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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리는 강선생 Mar 24. 2021

내 생애 단 한번, 나의 리즈 시절

원주여자고등학교의 기억

고등학교 다닐 때 진지한 교훈 하나쯤은 다들 기억 날 것이다. 나의 모교 원주고등학교의 교훈은 '스스로, 더불어, 알차게'였다. 하지만 당시 재학생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우리들만의 교훈은 바로 '쳐부수자 춘고, 무찌르자 강고, 품어주자 원여고'였다. 당시 강원도는 비평준화 시절이었고, 강원도의 세 도시 원주, 춘천, 강릉의 명문고등학교끼리 이른바 라이벌 의식과 이웃 학교에 대한 애정이 반영된 비공식 교훈인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유치하기도 하고, 또 지금 내가 그 '쳐부수자 춘고'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2016년 3월, 10년도 훨씬 더 전에 '원고'를 졸업한 내가 '원여고'에 근무하게 되었다. 사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중학교에만 근무를 했었고, 또 남중과 공학에서만 가르쳐봤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여고생들만 있는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평소 수업하거나 상담할 때 남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다소 거친 단어와 표현을 쓰는 편이었고, 학생들과 농구도 하고, 떡볶이도 같이 먹으면서 마치 큰 형 같은 스킨십을 하면서 학생들과 친해지곤 했는데, 이런 내가 과연 여고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내가 다니던 원고 길 건너편에는 바로 원여고가 있었지만, 그 시절 나는 여고를 '금남(男)'의 구역이라고 생각했었다. 남중, 남고를 다녀서 그랬을까? 혹시 여고에 아는 선생님을 만나러 갈 때도 뭐가 그리 부끄러웠는지 여학생들이 모여있으면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곤 했다. 당시 고등학교 3년 내내 혼자 좋아하던 여학생도 원여고를 다니고 있었지만, 가끔 학원에서 마주치는 것 말고는 원여고 학생들을 직접적으로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아무튼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원여고는 한 번쯤은 가보고 싶지만 갈 수는 없는 그런 마치 로맨틱 판타지와 같은 장소였다.


그랬던 내가 원여고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다. 출근하고 나서 첫 수업 시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게 세계지리 교과서를 어색하게 들고 1학년 교실로 들어갔다. 학생들도 역시나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그런지 나처럼 긴장한 듯했다. 그래도 첫 수업이니까 긴장도 풀 겸 바로 수업을 하는 것보다는 자기소개 겸 오티를 해야겠지? 나는 지금까지 늘 해오던 자기소개를 하기 전에, 이 곳은 '원여고'니까 모교의 그 '비공식 교훈'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원고 출신이야. 그때 우리들끼리 말하던 비공식 교훈이 '쳐부수자 춘고, 무찌르자 강고, 품어주자 원여고'였어. 그 원여고에 이렇게 선생님으로 오게 되어서 정말 반갑다."


