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2022년 9월 7일 내가 쓴 책 '여행이 부르는 노래'가 세상에 처음 나왔다. 2019년 12월,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계산해보니 1000일 만이다. 초기 지인들의 구매와 작은 행운들이 겹쳐서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 여행 에세이 부문 TOP10을 유지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출시된 지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 등극!
고등학교 때 잠시 소설가가 꿈꾼 적이 있었지만 성적과 주변 기대에 맞춰서 결국 꿈은 이루지 못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0대 초반에는 90년대 미장센이 가득한 홍콩영화와 절제의 미가 돋보이는 일본 영화들을 보며 영화감독을 꿈꾸기도 하였다. 그리고 20대 중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수능을 다시 봤지만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결국 나는 지리교육과에 가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정말 방황이 가득한 시간들이었구나. 그래도 한결같은 점은 무언가 창작하는 크리에이티브한 꿈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긴 지금도 나는 고등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고 있지만, 지리는 강선생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사람의 성향은 바뀌지만 성질은 잘 안 바뀌는 것 같다.
2011년 8월 경상남도 통영의 한 치킨집에서 이 책을 처음 써보겠다 선포했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아무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전국 여행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방학이라 잠시 고향에 내려와 있는 대학 후배를 만나 술 한잔 하면서 역시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꺼낸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때 그 후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는 타고난 스토리텔러예요."
그 말이 용기가 됐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책을 구상했다. 디자인은 정말 심플한 흰색 바탕에 검은색 궁서체, 제목은 말 그대로 '여행책'. 20대의 끝자락까지 다녔던 여행과 일상의 모든 순간들을 음악과 함께 버무려보자는 생각이 불현듯 슬며시 들었다. 당시에는 QR코드가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음악을 여행 이야기와 어떻게 아우를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었다.
어쨌든 그렇게 여행을 하며 순간적으로 기획된 여행책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여러 부위에 살이 붙었다. 다음 해 대학을 졸업한 후 스타트업 회사를 창업하면서 업무 기획과 추진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퇴사한 후 즉흥적으로 떠난 '춘천-여수' 도보여행의 순간들은 책의 분위기와 내용에 모두 한 몫하게 되었다.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수업시간에 하는 여행 썰들은 학생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점차 하나의 시리즈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2019년 12월, 최지선이라는 지리 교사 커뮤니티에서 같이 활동하던 박동한 선생님이 여행 에세이를 출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시고, 방송에도 출연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박 선생님이 여행책을 내셨다는 소식은 깊은 곳에서 꺼져가던 나의 '여행책'에 대한 생각에 불씨를 되살렸다.
나의 토포필리아(topophilia) 자수정에 누워 잊혔던 기억과 감정들의 조각을 모아봤다. 여행에서 느꼈던 감정과 사건들이 음악과 어우러지게 하겠다는 초기 컨셉을 잘 살릴 수 있는 제목 '여행이 부르는 노래'도 그때 확정되었다. 목차는 여행지별로 4~5개 정도의 에피소드로 묶고, 대체적으로 첫 여행이 시작된 20살부터 30대 초반까지 순차적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기획했다.
찜질방에서 기획한 '여행이 부르는 노래' 초기 목차
그렇게 동네 찜질방에서 한 시간 동안 기획된 '여행이 부르는 노래'는 바로 집필에 들어갔다. 초기 기획된 에피소드는 총 45개 정도였고 하루에 한 개의 에피소드를 쓴다면 한 달 반이면 원고 초고가 완성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곧 겨울방학이 시작되니까 시간과 마음도 여유가 있었다. 오랜만에 마음에 열정이 가득하니 기분이 좋았다. 어렵게 붙은 불 꺼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한 개씩 10년도 훨씬 지난 여행 기억을 되살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고는 네이버 블로그에 썼다. 블로그는 페이스북처럼 친구가 많지 않아서 적당한 폐쇄성을 갖고 있고, 또 글을 쓰면 지인들에게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렇게 매일 여행 이야기를 적어 내려 갔고, 고맙게도 함께 최지선(최선을 다하는 지리 선생님 모임)에서 활동하는 이나리 선생님, 서태동 선생님께서 많은 피드백과 응원을 해주셨다.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원고는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고, '여행이 부르는 노래'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2019년 12월 말에 시작된 초고는 중간에 약 보름간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이 있었음에도 2020년 2월 초에 완성되었다. 멜버른에서는 베트남 에피소드를, 시드니에서는 티베트 에피소드를 썼다. 2020년 3월, 코로나가 전 세계에 창궐했고, 나는 고3 담임이 되었다. 그렇게 약 1년 간 나의 여행 이야기는 춘천 구봉산 네이버 서버에 저장되어 있었다.
