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과거, 현재, 미래

출판과 유튜브, 그리고 행복 회로에 대한 이야기

by 지리는 강선생

나는 원래 서론이 길다.


오랜만에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듣는 것보다는 말하는 걸 훨씬 좋아한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바뀌던 순간, 나름 역사적인 순간이라 카페에 혼자 앉아 글을 쓰며 이렇게 결심을 한 적이 있다.


시끄러운 스피커보다는 조용한 녹음기가 되자.

스스로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지하고 있고, 또 그게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투머치 토커의 새해 기념 자기반성이었지만, 그 후 이 결심이 잘 지켜졌는지 아닌지는 나를 잘 아는 지인을 비롯해서 앞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 정말 인생을 통째로 뒤흔드는 그런 거대한 사건이 아닌 이상 눈곱만큼도 바뀌기 힘들다는 것을 수많은 결심과 시행착오를 통해 배웠다. 나의 이런 말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은 타고난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관심을 갈구하는 성격은 어릴 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라서 커진 일종의 결핍 부작용인 것 같기도 하다.


서두가 길었다. 나는 말하기를 참 좋아하고,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서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그 장소가 주로 술자리였다. 이제는 그 영역을 수업을 하는 교실, 독자들에게 글로 전달하는 책, 유튜브에 올라갈 카메라 앞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기왕에 고치기 불가능에 가까운 이 성격을 장점으로 승화해보기로 했다. 이는 전적으로 주변 지인들의 칭찬과 격려 덕분이다. 나는 관심을 먹고 자라나는 본투비 관종이기 때문에 그들의 그런 호의적인 관심이 없었더라면 이런 투머치 토커의 성향을 이렇게까지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말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직업을 하고 있다. 환경도 나쁘지 않다. 교실에 있는 학생들은 거의 매일 비슷한 성향과 분위기의 충고와 조언이 반반쯤 섞인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나의 듣도보도 못한 이야기는 그들에게 매우 신선하게 들린다. 식상함에 질린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청자와 매일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말하고 싶어 안달 난 화자의 콜라보레이션이 윈윈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나는 교실에서의 말하기, 이른바 썰 풀기를 11년째 이어오고 있다. 처음에는 각각 따로 떨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마치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말한 'Conneting the dots'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졌다.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와 연결되었고, 일종의 시리즈가 생겼고, 지금도 꽤나 인기 있는 이야기들이 탄생했다. 스토리텔링의 시작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티브 잡스의 문장 'Connecting the Dots'


물론 일상이 너무도 다이내믹해서 경험도 날 것 그대로였던 시절에는 썰들이 갓 잡은 생선처럼 팔딱팔딱 뛰어다녔지만, 임용 합격과 결혼으로 기인한 안정된 나의 생활은 자연스러운 날 것 그대로인 경험의 투입을 차단하였고, 그래서 한동안 썰 풀기의 비수기, 그로 인한 인생의 비수기를 겪기도 했다.


그렇게 약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다이내믹했던 삶에는 지방과 이끼가 꼈고, 온갖 망상과 희망이 항상 폭죽처럼 터졌던 머릿속은 멍한 고요만 흘렀다. 이래서는 안 된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항상 계기는 저절로 찾아오기도 하고 스스로 찾기도 한다. 아마 그때는 둘 다였던 것 같다. 이번의 계기는 박동한 선생님의 책, '선생님 또 어디 가요?'였다.


박 선생님과는 그때까지는 답사 때 잠깐 스쳐가듯이 이야기한 정도가 전부였었지만, 그의 삶은 지리 교사 모임 '최지선'과 SNS를 통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나만큼 여행을 좋아하고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나보다 좀 더 정돈된 그런 이미지로 그를 떠올렸다. 과거 여행이라면 누구에게 절대 지고 싶지 않았던, 하지만 현실은 여행과는 30억 광년 정도 떨어져 있던 나는 그의 여행기 출간 소식에 적잖은 충격과 자극을 받았다.


