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조국 미국, 유럽연합의 응집과 분리,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나라, 누군가에게는 쌀의 나라, 또 누군가에게는 미친 나라, 미국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정확히 말하면 도대체 왜 미국이 지금과 같은 초강대국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알래스카를 제외한 본토 기준으로 북으로는 캐나다, 남으로는 멕시코와 맞닿아있는 미국은 면적은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 3위, 인구도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할 정도로 크고 많은 나라이다. 거기다가 GDP(국내 총생산) 압도적으로 세계 1위, 국방비 역시 압도적으로 세계 1위, 인구가 상당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1인당 GDP 역시 76,000$로 세계 8위일 정도로 모든 것이 압도적인 그야말로 초강대국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수치들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오히려 미국이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클 것이다. 물론 세계가 다원화되고 제3세계의 문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한국의 K-pop과 같은 문화, 그리고 유럽의 칸, 베를린 영화제 등과 같은 것들이 있으나, 아직도 세계 문화의 중심은 미국 뉴욕이고 할리우드인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미국의 시작은 초라했다. 물론 모든 국가의 시작은 그랬겠지만, 미국은 시작이 많이 늦었다. 15세기 이전까지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일명 인디언들이 지배하던 대륙이었다. 그러다가 아메리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인들이 하나둘씩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오면서 미국의 역사는 조금씩 시작되었다. 초기 정착민들이 살던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의 13개 주에서 시작된 미국은 보스턴 차 사건을 겪고,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후 비로소 독립국가로 시작된 시기기가 1776년이다. 시작은 늦었지만 어떻게 보면 유럽이 그 시기를 전후로 해서 산업화가 일어났고, 종교와 왕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 피를 흘리며 투쟁을 벌였지만, 미국은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건너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좋은'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은 당시 영국과 사이가 좋지 않던 프랑스로부터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 받았고, 또한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구입하는 등 영토를 끊임없이 확장했다. 루이지애나 외에도 플로리다, 텍사스, 뉴멕시코, 오레곤, 캘리포니아의 땅들을 전쟁과 돈으로 자신의 영토로 삼았다. 러시아로부터 단돈 720만 달러에 구매한 알래스카와 태평양 한가운데의 화산섬 하와이까지 총 50개 주를 완성하였고, 그 외에도 푸에르토리코, 괌 등 캐리비안에서 남태평양에 이르기까지 미국령을 확보하고 있다.
이렇게 넓은 영토를 지니고 있고,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영토가 넓으면 관리하기 힘들 곳, 다양한 국가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면 외교문제에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미국의 경우 좋은 쪽으로 해석해볼 여지가 크다. 우선 영토가 크지만 특별히 남북으로 동서로 길지 않고 단괴형 형태를 갖고 있다. 또한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제외한 48개 주가 모두 냉온대기후(플로리다 일부는 사바나 기후)로 인간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기후를 지니고 있다. 덧붙여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동서로 끼고 있는데, 중국, 러시아, 유럽과 같은 강대국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초기 발전할 당시 외교적 간섭을 비교적 적게 받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겠다. 물론 삼면이나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국가와는 달리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를 해운을 통해 이동하려면 상당히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하는 단점이 있으나, 이를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면서 단번에 해결해버렸다. 이는 메이플라워호의 프런티어 정신과 당시 세계 최강대국 영국과의 전쟁과 독립, 그 이후 남북전쟁을 겪었고, 크고 작은 문제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발전해온 국가적 DNA의 발현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자원 측면에서도 미국을 바라보자. 일단 거의 모든 자원이 사기 수준으로 넘쳐난다. 텍사스유다 멕시코만에서 끊임없이 채굴되고, 최근에는 원유 가격 상승과 기술발전으로 채굴 비용이 낮아져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아진 샌드 오일도 풍부하다.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 오대호 연안의 풍부한 석탄은 산업혁명 시기 이래로 20세기까지 철강과 자동차, 조선의 중심지로 이끌었었다. 중부 프레리 지역으로 가면 그 끝도 없는 광활한 땅에서 자동화된 기계식 농기구로 재배되는 밀과 오대호 근처의 콘벨트 지역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보통 선진국은 개도국으로부터 곡물자원을 수입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의 경우는 반대로 멕시코에게 옥수수를 수출한다. NAFTA(현재는 USMCA) 협정이 체결된 이후 그 타격을 고스란히 받은 멕시코 농가들의 집단 시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미국 소고기는 그 양과 질에서 세계적 수준이고, 최근에는 본인들인 소비하지 않지만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쌀도 재배해서 동아시아로 수출한다.