2021년 봄, 고1 담임이 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사실 당시에는 고3 담임을 한해 더 못하게 된 것이 많이 아쉬웠지만 이 기회에 1년간 묵혀두었던 원고를 검토하고 출판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네이버에 올렸던 원고를 가다듬어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두려움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브런치 작가 신청과 글쓰기가 그때는 왜 그렇게 떨리던지!
브런치 북 '여행이 부르는 노래'
몇 개의 글을 올리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여행기를 하나씩 올리면서 나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갔고, 얼굴도 모르는 그들이 나의 여행 이야기에 공감하는 모습에 '아, 이래서 작가를 하는구나!'라는 묘한 감격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여행이 부르는 노래 브런치 북을 만들었고, 출판 이벤트에 응모하기도 했다. 결과는 탈락! 그래 뭐, 무슨 일이든 한 번에 되면 재미없으니까.
2021년 여름 고성-부산 도보여행을 다녀왔고, 그 영상으로 본격적으로 '지리는 강선생' 유튜브를 시작했다. 영상편집은 글쓰기보다 훨씬 더 힘들지만 나의 생각과 말이 영상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매력이 있었다. 고작 10분짜리 영상을 편집하는데 하루 10시간씩 열흘을 할애하며 편집에 몰두했다. 유튜브에는 도보여행 영상 이외에도 그동안 내가 수업시간에 풀었던 여행썰도 올렸다. 그러니까 나는 여행썰로 수업도 하고,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도 올리고, 글로 적어 책도 쓰는 것이다!
지리는 강선생의 지리는 LIFE!
그렇게 한동안 유튜브에 매진하다 보니 어느새 2022년이 됐다. 이제 영상 편집도 어느 정도 능숙해졌고 유튜브 채널도 몇 개의 영상 덕분에 조금 유명해졌다(9월 15일 현재 구독자 6800명). 몇 개의 신문사에서 인터뷰 요청도 왔고, 10월 초에는 웹 예능에도 출연하기로 했다. 올 초부터 시작한 운동과 식단을 꾸준하게 유지하며 20kg 정도 감량하고 유지하고 있다. 이제 좀 자신감이 붙는다. 출판, 올해는 반드시 하자!
2022년 1월, 제주도 여행을 하던 중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내 원고가 마음이 든다며 조금 더 검토 후에 연락을 주신다고 하신다. 4월쯤 출판 확정 연락을 받았고, 5월에는 책에 들어갈 사진과 표지 디자인 회의를 했고, 6월에는 조판을 받아서 기나긴 1차 교정 작업을 했다. pdf 파일에 주석을 달아서 일일이 고치는 작업은 글 쓰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1차 교정을 마친 후 주석의 수가 4000개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아직 반 정도 남았는데 벌써 주석이 2500개!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여행을 다녀온 직후부터 다시 2차 교정 작업에 들어갔다. 1차 교정처럼 많은 수정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약간의 오타와 표현들이 수정되었고, 사진이 몇 개 더 추가되었다. 8월 말에는 3차 교정이 완료되었고, 출판사와 계약을 하였다. 표지 디자인 초안이 나와서 주변 지인들에게 피드백도 받으며 출판일을 기다렸다.
그리고 2022년 9월 7일,
11년 전 통영 치킨집에서 나온 한마디에서 시작된 '여행책'이 '여행이 부르는 노래'가 되어서 세상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