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긴장의 경계선

[섬토리텔링]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

by 지리는 강선생

얼마 전 뉴스에서 백령도 주민들이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과거의 선전 방송이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는 고리타분한 내용이었다면, 최근의 방송은 그 양상이 매우 자극적으로 변했습니다. 귀신 소리나 동물 울음소리 같은 섬뜩하고 기괴한 소음을 밤낮없이 송출하며 주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파괴하고 있다는 소식은 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백령도는 서해의 최북단 섬이자 안보의 끝자락이라는 상징으로 익숙합니다.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의 아픈 기억이 서려있는 곳, 대한민국에서 가장 용맹하다는 해병대 부대가 있는 곳, 그리고 북한과 가장 가까워 황해도식 냉면이 유명한 곳 정도로만 알려져 있죠. 하지만 해병대, 냉면, 천안함 같은 단편적인 단어 너머 백령도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뉴스 속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닌 실제 그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을 품고 있는 압도적인 자연을 확인하기 위해 대한민국 최북단의 섬으로 향했습니다.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



서해 최북단 섬


인천 연안 여객터미널에서 백령도행 쾌속선에 올랐습니다. 배가 인천대교를 지나 먼바다로 나아가자 휴대폰 신호가 조금씩 약해지더니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기 시작합니다. 지도 앱을 켜고 현재 위치를 확인해보니 배가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북방한계선(NLL)이 서해 5도 섬들 북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넘어가면 바로 북한인 가느다란 선 바로 아래로 배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있는 상황에 묘한 긴장감을 느낍니다.

중국 산동반도와 인천 가운데 위치한 백령도


대한민국 지도를 찬찬히 살펴보면 백령도의 위치는 참으로 절묘합니다. 백령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거리상으로는 오히려 인천보다 북한의 황해도 땅과 훨씬 가깝습니다. 또한 지도를 더 넓은 범위로 확대해 보면 백령도는 중국 산둥반도와 인천의 딱 중간 지점 쯤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서북쪽에 위치한 백령도가 어떻게 우리의 영토가 되었을까요?


이유는 6.25 전쟁의 막바지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당시 UN군은 백령도를 포함한 서해의 주요 섬들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당시,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를 UN군 사령관의 관할 하에 둔다는 명시적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결정 덕분에 백령도는 북한의 바로 앞에 의치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우리 영토의 북쪽 한계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남게 된 것입니다.


백령도 용기포항 여객터미널에 발을 내딛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귀신 잡는’ 해병대원들입니다. 터미널 안은 휴가에서 복귀하거나 이제 막 휴가를 떠나는 장병들로 가득합니다. 백령도에서의 군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역하는 해병대원들이 단체로 큼지막한 '백령도' 글씨와 마스코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입니다. 백령도의 중심가인 진촌에서도 해병대원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습니다. 냉면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도 여자친구와 식사를 하고있는 해병대 간부를 볼 수 있었고, 군복을 입고 단체로 훈련하거나 개인적으로 운동을 하는 해병대원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백령도 곳곳에는 해병대 부대가 여럿 있는데, 그 중 해병대 6여단 본부 근처에는 섬의 다른 건물들과는 다른 비교적 세련된 신축 아파트가 눈에 띕니다. 그리고 부대 입구 바로 앞에는 편의점과 마트, 그리고 치킨집이 있습니다. 이곳은 서해 최북단을 사수하는 해병대 간부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전용 숙소라고 합니다.

기념 사진 촬영 중인 해병대원들


백령도는 이처럼 용맹한 해병대와 대한민국의 하늘을 지키는 공군 부대가 상주하는 안보의 요새이지만, 동시에 가슴 아픈 희생의 기억이 서린 곳이기도 합니다. 2010년 3월 26일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백령도 서남쪽 약 2.5km 해상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하던 우리 해군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으로 피격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순식간에 발생한 강력한 수중 폭발로 선체는 두 동강이 났고, 평화로웠던 서해 바다는 비극의 현장으로 변했습니다.