다 꺼져버린 줄 알았던 마음속 불길이 다시 활활 타올랐다. 다시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었다. 이제 술자리에서 취한 흥분된 목소리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정돈된 글의 형태로. 다행히 책 한 권을 쓸 정도의 소재는 충분했다. 수업을 하며 틈틈이 해오던 여행 썰들이 이제 10년 가까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틀을 잡았고, 뺄 것은 빼고 더할 것 더 해지면서 이제는 번듯한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지금이다! 지금 쓰지 않으면 이제 평생 못 쓴다!

그렇게 나는 나의 20대를 관통했던 여행의 경험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출판으로 과거를 정리했다.


결심이 서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겼다. 생각은 머뭇거리는 순간 녹슬어버리니까. 나는 한번 불붙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불타오르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그날 바로 책의 제목과 목차를 정했고, 집필에 들어갔다. 총 45챕터 정도로 계획했고, 하루에 한 챕터씩 쓰면 둘 달 안에 초고가 완성된다는 결론이 섰다. 그렇게 수능을 망쳤던 스무 살부터 결혼식을 하던 서른셋까지의 나를 되새겼다.


평범한 여행기는 싫었다. 아니 사실 그런 여행기를 쓸 수도 없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은 고집스럽게 더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유명한 여행 장소나 맛집 같은 정보는 나의 여행에서 먼저 배제되었고, 그런 여행기는 쓸 능력도 자격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문장력이 좋거나 감성적인 사람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병률 작가나 류시화 작거처럼 하늘거리는 감성으로 하늘 호수를 떠나는 깃털 같은 감성을 표현할 길이 없다.


누구나 공감되는 글을 써야 했다. 나의 이야기이지만 누군가는 한 번쯤 겪어 봤을 만한 이야기. 나이를 초월해서 적어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마음이 동하는 이야기를 써야 했다. 결심도 섰고, 소재도 있고, 방향도 정해졌으니까 이제 하루하루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 가는 글감옥에 나를 가두었다.


공감되는 글을 쓰고 싶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누군가에게 공감을 잘 못하는 편이다. 아예 못 한다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공감받는 것은 참으로 좋아한다. 이렇게 써보니까 참으로 이기적이다 나란 인간. 아무튼 블로그에 브런치에 하루에 하나씩 써 내려가는 나의 글들을 공감해가는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나는 더 신이 났고, 그렇게 즉흥적으로 계획한 대로 딱 2달 만에 나의 첫 번째 여행 에세이, '여행이 부르는 노래' 초고가 완성됐다.


'여행이 부르는 노래'는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경상남도 통영 치킨집에서 후배와 술 한잔 하다가 즉흥적으로 나온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그때는 정말 말 그대로 말뿐이었지만, 비록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이긴 하지만 이렇게 현실화된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11년의 세월을 맞으며 더 단단해지고 유연해진 나의 이야기들이 대견하기도 하다. 아마 그때 바로 실행에 옮겨졌다면 꽤 많은 에피소드들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의 나는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던 시절이라 온통 자기애와 자기 연민으로 가득한 그런 책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던 스물아홉 살에 처음 교직에 나와서 그저 수업 시간을 때워보려 했던 여행 썰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이제는 한 권의 책의 글감들이 되었다. 어찌 보면 그 수업 시간의 썰들은 그전부터 동아리 선후배들이나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부터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보다 더 이전에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좋아했던 사람이 스쳐가듯이 했던 '너 말 참 잘한다!'라는 칭찬에서부터였을 수도 있다.


