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경주 석굴암이나 제주 성산 일출봉에 대한 기억보다는 친구들과 선생님 몰래 방에서 술을 마시거나, 숙소에서 탈출하여 노래방을 갔던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는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학생이 아닌 교사 신분으로 수학여행을 가면 학교 업무와 수업에서 벗어나 마냥 편하고 즐거울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출발하기 전까지만 유효했다.
춘천고등학교에 발령받은 후 3년 연속으로 2학년 담임을 맡게 되면서 계속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 수학여행 인솔교사로 겪는 난관은 출발하는 공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분명히 자신의 영어 이름을 정확히 쓰고 기억하라고 해도 이상하게 써놓고 기억 못 하는 학생이 있고, 신분증이나 학생증을 반드시 꼭! 가져오라고 해도 절대 모두 다 가져오는 법이 없다. 불과 몇 분 전에 비행기표를 하나씩 나눠줬는데 비행기표 없어졌다고 소리치는 학생도 꼭 있고, 수화물에는 절대, 네버, 절대로! 보조 배터리는 넣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도 한 번에 서너 명씩은 꼭 배터리를 보내는 짐에 넣어 놓는다. 그래서 짐을 부치고 난 후 약 삼십 분가량 담임교사는 계속 공항 수화물 센터에 불려 다니곤 한다.
그날도 이미 우리 반 학생 세 명 정도 배터리를 수화물에 넣어서 수화물 센터에 갔다 온 상태였다. 공항 방송으로 우리 반 학생 이름과 담임교사를 찾는 방송이 또 나와서 다시 공항 수화물 센터로 갔다. 도착하니 키와 덩치가 나와 비슷한 우리 반 학생이 자기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공항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이유는 보조 배터리 때문이 아니었다. 공항 직원은 나를 보더니, "선생님이세요? 아니 이 학생이 2리터짜리 물 두 통을 수화물에 넣어놨길래,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물이라네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러면서 직원은 담임인 나에게 물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게 했다. 그 냄새는 너무도 익숙한 소주의 향이었다. 주인을 만나서 반가움 반 혼날까 봐 두려움 반의 표정의 강아지처럼 담임을 멀뚱 거리며 쳐다보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간적으로 소주를 500미리 통에 넣어서 가져가는 거는 그래도 귀엽게 봐주겠는데, 소주를 2리터짜리에 그것도 두 통은 좀 너무하지 않냐?"
일단 제주에 도착해도 마음을 놓기는 이르다. 공항에서처럼 술이 문제가 될 수 있고, 학생들이 담배를 길에서 마구 펴대서 민원이 들어올 때도 있다. 또 만약 다른 학교 학생들이랑 같은 호텔을 사용한다면 남학생 특유의 기싸움을 벌여서 패싸움을 벌일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바로 '호텔 스파이더맨' 사건이다.
최근 수학여행에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 안전요원들이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그리고 일과가 끝난 후 호텔에 도착해서도 학생들은 호텔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잠시 편의점에 필요한 것을 사러 갈 때나 배달음식을 받을 때만 제한적으로 호텔 출입이 허용됐다. 또한 오후 10시 이후에는 방과 방 사이의 이동도 제한되어서 학생들은 자신의 방에만 있어야 했다. 교사로서 학생의 이런 자유롭지 못함이 안쓰럽기는 했으나, 수학여행의 규정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이 선생님들도 안전요원들과 함께 불침번을 서면서 학생들을 지켰다.
