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개발과 보존의 딜레마

[섬토리텔링] 춘천 중도, 가평 남이섬, 자라섬

by 지리는 강선생

평화롭던 작은 섬에 숨겨져있던 비밀


춘천에는 중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호수 가운데 있는 섬이라는 뜻이죠. 춘천은 닭갈비, 막국수 외에도 호반의 도시, 그리고 안개의 도시로도 유명합니다. 그 이유는 소양댐, 춘천댐, 의암댐과 같은 대규모 댐으로 호수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중도는 바로 그 중 춘천을 품고 있는 의암호 한가운데 자리잡은 하중도입니다.


사실 중도는 그동안 주목받던 섬은 아니었습니다. 육지와 연결된 다리가 없었기 때문에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큼 개발도 많이 되지 았았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섬에 들어서면 계절에 따라 피는 다양한 꽃들과 숲과 공원, 그리고 캠핑장이 있어서 춘천시민들에게는 일상 속의 한적한 쉼터였습니다. 저 또한 20대 시절 배를 타고 친구들과 중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과거 중도는 춘천 시민들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섬이었다.


그런데 이 평화로운 섬 아래에 놀라운 역사적 비밀이 묻혀있었습니다. 사실 1980년대부터 중도에서 심심찮게 청동기 시대의 집터와 유물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역사학계에서도 고대 유적이 조금 있나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유물 발굴 작업이 시작되면서 대한민국 고고학계는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중도에 묻혀있는 선사시대 유적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중도에서는 약 3,000년 전 청동기 시대의 마을 유적, 수천 기에 달하는 거주지 터, 권력의 상징인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 그밖에도 수많은 토기와 석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누군가는 중도를 '한국의 폼페이'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중도는 과거 우리 조상들의 삶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이 유물들은 단순히 주거지의 흔적이라는 것을 넘어서 청동기 시대 한반도 중부 지역에 강력한 정치 세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좌) 중도 고조선 유적지 전경, (우) 중도 고조선 유적지 중 마을 유적


그렇게 중도는 그저 강 위에 떠 있는 섬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혀있는 성지가 되었습니다. 역사학계와 문화제 보호 시민단체에서는 중도의 역사 유적이 온전히 보존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중도가 후손들이 우리의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는 역사 공원이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개발의 논리가 중도를 쓰나미처럼 덮치면서 춘천의 작은 하중도는 순식간에 논란의 중심이 되고야맙니다.



고대 유적 위에 세워진 알록달록한 블록


어느 날 중도에 세계적인 완구 기업의 이름을 딴 글로벌 테마파크, ‘레고랜드(Legoland)’가 건설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3천 년 역사의 기록이 잠들어있는 땅 위에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블록으로 만들어진 성을 쌓게된 것이죠. ‘지역 경제 활성화’, ‘수백만 명의 관광객’, 그리고 그로 인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달콤한 미래는 땅속 깊이 묻혀있는 역사의 숨결보다 훨씬 더 강력했습니다.


수많은 고고학자와 역사학자, 뜻있는 시민단체들은 이를 ‘명백한 유적지 파괴 행위’라며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어떻게 조상들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위에 놀이공원을 짓느냐‘는 절규가 쏟아졌죠. 하지만 대부분 그래왔듯이 결국 개발의 논리가 보존의 가치를 집어삼켰습니다. 발견된 유적의 일부는 이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섬의 한쪽 귀퉁이나 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졌습니다. 대부분의 유적지 위에는 훼손을 막는다는 이유로 두꺼운 흙으로 덮여졌습니다. 그렇게 2022년 5월 5일 어린이날 마침내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는 화려한 폭죽과 함께 문을 열었습니다.

마침내 개장한 레고랜드 코리아


10년 만에 다시 찾은 중도는 육지와 섬을 잇는 거대한 춘천대교가 놓여져서 배를 타야만 왕래가 가능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접근성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레고랜드 건설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지나 다리를 건너 중도로 들어서며 알록달록한 원색의 레고 블록들이 맞이합니다. 여느 테마파크와 마찬가지로 경쾌한 음악이 울려퍼지고 가족들과 아이들의 신나는 목소리가 어우러집니다. 그렇게 중도라는 섬은 일상의 섬, 역사의 섬이라는 정체성과는 완전히 다른 플라스틱을 만들어진 레고 왕국이 되었습니다.

