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22년 한국교원대학교 지리교사 1정 연수 강의를 맡게 된 지리교사 강이석입니다. 지금 여기는 영국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 근처 에어비앤비 숙소이고, 현지시간 새벽 6시입니다. 뭔가 현지시간을 말하니까 해외 특파원으로 나가 있는 기자가 된 기분이 드네요. 경도의 기준이 되는 그리니치에서 한국과 9시간, 지금은 서머타임이라서 8시간 차이나는 이곳에서 그것도 원격으로 연수를 하니까 또한 굉장히 지리적이면서 글로벌한 느낌이 들어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처음 교원대학교 권정화 교수님에게 이번 1정 연수 제의를 받았을 때 굉장히 기쁘고 반가우면서도 걱정도 되었습니다. 저는 그 기간에 유럽 여행이 이미 계획되어있었고, 여기 계신 많은 선생님들도 여행을 다녀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여행 도중에 이렇게 연수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혼자 여행을 하는 상황도 아니고, 시차도 차이나고, 인터넷도 유럽은 한국보다 많이 느리기 때문에 연수를 하다가 끊기는 불상사까지 고려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기보다는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선생님들 앞에서 1정 연수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나의 수업 방법도, 나의 이야기도 분명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봤습니다. 함께 여행을 가는 와이프에게는 이 상황에 대해 양해를 구했고, 인터넷 연결은 연수가 있기 3일 전부터 똑같은 상황에서 리허설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시차는 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되니까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물론 제 수업 특성상 텐션을 좀 올려야 되는데, 사실 그게 좀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저에 대한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춘천고등학교에서 세계지리와 여행지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리는 강선생이라는 부캐로 동명의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행이 부르는 노래'라는 여행 에세이가 빠르면 올해 9월쯤 출간될 예정이고, 12월 말에는 '39'라는 앨범이 출시 예정입니다. 음악 장르는 EDM, 락, 발라드, 클래식 등 혼종이고, 아무래도 비전공자인 제가 직접 작사, 작곡, 노래, 랩, 디자인하기 때문에 퀄리티는 보장을 못 하지만 30대의 마지막을 기념하고 싶어서, 앨범 제목도 Adele을 오마주해서 39로 정해봤습니다. 나이는 39살이고, MBTI는 예상하시겠지만 노답 3형제 중 하나인 ENTP입니다. 네 맞아요 관종이란 얘기죠.
저의 대한 소개만 하다가는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이 허비될 것 같아서 이상 마치고, 오늘 연수 내용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제목은 '지리는 강선생의 스토리텔링 수업'입니다. 기간제 경력 포함 2012년부터 약 10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제 수업을 상징하는 단어는 '이야기'였습니다. 수업 시간에 썰을 푼다고 하죠. 오늘은 그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번 1정 연수에는 전국의 많은 지리 전문가분들이 강의를 해주시는데, 제가 그 안에서 차별성을 가지면서도 잘할 수 있을게 무엇일까 고민해봤을 때 생각나는 건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익숙하면서도 생소하고 체계적이지는 않고 말랑말랑한, 그래서 조금은 선생님들의 생각에 자극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로 시작해보겠습니다.
Square와 알고리즘
작년 봄에 있었던 일입니다. SNS를 통해 동네 서점에서 음악 감상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고 수업하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서 음악 전문가, 그리고 나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참석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Asian pop'이었는데, 그날 저는 이 노래를 처음 들었습니다.
음원보다 더 좋은 백예린의 Square 라이브
사실 백예린에 대해서 아예 모르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6년 여고에서 근무할 때 실용음악 준비하는 학생들이 로비 버스킹 할 때 종종 백예린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전까지 저에게 백예린은 '우주를 건너'를 불렀던 K-Pop 출신 백아연과 헷갈리는 정도의 그런 가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4분 남짓하는 라이브 영상 속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백예린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습니다.
