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행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중 유럽을 가장 좋아하고 또 가장 많이 가봤습니다. 여권 뒷면에 찍혀있는 국가 도장 중 절반 이상이 유럽 국가들입니다. 프랑스 파리는 세 번, 이탈리아 로마는 네 번, 그리고 영국 런던은 무려 여덟 번이나 가봤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페인은 유럽 여행을 그렇게나 많이 가는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저의 여행 취향이 새로운 곳을 가보는 것보다 한 번 가봤던 곳 중 좋았던 곳을 더 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도 스페인은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2018년 여름, 이베리아 반도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대서양과 맞닿아있고 남동쪽으로는 지중해를 품고 있는 지역으로, 과거 대항해시대에는 두 나라 모두 세계를 누비는 해양왕국이었답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색적인 기후가 나타납니다. 바로 지중해성 기후인데요. 우리나라는 여름에 비가 많이 오고 겨울에는 비가 적게 오는데 비해,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는 이곳은 여름은 매우 건조하고 겨울에는 비가 많이 옵니다. 그래서 여름의 강렬한 햇빛과 건조한 기후 덕분에 이곳에서는 포도, 오렌지, 레몬과 같은 과일들이 맛이 좋고 잘 자란답니다.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는 국가들에서 와인이 유명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죠. 또한 요즘은 한국에서도 많이 쓰이는 올리브기름을 만드는 올리브 나무도 이 지중해성 기후 지역에서 잘 자랍니다.
지중해성 기후에서 잘 자라는 올리브 나무
자 이제 스페인으로 떠나기로 했으니 어느도시로가는지가중요하겠죠. 보통새로운곳으로 여행을 할 때 처음에는 그 나라의 수도로가는경향이있습니다.일반적으로 수도가 그 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이다 보니 볼거리도 가장 많기 때문이겠죠. 스페인의수도는마드리드입니다.하지만저는 2의도시이자카탈루냐지방의중심도시바르셀로나의 매력에끌렸습니다.
이유는여러가지가있습니다. 우선바르셀로나에는'FC바르셀로나'라는 세계적인 축구팀의 연고지입니다. 물론 바르셀로나의 라이벌인 '레알마드리드CF' 역시 세계적인 축구팀이긴 하지만, 뭔가 마드리드 중앙 정부에 반감을 갖고 있는 카탈루냐 지방을 대표한다는 'FC 바르셀로나'팀이 좀 더 끌렸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손꼽히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리오넬 메시가 뛰고 있던 팀이기도 하고요.
바르셀로나는 가우디라는세계적인 건축가의아름다운 작품들이 거리 곳곳에 가득한 도시이기도합니다. 그중에서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미처 완공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가우디의 필생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두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도 저를 바르셀로나로 이끌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중심 거리 라람브라
또한 바르셀로나는 제가가장 좋아하는소설책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의배경인스페인남부안달루시아 지역을 함께여행하기에도마드리드보다 상대적으로 접근성이좋았습니다. 그렇게저는한여름이 막 시작되려고 하는 여름날스페인바르셀로나로훌쩍떠났습니다.
2. 바르셀로나는 왜 마드리드를 싫어할까?
프랑스파리를경유해서스페인바르셀로나로향하는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창밖으로유럽이품은바다, 지중해와프랑스와스페인의자연적인국경이된피레네산맥이보이네요.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북동부에 위치한 까탈루니아 주에 주도입니다. 북쪽으로는 피레네 산맥, 동쪽으로는 지중해와 맞닿아있는 카탈루냐 지역은 스페인 중앙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지중해와 피레네 산맥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국내 총생산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지역으로 단순히 경제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독립적인 자치권을 갖고 있었으며, 문화, 언어, 역사가 남다르다는 것에 자긍심이 뛰어납니다. 이러한 이유로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운동을 하려는 요구가 많다고 해요. 특히 스페인 중앙 정부의 수부인 마드리드와는 앙숙의 관계인데, 이는 스페인 프리메라 리그의 대표적인 라이벌전,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 더비'로 표출됩니다.
엘 클라시코 더비를 가장 강렬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호날두 이전까지 포르투갈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루이스 피구'의 이적 사건입니다. 2000년 시즌을 앞두고 FC 바르셀로나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루이스 피구가 숙적 레알 마드리드 CF로 전격 이적을 한 것이죠. 팀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가 팀을 떠나는 것도 팬들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텐데 팀의 최대 라이벌이이자 카탈루냐 지역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마드리드 지역을 상징하는 팀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은 극도로 분노했습니다. 피구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후 처음으로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누 캄프에서 벌어지는 엘 클라시코 더비. 성난 바르셀로나 팬들은 그에게 '배신자' '유다'와 같은 모욕적인 말들을 쏟아부었고, 심지어 운동장으로 돼지 머리를 잘라서 집어던지기도 했답니다.
이처럼 카탈루냐 지역 사람들은 스페인의 다수 민족인 카스티야인과 자신들을 구별하고 하나의 독립 국가를 세우기를 꿈꿉니다. 당연히 마드리드 중앙 정부를 이를 좋게 보지 않겠죠. 그래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의 사이는 좋지 않고, 그 감정의 대리전을 축구로 하고 있는 셈이죠. 카탈루냐의 주를 상징하는 깃발은 빨간 선과 주황선이 여러 번 교차하는 디자인인데, 이 깃발에 파란색 삼각형 하얀 별을 추가한 것이 바로 카탈루냐 독립을 상징하는 '에스텔라다'입니다. 바르셀로나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집집마다 이 깃발들을 걸어놓는데 까탈루니아 독립을 좀 더 강경하게 지지하는 사람은 이 '에스텔라다'를 걸어놓는다고 합니다.
까탈루니아 깃발과 에스텔라다 깃발
카탈루냐의 독립을 상징하는 깃발이 번갈아 걸려있는 골목을 지나 카탈루냐의 심장과도 같은 축구팀 FC 바르셀로나, 바르샤의 홈구장 누 캄프로 향했습니다. 누 캄프는 8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축구경기장으로 아쉽게도 7월은 아직 리그가 개막하지 않은 시점이어서 경기는 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실제 축구 선수들이 사용하는 락커룸과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인터뷰하는 프레스 센터와 실제 축구 경기를 펼치는 그라운드와 관중석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경기장 투어를 신청했습니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자신의 마지막 위대한 작품으로 남기려 했지만, 아쉽게도 이 놀라운 건축물을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한창 짓던 도중 가우디는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의 유명세에 비해 너무도 허름한 옷차림 때문에 아무도 이 위대한 건축가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고 해요. 그는 결국 숨을 거두었고, 바르셀로나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을 넘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건축가로서는 매우 허망한 죽음이었습니다.
비록 가우디는 끝내 자신의 계획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후대 예술가들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축을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우디가 직접 지은 성당의 전면과 건축가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가 만든 후면의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전면은 마치 촛농이 흘러내리는 듯 물결치고 있는 무늬가 인상적인데, 그런 불규칙스러움 속에서도 신선한 규칙과 탁월함 아름다움이 돋보입니다. 후대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후면은 전면과는 달리 상대적인 직선을 강조하면서도 부드러움이 인상적이었어요.
바르셀로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을 보고, 역시 바르셀로나 곳곳에 남아있는 안토니 가우디의 흔적을 따라 걸었지만 왠지 모르게 허전했습니다. 아마도 직접 축구 경기를 보지 못하였고, 가우디 필생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완공된 것 역시 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비록 스페인은 제가 유럽 중에 가장 나중에 여행한 국가였지만, 누 캄프에서 축구 경기를 보고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완성된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꼭 방문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다음 여행지 안달루시아의 그라나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