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용기를 간직한 바다

[섬토리텔링] 전라남도 진도군

by 지리는 강선생

장소는 단순히 객관적인 실체로서의 공간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그 장소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와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장소는 발을 딛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우리를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데려다주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추억이 담긴 장소는 육지에도 많지만 우리의 소중한 영토인 섬에도 당연히 존재합니다. 이번 장에서 함께 떠나볼 섬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극적인 승리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이면서 동시에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던 가장 아픈 기억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그곳은 바로 전라남도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섬 진도입니다.



진도로 향하던 중 떠오른 아픈 기억


차를 타고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진도로 향하던 도중 내비게이션 화면에 ‘무안국제공항’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제 머릿속에는 2024년 12월 온 국민을 충격과 안타까움에 빠뜨렸던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습니다. 태국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오던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고였죠. 그 안타까운 뉴스를 접한 저는 자연스럽게 10년 전 봄날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였습니다.


당시 저는 2년 차 교사로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저는 교무실에 앉아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교시 쯤으로 기억합니다. TV 뉴스 속보로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전원 구조'라는 기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들려오는 비극적인 소식으로 가슴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매일 교실에서 학생들을 마주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수학여행을 떠났던 수많은 학생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이번 무안공항 사고 뉴스를 접하며 ‘왜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반복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직장 동료 중 유가족이 있어서 그 슬픔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무안공항 사고 역시 지인들 중 직접적인 유가족이 있어서 그 안타까움과 슬픔은 배가되었습니다. 그래서 진도로 향하는 길에 잠시 무안공항에 들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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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국제공항의 합동 분향소


무안국제공항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쓸쓸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습니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공항 청사 안으로 들어서니 한쪽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과 마주했습니다. 순간 너무도 많은 영정 사진의 숫자에 놀랐고, 어린아이부터 학생, 청년, 중년, 노인까지 전 세대에 걸친 희생자들의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며 가슴이 또 다시 먹먹해졌습니다. 깊은 슬픔과 남은 유가족들을 위한 위로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묵념을 올렸습니다.



명량, 그 위대한 승리의 기억


무안공항을 뒤로하고 다시 차를 달려 진도로 향했습니다. 일단 전라남도 해남과 진도를 잇는 다리, 진도대교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이 진도대교 아래가 섬과 육지 사이의 좁은 바다에서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포효하고 있는 거친 물결, 바로 ‘명량(鳴梁)’, 울돌목입니다. 바위가 우는 길목이라는 이름처럼 폭이 293미터에 불과한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하는 바닷물은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명량의 물살은 시속 20km가 넘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른 조류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합니다.

드론으로 촬영한 진도대교.jpg 드론으로 촬영한 진도대교와 울돌목


이곳이 바로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불과 12척의 배로 133척이 넘는 왜군 함대를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둔 기적의 현장, 명량대첩의 무대입니다. 당시 조선 수군은 원균이 이끌었던 칠천량 해전에서 참패하여 거북선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력을 잃고 괴멸 직전의 상태였습니다. 당시 임금인 선조조차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에 합류하라고 명할 정도로 조선은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라는 비장한 장계를 올리고, 죽기를 각오하고 이곳 울돌목으로 향했습니다.

이순신 장군.jpg 이순신 장군 장군의 좌우명


도대체 어떻게 이런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 싸울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순신 장군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이 거친 자연의 힘을 가장 강력한 아군으로 삼았습니다. 마치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을 이용하여 조조의 100만 대군을 무찌른 제갈공명처럼 그는 울돌목의 거센 물살이 방향을 바꾸는 시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장 좁고 물살이 거센 길목으로 왜군 함대를 유인했습니다. 왜군은 조선 수군에 비해 수적으로 10배나 우세했지만 명량의 좁은 해협으로 들어오자마자 수많은 함대가 서로 뒤엉키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물살의 방향이 바뀌자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 왜선들은 서로 부딪치거나 암초에 좌초되며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이처럼 이순신 장군은 지형과 자연의 힘을 완벽하게 이용하여 위대한 승리의 역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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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돌목의 거센 물살.jpg
해상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거센 울돌목


저는 해남 쪽에서 진도대교 해상 케이블카를 타고 진도로 향했습니다. 케이블카는 비교적 운행 구간이 짧았지만 바닥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발아래 펼쳐진 울돌목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실감 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진도 쪽에 도착해서는 드론을 띄워 진도대교와 울돌목의 전체적인 모습을 하늘에서 기록했습니다.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육지와 섬이 마주 보고 있는 지형과 그 사이를 흐르는 거친 물살의 역동적인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거센 물살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울돌목 해변으로 내려왔습니다. 이곳에 서서 소용돌이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날의 함성과 비장함이 파도 소리에 실려오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지혜와 용기, 그리고 불굴의 의지가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요.



불현듯 진도에서 든 발칙한 생각


진도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진도타워에는 이 지역의 명물인 ‘진돗개 빵’을 팔고 있습니다. 진돗개 얼굴 모양을 한 귀여운 빵을 먹으면서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돗개로 유명한 진도에는 과연 보신탕집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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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는 진돗개빵이 있다!