팟! 파밧! 파열되는 드럼 비트에 가볍게 몸을 돌려 등장하는 도입부터 엇박인 듯 정박인 듯 연주되는 피아노 리듬에 맞춰 흥이 나서 춤추며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팝의 전성기에 수줍게 등장한 신인처럼 영어 가사를 자연스럽게 멈블(mumble) 거렸습니다. 무엇보다 그녀의 노래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백예린이라는 가수를 발견했고, 그렇게 나는 Square란 곡에 흠뻑 빠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연스럽게 유튜브 뮤직으로 백예린과 Square를 검색해서 들었고 구글의 알고리즘은 그녀의 노래와 그녀와 관련 있는 노래들을 몽땅 추천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유튜브는 백예린의 곡들 뿐 아니라 그녀와 비슷한 장르의 곡들을 연달아 나에게 들려줬습니다. 단지 저는 평소에 듣지 않았던 백예린의 Square란 곡을 검색해 들었을 뿐인데, 저의 유튜브 뮤직의 플레이 리스트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평소처럼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하나의 노래가 알고리즘을 통해 플레이 리스트를 바꿔놓은 것처럼,
단 하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생각을 확 바꿔놓을 수 있지는 않을까?
이 너무도 당연하면서도 또한 새로운 생각은 오래전 교육학에서 배웠던 피아제의 동화와 조절 개념도 떠올렸습니다. 새로운 개념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면 기존에 갖고 있던 개념들로 동화시키거나 새로운 것을 조절하면서 평형화라는 안정 상태로 변화된다는 구성주의 인지발달 이론 말입니다. 새로운 개념이 기존의 개념과 이질성이 클수록 인지구조가 조절되는 변화의 정도는 더 커질 것이고, 그로 인한 사고의 흐름과 생각의 변화는 너무도 자명할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말한 여행 중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는 풍경이 사고의 흐름을 빠르게 한다는 말의 의미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기존의 것들과 더욱 많이 다른 새로운 것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면 그 변화의 폭과 정도는 더 커질 것이고, 그로 인해 사고의 흐름과 생각의 변화는 자명할 것입니다. 그가 언급한 여행 중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는 풍경이 사고의 흐름을 빠르게 하는 원리도 단순히 빠르기 때문만이 아니라 매번 보던 익숙한 풍경이 아닌 새로운 풍경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라떼보다 민트초코
여기 계신 선생님들, 그리고 저처럼 말하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직업의 경우 이야기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매년 비슷한 교육과정과 교과서로 수업을 하지만, 실제 수업 환경은 바뀌기 마련입니다. 매번 똑같은 내용으로 수업을 준비하더라도 실제 수업은 교실마다, 학생마다, 심지어는 계절이나 수업하는 시간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특히, 저처럼 수업을 구조적으로 준비하는 편이 아니라 중간중간 맥락과 사태에 따라 즉흥적으로 수업을 재구조화 경우에는 이야기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지리 과목 특성상 수학이나 영어에 비해서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긴 합니다. "나도 여행 참 좋아하는데, 세계지리나 여행지리를 가르치면서 내 여행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이 얼마나 좋아할까요?"라고 부러워하시는 영어 선생님이 계십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학생들이 여행 이야기라서 좋아할까요? 지리 과목이라서 좋아할까요? 또한 제가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친다고 해서 딱히 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듣는 사람도 흥미로운 들을만한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분하고 재미없고 나와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는 누구나 듣기 싫어하기 마련입니다. 또한 요즘은 조금이라도 수상하거나 의심스러운 것은 아주 작은 노력을 들이면 몇 초만에 팩트를 내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말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교사의 경우, 예전처럼 스피커(Speaker)의 권위나 지식보다는 매력과 유니크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들어봤던 이야기, 사골처럼 우려낸 이야기, 나와 전혀 상관없는 재미없고 지겨운 '라떼'같은 이야기는 사랑받지 못합니다.
