 1980년대 초반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하여 무려 37년 간 현장을 온몸으로 체험하신 그야말로 거제 조선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인터뷰는 고현동의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하며 진행했습니다. 아버님의 인생은 거제도 조선업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처음 거제에 내려왔을 때는 조선소가 완공도 안 됐을 때야. 갯벌 위에 철판 하나 깔아놓고 시작했지." 아버님은 가장 힘들고 위험하다는 녹 제거 작업(샌딩)부터 시작해, 배 내부 4층 높이에서 추락해 하반신 마비 위기까지 겪었던 아찔한 사고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내셨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의 기억 속 거제도는 외부인이 생각하는 그런 화려한 황금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매일 아침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 아래로 출근하며 가족을 위해 자신의 청춘과 건강을 희생한 치열한 사투의 현장이었습니다. "우리 애들 공부시키고 남부럽지 않게 키우는 게 인생이라는 큰 배를 완성하는 거였지. 배 한 척에 2,700억 원씩 한다지만, 나한테는 우리 자식들 커가는 모습이 그보다 훨씬 값졌어."
아버님의 말씀에서 거제도의 그 어떤 거대한 구조물보다 웅장한 가족을 위한 희생의 무게를 느꼈습니다. 이제는 로봇이 용접을 대신하고 한 척에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최첨단 LNG선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버님은 여전히 배를 완성하는 건 첨단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땀방울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비록 짧은 점심 식사 중 인터뷰였지만, 그가 겪은 30여년의 세월은 거제의 그 어떤 풍경보다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거제도를 떠나며 백미러 속으로 멀어지는 골리앗 크레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두번째큰 이 섬은 누군가에게는 에메랄드빛 휴양지이고, 동료 선생님에게는 따뜻한 유년의 터전이었으며, 그의 아버지에게는 거친 철판과 사투를 벌였던 희생의 현장이었습니다. 단순히 배를 만드는 기술을 넘어 가족을 지키려 했던 거제의 수많은 아버지들의 땀방울이 있는 한 거제의 불빛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한때 수주 절벽과 경기 침체로 멈춰 서는 듯했던 거제의 심장은 최근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들려오는 잠수함 및 친환경 선박의 대규모 수주 소식과 함께 다시금 힘차게 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갯벌을 일궈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세웠던 인간의 의지는 이제 인공지능과 친환경 기술이라는 새로운 항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