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탈루니아의 김밥

35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기억

by 지리는 강선생

결혼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공무원이지만 자유가 최우선 순위인 나와 예술가이지만 안정을 추구하는 아내는 달라도 정말 너무 달랐다. 처음 연애할 때는 서로의 이런 특징과 다름이 매력으로 다가왔지만, 막상 같이 살다 보니까 너무도 큰 벽으로 다가왔다. 결혼 생활이 이어질수록 크고 작은 다툼들은 늘어갔고, 그렇게 누구나 결혼하면 겪는다는 '신혼의 카오스'를 경험하며 어느덧 결혼 3년 차가 되었다.


결혼 전에는 항상 혼자 여행을 다녔다. 특별한 계획이 없이도 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색다른 에피소드를 만들면서 즐겁게 여행을 했다. 반면, 결혼 후에 아내와 함께 다니는 여행은 편안하고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등 여행 자체의 퀄리티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하지만 결혼 전 나 홀로 떠났던 '무계획의 여행'에서 느낄 수 있던 불확실성의 재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8년 여름, 그토록 혼자만의 여행을 갈망하던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아내가 여름을 맞아서 친구들과 함께 태국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몇 년 만에 찾아온 하늘이 주신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그럼 나도 그 기간에 혼자 여행을 다녀올게!" 나는 당당하게 와이프에게 선포했다. '자신도 가니 너도 오케이!'라는 동일성의 원리였을까? 아니면 아내가 나에 대한 신뢰가 높아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남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아무튼 내 우려와는 달리 와이프는 선 듯 나 홀로 여행을 결제해주었다.


여행을 떠나게 됐으니 목적지를 정해봐야지! 그런데 사실 여행을 어지간히 다녀본 후에 깨달은 점 중 하나는 여행의 장소는 여행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낯선 장소의 흙과 공기, 길거리의 건물과 산과 바다 풍경들은 처음 마주하는 순간에만 잠시 짜릿할 뿐,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 사는 곳 다 거기서 거기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다고 여행이 허무해졌거나 여행의 가치가 퇴색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행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여행의 장소가 아니라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곳에서 겪게 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그리고 무엇보다 그 여행의 장소에서 그 순간을 즐기는 나 자신을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이니까 나름대로 여행 장소에 대한 브레인스토밍과 의미부여를 해봤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도시와 국가들이 모두 비슷한 곳에 모여있었다. 우선, 20대의 힘든 시절 나에게 마치 등대와도 같았던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의 배경이 되는 곳 안달루시아와 여행을 다니면서 들으면 참 좋은, 여행을 주제로 한 가수 이한철의 앨범 '순간의 기록'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세비야. 그리고 마흔이 되기 전에 떠나게 될 유라시아 도보여행의 종착지 리스본. 이 장소들은 모두 이베리아 반도에 있었다.


그렇게 2018년 여름, 4년 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의 이름을 '순간의 기록'으로 정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떠났다.


프랑스 파리를 경유해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비행기 안. 저공비행하는 비행기 창 밖으로 유럽이 품은 바다, 지중해와 프랑스와 스페인의 자연적인 국경이 된 피레네 산맥이 보인다. 이처럼 북쪽으로는 피레네 산맥, 동쪽으로는 지중해와 맞닿아있는 까탈루니아 지역은 스페인 중앙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북동부에 위치한 까탈루니아 주에 주도이다.


까탈루니아는 스페인의 국내 총생산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지역으로 단순히 경제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독립적인 자치권을 갖고 있었으며, 문화, 언어, 역사가 남다르다는 것에 자긍심이 뛰어나다. 이러한 이유로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운동을 하려는 요구가 많다.


특히 스페인 중앙 정부의 수부인 마드리드와는 앙숙의 관계인데, 이는 스페인 프리메라 리그의 대표적인 라이벌전,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 더비'로 표출된다. 까탈루니아의 독립을 상징하는 깃발이 번갈아 걸려있는 골목을 지나 까탈루니아의 심장과도 같은 축구팀 FC 바르셀로나, 바르샤의 홈구장 누 캄프로 향했다.


누 캄프는 8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축구경기장으로 아쉽게도 7월은 아직 리그가 개막하지 않은 시점이어서 경기는 볼 수 없었다. 다만 실제 축구 선수들이 사용하는 락커룸과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인터뷰하는 프레스 센터, 그리고 실제 축구 경기를 펼치는 그라운드와 관중석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경기장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를 시작하자마자 휘황찬란하게 전시되어있는 수많은 우승 트로피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트로피들이 전시되어있는 뒷면에는 바르샤를 거쳐간 수많은 레전드 선수들이 유럽의 최고의 팀에만 허락된다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컵, '빅 이어'를 들어 올리며 환호하고 있는 사진이 걸려있었다. 주저리주저리 적혀있는 연혁보다는 이 모습이 바르샤가 진정한 명문팀임을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락커룸과 프레스 센터를 지나 푸른색 그라운드로 나왔다. 누 캄프 관중석에는 'Mes Que Un Club'라고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클럽 그 이상이라는 의미로 바르샤의 자긍심을 보여주고 있는 단순 명료한 문구이다. 아쉬운 대로 객석에 앉아서 VR기기로 실제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누 캄프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했다. 실제 이 곳에서 경기를 본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잠시 상상해봤다.