학생들을 교사의 이야기를 가만히 앉아서 듣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 중 흥미 있고,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선택할 수 있는 적극적인 소비자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트초코'처럼 톡 쏘면서도 상긋한, 달콤하면서도 트렌디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사전 속 개념과 지식보다는 스토리텔링과 이를 풀어내는 매력적인 플롯이 중요합니다. 민초단의 마음을 한 번에 확 사로잡은 민트초코의 맛과 향은 마치 혀에 짜릿한 자극을 줘서 새로운 자극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민초단은 아니지만 민트 초코가 어떤 맛인지는 압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
만약 '새로운 이야기가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낸다'라는 전제가 맞다면, 여러분은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란 말이야?' '어떤 이야기가 라떼같이 않고 민초같은 이야기인 거야?' '그리고 너의 이야기가 진짜 민트초코같은 이야기라고 어떻게 확실할 수 있어?' 사실 저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하지는 못 합니다. 저의 이야기 중심 수업이 '학생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저는 확실하게 학생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준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공교육에 발 담그고 있는 교사 입장에서 사교육 시장의 1타 강사처럼 수치상으로 보이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년말 교원평가에서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이는 그저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소소하지만 소중한 기쁨으로 여길 뿐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야기가 있는 수업이 그렇지 않은 수업에 비해 학생들의 평가와 스스로의 주관적 평가가 좋다는 것을 느낍니다. 개념과 사례의 나열, 그리고 정리와 문제풀이를 하는 수업보다 서사와 스토리텔링, 그리고 질문과 답변으로 재구성되는 수업이 저에게도 잘 맞고, 또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수업을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이 좋을까요? 처음 스토리텔링 형식의 수업을 시작한 2012년 9월 이후로, 약 10년 동안 이렇게 썰을 풀다 보니까 적절한 이야기들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저의 인생에 대해서 서사적으로 털어놓기도 했고, 지난 방학에 떠났던 여행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조금은 특이했던 학창 시절 이야기나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이야기, 그리고 제 이야기 중 가장 반응이 좋은 이야기 중하나인 Love story in Italy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도중 새롭게 이야기가 재구성되어 다음 수업의 또 다른 이야기감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수업을 하다 보니 내가 적재적소에 맞춰서 이야기를 꺼내놓는 대단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그 이야기가 적힌 벽에 하얀 분필로 둥글게 여러 개의 원을 그려 마치 나의 이야기가 화설처럼 절묘하게 과녁 한가운데 명중한 것처럼 꾸며댈 뿐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 이야기들의 모든 순간, 소소하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차곡차곡 소중하게 기억했다가 적절한 상황에 풀어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면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내가 관심 있는 이야기
2. 듣는 사람이 관심 있는 이야기
3. 인상 깊었던(Critical) 순간의 이야기
첫 번째, 내가 관심 있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이 관심 없어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화자와 청자가 라포가 형성되어있지 않은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관심 있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 관심 있어 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 비로소 말에 에너지와 열정이 담기게 되고, 역설적으로 그 에너지가 온전히 청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하는 사람의 내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메시지와 감정 전달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듣는 사람이 관심 있는 이야기는 최근의 가장 핫한 이야기이거나 특정 화자가 관심 있어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 초반의 make-up 과정을 생략하거나 간소화할 수 있고, 또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주목을 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화자인 나의 관심과 청자인 학생의 관심사가 겹치면 가장 좋겠죠. 그래서 학생-교사 간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듣는 사람들의 성별이나 나이, 직군에 따라 '어떤 이야기를 할까?'정도의 고민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교적 젊은 남초 집단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테슬라 다음 차도 너로 정했다'와 같은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나, 'Memoirs Of A Gay'와 같은 조금은 자극적인 주제를 선정합니다. 그리고 여고나 여대에서 강의를 한다면 'Love story in Italy'나 '꼬부기를 처음 만난 날'과 같은 로코 스타일의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세 번째,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인상 깊어서 잊을 수 없었던 사건이나 인생의 방향을 틀 정도의 결정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는 말하는 사람의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관심이 없을 수가 없고, 그래서 말을 하면서 화자의 열정과 에너지가 묻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겪는 입시, 직업, 연애, 결혼과 같은 결정적인 선택들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내용들이기에 청자들의 관심도 웬만해서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이야기는 스스로 창업한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고 떠난 춘천-여수 도보여행 이야기 '할 수 있을 텐데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나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내가 교사가 된 이유'와 같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공중에 떠다니는 말과 손에 잡히는 글
평소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직업 군이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설령 교사의 경우라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아쉬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썰 풀어서 뭐 어쩌겠다고?