마치 위문공연 온 성시경을 바라보는 군인들처럼 무표정이었던 아이들은 '품어주자 원여고'멘트에 약간의 공감대가 생겼는지 표정이 밝아졌고, 수업이 조금씩 진행되자 서서히 여고 특유의 리액션이 나오기 시작했다. 첫 멘트의 반응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나 역시도 긴장이 풀렸고, 그제야 스토리텔러로의 자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2012년, 묵호중학교에서 첫 수업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던 자기소개는 내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서사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이사를 많이 다녔고 그래서 친구도 많이 없었다는 이야기, 초등학교 시절 강남 8학군에 살았지만 다른 학생들과 달리 공부도 잘 못했고 자신감도 없었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잘하는 것을 하나씩 발견하고 자신감을 갖게 된 이야기, 고등학교 때 사회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서 그것을 힙합으로 승화시킨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원여고 학생들에게 반응이 가장 좋았고 나 또한 말하면서 가장 몰입했던 에피소드는 바로 고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D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고1 때 학원에서 만난 D는 원여고에 다니고 있었다. 가끔 D를 학원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이정현의 '너'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기억난다. 하늘색 옷을 즐겨 입어서 스카이 블루라는 애칭으로 D를 내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래서 내가 D를 좋아한다는 걸 학원에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고백은 커녕 겨우 용기를 내서 D의 이메일을 물어보는 게 고작이었고, 그러다가 그녀에게서 내가 보낸 메일에 답장이 오면 그날 하루는 너무 행복했다. 우연히 그녀가 DJ DOC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CD를 빌려주기도 했고, 내가 당시 좋아하던 노래들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D를 너무도 좋아했지만 제대로 고백도 못 했고, 결국 D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 한 사랑의 아픔에 잠겨있던 시기, 국어 시간에 고전시가 유리왕의 황조가를 배웠다. '펄펄 나는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운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시조 속의 암컷 꾀꼬리는 D였고, 수컷 꾀꼬리는 D를 뺏아간 그 자식이었다. 그리고 외로운 이 내 몸은 나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고, 수업시간이었지만 눈물이 났다. 수업 시간에 훌쩍거리는 나를 본 국어 선생님께서는 잠깐 교실 밖으로 나와보라고 하셨고, "집에 무슨 문제가 있냐?"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냐?"며 걱정스럽게 물어보셨다. 선생님의 공감 어린 목소리에 서러운 감정은 더욱 격해졌고, 결국 나는 흐느껴 울고 말았다. 선생님의 "도대체 왜 우냐?"는 질문에 사랑하는 D가 꾀꼬리처럼 떠나가 버렸기 때문이라고 나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원여고에서 세계지리와 한국지리를 가르쳤다. 1학년 수업은 11개 반을 각각 매주 한 시간씩 들어갔고, 2학년은 3시간, 3학년은 2시간씩 수업을 들어갔다. 그렇게 총 13개 반 수업을 맡았고, 1학년, 2학년, 3학년 총 3가지 다른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거기다가 매일 2시간씩 보충수업까지 있었다. 1학년 수업은 똑같은 수업을 한주에 11번씩 해야 했지만, 각각의 반 학생들은 모두 내 수업이 처음일 테니까 최대한 똑같지 않은 수업을 하려고 애썼다. 그 덕분인지 11개 반 학생들의 반응은 모두 제각각이었고, 또 여고 특유의 활기찬 리액션은 마치 에너지 드링크와 같았다. 그런 원여고 학생들의 열띤 호응은 수업하는 나를 더욱 신나게 만들어서 하루에 몇 시간씩 수업을 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


사실 수업 시수가 많은 것보다 한 주에 1시간밖에 없는 1학년 세계지리 수업이 고민이었다. 3월에서 7월까지 오티, 시험기간, 체육대회, 공휴일로 수업이 하나, 둘 빠지다 보면 한 학기에 총 15번도 수업을 못 하게 될게 뻔했다. 그러면 내가 원여고에 있게 될 1학기 동안은 물론 1년 동안에도 세계지리 진도를 모두 나가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아예 세계지리 수업을 나의 여행 이야기, '썰(說)' 중심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우선 수업할 소단원의 핵심 개념을 몇 개로 추리고, 그와 관련된 스토리를 준비했다. 사실 스토리를 준비했다기보다는 수업을 준비하면서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수업을 진행하며 적재적소에 풀어놓았다.


물론 모든 수업을 이렇게 하지는 않았다. 쾨펜의 기후 구분 수업을 할 때는 학생들을 보다 확실하고 재미있게 이해시키고 싶어서 대기의 대순환을 나의 온몸과 입체적인 판서로 설명했다. 그리고 매번 기회가 될 때마다 칠판에 세계지도를 그려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전체와 부분을 학생들 머릿속에 시각적으로 담아주려고 노력했다. 또한 부족한 수업 시간과 미처 질문을 못 한 학생들을 위해서 '노답 세계지리'라는 오픈 채팅방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익명이 보장되는 채팅방이다 보니 평소 수업시간에 부끄럼이 많아서 질문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여기에 많이 질문을 했고, 수업 외에도 학업과 진로, 개인적인 고민들도 털어놓았다. 물론 '앙'과 같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이 오픈 채팅방 덕분에 생겼다.

앙 누구냐 너!


이렇게 나름대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대한 열심히 준비하긴 했지만, 원여고 학생들의 반응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좋았다. 대부분의 수업 시간마다 활기가 넘쳤고, 웃음과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세계지리 과목이 국영수에 비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1주일에 한 번 밖에 없는 세계지리 시간을 기다린다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갔다. 보충수업을 신청하지 않았는데도 세계지리 때문에 신청해야겠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고, 지리 수업이 너무 재밌어서 지리교육과로 진로를 선택하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특히, 평소 수업과 교육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진로도 교대로 정했다는 한 학생은 "선생님처럼 수업을 하는 게 정말 준비할 것이 많을 텐데 매주 이렇게 수업을 준비하시고, 또 수업을 이렇게 재밌게 해 주시는 게 정말 교사로서 멋있는 것 같아요."라며 나에게는 너무도 과분한 칭찬이 담긴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실제로 그 학생은 지금 서울교대에 다니고 있다.




