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pacito, 그라나다!

35살, 스페인 그라나다의 기억

by 지리는 강선생

바르셀로나 개선문(Arc de Triomf) 바로 옆에 위치한 숙소 근처에는 식당들이 많았다. 까탈루니아 광장으로 이어지는 대로변에는 술과 음료를 곁들일 수 있는 캐주얼한 음식점들이 많았고, 대로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규모는 작지만 특색 있는 식당이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첫날에는 숙소 근처 야외 카페테리아에서 바르셀로나 지역 맥주와 함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타파스를 시켜서 음식의 맛보다는 바르셀로나의 노을 진 풍경을 감상했다. 그래도 미식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왔는데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봐야지!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에는 현지인들이 많이 간다는 뒷골목에 위치한 식당에 갔다. 예약을 미리 하지 않으면 입장이 어려울 수 도 있다고 하여 세 시간 전에 미리 예약을 했고,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해 질 녘 들어선 Casa Lolea, 현지인들로 북적이는 이 곳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온통 스페인어로 가득 차 있었다. 예약한 자리에 앉아서 우선 샹그리아 한 잔을 시키고, 오늘의 추천 타파스를 시켰다. 라틴어 특유의 소란스러운 목소리와 개방된 주방에서 요리하며 크게 외치는 소리가 어지럽게 어우러지며 스페인의 맛을 돋운다. 그 맛에 매료되어 또 다른 타파스와 샹그리아를 몇 잔 더 시켰다.


나는 그렇게 점점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로 향했다. 이동은 비행기로 했는데,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고속 열차, 렌페(Renfe)가 있지만 가격은 오히려 저가 항공보다 두 배 가량 비쌌기 때문이다. 물론 비행기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공항까지 또 가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으나, 가격도 저렴하고 시간도 적게 걸리는 저가 항공, 라이언 에어를 타고 이슬람의 향기가 묻어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바르셀로나 공항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그라나다 공항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건조한 사막의 기운이 호흡을 통해 느껴지는 듯하다. 짐을 찾고 있는데 한쪽에서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공항 직원과 실랑이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딱 전형적인 한국인 20대 남자의 모습이다. 내가 다가가니 그 사람도 한국 사람인 나를 알아보고 도움을 요청한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그의 짐이 이곳 그라나다로 온 것이 아니라,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짐이 발렌시아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 청년은 그라나다에는 잠시 머물다가 곧 배를 타고 모로코 탕헤르로 가야 하기 때문에 짐을 얼른 받아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다.


문제는 그 짐 속에는 2달 간의 여행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비롯하여 얼마 전에 고가로 구매한 풀 프레임 카메라와 각종 렌즈들, 그리고 무엇보다 애주가 여행자들에게는 마치 보물과도 같은 소주가 여러 병이 들어있다는 점이었다. 청년은 '소주'를 이야기하며 거의 울먹일듯한 표정을 지었고, 나 역시 소주를 사랑하는 애주가로서 너무도 공감되어 버렸다.


'소주라면 내가 또 못 참지!' 나는 공항직원과 구체적인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청년을 도와서 발렌시아에서 애타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짐을 이 곳 그라나다 청년의 숙소로 내일 아침까지 보내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문제를 해결한 후, 이 청년과 함께 그라나다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는 간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찍은 몇 장의 여행 사진을 나에게 보여줬는데, 사진의 퀄리티는 취미로 찍는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그것이었다. 사진의 구도와 색감도 매우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에서 따뜻함과 스토리가 느껴지는 멋진 작품들이었다.


내가 사진을 한참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으니까, 이 사진작가 청년은 "그럼 형님, 혹시 오늘 알함브라 궁전 가시면 제가 그 앞 전망대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어 드릴까요?" 하고 제안했고,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또한 답례로 멋진 사진까지 받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고, 무엇보다 여행을 하며 벌어지는 우연한 사건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여행의 놀라운 매력을 오랜만에 다시 느낄 수 있게되어서 무척 반가웠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 위치한 그라나다는 과거 스페인이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었을 때 중심이 되었던 도시이다. 겨울이 습윤하고 여름이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Cs)와 이 보다 더욱 건조하고 강수량이 적은 스텝(Bs) 기후의 경계쯤 되는 곳으로 노란 흙빛 언덕에 키 작은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풍경을 보면 사막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700년이나 이슬람에 지배를 받았던 그라나다에는 이슬람 문화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있다. 기타 연주로도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이 우뚝 솟아 도시를 바라보고 있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알바이신 지구는 이슬람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빽빽하게 들어선 황톳빛 건물들 사이로 좁디좁은 골목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여행자에게 그라나다가 매력적인 점은 물가가 무척 저렴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서울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비싼 바르셀로나와는 달리 그라나다의 일반적인 물가는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이고, 과일이나 고기와 같은 식재료는 이보다 더 저렴하다. 하이네켄 맥주와 2리터 짜리 생수를 한 병 샀는데 1유로를 넘지 않는 계산서를 받아들고는 '이 곳이 괜히 여행자의 천국은 아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라니다 시내에서 살짝 떨어져있는 호스텔에 도착하니 웰컴 드링크를 제공하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호스텔 직원이 레드와인에 과일을 넣어 달콤하게 숙성시킨 샹그리아를 병째로 여행자의에 따라주는 것이다. 일종의 새로 도착한 여행객들을 위한 이벤트로, 샹그리아가 담긴 유리병에서 나온 '술 줄기'가 점점 기다랗게 여행객 쪽으로 이어질수록 숙소 직원들과 나머지 여행객들이 박수를 치는 것이다.


