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토리텔링]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어떤 장소는 수만 년의 세월 동안 서서히 변해가기도 하지만, 또 어떤 장소는 불과 수십 년 만에 지도를 다시 그려야할 정도로 급격하게 변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지도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은 곳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바다와 섬이 사라져버린 고군산군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변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으로 답사를 떠났습니다. 내륙도시 춘천에서 출발해 세종을 거쳐 군산에 도착했습니다. 군산은 전국 5대 짬뽕으로 명성을 얻을 정도로 중화요리가 유명한 도시입니다. 서해바다에서 갓 잡아올린듯한 해물과 불맛 가득한 국물을 음미하며 여행을 시작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 잠시 군산에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평생 섬과의 인연이 없던 제가 섬, 그리고 바다와 가장 가깝게 시절이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1994년 여름, 대한민국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여름이라며 연일 뉴스가 떠들썩하던 해, 우리 가족은 군산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섬 여행을 떠났습니다.
군산항을 떠나 배를 타고 3시간쯤 지나니 갯벌의 흙탕물로 뿌옇던 서해 바다는 어느덧 동해 바다의 짙푸른 빛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섬은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섬’이라는 뜻을 가진 선유도(仙遊島). 하지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에게 선유도는 여유로운 피서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텐트를 치고 캠핑을 시작하자마자 타오르는 듯한 태양 아래 머리가 벗겨질 듯한 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밤이 되어도 지면의 뜨거운 열기는 가시지 않았고, 텐트 안은 습기와 열기로 가득 차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텐트 밖으로 나왔을 때 마주했던 달빛 아래 백사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던 수천 마리의 꽃게 떼는 어린 저에게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어린 저에게 고군산군도의 선유도는 뜨겁고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2025년 여름, 저는 다시 그 섬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배표를 끊지 않았습니다. 대신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차의 핸들을 잡고, 바다 위를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길을 달리고 있습니다. 31년 전,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 했던 그 수많은 섬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이 거대한 변화는 새만금 방조제라는 대규모 토목사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군산 비응도와 부안 변산반도를 잇는 새만금 방조제는 총 길이 33.9km, 단일 방조제로는 세계 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인공 구조물은 단순히 바닷물을 막는 방조제를 넘어 한반도 서해안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한 큰 사건이 되었습니다.
수십 km의 방조제 위를 차로 달리는 경험은 비현실적입니다. 오른쪽 창밖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서해의 망망대해가 보이고, 왼쪽 창밖으로는 물길이 막혀 거대한 호수가 되어버린 내해가 펼쳐집니다.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직선 도로를 차로 달리다보면, 인간의 기술력이 자연의 거대한 흐름을 통제하고 있다는 전율과 함께 동시에 자연의 섭리를 인간이 감히 거슬렀다는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새만금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 면적의 3분의 2에 달하는 새로운 땅을 만드는 국책 사업으로 1991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부족한 농지를 확보하여 식량 안보를 튼튼히 하는 동시에 대규모 산업단지와 국제적인 항구를 건설하여 국가 경제를 도약시키겠다는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였습니다. 완공까지 무려 20년의 세월이 걸린 이 거대 구조물은 결국 고군산군도라는 여러 섬들을 육지와 연결시켰습니다.
당연하게도 방조제 건설로 고군산군도의 운명은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는 ‘옛 군산’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본래 군산이라는 지명의 뿌리가 된 유서 깊은 섬들의 무리입니다. 과거에는 6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옹기종기 모여 마치 바다 위의 정원과도 같은 곳이었죠.
그런데 방조제가 연결되고 뒤이어 섬과 섬을 잇는 고군산대교가 개통되면서 이곳은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섬 사람들은 육지로 가기위해 배 시간에 맞춰 선착장으로 나갈 필요가 없어졌고, 반대로 육지 사람들은 언제든 드라이브하듯 섬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차를 몰고 구불구불한 섬길을 따라가다 보면 선유도의 랜드마크 명사십리 해수욕장에 닿습니다. 어린 시절 땀 흘리며 걷던 그 모래사장은 이제 세련된 카페와 짜릿한 스피드를 즐기는 짚와이어 시설와 같이 관광 상품들로 가득합니다. 인근 무녀도에는 폐교를 개조해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갖춘 카페들이 들어섰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인스타 감성 가득한 사진을 남깁니다. 장자도를 지나 대장도 정상에 오르면 고군산군도의 전경과 광활한 새만금호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 풍경은 분명 아름답고 압도적입니다. 섬을 잇는 주황색 다리들은 푸른 바다와 대조를 이루며 현대적인 세련미를 뽐냅니다.