이처럼 원여고에서 만난 모든 반들이 나에게는 소중한 기억이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부담임을 맡은 '내 생애 단 한번' 1학년 1반과 함께 로비 음악회를 준비하고 내 결혼식 축가를 불러준 2학년 6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금요일 3교시에 수업이 들었던 1학년 1반은 수업 시간에 춘천-여수 도보여행 이야기를 해준 바로 당일에, 급훈을 '내 생애 단 한번'으로 정했다며 나를 찾아왔다. '내 생애 단 한번'은 내가 수업시간에 말했던 그 도보여행의 이름이었다. 아이들은 급훈이 적힌 종이를 양손에 들고 부담임 선생님 앞에서 마치 강아지처럼 생글거리면서 귀엽게 웃었다. 그렇게 맺어진 1학년 1반과의 인연은 청소년 축제까지 이어졌다. 4월 중순쯤, 1반 실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음 주 원주 따뚜 경기장에서 열리는 청소년 축제에 우리 반이 참석하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함께 참여하면 가산점이 있다면서 나도 함께 할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나는 내가 뭘 하면 되는지 물었고, 대답은 춤이었다. 곡명은 빅뱅의 뱅뱅뱅.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클럽이든 길거리든 어디서든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내 느낌대로 자유롭게 추는 춤과 칼군무의 아이돌 댄스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런 방송 댄스는 나와는 전혀 연이 없었는데, 그걸 수많은 고등학생들 앞에서, 그것도 상금이 걸린 대회에 여고생들과 함께 나간다니!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자신도 없었지만, 선생님이 없으면 절대 안 된다는 '내 생애 단 한번' 아이들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당장 다음 날부터 연습에 돌입했다. 다행히도 아이들배려해줘서 내 파트는 노래 후반부로 한정시켜줬고, 나는 그 부분만 일주일 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공연 전날은 새벽 2시까지 자취방에서 셀프 동영상을 찍으면서 연습했다.


공연 당일, 핑크색 후드티를 맞춰 입고 무대에 올랐다. 나는 공연이 중간 정도 진행될 때까지 무대 뒤에 숨어있다가 음악이 정점으로 치달을 때 등장하기로 했다. 점점 음악이 클라이맥스로 고조되었고, 음악이 바뀌고 정점이 되었을 때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무대로 뛰어 올라갔다. 무대 앞 관객석에는 어떻게 알고 왔는지 원여고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전날 새벽까지 연습한 안무를 몇 번 틀리지 않고 무사히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남자 선생님의 어설픈 춤이 가상하고 기특해서였을까? 우리 반의 공연은 원주시 청소년 축제에서 2등을 했고, 한 동안 그 상패는 1학년 1반 교실 칠판 위 한가운데에 걸려있었다.

내 생애 단 한번 1학년 1반, 청소년 축제 2등 기념!


2학년 6반과의 추억은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원여고 1층 로비에서 버스킹 형식으로 로비 음악회를 계획하고 있다며 혹시 해볼 의향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마침 내가 가장 많은 수업을 들어가는 2학년 6반이 예체능 중점반이기도 하니까, 실용음악 보컬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무대에 오를 기회도 줄 겸 나는 기타 연주 정도만 도와줄 생각으로 잠정적으로 승낙했다. 2학년 6반 수업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로비음악회에 참가할 의향을 물으니까 외외로 음악 전공 학생들은 참가하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그럼 음악 선생님에게 로비 음악회는 못할 것 같다고 말씀드릴게."라고 하니, 체육을 전공하고 있던 6반 실장 정현이가 "제가 요새 기타를 배우고 있는데, 선생님이 노래를 부르신다면 제가 기타를 칠게요."라고 한다. 그리고 그 옆에 또 다른 체육 전공 학생 소현이가 그럼 자기도 노래를 불러 보겠다고 한다. 그렇게 결국 제1회 원주여자고등학교 로비음악회는 체육 전공 학생 2명과 나, 이렇게 셋이서 시작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면서도 남자 키와 여자 키가 어우러질만한 곡으로 선곡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여러 곡을 고민하다가 첫 곡은 '10cm의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를 나와 소현이가 부르고 정현이가 기타를 치며 화음을 넣기로 했다. 두 번째 곡은 정현이와 소현이가 '2NE1의 Lonely'를, 마지막 곡은 나와 정현이가 같이 기타를 치며 'god의 촛불 하나'를 부르기로 했다. 체육 전공 학생들이 저녁까지 체육 실기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연습은 주로 점심시간에 이루어졌다. 매번 점심시간마다 2학년 6반 교실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 연습을 했다. 한 달간 거의 매일 점심시간마다 제대로 쉬지도 못 하고 연습 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2학년 6반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이해심 많은 2학년 6반 아이들은 우리를 진심으로 응원해줬고, 특히 음악 전공 학생들은 나에게 발성 스킬을 가르쳐주고 여러 가지 조언도 해주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공연 당일, 원여고 1층 로비는 학생들과 선생님들로 가득 찼다. 그렇게 우리가 한 달 동안 열심히 준비했던 무대를 시작했다. 첫 소절부터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가사 한마디, 한마디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마이크 음량을 최대로 설정했음에도 노래와 연주 소리가 여고생들의 환호에 묻힐 정도였다. 물론 내가 가사를 조금 틀리기도 했고, 연주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원여고 학생들은 고맙게도 뜨거운 호응과 더불어 끝없는 앵콜요청을 해주었다. 우리 셋은 한 달 동안 힘들게 준비한 로비음악회가 너무도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어서 기뻤다. 그렇게 로비 음악회를 무사히 마치고 한 동안은 내가 학교 복도를 지나갈 때면 원여고 학생들이 부르는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와 '촛불 하나' 가사와 멜로디가 들렸다.