스스로 관심 있어하는 이야기와 학생들이 관심 있어할 만한 이야기, 그리고 결정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10년 정도 해왔습니다. 생각해보면 교사가 되기 전에도 술자리에서, 여행을 하면서, 그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해온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무수히 많이 늘어놓다 보니 듣는 사람들의 반응과 호응에 의해서 이야기의 조각들은 적절하게 부가되거나 소거되었고, 그럴수록 이야기는 내가 되었고 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체화된 이야기를 공중에 떠다니는 말이 아닌 손에 잡히는 책의 형태로 구체화시키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결과물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욕구일 수도 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 학생들, 친구들 뿐만이 아니라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감화시킬 수 있는지, 한 마디로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먹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나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월간 '새교육'에 '세계로 떠난 지리교사'라는 주제로 틈틈이 그동안의 여행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는 나의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글로 옮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기회였습니다. 나의 말들이 글과 사진을 통해 손에 잡히는 잡지의 형태로 출판되고, 인터넷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교사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독자층이 한정돼있고, 인터넷을 겸하긴 하였지만 잡지의 구독자 수가 매우 적었습니다. 또한 어쨌든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잡지의 특성상 표현과 내용은 수위가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 12월부터는 아예 20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해왔던 여행에 대한 기억을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이를 장편의 글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보여주기 위한 글이었기 때문에 아예 초고를 블로그에 공개로 썼고, 어느 정도 틀이 잡힌 이후에는 작가 플랫폼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한 후, 글을 올리고 30여 편의 에피소드가 쌓인 이후에는 브런치 북으로 엮었다. 책의 이름은 '여행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브런치북 '여행이 부르는 노래' 소개여행을 하면서 보고, 만나고, 느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그 속에 항상 음악이 있었고, 노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여행이 부르는 노래'로 정했습니다. '여행이 부르는 노래'에는 각각의 여행마다 어울리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읽다 보면 여행, 그 순간의 분위기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여행이 부르는 노래'에는 여행의 정보나 지식보다는 이야기가 있고, 음악이 있고, 순간순간 느꼈던 생각들, 그리고 로맨스가 있습니다. Let`s play the journey!
평소 해왔던 이야기들이 하얀 모니터에 검은 활자를 채워가며 하나의 글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가끔씩 누군가 글을 읽고 딱 내가 의도했던 대로 공감하는 반응을 볼 때는 전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 이 맛에 작가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나의 이야기들을 공개된 플랫폼에 정리된 형태로 남기다 보니까 어떤 글은 포털 메인 페이지에 떠서 조회수가 몇 만을 넘기기도 했고, 또 어떤 글은 콘텐츠 제작 의뢰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6월 현재 '여행이 부르는 노래는' 출판이 확정되어 1차 교정작업을 마치고 2차 교정작업에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나만의 Brand로 Blending
이렇게 나의 이야기가 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으며 글을 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는 이것을 조금 더 발전시켜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글로는 정리를 해봤으니 나의 이야기를 글이 아닌 다른 형태로 나만의 Brand를 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전달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부캐 '지리는 강선생'입니다.
지리교육의 금손 이나리 선생님의 작품 지리는 강선생!
우선 '지리는 강선생' 브랜드를 활용하여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를 새롭게 개편했습니다. 기존의 여행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봤습니다. 장소성에 대한 주제로 'Memories on the map' 매거진을 만들어봤고,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음악, 여행, 지리에 대한 이야기도 '일상의 지리학'이라는 주제로 엮어봤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프로젝트 앨범 '39'도 일정의 지리는 강선생 캐릭터의 Spin-off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음악이니까 GKT(Geography is Kang Teacher)입니다.
지금은 영상의 시대. 이제 궁금하면 네이버가 아니라 유튜브에서 검색하는 것이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고, 동네 조그만 비디오 가게에서 시작한 '넷플릭스'를 비롯해서 수많은 ott기업의 콘텐츠를 여러분들의 휴대폰과 태블릿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글로 정리된 나의 콘텐츠도 이제 유튜브에 업로드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리는 강선생'이라는 브랜드는 유튜브 채널 이름입니다.