춘천대교를 건너 중도로 들어서면 레고랜드를 반대하는 현수막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레고 블록으로 만든 놀이기구를 타며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지만 바로 그 밑에는 3천 년 전 우리 조상들의 집터가 있습니다. 물론 개발을 통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얻고 추억을 만드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자연과 마찬가지로 한번 파괴되고 사라진 역사는 다시 되살릴 수 없습니다.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왕국 아래 영원히 잠들어 버린 거대한 선사 유적, 이 기묘하고도 슬픈 공존은 21세기 대한민국이 가진 욕망의 민낯과 그늘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으로 다시 태어난 섬


춘천에서 북한강을 따라 하류로 쭉 내려오다보면 가평 남이섬이 나옵니다. 남이섬은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을 넘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전체에 한류 열풍을 일으켰던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 무대가 된 섬입니다. 드라마 속 남여 주인공이 하얀 눈밭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첫 키스를 나누던 메타세쿼이아 길 덕분에 남이섬은 일약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이후 남이섬은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남이섬 역시 하중도입니다. 그런데 이 남이섬이 본래 자연적으로 생긴 섬이 아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40년대에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북한강의 수위가 높아졌고, 강 주변에 있던 낮은 언덕이 물에 잠기고 남은 봉우리가 섬이 된 것이 바로 남이섬입니다. 즉, 인간의 댐건설로 인하여 인위적으로 수위가 높아져서 섬이 만들어진 것이죠. 남이섬의 이름은 조선 시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 남이 장군의 묘가 섬 북쪽 언덕에 있다는 전설로 유래되었습니다.

남이섬의 가을 모습


남이섬은 드라마 ‘겨울연가’ 열풍이 불기 전까지는 1960년대부터 이어진 그저 평범한 유원지에 불과했습니다. 통기타를 둘러멘 대학생들이 경춘선 기차를 타고 MT를 와서 강변 모래밭에 텐트를 치고 밤새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던 그런 추억의 장소였죠. 당연히 체계적인 관리는 없었으니 곳곳에 쓰레기가 나뒹굴었고, 시설은 낙후되어 사람들의 발길은 점차 줄어들던 섬이었습니다.


섬의 운명이 극적으로 바뀐 것은 2000년대 초반입니다. 그 변화는 당시 아주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남이섬 경영자는 쇠락해가는 남이섬을 되살리기 위해 거창한 토목 공사를 벌이거나 거대한 놀이기구를 들이는 뻔한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섬에 ‘이야기’와 ‘문화’, 그리고 ‘상상력’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기발한 아이디어는 2006년 남이섬을 ‘나미나라 공화국(Naminara Republic)’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독립을 선포한 것입니다.

나미나라공화국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렇게 남이섬은 스스로를 대한민국 영토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독립국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국기와 국가를 만들었고, 독자적인 여권과 화폐(남이통보), 우표까지 발행했습니다. 육지에서 섬으로 들어가는 가평 선착장은 일종의 출입국 관리사무소가 되었고, 배표는 비자(Visa)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이섬을 가려면 배를 타고 불과 5분 남짓 강을 건너갈 뿐이지만, 방문객들은 이 독특한 설정 덕분에 마치 ‘나미나라 공화국이라는 낯선 나라로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즐겁고 색다른 상상을 하게 된 것이죠.

(좌) 나미나라공화국 국기, (우) 나마나라공화국 여권


남이섬 안에는 방문객을 위한 차량 외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습니다. 매연과 소음이 사라진 섬에는 대신 타조와 공작새, 토끼와 다람쥐들이 자유롭게 섬을 돌아다닙니다. 섬 곳곳에는 버려진 공병을 재활용해 만든 예술 작품이나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만든 미술 설치 작품, 그리고 작은 갤러리와 그림책 도서관들이 숲속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습니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강변을 달리거나, 유니세프 나눔 열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수도 있습니다.