바르샤와 더불어 바르셀로나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건축가 가우디. 바르셀로나는 축구와 가우디 덕분에 먹고산다는 말이 절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그가 건축하고 설계한 작품들을 감상하려 수많은 관광객이 바르셀로나에 온다. 그가 디자인한 건물과 공원, 성당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겠지만, 조금 더 깊게 그에 대해 알기 위해서 가우디 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 투어는 버스를 타고 주요 장소에 들러서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는 전형적인 형식이 아니라 가이드와 여행객들이 함께 바르셀로나의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서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가이드는 바르셀로나와 까탈루니아에 대한 역사적 지식과 바르셀로나에서 꼭 사가면 좋은 상품들과 현지인 맛집들을 추천해주는 등 가우디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많이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요 포인트 장소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적절한 배경음악을 틀어주며 음악과 여행이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가이드 투어는 가우디의 초창기 작품인 가로등에서부터 바르셀로나의 부호 구엘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만들었다는 구엘 공원으로 이어졌다. 구엘 공원은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디자인과 인체공학적으로 만든 야외 의자가 인상 깊었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의 집을 연상하는 까사 비요뜨에는 직접 들어가서 안에 들어있는 각종 가구와 내부 장식을 봤다. 가우디가 강조한 원과 곡선,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은 가우디가 활동하던 당시, 선과 면을 강조하던 모더니즘 양식과 확연히 달랐다.


바르셀로나의 중심거리, 라람브라(La Rambla)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까사 밀라는 멀리서도 '누가 봐도 가우디 작품!'이라고 외칠 만큼 그의 디자인 세계를 보여준다.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한 면이 이전 작품인 까사 비요뜨에 비해 더욱 눈에 띄었다. 근처 식당에서 새우가 들어간 빠에야로 점심을 해결하고 이제 가우디의 혼이 담긴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향했다.


가이드는 투어의 하이라이트답게 사그라다 파밀리아 역에 도착하자 잠시 걸음을 멈춘 후에 우리에게 자신이 뒤를 돌아보라고 할 때까지 눈을 감고 있으라고 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며 신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봤다가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롯처럼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천천히 지하철 개찰구를 나왔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그 음악이 절정에 치닫는 순간, "자 이제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세요."라고 가이드가 외쳤다.


눈을 뜨자 거대하면서도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건축물이 아득한 전율로 다가왔다. 아주 잠시 넋이 나간듯한 어지러움을 느낀 것은 단지 지중해의 따가운 햇볕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자신의 마지막 위대한 작품으로 남기려 했지만, 아쉽게도 이 놀라운 건축물을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한창 짓던 도중 가우디는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의 유명세에 비해 너무도 허름한 옷차림 때문에 아무도 이 위대한 건축가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결국 숨을 거두었고, 바르셀로나는 슬픔에 잠겼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을 넘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건축가로서는 매우 허망한 죽음이다.


비록 가우디는 끝내 자신의 계획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후대 예술가들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축을 지속해오고 있다. 성당의 전면과 후면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전면은 마치 촛농이 흘러내리는 듯 물결치고 있는 무늬가 인상적인데, 그런 불규칙스러움 속에서도 신선한 규칙과 탁월함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후대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후면은 전면과는 달리 상대적인 직선을 강조하면서도 부드러움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전면과 후면의 모습, 성당 내부와 첨탑 위를 둘러본 후, 성당이 비치는 호숫가에 앉아서 한 동안 멍하니 가우디의 유작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이 성당을 지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과연 그는 자신이 죽기 전에 이 성당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왜 이름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가족 대성당일까?' 성당 전면에 가우디의 표현주의 형식으로 새겨진 예수 수난 일대기 파사드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그러다 문득, 지금 이 순간에 나 혼자라는 사실이 자유롭다기보다는 쓸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순간을 아내와 함께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 작품을 보면 나만큼이나 오히려 그 이상 감동을 받는 아내와 함께라면 지금 이 순간의 감동이 훨씬 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가이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2026년, 가우디 사망 100주년에 완공될 예정이라는 멘트와 함께 투어를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마지막 BGM으로 최근 자기가 많이 듣고 있는 노래라며 '자두의 김밥'을 선곡했다.


노래의 가사처럼, 몇십 년 동안 달리 살아온 우리는 정말 서로 많이 다르고 또 그래서 정말 많이 싸웠다. 하지만 역시 가사 내용처럼 아내와 나는 서로 하나 통하는 게 있다. 바로 우리 둘 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물론 서로 여행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래도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리를 이어줬고, 마음이 가까워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내와 나의 결혼 생활을 떠올려보면 정말 많은 곳을 함께 여행 다녔다. 어찌 보면 무엇보다 여행이 우선순위에 있던 20대의 나만큼이나 우리 부부 역시 경제적 우선순위가 여행에 있었다. 평범하지 않았던 21일 동안의 유럽 신혼여행을 시작으로 미국-캐나다 자동차 횡단 여행, 겨울과 여름을 동시에 느껴본 오사카-하와이 콤비네이션 여행, 그리고 최근 썸머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멜버른과 시드니 여행까지. 그 외에도 우리나라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러고 보면 우리 둘, 참 많이도 다녔구나.


숙소로 돌아오는 길, 혼자 하는 여행의 자유를 만끽하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호스텔 안은 정적만이 흐른다. 모두들 자는지, 술을 마시러 나갔는지, 왁자지껄한 그런 호스텔의 분위기는 아니다. 나는 호스텔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함께 마시려고 가져왔던 소주 한 병과 하몽, 치즈 한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아까 들었던 자두의 김밥을 다시 한번 들었다. 스페인, 까탈루니아,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와는 너무도 안 어울릴 것 같은 이 노래가, 지금 이 순간에는 너무도 잘 어울린다.


아무도 없는 바르셀로나의 어두운 호스텔 부엌 식탁 테이블에 앉아 초록색 소주병과 나 홀로 건배하며 속으로 되뇌었다.


"10년 후,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완공되면, 그때 꼭 같이 와야지!"

여행이 부르는 노래: 김밥 - 자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누가 뮌헨으로 신혼여행을 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