스무 살부터 10년이 넘는 시간들을 정리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나는 원래 멍 때릴 때 망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주로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서 '그때 내가 했던 결정이 아닌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지금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와 같은 누구나 하지만 정말 영양가 없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다른 망상은 그런 '만약에'를 대입하지 않고 그저 나의 인생을 내가 물리적으로 기억나는 시점부터 되새김하는 것이다. 이런 망상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죽치고 서있어야 하는 학교 시험감독이나 수능 감독 시간에 주로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 없던 멍 때림이 글을 쓸 때 과거를 회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꾸 되새기다 보니까 물론 어느 정도의 추억 보정이나 기억의 왜곡은 있겠지만, 어느 정도 글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풀던 여행 썰들이 책을 쓰는데 가장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을 때우는 용도였던 이 썰들은 몇 년이 지나면서 수업 시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갔다(고 믿는다). '러브 스토리 인 이태리'처럼 두 시간을 꼬박 할애해야지 완결되는 썰들은 시험과 진도가 다 끝난 학기말이나 여행 지리 수업처럼 특수한 수업 환경에서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야기들은 단원별, 주제별로 자연스럽게 배치됐다. 한국지리나 통합사회처럼 여행 썰들을 풀기가 어려운 과목도 '춘천-여수 도보여행'이나 '외국인 친구들에게 K-날씨 참 교육'과 같은 콘텐츠로 부족한 부분을 메꿨다.


희망과 기쁨보다는 절망과 좌절이 훨씬 많았던 나의 20대를 그래도 여행이라는 좋은 친구를 만나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고,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아픈 상처로 남지 않고 '여행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 누군가에게는 희망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미소로 번질 수 있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나의 20대의 삶과 여행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여행이 부르는 노래'



나는 유튜브로 현재를 보여준다.


2020년 3월, 코로나라는 역병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교육 현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육부는 학교에 학생 등교 정지를 명했고, 교사들에게는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라고 했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원격수업을 하라고 하니 난감했지만, 가이드라인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저 EBS 온라인 클래스나 구글 클래스룸을 이용하라는 이야기만 아름아름 들렸다. 여기서 또 나의 관종 모드가 발동했다. 다른 선생님들이 녹화해둔 영상을 내 학생들에게 그냥 틀어주고 출석 체크하기는 싫었다. 그렇게 나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처음 영상을 찍었던 날이 기억난다. 2020년 4월, 노란색 니트에 네이비 트렌치 코트를 입고 교탁 앞에 섰다. 학생이 없는 텅 빈 교실에서 삼각대에 걸쳐진 핸드폰을 보고 수업을 하려니까 처음 교생 실습을 했을 때보다 더 떨렸다. 정말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 혼자 영상을 촬영하는 것뿐인데 이렇게 떨리다니! 그때 비로소 느꼈다. 교실에는 학생이 있어야 하는 거구나!


첫 영상은 한국지리 프리퀄과 여행 지리 맛보기 영상이었다. 지금 다시 보면 마이크도 없어서 목소리가 제대로 녹음도 되지 않았고, 편집과 자막도 없는 그저 허접한 영상이다. 그래도 그 처음의 시작이 있었으니까 지금의 2만 명가량의 유튜버로 성장할 수 있었겠지. 어쨌든 그 시작이 있었으니까 영상 촬영이 정말 어렵고 영상 편집은 그보다 3만 배는 더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었겠지!


그렇게 2020년 4월부터 약 1년 간 수업 영상과 모의고사 문제풀이 영상들을 유튜브 '지리는 강 선생'에 드문드문 업로드했다. 당연히 조회수는 처참했다. 구독자 수도 100명이 채 안되었고, 영상도 지나치게 길고 재미가 없었다. 점점 카메라 앞에서 수업하는 게 익숙해져 갔지만, 영상은 편집을 거치지 않은 거의 날 것 그대로의 상태로 업로드되었고, 나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그런 지루하고 긴 영상일 뿐이었다. 이 영상을 클릭하고 좋아요 누르는 것은 나의 엄마뿐이었다.