2학년 6반 학생들과는 서울로 도시지리 답사도 다녀왔다. 세계지리 수업시간에 배웠던 도시 단원의 개념들을 직접 대도시 서울의 곳곳을 답사하며 실제로 배우는 시간이다. 서울의 부도심 강남의 테헤란로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서 보았고, 강남역 삼성전자 본사 건물 지하에 있는 딜라이트 스토어에서 각종 체험도 했다.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구로 디지털 단지 쪽을 지나가면서 서울 공업기능의 이심 현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도심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던 홍대입구에 가서 다양한 길거리 음식도 먹고, 예체능 반인만큼 버스킹 공연도 함께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답사의 마지막 코스는 이태원 이슬람 사원이었다. 서울로 답사를 왔을 때는 6월이었는데, 여학생들의 반바지와 반팔이 이슬람 사원 입장에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모두 사원 입구에서 이슬람 여성들이 입는 히잡과 긴팔, 긴치마를 빌려 입었고, 그제야 우리는 이슬람 사원에 입장할 수 있었다. 마침 우리가 공부하고 있던 단원이 이슬람 문화였는데, 이렇게 직접 답사를 하면서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밖에도 2학년 6반 학생들은 예체능반답게 7월에 있을 내 결혼식 축가도 해주었다. 주말인데도 원주에서 춘천까지 와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춤과 노래로 담임도 부담임도 아닌 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8월 말, 계약기간 6개월이 지나 이제 원여고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나는 오늘이 너희들이랑 마지막 시간이고, 다음 시간부터는 나보다 훨씬 좋은 선생님이 오실 거라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학생들과 셀카를 찍으며 마지막 추억을 간직했다. 몇 반을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하다 보니까 어느새 소문이 났는지 아이들이 하나둘씩 반별 롤링페이퍼와 개인 편지, 그리고 작은 선물들을 보내온다. 특히, 5층에 있어서 내가 항상 힘들게 올라왔던 1학년  11반은 칠판에 나의 얼굴과 함께 그동안 내 수업 시간 썰에 나왔던 내용들을 마치 그림일기처럼 그려놓고 마지막 수업을 아쉬워했다.

베트남 게이와 꾀꼬리의 만남 ㅋㅋㅋ




원여고를 떠난 지 3년이 되던 2019년 스승의 날, 오후쯤 여러 군데서 카톡이 온다. KBS 라디오에서 내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하고 얼른 인터넷 라디오 다시 듣기를 찾아서 들어봤다. 라디오에서는 스승의 날을 맞아서 학교 다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에 대해서 사연을 보내는 코너를 진행하고 있었다. 조금 찾다 보니 이런 사연이 소개됐다.


'지리를 재미있는 과목으로 확 바꿔주신 강이석 선생님, 감사합니다! 강이석 선생님 이름 두 번만 크게 불러주세요. 원주여자고등학교 제자가'

사연을 듣고 시간이 꽤 많이 지났는데도 많이 부족한 선생님을 이렇게 좋게 기억해줘서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내 생애 단 한번뿐인 리즈 시절을 보내게 해 주었던 2016년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2016년 원여고 제자들, 모두들 정말 고맙다!


여행이 부르는 노래: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 강이석, 김정현, 박소현(원곡: 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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