새벽 2시쯤, 내 차례가 되어서 호텔 밖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그때 익숙한 뒷모습의 학생이 호텔 6층 벽에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붙어있는 모습을 봤다. 아니 저건 분명 우리 반 학생이다! 이 학생은 무려 20미터가 넘는 호텔 벽 난간을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오른쪽 테라스에서 왼쪽 테라스로 이동하고 있었다. 너무도 깜짝 놀라서 그 학생의 이름을 부르려던 그 순간! 만약 그 학생이 내 목소리를 듣고 놀라서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얼른 6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6층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학생은 벽을 타고 이동한 이후였고, 새벽에 20미터 아찔한 호텔 벽을 탄 이유는 친한 친구들과 챔피언스리그 4강전을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까 그 '스파이더맨 학생'은 체육대회 때도 나에게 아찔한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남고 체육대회에서의 꽃은 바로 풋살 경기이다. 그런 만큼 승부욕도 대단하고 분위기도 매우 치열하다. 불꽃 튀는 4강전 도중, 그 거미 학생은 상대방 골대를 향해 전속력으로 스프린트를 하다가 상대방 수비의 거친 태클에 넘어졌고, 결국 달려오는 속도를 미처 줄이지 못하고 철조망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학생의 이마는 철조망의 뾰족한 부분에 찔려 찢어졌고, 그 사이로 피가 철철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풋살에 대한 의지와 승리에 대한 열망이 가득 찬 그 학생은 어떻게든 뛰어야 한다며 1분 만에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끝까지 투지를 불살랐으나 우리 반은 결국 2대 1로 패하고 말았다. 붕대는 임시방편이었기 때문에 학생의 이마에서는 다시 피가 흘러내렸고, 나는 담임교사로서 얼른 이 학생을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체육대회 도중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잠시 실장과 부실장에게 맡겨두고, 피 흘리는 스파이더맨과 총무 학생을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 두 학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신이 났다. 그때는 마친 내가 차를 새로 산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여서 우리 반 학생들이 계속 차를 한 번만 태워달라고 했었는데, 이 기회에 타게 되었다고 마치 놀이공원에 온 아이들처럼 좋아하는 것이다. 머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연신 차가 너무 좋다면서 엄지척을 해댔고, 병원에 주차를 하면서 360도 어라운드 뷰가 나오자 "와! 쌤 차 위에 드론 떠있나 봐! 개신기하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결국 두 학생은 그 상태로 차 앞에서 엄지척과 브이를 하며 기념사진을 남겼다.
춘고 스파이더맨은 결국 이마를 여섯 바늘 꿰맸고,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는 아픈 줄도 모르던 오른손 엄지 손가락이 골절되어서 수술을 해야 했다. 퇴원 후 이제 좀 괜찮냐고 물어보니, 너무도 낙천적인 이 학생은 쇠를 박고 붕대를 감아서 다섯 배나 두꺼워진 손가락으로 나에게 엄지척을 하면서 "그럼요~ 괜찮죠 쌤!"을 외쳤다.
이렇게 보물 같은 학생들과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춘천고등학교에서 약 5년 동안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바로 2018년 학교 축제이다. 춘천고등학교 축제, 상록제 둘째 날에는 상해푸른마당이라는 행사가 있다. 이 행사는 주로 학생들이 춤이나 노래, 악기 연주 등을 하는 하는데, 가끔 선생님들도 밴드 연주나 노래를 하기도 한다.
상록제 준비 기간이 다가오자 축제 담당 선생님께서 나에게 혹시 학생들과 함께 축제 무대에 올라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바로 직전에 원주여자고등학교에서 축제는 아니었지만, 학생들과 무대에 올랐던 좋은 기억이 있어서 흔쾌히 수락을 했다. 음악 쪽으로 진로를 정했거나 노래, 악기를 좋아하는 학생과 함께 참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래를 잘하는 학생 몇 명에게 같이 축제 무대에 오르자는 제안을 했고, 그중 실용음악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 동안 같이 선곡을 하고 연습을 했는데, 축제를 한 달 남긴 시점에서 그 학생이 돌연 자기는 못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기왕 하기로 한 것, 혼자라도 축제 무대에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생과 연습했던 당시 유행하던 발라드 곡 말고 다른 곡으로 선곡을 바꾸기로 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겠지만 어떤 무대를 서든지 그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선곡이라고 생각한다. 연주를 듣는 관객의 취향을 가장 잘 저격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몇 번의 작은 무대에 서본 후에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남고생들 수백 명 앞에서 과연 어떤 노래가 좋을 것인가!
최근 남자 고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듣는 노래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바로 힙합이다.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 더 머니가 흥행한 이후에 고등학생들의 플레이리스트에는 힙합곡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노래방이나 쉬는 시간 교실에서 학생들이 많이 흥얼거리는 곡이 바로 힙합이다. 다른 하나는 의의로 아직도 발라드이다. 20년 전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발라드, 그중에서도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고음의 노래를 깔끔하게 완창 하는 남학생들은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문득,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엠씨 더 맥스 콘서트 영상이 기억났다. 엠씨 더 맥스가 남자 3인으로 구성되어있는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거의 대부분 남자였다. 보통 화장실은 여자 칸에 줄이 길게 서있는 게 일반적인데, 엠씨 더 맥스 콘서트 화장실에는 남자 화장실에만 길고 긴 줄이 늘어져있었다. 콘서트가 시작되자 군대 사단 규모의 남성들이 거친 목소리로 떼창을 하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이렇게 나는 축제 때 부를 노래로 지금까지도 남고생들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떼창이 나올만한 '엠씨 더 맥스의 잠시만 안녕'으로 선곡하였다.