2021년 5월, 집 앞 재래시장에 있는 고깃집에서 와이프와 삼겹살을 먹으면서 불현듯 결심했다. 고성 통일 전망대에서 부산 해운대까지 걸어가기로! 원래도 정말 뜬금없이 즉흥적이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나름 계획과 뜻이 있었다. 나는 지금 유튜브를 하고 있지만, 조회수는 정말 처참하게 소박했다.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참 많았는데, 그 당시에는 유튜브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아서 지금 여행 유튜버들이 너무 부럽게 아쉬웠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가 한창이라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성-부산을 걷는 도보여행으로 여행 유튜버로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총거리는 770km. 첫 국내 도보여행을 떠났던 2012년 여름에 나는 이십 대였지만, 2021년의 나는 삼십 대 후반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70kg 중반 몸무게의 날렵한 몸매였지만, 지금은 100kg에 육박하는 술과 치킨으로 체지방을 채운 묵직한 거구이다. 하지만 머리에 결심이 든 순간 나의 몸은 다시금 이십 대의 몸처럼 가벼운 것처럼 느껴졌고, 어느새 나는 동해바다를 왼편에 두고 남쪽으로 하염없이 걷는 장면을 생생하게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생애 단 한번 시즌2, 고성-부산 도보여행'이 시작되었다.


도보여행은 정말 행복했고, 또 행복했다. 4일째 되는 날, 동해시 묵호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행복이 넘쳐흘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오기까지 했다. 순간순간의 행복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매 순간 받았고, 내가 세운 목표를 한 걸음씩 달성해나가면서 실시간으로 성취감을 느끼는 경험을 10년 만에 다시 하니까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렇게 17일간의 도보여행을 무사히 끝마쳤고, 돌아오자마자 길고 긴 영상 편집의 길로 들어서는데!


영상 편집은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도보여행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힘든 이유가 내가 편집 스킬이 부족해서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영상을 거의 꼬박 밤을 새우며 3일 만에 끝내고, 한 달 정도 지나면서 어느 정도 영상 편집 툴에 익숙해질 법도 한 시점에도 역시 영상 편집은 전혀 쉬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킬이 늘어갈수록 영상 편집의 세세한 부분은 더욱 어려워졌고, 특히 내가 찍은 영상을 직접 편집하다 보니 컷을 버리고 선택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원래 선택 장애가 없는 편인데, 영상편집에서만큼은 예외였다. 그렇게 17일 동안 걸었던 영상을 모두 편집하는데 약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영상 편집을 하며 배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지 말자!'이다. 쓸데없는 말은 편집하는 입장에서 정말 곤욕이다. 내가 왜 저 때 저런 쓸데없는 말을 했지?라는 생각은 어쨌든 그 길고 긴 말을 듣고 난 이후에야 판단할 수 있다. 정말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내가 평소에 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는 것은 서두에서 밝혔지만, 그건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는 것을 영상 편집을 하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말한 것을 내가 직접 듣는 일이 평소에는 정말 별로 없는데, 비로소 내가 말하는 것을 수십 번씩 들으면서 편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말 좀 줄이자 제발!


그렇게 많을 때는 하루에 10시간가량을 투자하며 며칠간 밤을 새워 영상을 편집했지만, 나의 영상을 클릭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구독자도 200명 언저리에서 몇 달간 움직이지 않았다. 가끔 나이 지긋한 아재들이 '도보여행은 내가 잘하지!'라고 걷기 부심을 부리는 댓글을 다는 정도였다. 그때 깨달았다. 유튜브도 글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해야 하는구나! 적어도 아직 구독자 200 따리인 지금 나에게는 그랬다.


2022년 1월, 모종이 계기로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3달 만에 20kg가량을 감량했다. 나의 지방들을 연소됐지만, 점점 사라져 가던 유튜브에 대한 도전의식은 이때부터 다시 불타 올랐다. 사람들이 흥미 있어할 만한 주제로 영상을 찍었고, 편집도 짧고 임팩트 있게 하기 시작했다. 아직 나는 유명하지 않은 유튜버이기 때문에 흥미로운 주제를 짧게 만드는 쇼츠 영상도 이때 시작했다. 갑자기 몇 년 전에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샀지만, 학교 교복과 너무 비슷해서 한 번도 입지 않은 갈색 바지가 떠올랐다.


교복을 입고 출근해보자!