인적자원과 인구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미국은 다수의 이민자들이 집결한 국가이다. 세계 각국에서 아메리칸드림을 품에 안고 찾아온 세계의 우수한 인력자원이 총집합하는 곳이 미국이다. 물론 초기에 정착한 영국, 독일계 유럽인들이 주류 문화를 형성했고, 이후에 남부 유럽이나 아일랜드계와 같은 가톨릭 이민자들이 상대적으로 핍박을 받기도 하였으나, 미국이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이민을 온 동양인, 그리고 노예신분으로 미국 땅을 밟은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다양한 인종들과 민족들의 문화와 정체성이 한 곳에 섞여 있다는 점은 창의성의 원천이라고 본다. 이런 풍부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대학교육환경과, 서부 실리콘 벨리의 혁신적인 분위기 등이 결합되면서 미국은 미래의 먹거리 기술에서도 압도적으로 선구적 위치에 있다. 이러한 인구의 질적 성향인 인적자원에서도 우수하지만, 양적 측면인 인구와 출산율 측면에서 미국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우선 인구가 3억 명을 훌쩍 넘는 세계 3위이고, 출산율도 히스패닉의 대거 유입으로 선진국 다른 국가에 비해 결코 낮지 않은 오히려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렇게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한국전쟁에 참전, 한반도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으면서 동시에 동아시아 지역에 영향력 미치게 되었다. 또한 여러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서남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과시하였고,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서는 강력한 인상을 전 세계에 심어줌으로써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었었다. 물론 중동의 꽂혀진 칼날, 이스라엘에 편파적 영향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미국은 항상 핵심이고, 그래서 서남아시아에서의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와 같은 친미국가에게는 든든한 우방이지만 이라크, 이란 등 반미 국가들에게 미국은 철천지 원수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소비에트 연방이 몰락한 1990년 이후부터 자타공인 G1으로서 위치를 공공히 하고 있지만, 아직도 풀지 못한 북한 핵문제와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과의 무역전쟁, 그리고 세계 무역기구에 참여하지 않고 온실가스 배출 문제에도 적극적이지 않은 미국의 모습에서 앞으로 미국의 단독 질주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불안한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와 같이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유럽은 미국에 비해 불안한 상황에 직면했고, 그에 따라 경제적 재건이 필수적이었다. 유럽 석탄 공동체부터 시작된 유럽연합은 점차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를 중심으로 확장되어 갔고, 영국과 남부 유럽 국가들, 21세기에 들어서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세력권이던 동유럽의 거의 대부분 국가로 확장되어나갔다.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자 전쟁터도 아니었던, 그래서 세계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미국과는 달리 유럽은 경제를 재건해야 했고, 미국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뭉쳐야 했다. 비슷한 문화권, 비슷한 언어, 기독교적 가치관과 그리스 로마 문화를 공유하는 유럽은 물론 1000년이 넘게 전쟁과 갈등의 역사를 동시에 지니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과거 전성기의 모습을 되찾고 나아가서 미국을 뛰어넘으려면 하나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에 비해 과도한 통합을 이루고 있는 반면 유럽은 비슷한 언어와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과도하게 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면이 유럽연합을 비록 국가는 아니지만 경제공동체로서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기제가 되었다고 본다. 또한 지리적 근접성도 한 몫한다. 알프스라는 거대한 장벽이 있긴 하지만 북독일 평원은 프랑스로부터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폴란드까지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라인강을 거쳐 발트해로 연결된 편리한 해운 교통은 과거 길드의 형성 및 발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가깝지만 또한 자연적, 지형적, 기후적 차이점도 꽤나 많고, 경제 발달 수준도 서유럽과 남유럽, 그리고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각자 적절하게 달라서 경제적 상호보완성을 지니기 충분한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유럽연합은 탄생에서부터 마스트리흐트 조약, 솅겐조약, 유로 화폐의 사용 등, 2008년 '그 위기'가 오기까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08년 그리스발 금융위기가 오면서 유럽연합은 현재까지 매우 뒤숭숭하다.