나는 노래를 정말 좋아해서 하루 중 일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에 음악을 들을 정도로 음악을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 심지어 소프라노 성악가와 결혼까지 했지만, 만약 누가 나에게 노래를 잘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한다. 정말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하지만, 그 인풋만큼 아웃풋이 따라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학생들과 코인 노래방에 가면 아직 변성기가 다 지나지 않은 남고생들이어서 그런지 그나마 내가 학생들보다는 고음을 잘하는 편이었다. 사실 '김나박이'라는 레전드 중 하나인 갓수 형님의 노래를 나의 부족한 실력으로 망칠까 봐 엠씨 더 맥스 노래로 선곡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남학생들 앞에서 고음 노래를 한다면 그나마 내가 가진 실력보다 조금 더 돋보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많은 학생들의 떼창을 유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축제에 참가하기로 했고, 선곡도 했으니까 이제는 연습, 또 연습이다. 축제가 예정된 8월 중순까지 남은 기간 한 달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잠시만 안녕을 불렀다. 처음에는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원키로 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연습을 해도 2절에서 전조 되는 부분은 연습의 반 이상이 음이탈이 났다. 그래서 일주일이 남은 시점부터 한 키 낮춰서 연습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자기 전까지 '행복을 줄 수 없었어'를 백만 번 듣느라, 그래서 행복하지 못했던 같이 사는 꼬부기한테 미안한 날들이었다. 한 달간의 연습을 마치고 공연 바로 전날, 나름 최적의 상태로 몸과 목을 만들어 놨는데, 때 마침 내일 태풍이 상륙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바로 강원도교육청에서는 휴교를 하라는 공문이 내려왔고, 축제는 어쩔 수 없이 다음 주로 연기되었다.
나에게 늦여름, 초 가을은 일 년에 두 번 발생하는 알레르기 반응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다. 축제가 연기된 8월 말은 이제 막 알레르기가 시작하는 시점이라 목이 간지럽고 칼칼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연기된 일주일 간 연습은 계속되었다. 지난주에 그냥 공연을 했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계속 안 좋아지는 목 상태와 마음이 들지 않은 내 노래, 그럴수록 더 가혹하게 연습을 했고, 결국 공연 전날에는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 상황까지 됐다. 원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도 잘 긴장하지 않는 편인데, 노래를 너무 잘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까 공연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은 무섭게 커졌다.
공연 3시간 전, 무대 리허설을 할 때는 내 목소리를 피드백해주는 앞쪽 모니터 스피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답답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어서, 목에 좋은 약도 먹고, 따뜻한 차도 계속 마시면서 목을 풀며 무대 대기실에서 내 순서를 기다렸다.
드디어 다가온 내 순서. 마이크를 들고 칠흑 같은 어둠뿐인 무대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사회를 보는 학생들이 내 이름과 엠씨 더 맥스의 잠시만 안녕을 외쳤고, 이어서 핀 조명이 나를 비추면서 노래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무대에 불이 켜지자 관객석에 있는 학생들의 얼굴이 조금씩 보였고, 한 손을 머리 위로 올려서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첫 소절을 시작했다.
"행복을 줄 수 없었어. 그런데 사랑을 했어. 니 곁에 감히 머무른 내 욕심을 용서치마"
수백 명의 학생들은 이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분명히 목은 너무도 아프고 그래서 평소와는 다르게 거친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상하게 학생들의 함성소리가 커질수록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천 번도 넘게 불러서 이제는 아예 가사가 머릿속에 박혀버린 줄 알았는데, 긴장을 해서인지 중간에 가사도 틀리고, 박자도 여러 번 놓쳤다. 하지만 춘천고등학교 학생들의 미친듯한 환호가 무대 한가운데 서있는 나의 실수를 덮어주었다. 노래가 시작된 지 1분쯤 지났을 때, 객석에서 하나 둘 휴대폰 손전등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이내 그 불빛은 수백 개의 흔들리는 별이 되어 어둠 속을 가득 비췄다. 순간 눈물이 핑 돌정도로 행복했다. 나같이 아무것도 아닌 노래 실력에 이렇게 큰 환호를 받는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이 황홀했다.
학생들의 함성소리에 너무 흥분해서 목을 너무 써버린 탓에 1절을 마치고 2절 후렴구를 부를 때쯤에는 목에서 아예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객석으로 마이크를 넘겼다. 결국 후렴구 대부분은 춘천고등학교 학생들이 너무도 큰 소리로 잠시만 안녕을 함께 불러주었다.
이 날,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수백 개의 별빛과 수백 명의 떼창, 그리고 수백 명의 함성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순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