그렇게 300만 뷰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이 교복 입고 출근하면 생기는 일' 영상은 아침에 춘천고등학교 교복과 비슷한 바지와 흰색 셔츠, 그리고 검은색 타이에 역시 교복과 매우 비슷한 네이비 블레이저를 입고 출근 준비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와이프는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교복 입고 가?"라고 말하고, 나는 차에 타서 오늘의 목표를 이야기한다. '선생님에게 반말 10명 듣기'

선생님이 교복 입고 출근하면 생기는 일


늦잠을 자서 지각하지 않으려 학생들과 함께 뛰어가고, 학교에 들어서면서 선생님들에게 첫 반말을 듣는다. 교실에 도착하니까 학생들의 반응은 대폭발! 그 순간 나와 키가 비슷한 우리 반 학생이 말한다. "조끼 빌려드릴까요?" 그 찐 춘고 조끼로 나의 교복 코스프레는 화룡정점을 찍었다. 그렇게 급식소에서 나에게 천연덕스럽게 반말하며 악수를 청하는 학생과 내가 전학생인 줄 알아서 인사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다는 학생, 그리고 동안이라서 진짜 학생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사회생활 만렙 학생들이 그 짧은 1분의 영상을 꽉꽉 채워주었다. 그렇게 그 영상은 처음 인스타에서 알고리즘을 타서 170만 뷰를 찍더니 8월 말에는 구글 알고리즘님이 영접 하사 10월 5일 현재 약 300만 뷰를 기록하고 있다.


8월 말부터는 유튜브 지리는 강 선생의 조회수와 구독자수는 정말 미친 듯이 증가했다. 8월 초 구독자 1000에서 2000이 되는데 20일이 넘게 걸렸는데, 2000에서 3000이 되는 데는 이틀, 3000에서 4000이 되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어떤 날은 하루에 구독자가 무려 1700명이 증가하기도 했다. 물이 들어왔으니까 노를 저어야지. 9월 초부터 한 달 간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로 쇼츠 영상 위주로 업로드했다. '남고에서 급식을 먹어봤습니다' 영상은 초반부터 기세 좋게 치고 올라가 100만 뷰를 넘겼고, 중간에 문제가 제기돼서 삭제하긴 했지만 '남고 매점 오픈런 대환장 파티'도 정말 빠른 시간 내에 100만 뷰를 찍었다.


'남고에서 휴대폰 걷으면 생기는 일' 영상은 학교에서 휴대폰을 걷는 게 맞냐? 틀리냐? 그리고 벌금을 걷는데 맞냐? 틀리냐?로 지금까지 댓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휴대폰 걷는 것이 학교 규칙이어서 담임인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벌금 문제는 돈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민감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벌금이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가 있었는지와 그 벌금을 어디에 쓰느냐에 있는 것 같다. 특히 학생 중 한 명이라도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규칙은 실시하지 않는다고 학기초에 이야기했다. 또한 그 벌금을 걷은 후에 모아서 학기말에 내 돈을 2배 정도 보태서 피자와 치킨으로 학생들에게 다시 돌아간다는 사실도 댓글로 언급했다. 물론 여기까지 이야기해도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존중한다. 역시 이 영상도 300만 뷰 정도 나왔는데, 300만 명의 생각이 다 나와 같을 수는 없으니까. 덕분에 이번 학기 말에는 내 돈 40만 원가량을 보태서 고기뷔페를 사주고 벌금 피드백 인증 영상을 찍기로 했다.


영상의 조회수와 구독자 수가 늘어나면서 칭찬과 격려의 댓글을 정말 많이 받았지만, 그에 비례해서 악플도 점점 늘어났다. 터무니없는 악플은 오히려 신경이 쓰이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잘못했다고 느낄만한 포인트들을 지적한 댓글에는 신경이 많이 쓰였다. 나는 이제 막 유튜브를 시작한 크리에이터이기도 하지만 교사 신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의도가 담겼든 아니든 교육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언어와 행동이 담긴 영상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없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차례 교육청으로 들어온 민원신고로 교장실과 교감실을 들락날락하면서 생각했다. 한 번의 실수는 있었지만 두 번은 안 된다고. 무엇보다 나의 영상으로 용기를 얻는다는 학생들, 학창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서 고맙다는 어르신들, 그리고 자녀들의 학교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학부모님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더 잘해야 한다.