(좌) 남이섬에서 만날 수 있는 타조, (우) 미술 특별전


남이섬은 거대한 자본을 투입해 섬의 지형을 바꾸고 역사와 자연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린 것이 아니라 섬이 가진 본래의 아름다운 자연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 위에 상상력과 문화, 예술이라는 옷을 입힌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공적인 테마파크의 화려함이 아니어도 잘 가꾸어진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그 속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소비하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남이섬은 상상력이 동반된 보존이 오히려 가장 훌륭한 개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모범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을이면 재즈의 성지가 되는 섬


그렇다면 남이섬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또 다른 하중도, 자라섬은 어떨까요?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자라가 목을 내밀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진 자라섬은 남이섬의 명성에 가려져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진 섬이었습니다. 더욱이 자라섬은 지대가 낮아 장마철이면 섬 전체가 물에 잠기기 일쑤여서 주민들조차 농사를 짓거나 거주하지 않는 그저 잡초와 갈대만 무성한 섬이었습니다.

가평 시내와 가까이 있는 남이섬 전경


2004년, 이 쓸모없던 섬이 기적처럼 되살아 났습니다. 바로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라는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면서 부터입니다. 당시만 해도 모두들 '서울도 아닌 이 시골에서 그것도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이름 없는 섬까지 누가 재즈를 들으러 오겠느냐'며 코웃음 쳤습니다. 하지만 의의로 결과는 놀라왔는데요. 첫해 축제가 예상을 뒤엎고 말 그대로 대박을 쳤기 때문입니다.


가을밤, 신선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야외 잔디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재즈 뮤지션들이 들려주는 라이브 연주를 직관하는 경험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도시의 답답한 실내 공연장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진정한 자유와 가슴 벅찬 낭만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재즈를 좋아하는 한사람으로서 페스티벌의 초창기부터 자라섬을 찾았는데요. 세계적인 유명 재즈 뮤지션부터 젊고 신선한 뮤지션까지 깊고 다양한 재즈의 매력에 더욱 빠지게 되었습니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 음악과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경험은 정말 신선했습니다.

성공적인 축제로 안착한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성공적인 데뷔 이후, 자라섬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즈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변두리에 있던 쓸모없던 섬이 단숨에 음악의 섬이라는 매력적인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죠. 10월 축제 기간이 시작되면 평소 인적이 드물어서 고요하던 가평 자라섬이 시끌벅쩍해집니다. 전국에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십만 명의 재즈 애호가들의 인파로 붐빕니다. 비단 재즈 팬뿐만 아니라 축제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나온 사람들도 함께 자라섬을 찾아 음악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며 아름다운 가을밤 소풍을 즐깁니다.

자라섬에서는 가을 밤 야외에서 재즈를 즐길 수 있다!


뜨거운 축제의 열기가 식고나면 자라섬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축제가 열리지 않는 평상시에 자라섬은 캠핑장으로 변합니다. 캠넓은 잔디밭과 잘 정비된 시설 덕분에 전국 캠핑족들의 아늑하고 쾌적한 오토캠핑장이 됩니다. 또한 봄에는 꽃 정원이 되고, 겨울에는 씽씽 겨울 축제장이 되면서 사계절 내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자라섬의 방식은 바로 옆에 위치한 남이섬과도 또 다릅니다. 남이섬이 1년 365일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일종의 테마파크로 섬을 개발했다면, 자라섬은 1년의 대부분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하고, 축제라는 특정 기간에만 에너지를 집중하는 이벤트성 개발을 택한 것입니다. 즉, 섬의 자연을 파헤치고 화려한 건물을 짓는 대신, 음악이라는 무형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버려졌던 불모의 섬을 세계적인 문화 명소로 만들어낸 것이죠.




북한강에 나란히 놓인 이 세 개의 섬, 중도, 남이섬, 그리고 자라섬은 우리에게 ‘개발과 보존’이라는 어려운 딜레마에 대해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 답을 보여줍니다. 중도는 역사라는 과거의 소중한 가치는 덮고, 그 대신 자본이라는 현재의 이익을 선택하였습니다. 반면 남이섬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섬의 가치를 완전히 새롭게 창조했고, 자라섬은 음악이라는 매력적인 콘텐츠로 섬을 축제의 장소로 되살렸습니다.


섬을 개발하는 것이 꼭 땅을 파헤쳐서 그곳에 화려한 무언가를 세워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대신 섬이 오랜 기간 품어온 고유한 이야기와 역사,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그들에게 감동과 휴식을 제공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이섬의 동화같은 상상력과 자라섬의 낭만적인 재즈 선율은 어쩌면 자본의 논리에 밀려 중도가 놓쳐버린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