그렇게 방조제의 건설은 섬에 전에없던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주말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차량으로 섬 전체가 마비될 지경이고, 조용했던 어촌 마을에는 대형 횟집과 펜션들이 빼곡히 들어섰습니다. 섬 주민들은 더 이상 거친 파도와 싸우며 고기를 잡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숙박업과 식당 운영을 통해 경제적 풍요를 얻게 된 것이죠.
하지만 지리 교사로서 이 풍요로운 변화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땅과 편리한 교통이라는 눈에 보이는 이익의 대가로 우리는 아주 소중하고 거대한 것을 영원히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갯벌입니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갯벌이 발달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새만금 지역은 그중에서도 가장 넓고 생명력이 넘치던 갯벌이 펼쳐져 있던 곳이었습니다. 갯벌은 단순히 검은 진흙이 쌓인 뻘이 아닙니다. 갯벌은 지구상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생태계 중 하나로 수많은 해양 생물의 태어나는 곳이자 터전입니다. 갯벌은 또한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자연의 콩팥 역할을 하며, 시베리아와 남반구의 섬들을 오가는 도요새와 같은 철새들의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방조제가 물길을 가로막으면서 이 생명의 공간은 순식간에 죽음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자연 그대로 살아 숨 쉬던 갯벌은 깊은 호수 밑으로 영원히 가라 앉아버리거나, 반대로 물기가 말라 먼지 날리는 황무지로 변해버렸습니다. 수만 년 동안 갯벌을 터전삼아 살아온 수많은 해양 생물들과 새들은 하루아침에 소중한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갯벌의 상실은 인간에게도 비극이었습니다. 대대로 갯벌에서 삶의 터전을 일궈온 어민들은 한순간에 일터를 잃었습니다. 물때에 맞춰 고기를 잡고 조개를 캐던 그들의 지혜는 이제 더 이상 쓸모없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방조제가 완공된 지 15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기대했던 새만금의 장미빛 미래는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식량안보를 위해 농지를 만들겠다던 계획은 쌀 과잉 생산 문제로 방향을 잃었습니다. 야심 차게 추진하던 산업단지 유치도 여전히 지지부진합니다. 거대한 땅들은은 대부분 비어있거나 잡초만 무성한 황량한 벌판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2023년 새만금에서 열렸던 세계 잼버리 대회의 파행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습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뙤약볕 아래 배수가 되지 않는 진흙탕 위에서 고통받던 세계 청소년들의 모습은 새만금 개발이 얼마나 자연의 순리를 무시한 채 서둘러 진행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국제공항을 짓겠다는 계획 역시 이미 적자로 운영이 어려운 지방 공항들의 사례로 볼때 현실 가능성이 낮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바다를 막아 얻은 이 거대한 땅과 편리한 자동차 길은 우리가 영원히 잃어버린 광활한 갯벌과 그곳에 깃든 생명들의 가치보다 소중한 것들이었까요? 화려한 정책 공약과 눈앞의 경제적 성과를 위해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자연 유산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선택이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해봐야합니다.
방조제를 따라 돌아오는 길, 이미 방조제는 세워졌고 갯벌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광활한 수평선 위에 그어진 선, 새만금 방조제는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경계를 어디까지 침범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고군산군도의 리조트와 카페는 분명 화려하고 편리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그 밑에 잠든 갯벌의 숨소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만금이라는 새로운 땅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수만년에 걸쳐 마들어진 자연의 콩팥을 잃었습니다. 방조제 너머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1994년의 뜨거웠던 선유도가 떠오릅니다. 비록 당시에는 너무 덥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적어도 그때 바다는 살아있었습니다. 지금의 편리함이 과연 그때의 생명력보다 더 낫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