유럽연합의 초기부터 독일은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고, 이에 영국은 항상 불만이 있었다고 본다. 과거 잘 나가던 시기의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고, 영국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인도주의적인 독일의 정책 - 예를 들어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남유럽 국가들에게 퍼주기 정책 - 이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이 끝까지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자국 파운드화를 고집한 것만 봐도 영국의 대륙에 속하지 않으려는 고집이 느껴진다. 아무튼 영국은 결국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을 탈퇴하였고, 그래서 나는 올해 여름 런던으로 유럽에 입국하는 나는 유럽 여행 최초로 입국심사를 두 번해야 되는 상황에 놓였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언하자 곧장 스코틀랜드는 다시금 독립을 외치면서 본인들은 유럽연합에 속하고 싶다고 주장하였다. 스코틀랜드 역시 국민투표를 통해 대영제국에서 분리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던 전력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 멜 깁슨의 후예들은 이번 기회로 다시 한번 탈 영국, 탈 잉글랜드를 시도하며 'Freedom!!!'을 외칠지 모른다. 스코틀랜드는 북해 석유자원의 개발권은 본인들이 독점하고 싶어 하지만, 잉글랜드가 그걸 가만히 놔둘 리 없다. 물론 아직은 큰 움직임은 없으나, 자국 올림픽을 제외하고 월드컵 경기에서는 항상 따로 경기에 나오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 국가는 언제든 쪼개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들이다. 특히 자존심 강하고 아직도 에든버러 길거리에 자국의 언어가 영어와 함께 표기되어 있는 스코티시들에게 브렉시트는 본인들의 영향력을 잉글랜드에게 과시할 기회일지 모른다.
스코틀랜드만큼이나 본국에서 독립하고 싶어 하는 지역은 스페인의 카탈루냐일 것이다. 플랑코 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카탈루냐와 마드리드 중앙정부는 끊임없이 대립하고 있고, 그것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이다. 두 클럽 간의 전쟁 같은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는 일단 숫자로 나타난다. 2022년 3월 20일 기준 249번의 전적 동안 마드리드 100승 바르셀로나 97승, 무승부 52회이다. 또한 바르셀로나에서 뛰나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포르투갈의 당시 세계적 윙어 루이스 피구가 하얀 유니폼을 입고 캄프 누로 왔을 때 성난 바르샤 팬들이 돼지 머리를 던진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다. 아마 당시 바르샤 팬들이 느꼈던 감정은 그럴리는 없겠지만, 박지성이 일본으로 귀화해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일본 국가팀을 대표해서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들어설 때 붉은 악마와 대한민국 국민들의 심정과 비슷할 것이다. 오히려 더 심할 수도 있다고 본다.
스코틀랜드와 같이 카탈루냐도 믿는 구석과 나름대로의 불만이 있다. 지중해를 면하고 있는 스페인의 북동부 카탈루냐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경제가 발달한 지역이다. 또한 과거부터 독립적인 언어와 문화를 지니고 있었던 아라곤 왕국의 후예이다. 스페인이 통일된 이후에도 내전과 플랑코 독재 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 더더욱 독립에 대한 열망을 커졌고, 그런 불만과 욕구가 축구로 승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다 보면 카탈루냐 기를 스페인 국기보다 더 많이 볼 수 있고, 붉은 선과 노란 바탕으로 이루어진 세녜라와 여기에 파란 삼각형의 하얀 별을 추가한 에스텔라다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에스텔라다는 카탈루냐 독립 운동을 상징한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다가 에스텔라다가 걸린 집을 보면 '저 집은 더 강한 카탈루냐인 이구나' 생각하면 된다.
카탈루냐의 심장을 바르셀로나, 그 바르셀로나의 심장을 캄프 누,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카탈루냐 인들은 열광적으로 바르셀로나를 응원하고,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레알 마드리드와는 달리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구단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유니폼 스폰서도 최근까지 받지 않고 오히려 유니세프에 기부를 하는 등 레알 마드리드와는 차별성을 둔 군단으로 유명했다. 물론 최근에는 유니폼 스폰서를 받는다. 하지만 카탈루냐에 FC바르셀로나만 있는 건 아니다. 에스파뇰이라는 팀도 있는데, 이 팀의 특이한 점은 홈구장이 바르셀로나에 있지만 선수 구성원은 전부 카스티야인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즉, 마드리드가 중심인 카스티야 지역 출신 선수들이 카탈루냐의 한가운데 바르셀로나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다. 당연히 FC바르셀로나와는 사이가 좋지 못하다. 물론 마드리드처럼 라이벌이라고 불리기에는 바르셀로나에 비해 성적이 초라하긴 하다.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최초의 인류는 기후 변화에 적응하고 생존을 위해 이동하면서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서남아시아를 거쳐 동으로는 아시아, 서로는 유럽으로 이동하였고, 지금은 바다이지만 빙하기에는 얼어있던 오호츠크해,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하였다. 결국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온 셈인데, 유럽은 그 조상들의 땅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현재 아프리카가 흘리고 있는 눈물이 과연 그들의 무능과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과연 정당한가?