어떻게 보면 요즘처럼 반려동물 인구가 많은 시기에 굉장히 불순하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관련 법률이 강화되면서 전국적으로 보신탕집은 거의 다 사라지는 추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특정 지역이 개의 품종으로 유명한 곳은 진도가 거의 유일합니다. 그래서 이런 호기심은 어찌 보면 진도라는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지리교사로서 자연스럽게 들 수 있는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진도는 모두가 알다시피 전 국민이 좋아하는 충성과 용맹의 상징인 진돗개의 고향입니다. 진돗개는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인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과 뛰어난 용맹함, 그리고 놀라운 귀소본능으로 유명한 품종입니다. 진돗개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일화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1993년 진도에 살다가 대전으로 팔려 간 백구의 이야기입니다. 백구는 원래 주인을 잊지 못하고 7개월 동안 무려 300km가 넘는 먼 길을 헤매어 기적처럼 다시 진도의 주인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당시 큰 화제가 되었고 이를 모티브로 한 컴퓨터 광고가 만들어지면서 진돗개는 충견의 대명사로 전 국민에게 각인되었습니다.

컴퓨터 광고에도 나온 진돗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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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광고에도 나왔던 진돗개


진돗개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성향이 매우 강하지만, 반면 주인과 그 가족에게는 더없이 온순하고 헌신적입니다. 이러한 진돗개의 기질은 과거 진도의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주인을 도와 멧돼지 같은 맹수를 사냥하며 살아남아야 했던 강인함이 유전된 결과로 추정됩니다. 즉, 오랫동안 육지와 고립되었던 진도의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덕분에 진돗개는 다른 품종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 혈통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엉뚱한 호기심을 안은 채 진도 읍내로 들어섰는데, 아뿔싸! ‘진돗개 테마파크’와 ‘진돗개 메디컬 센터’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반 동물 병원이 아니라 진돗개만을 전문으로 치료하고 연구하는 의료 기관이 있다니! 이런 곳에 보신탕집이 있을까 의문을 가졌던 제 자신이 조금 민망해져 웃음이 터졌습니다. 진돗개 테마파크에는 진돗개의 역사와 우수성을 알리는 박물관이 있었고, 어린 진돗개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운동장과 공연장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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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 테마파크


다만 테마파크를 둘러보면서 조금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일부 진돗개들이 마치 동물원의 사자나 호랑이처럼 좁은 우리 안에서 지루한 듯 잠만 자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큰 진돗개들은 나이와 이름이 적힌 철창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물론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곳에서 안전과 관리를 위해 진돗개를 마냥 풀어놓을 수는 없었겠지만, 자유롭게 뛰어다녀야 할 진돗개들이 갇혀 있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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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 테마파크의 진돗개들



안타까운 슬픔을 간직한 섬


진도는 위대한 승리의 역사와 충직함의 상징을 간직한 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깊은 슬픔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로 2014년 4월 16일,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났던 300여 명의 학생과 선생님들을 포함한 수많은 소중한 생명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잠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곳이 바로 진도 앞바다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실종자 수색 작업과 사고 관련 보도의 중심지였던 진도 팽목항은 전 국민의 간절한 기도와 염원이 모이던 곳이었습니다. 이후 이곳은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기억을 간직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차가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영영 돌아오지 않는 가족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던 유가족들의 절규와 안타까운 모습은 대한민국을 울렸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침몰하는 배 안에서 두려움에 떨며 구조를 기다렸던 아이들의 마지막 이야기는 아직도 마음을 절절하게 아프게 합니다.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팽목항에는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으려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이 노란 리본이 되어 바람에 나부끼고 있습니다. 사고 당시 저는 안산 단원고등학교로 향했었습니다. 교문 앞 편의점에서 평소에 학생들이 좋아했을 법한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짧은 추모의 메모와 함께 교문 앞에 놓고 추모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1년 만에 진도 팽목항에 마련된 세월호 합동 분향소를 찾아 희생된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11년 전 단원고등학교에서 추모.jpg 11년 전 단원고등학교에 가서 추모를 했다


분향소에 들어서니 300여 명의 학생과 선생님들을 비롯하여 세월호에 탑승했던 모든 희생자의 영정 사진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 아이들은 여전히 11년 전 그날처럼 뽀얗고 앳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밝지만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는 노래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분향소에서 먹먹한 마음으로 향을 피우고 묵념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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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 얼굴.jpg
세월호 팽목 기억관


‘이제 11년이 지났으니까,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학생들도 살아있다면 대학을 졸업한 29살 사회인이 되었겠구나. 당시 나와 비슷한 초임 교사였던 선생님들도 이제는 경력이 꽤 쌓인 선생님이 되었겠네.’ 이런 부질없는 생각들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분향소를 나와 일명 ‘기다림의 등대’라고 불리는 빨간 등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등대로 가는 방파제 길 양옆으로는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의 메시지와 노란 리본들이 가득했습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수천개의 노란 리본들은 팽목항이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거대한 추모와 성찰의 장소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다림의 등대1.jpg 기다림의 등대



용기와 슬픔을 넘어서


승리의 기쁨과 상실의 슬픔, 어쩌면 한 장소에 공존하기 힘든 이 극적인 기억들이 마치 울돌목의 거센 물살처럼 휘몰아치며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우리는 이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영광스러운 승리의 순간만을 기억하며 자긍심을 느끼는 것도, 비극적인 슬픔만을 떠올리며 절망에 잠기는 것도 역사를 온전하게 기억하는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빛과 그림자, 영광과 상처 모두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직시하는 것이 역사를 마주하는 올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거의 기억들을 통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배워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불굴의 용기와 지혜를 본받아 마주한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동시에,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적인 아픔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안전과 생명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용기와 슬픔을 넘어 과거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성찰할 때, 진도라는 섬에 쌓인 과거의 기억들은 비로소 살아있는 역사이자 미래를 향한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