섬의 서쪽 해안에는 46명의 천안함 용사를 기리는 위령비가 우뚝 서 있습니다. 저는 이곳을 찾아 차가운 바다에서 뜨겁게 산화한 젊은 넋들을 기리며 묵념을 올렸습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바다는 한없이 평화롭고 잔잔하여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렁이고 있지만, 저 깊은 바닥에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아픈 기억과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영혼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장 맞닿아 있는 이곳에서 마주하는 이 평온함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좌)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우)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압도적인 자연


대한민국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백령도는 그 거리와 고립된 시간이 긴 만큼 자연 환경은 이색적이면서도 압도적입니다. 제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사곶해변이었습니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한 천연 비행장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이탈리아 나폴리와 더불어 단 두 곳뿐인 진귀한 지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연 비행장으로 사용 가능한 사곶해변


해변에 내려서서 모래를 밟아보니 일반적인 해수욕장과는 촉감이 전혀 달랐습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대신 마치 시멘트 바닥이나 잘 닦인 운동장을 걷는 것처럼 딱딱하고 평평했습니다. 이는 아주 미세한 규조토 모래가 오랜 세월 파도에 다져지며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6.25 전쟁 당시에는 군용 비행장으로 쓰였고, 이후 자동차 광고의 촬영지로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이 사곶해변에 차를 몰고 오기도 했나 봅니다. 왜냐하면 렌터카를 빌릴 때 “절대로 사곶해변에 차를 몰고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주의 메시지를 받았거든요. 차의 실내에게 큼지막한 경고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백령도 자연의 정수를 맛보려면 섬의 북서쪽 끝 두무진(頭武津)으로 가면 됩니다.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형상’이라는 이름처럼 거대한 바위 기둥들이 바다 위로 솟구쳐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짙푸른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10억 년의 세월이 빚어낸 규암층 절벽이 어우러지는 장면 앞에서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 봤습니다.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두무진으로 향하는 기암괴석들 사이를 걷다 보면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두무진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싶다면 유람선을 타고 바다 위에서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육지에서 볼 때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높이와 질감을 보여줍니다. 아쉽게도 백령도는 드론 비행 금지 구역이라서 하늘에서 이 멋진 광경을 보지는 못 했습니다.

두무진의 압도적인 경관


하지만 제가 백령도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소는 오히려 평온했던 중화동 포구와 그곳에서 본 노을이었습니다. 중화동 교회를 찾기 위해 우연히 들른 중화동 포구는 두무진처럼 화려하거나 사곶해변처럼 특별한 명소는 아니었지만, 해가 지기 한참 전부터 포구 바위에 앉아 이른바 ‘물멍’을 즐겼습니다. 한적한 포구에서 혼자 음악을 들으며 시나브로 붉게 물들어가는 바다와 파도 소리를 여유롭게 즐기는 시간은 우연히 받은 선물같았습니다.

한동안 물멍을 하며 노을을 바라본 중화동 포구



인문학적 유산


백령도는 서해 최북단이라는 안보적 가치와 압도적인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전설, 종교 문화, 독특한 음식 문화와 같은 인문학적 유산도 간직한 섬입니다.


우선 백령도는 우리 누구나 잘 알고있는 심청전의 고향입니다. 백령도와 북한 장산곶 사이의 바다가 바로 효녀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를 위해 몸을 던진 인당수라는 설이 있기 때문인데요. 백령도의 중심가 진촌리에서 조금만 언덕으로 올라가면심청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효녀 심청을 기리는 심청각


심청각은 옹진군이 1999년 백령도를 심청전과 효를 소재로 문화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세웠습니다. 건물 내에는 심청전의 내용에 대한 전시물과 효의 중요성에 대한 문구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심청각 내부의 전시물과 각종 스토리텔링들은 낡고 관리도 잘 되어있지않았고, 결정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심청전의 테마를 조금 더 잘 활용하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작 저의 시선을 끈 것은 심청각 바로 옆에 전시된 군사 시설과 장갑차였습니다. 심청각은 맑은 날이면 북한의 땅이 또렷하게 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효녀 심청의 애절한 전설을 기리는 장소에 현대사의 비극인 전쟁 무기가 함께 놓여있는 것이죠. 어쩌면 이런 기묘한 풍경이야말로 백령도가 처한 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꼈습니다.


백령도에 왔다면 황해식 냉면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저는 맵고 자극적인 함흥냉면도 좋아하지만 슴슴하면서 육향이 은은한 평양냉면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백령도의 황해도 냉면은 과연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원래 가려던 사곶해변 근처 냉면집이 마침 휴업이라서 대신 진촌리에 위치한 백령면옥으로 갔습니다. 이곳에서 비빔냉면과 물냉면의 특성을 모두 갖춘 반반 냉면을 주문했습니다.