나는 언제나 행복 회로를 꿈꾼다.


이렇게 책을 출판하고 유튜브를 하면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업이나 조회 시간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이전에 했던 썰들이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지금 학생들에게 하는 썰들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되짚어보면 나는 책의 초고를 쓰는 순간부터 브런치에 올리고 출판사와 계약을 하는 과정을 학생들과 공유했고, 유튜브를 시작하고 몇 개의 영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학생들은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나에게 콘텐츠에 대한 고민과 악플에 대한 대처를 시청자의 입장에서 조언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책을 쓰고, 유튜브를 하기 전부터 학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공유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목적이 무엇이든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리고 터무니없지만 한결같은 미래에 대해 꿈꾸는 나의 모습이었다. 또다시 생각해보면 교사가 되기 전부터 항상 나는 터무니없는 꿈을 갖고 있었다. 마치 체 게바라처럼. 물론 당시에는 스스로에 대한 용서가 미처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였고, 아직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자존감은 낮고 쓸데없는 자신감만 높아서 남들 보이기 좋은 꿈만 좇기도 했다. 그래서 꿈보다는 항상 실천이 뒤쳐졌다.


여러 시련을 겪고 그 시련을 어쩔 수없이 온몸으로 받아내며 조금씩 성장한 것 같다. 그렇게 시나브로 나의 멘탈을 강해졌다. 스타트업 창업과 퇴사, 몇 번의 도보여행, 결혼 생활과 임용 시험을 거치면서 나의 이상은 어느새 현실과 점점 가까워져 갔다. 그렇게 나는 학생들에게 조금 더 자신 있게 나의 꿈과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제는 적어도 내가 말하고 있는 터무니없는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용기와 실행력이 생겼으니까.


'여행이 부르는 노래'를 출판을 얼마 안 남긴 시점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에피소드 별로 어울리는 음악이 곁들여진 여행 에세이다 보니까 에피소드의 수와 수록된 노래의 수는 일치한다. 불현듯 이 책을 함께 불러준 가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저자 친필을 써서 보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판이 되고 내 손으로 책에 들어오자마자 실행에 옮겼다. 인터넷에 나와있는 기획사의 주소를 찾았고, 기획사가 없거나 안 나와있는 가수들에게는 인스타그램 DM으로 메시지를 보내 주소를 알아냈다. 그렇게 나는 유재석, 윤종신, 장범준, 성시경, 이적, 윤종신 등 수많은 가수들에게 내 책을 선물했다.


역시 이 과정도 학생들과 함께 공유했다. 내가 학생들에게 "유재석이 책을 받고 감명받아서 혹시 유퀴즈에서 내 책을 소개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든지 "장범준이 내 책을 받고 '여행이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으로 작곡을 하면 어떻게 될까?"라고 정말 터무니없는 꿈을 이야기했다. 그러면 학생들은 "선생님은 정말 행복 회로를 잘 돌리시네요"라고 대답한다.


맞다! 나는 정말 행복 회로를 잘 굴린다. 어떻게 보면 나의 인생 자체가 행복 회로였다. 현실적으로 힘든 시기도 많았고, 남들과 나를 부정적으로 비교하면서 좌절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던 시간 정말 지루하게 길었다. 그럴 때 나에게 이 '행복 회로'가 없었더라면 나는 절대 그 불행이 늪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나는 학생들에게 자신 있게 말한다. 그 행복 회로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노라고. 비록 달성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지만 그래도 나는 꿈꾸고 도전하고 실패해도 또 도전할 거라고. 그렇게 도전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며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좋아한다는 것을 이제 나는 똑똑이 알고 있다.


나는 아마 앞으로 영원히 행복 회로를 돌리며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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