아프리카의 지도를 보면 유럽인들의 파괴와 폭력, 수탈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선 서아프리카 해안에 있는 수많은 해안의 이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상아 해안, 노예 해안, 후추 해안. 그곳에서 수탈했던 것들로 해안가의 이름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심지어 드록신의 나라 코트디부아르는 나라 이름이 상아 해안이다. 이곳에서는 특히 많은 노예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갔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부족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서 노예로 팔았고, 본인들이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부족들을 유럽인들에게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프리카 부족들은 서로를 잡아서 침략군에게 파는 행위를 하였고, 그럴수록 점차 검은 아프리카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암흑과도 같은 배안에 몇 달씩 갇혀 죽어갔고, 겨우겨우 살아 도착한 곳에서는 각종 풍토병에 또다시 죽음을 맞이하거나, 어찌어찌 살아남은 자에게 기다리는 것은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하루 종일 이어지는 노동뿐이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경선은 다른 대륙의 국가들과는 다르게 매우 반듯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국경 선이 산과 강 같은 지형이나 종교와 같은 문화적 요인으로 설정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바로 유럽 열강이 자기 멋대로 지도에 그어버린 전횡적 경계의 흔적이다. 이는 본래 거주하고 있던 인종, 민족을 무시하고 그어버린 것으로 독립한 이후에는 이 경계로 인해 끊임없는 내전이 발생한다. 이러한 내전은 수많은 죽음과 난민을 낳고, 이는 다시 가난과 전쟁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아프리카는 자원이 풍부한 대륙이지만 오히려 이 자원은 아프리카를 더욱 아프게 만들고 있다. 과거 수백 년간 유럽인들은 이 자원을 수탈해왔고, 이 자원의 채굴은 아프리카인들의 몫이었다. 특히 다이아몬드와 같이 값비싼 광물은 작고 어린아이들이 채굴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아동의 노동착취는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플랜테이션 작물인 카카오, 커피와 같은 작물도 아프리카 주민들의 손으로 재배되었고, 그 이익은 온전히 서구 열강의 대기업들의 손에 쥐어졌다. 카카오를 평생 재배하던 아프리카 노동자가 처음으로 그 카카오로 만든 초콜릿을 먹어보고 눈물 흘리는 장면을 나는 잊지 못한다. 자원 개발을 아프리카인들이 하게 되는 경우도 상황이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하던 수탈을 자본과 기술을 갖게 된 아프리카인 기업주가 안 할리가 없고, 또한 이러한 자원과 개발을 둘러싼 전쟁, 내전이 발생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 와중에 종교까지 다르다면 그 전쟁의 강도는 너무나도 심각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 특히 약한 여성과 어린이들이 받게 된다. 이렇게 아프리카는 지금까지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해 식민 지배되었다. 두 국가는 서로 경쟁을 하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지정한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의해 서경 46도를 기준으로 서쪽은 스페인이, 동쪽은 포르투갈이 지배 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현재도 라틴 아메리카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고 나머지 서쪽 지역을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모두 가톨릭을 믿는다.
식민지배를 겪으면서 라틴 아메리카는 대도시 위주로 발전하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수도 위주로 도시를 개발하였고, 거의 모든 기반 시설이 도시에 있었다. 그래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독립한 이후에도 수위도시인 수도 위주로 발전하였다. 농촌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무작정 도시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기반시설이 없는 도시에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안 그래도 많은 인구는 더더욱 많아졌다. 라틴 아메리카의 도시화율은 그래서 선진국의 그것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의 도시화를 가짜 도시화, 가도시화라고 부르거나 과도한 도시화, 과도시화로 부른다.
이렇게 도시로 몰려든 이주민들은 당연하게도 도시 빈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라틴 아메리카에는 그래서 파벨라라고 하는 빈민촌 거주지가 존재한다. 주로 도시 중심부에서 약간 벗어난 산들에 듬성듬성 분포하는데, 이런 빈민 거주지는 부유층의 거주지와 확연하게 다르면서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다. 이는 위성 지도로도 잘 나타난다. 도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많은 이주민이 모여들면서 도시는 자연스럽게 빈부격차, 양극화가 발생하게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양극화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양극화된 도시를 이중 도시로 부른다. 당연히 이런 도시의 치안이 좋을 리 없다. 이런 1960년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바로 '시티 오브 갓'이다. 물론 이 영화 속 소년들은 총을 들고 강도와 살인을 서슴없이 하지만, 과연 그런 소년들의 범죄행위가 그들의 잘못일까?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소년들의 유일한 꿈이 축구선수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인 이유가 과연 그들이 축구를 사랑해서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