황해도식 냉면의 면은 메밀 향이 진하게 나면서 쫄깃하기보다는 뚝뚝 끊어지는 평양냉면 면발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육수는 까나리 액젓으로 간을 맞춘 독특한 방식으로 평양냉면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이 낯설지만 깊은 냉면 맛에는 고향 땅 황해도를 바로 앞에 두고도 가지 못했던 실향민들의 그리움이 담겨있는 것 같았습니다.

백령도에서는 황해도식 냉면을 맛볼 수 있다


섬 남쪽에 자리한 중화동 교회는 1898년에 설립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장로교회입니다. 1832년 영국 선교사 귀츨라프(Karl Gützlaff)가 백령도 근해에 머물며 한문 성경을 전달하고 감자를 전파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백령도는 중국 산둥반도와 한반도를 잇는 최단 거리의 해상 기점으로서 서양 문물이 육지에 닿기 전 머물 수밖에 없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유교적 위계질서와 보수성이 강했던 내륙 본토와 비교했을 때 고립된 섬 사회는 생존을 위한 개방성과 새로운 사상에 대한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이는 기독교가 빠르게 뿌리내리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또한 백령도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성지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와 백령도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1846년 김대건 신부는 조선 입국을 시도하는 서양 선교사들을 안전하게 영입하기 위해 기존의 의주 육로 대신 서해 바닷길을 개척하라는 선교부의 지시를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대건 신부는 백령도 바로 옆 순위도(현재 황해도 옹진군 소속)에서 관군에 체포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백령도 일대가 서양 문물과 종교가 조선이라는 폐쇄된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최전방의 해상 관문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백령 기독교 역사관에는 이러한 선교 초기 단계의 구체적인 사료와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이 담긴 기록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역사관 옆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100년 이상의 중화동 무궁화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민족정신 및 근대화 운동과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보여주는 실증적인 지표입니다. 이러한 인문학적 유산들은 백령도가 안보상의 요새일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종교적 변천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장소임을 뒷받침합니다.

백령 기독교 역사관과 중화동 교회



예측 불허인 섬에서의 삶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카페에서 여유롭게 글을 정리하던 중 갑자기 스마트폰 진동이 울립니다. 내일 인천으로 나가는 배편이 기상 악화로 취소되었다는 긴급 메시지가 온 것입니다. 섬을 여행하다보면 기상 악화로 배가 결항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소식입니다. 그로 인해 일정이 하루 지체되면 추가적인 숙박비는 물론 이후의 모든 계획이 엉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전 울릉도 여행을 하며 겪었던 똑같은 상황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기상악화로 배편이 연기되었다는 긴급 메시지


불안한 마음을 가라 앉히고 차분하게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우선 펜션과 렌터카 사장님께 갑작스러운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배가 안 뜨면 어쩔 수 없죠. 오늘 숙박비와 렌터카비는 바로 환불해 드릴게요." 저는 금액의 일부라도 돌려받으면 다행이라 생각했었는데, 섬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장님의 후한 인심과 따뜻한 배려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지금 당장 뜰 수 있는 배를 알아봐야 합니다. 다행히도 여객터미널로 달려가 확인해 보니 오늘 출발하는 배에 자리가 있어 표를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백령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딱 한 시간 남짓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렌터카를 반납하기 직전까지 한 곳이라도 더 보기 위해 서둘러 차를 몰았습니다. 희귀한 지질 유산인 감람암 포획물을 볼 수 있다는 하늬해변을 찾았으나 아쉽게도 군사 지역 통제로 인해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로 옆에 위치한 끝섬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맑은 날이면 북한 황해도 옹진반도가 훤히 보인다는 말에 기대를 품었지만, 구름 짙은 날씨 탓에 북녘의 모습은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 거리가 현재 우리가 처한 남북 관계의 현실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어습니다.

백령 끝섬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땅, 흐린 날씨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일상으로


다시 인천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점점 멀어지는 백령도를 바라보았습니다. 확성기 소음을 견디며 꿋꿋이 일상을 일궈가는 주민들과 묵묵히 국토의 끝을 지키는 해병대 장병들, 그리고 10억 년의 세월을 견딘 두무진의 바위들을 모두 품고 있는 이 섬을 단순한 관광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백령도는 안보의 현장이면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꽃을 피워낸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백령도 여행을 통해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