나는 마치 림보를 하듯 뒷걸음치며 샹그리아 병과 멀어지며 약 1미터 가량의 술줄기를 만들어보였고, 나보다 약간 더 먼저 도착한 여행자들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처음 해보는 신기한 샹그리아 웰컴 드링크를 마친 후에 옆에서 박수 치던 칠레에서 온 여행자들이 함께 알바이신 투어를 가자고 한다. 입가에 묻은 샹그리아를 닦아내며 아직 짐을 다 풀지도 않은 상태로 나는 '오케이 고!'를 외쳤다.


그라나다 시내를 벗어나 좁은 골목을 지나 언덕에 위치한 히피 분위기 물씬 나는 호스텔에 도착하니 각국에서 온 다양한 여행객들이 모여있었다. 이 호스텔은 잠을 자는 곳, 쉬는 곳, 마시는 곳의 구분이 없는 말 그대로 히피 여행자들을 위해 최적화된 곳이다. 호스텔 안인데도 마치 정글처럼 수풀이 우거져있고, 담배연기는 자욱했으며, 야외 테라스에는 누워서 책을 보는 사람과 웃고 마시며 떠드는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이 곳에서 맥주 한잔 시원하게 마신 후, 20여 명의 여행자들과 함께 다시 좁은 골목을 향했다.


가이드 역시 전형적인 히피 스타일을 하고 있는 키 큰 네덜란드 여행자였다. 그는 남미에서 온 여행자들을 배려하여 영어와 스페인어를 번갈아가면서 알바이신 지구의 골목 곳곳을 안내해주었다. 사실 이와 같은 가이드 투어는 상품화된 가이드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틀에 박힌 형식의 투어가 아니었고, 그 덕분에 여행자들은 자유롭게 질문을 하고 이를 가이드뿐만 아니라 여행자들끼리도 서로 질문에 답해주며 즐겁게 거리를 걸으며 여행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었다.


알함브라 궁전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간단한 설명을 들을 후, 알바이신 지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을 15분 남짓 오르자 허름한 히피 스타일의 카페가 보였고, 석양빛이 주황빛에서 붉은색으로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알바이신 지구뿐만 아니라 알함브라 궁전과 그라나다 도시 전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카페에서 짜이 한 잔을 사서 키 큰 네덜란드 가이드와 한 때 이슬람 군대가 지배했던 건조한 도시를 바라보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사를 전공한 네덜란드 출신 가이드와 지리를 전공한 한국인 교사는 서로 자신의 이야기만을 떠들어대는 전형적인 ENTP 스타일이다. 우리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른 여행자들도 카페에서 나와서 우리 옆으로 모여들었고, 그라나다의 노을을 배경으로 함께 셀피를 찍으며 가이드 투어를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여행에서 만난 인연들을 그냥 보내고 이렇게 여행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쉬어서, 언덕을 내려가면서 모두에게 그라나다 타파스 골목에서 Hang out(한잔 하러 갈래?)을 제안했다. 그렇게 숙소가 같은 칠레 출신 여행자들과 가이드 투어를 하면서 친해진 여행자들 몇 명이 함께 다시 알바이신 지구로 향했다.


해가 진 후에 찾아간 알바이신은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불빛이 좁은 골목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라틴풍의 신나는 음악과 사람들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라나다는 알함브라 궁전 말고도 타파스가 유명하다. 타파스(Tapas)는 스페인에서 식사 전에 술과 곁들여 간단히 먹는 소량의 음식을 이르는 말인데, 여기 안달루시아 그라나다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라나다의 타파스가 좋은 점은 술을 한 잔 시키면 계속 새로운 타파스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마치 '전주 막걸리 골목'이나 '통영의 다찌집'처럼 말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이 타파스를 하나씩 비싸게 사먹었는데, 무엇보다 여기 그라나다의 타파스 골목이 좋은 점은 가격도 바르셀로나에 비해 무척 저렴해서 술 한잔이 비싸야 3유로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곳, 그라나다 타파스 골목은 나처럼 술과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천국과도 같았다!


그라나다의 소박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가 경쾌한 라틴 음악, 풍족한 술과 타파스, 그리고 행복한 여행자들의 웃음 소리가 신비롭게 어우러지는 멋진 밤이다!


여행이 부르는 노래: Despacito - Luis Fonsi & Daddy Yankee(Feat. Justin Bie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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