본격적으로 업로드한 콘텐츠는 그동안 말과 글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던 도보여행 영상입니다. 2012년 여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떠났던 '춘천→여수 도보여행'의 다이내믹한 스토리가 영상으로 남아있지 않은 것이 썰을 풀 때마다 매번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도보여행을 마친 후에 고성에서 부산까지 가기로 했던 약속도 9년째 못 지키기도 있다는 사실도 항상 아쉬웠습니다. 약속도 지키고 콘텐츠도 촬영할 겸, 2021년 여름방학 당일 고성으로 떠났습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이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남겨야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인 고프로를 들고!
그렇게 폭염을 뚫고 17일 동안 걸어서 고성에서 부산까지 700km를 완주했습니다. 너무도 행복했던 뜨거운 여름날의 순간들을 조금이나마 효과적이면서도 재미있게 보여주고 싶어서 며칠밤을 새워가며 영상을 편집했다. 걸으면서 새로운 콘텐츠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잘하고 좋아하는 '걷기'와 직업적 정체성인 '교사', 그리고 대학 캠퍼스뿐만 아니라 대학교가 있는 도시와 주변에 대해 궁금해할 것 같은 예비 대학생들을 위한 콘텐츠 '걸어서 대학가자'를 기획과 동시에 촬영했습니다. 그 외에도 전기차 콘텐츠 'TESLIFE'에는 테슬라와 아이오닉 5를 몰면서 경험했던 전기차에 대한 소소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서 성과가 그렇게 좋지 못했던 도보여행 영상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좀 더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주제를 겸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와 학생을 주제로 하되, 그렇다고 일반적인 선생님의 Vlog가 아닌 좀 더 색다른 주제를 고민해봤고, 그렇게 탄생한 영상이 '선생님이 교복 입고 출근하면 생기는 일'입니다. 이 영상은 인스타그램 릴스 기준 조회수 약 150만 회가 나왔습니다. 이 영상 덕분에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세종에 있는 중학생과 줌으로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업로드하는 과정은 이야기를 하고 글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창조의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일련의 과정 자체가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고, 영상에 대해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펼치는 새로운 장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지리는 강선생'이라는 브랜드(Brand) 통해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글들을 브랜딩(Blending)해서 새롭게 탄생시켰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창작물들을 기획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영상 편집, 캘리그래피, 드로임과 같은 새로운 영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집요하게 몰입하면서 결국은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다시, 이야기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일상을 보여주고, 발랄하고 이색적인 이야기는 또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줍니다. 가벼운 농담 같은 아이스 브레이킹은 낯선 분위기 가운데 등장하여 그 무게감을 해소시켜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야기는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뇌리 속에 파고든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는 마치 잔잔한 유튜브 알고리즘에 영향을 주는 하나의 검색어처럼 한 사람의 생각을 산뜻하게 바꿀 수 있고, 이 작은 변화는 또 다른 획기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1998년 초, IMF 위기 극복을 우선 과제로 부여받은 김대중 대통령이 세계 각국의 경제 전문가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에게 지금 시점에서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세 가지가 무엇인지 물었고, 재일교포 손정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Broadband! Broadband! Broadband!"
20세기가 저물고 21세기가 시작되는 거대한 하드웨어의 시대에서 말랑말랑한 소프트웨어의 시대로의 전환되는 시점에 Broadband(초고속 인터넷)의 중요성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한 그의 혜안이 놀랍기도 하고, 이를 그대로 정책에 옮겨 현재 IT강국 대한민국의 초석을 마련했던 대통령의 추진력이 감탄스럽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다포스 포럼, 4차 산업혁명, AI, 빅데이터와 같은 낯설지만 익숙한 단어들이 마구 쏟아지는 지금 바로 이 시점에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대변혁 속 학교 현장에서 수업을 하는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새롭지만 무섭고 그래서 약간은 에일리언 같기도 한 저것들에게 인간이 대체되지 않으려면 과연 어떠한 것들을 갖추어야 할까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Story! Story!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