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뷔페, 요구르트, 그리고 디자인과 레고의 나라
몇 해 전 초여름, 덴마크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는 친한 동생에게서 연락을 받았어요. 이번 여름 방학에 덴마크로 놀러 오라고요. 사실 덴마크를 비롯해서 북유럽 국가들은 물가가 비싸기로 악명이 높고, 그래서 그때까지는 한 번도 이곳으로 여행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그 친구의 말이 이끌려 저는 그 순간 코펜하겐 왕복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즉흥적인 덴마크 여행이 시작되었어요.
공항으로 마중 나온 동생은 저를 코펜하겐 시내까지 안내해 주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덴마크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물어봤어요. 저는 '덴마크 요구르트'와 '바이킹'이 떠오른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평소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았던 저는 덴마크가 디자인으로도 유명하지 않냐고 되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덴마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 '뷔페'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외에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완구 기업 레고를 비롯하여 안데르센으로 유명한 동화까지 모두 알고 보면 'Made in Denmark'가 붙어있어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서유럽의 경계에 위치한 작지만 강한 나라 덴마크에 이렇게 유명한 것들이 많은지 신기해하면서 여행을 시작하였어요.
북유럽에 위치한 덴마크는 인구 592만 명이고,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를 제외한 유럽 본토의 면적이 43,094㎢로 대한민국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나라예요. 하지만 덴마크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있고 1인당 GDP가 대한민국의 2배가 넘을 정도로 매우 잘 사는 나라예요.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와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데 실제로 덴마크 사람과 노르웨이 사람이 만나면 단어와 문법이 다른 사투리 정도로 각자의 언어를 이해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해요. 또한 빨간색 바탕에 왼쪽으로 치우진 하얀 십자가로 이루어져 있는 덴마크 국기는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국기에도 영향을 줬는데, 이는 과거 덴마크가 나머지 국가들을 식민지배 했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코펜하겐 중심 거리를 걷다 보니 기념품 샵에서 유독 바이킹 모자와 장신구가 눈에 띄네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의 월드컵 응원 모습을 보면 공통적으로 바이킹 복장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죠. 그것은 자신들이 바이킹의 후예임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이렇게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 바이킹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이곳의 기후와 지형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답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은 대서양에서 연중 부는 서늘한 바람, 편서풍의 영향을 받아 일 년 내내 습윤하고 흐린 날씨가 지속됩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곡식이 한참 자라날 여름에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남부 유럽보다 농사가 잘 되기는 힘들겠죠. 또한 북위 55도 이상에 위치하고 있는 이 지역은 과거 빙하의 영향을 받아서 토양이 매우 척박합니다. 이렇게 농사를 짓기 너무나도 안 좋은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는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하였고, 그 대신 배를 타고 다른 국가들에 침입하여 약탈하는 바이킹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키가 크고 힘이 센 이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들은 가까이는 발트해와 북해부터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 그리고 멀리는 지중해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어요. 바이킹의 세력이 가장 강력했을 당시에는 프랑스왕이 북서부부의 노르망디 지역을 아예 바이킹들에게 떼어주기까지 했답니다. 또한 바이킹들의 이런 무차별적인 약탈로 위기를 느낀 농민들은 근처의 강력한 영주에게 토지를 바치고 주종관계가 되었습니다. 바이킹들의 활약으로 10세기 경 유럽에 봉건제도가 발달하게 된 계기가 된 셈이죠. 저는 그 친구와 기념품 샵에서 바이킹 모자를 쓰고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덴마크 요리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나요? 최근에는 미슐랭에도 등재되는 덴마크 요리가 늘어났지만 과거 덴마크의 대표 음식이라고 하면 뷔페를 들 수 있습니다. 네 긴 테이블에 다양한 음식들을 놓고 접시에 떠 놓고 먹는 바로 그 뷔페 맞아요. 이 뷔페가 대표적인 덴마크의 음식이 된 이유도 바로 바이킹 때문이에요. 바이킹은 우람한 체격과 강력한 힘으로 빠른 배를 타고 여러 곳을 약탈했고, 다양한 곳에서 뺏은 음식을 긴 테이블에 놓고 먹었던 것에서 바로 우리가 지금 먹는 뷔페가 시작된 것이죠. 그래서 지금도 뷔페식당의 이름 중 ‘바이킹’이 들어간 곳이 많은 것도 그 이유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친구는 뷔페의 본고장에 왔으니 오리지널을 소개해 주겠다며 평소 자주 간다는 식당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왠지 뷔페의 원조에서 먹으니 더 맛있는 것 같네요. 큼지막한 고기와 신선한 채소를 접시에 듬뿍 담아 바이킹의 후예처럼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자 이제 식사도 푸짐하게 했으니 후식을 먹어야죠. 여러분들도 편의점에서 덴마크 요구르트 한 번쯤 본 적 있을 거예요. 덴마크가 요구르트, 우유, 치즈 같은 유제품이 발달하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이곳의 지형과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햇빛이 잘 들지 않은 서늘한 기후와 빙하로 척박해진 이곳은 농사가 매우 불리하다고 이야기했죠? 바이킹의 시대가 끝나고 이곳 스칸디나비아 사람들도 약탈대신 다른 먹거리를 찾으려고 애썼어요. 바로 소를 키우고 그 소에서 짠 우유와 우유를 발표해서 만든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낙농업이 발달하게 된 것이죠. 유럽에서 낙농업이 발달한 지역의 공통점이 바로 날씨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안 좋다는 것이에요. 바이킹들이 약탈을 일삼아서 프랑스 왕이 영토를 떼어준 프랑스 북서부 지역, 노르망디 역시도 프랑스에서 가장 날씨가 안 좋은 지역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바이킹의 후예 덴마크인들은 불리한 기후 환경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자신들만의 산업과 문화를 만들어낸 셈이죠.
코펜하겐 시내를 걷다 보니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섞여있습니다. 코펜하겐의 랜드마크인 시청사 건물에서는 고풍스러운 독일 건물과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고, 또 다른 랜드마크 뉘하운에는 폭이 좁은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은 마치 네덜란드와 비슷한 모습이어서 인상적이었어요. 반면 코펜하겐 항구 근처 강변에는 현대적이면서 특색 있는 건물들이 많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특히, 강변에 위치한 덴마크 왕립 도서관 건물의 외부는 검은색 유리와 벽돌로 이루어져 있어요. 30도 정도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이 검은색 건물은 기울어진 직선의 형태임에도 신기하게 안정적으로 느껴졌고 확실하게 눈을 사로잡았어요. 내부는 대조적으로 깔끔한 하얀색 벽과 파도처럼 물결치는 곡선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나무 인테리어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왕립 도서관 바로 옆에 위치한 덴마크 디자인 센터 건물 역시 예사롭지 않습니다. 불투명한 하얀색 유리와 짙은 청록색 유리로 이루어진 외벽은 마치 블록이 불규칙하게 쌓여있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역시나 불안정함보다는 안정감이 느껴졌어요. 내부는 디자인 센터답게 특색 있는 전시물이 많았는데요. 나무, 바다와 같은 자연이 인공적인 조형물과 조화를 이룬 전시품부터 완전히 미래 지향적이고 특색 있는 전시품까지 매우 다양했어요.
평소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저는 문득 덴마크의 건물들, 그리고 디자인이 다른 유럽과 다른지 궁금해졌어요. 덴마크 디자인은 과거 유럽의 아름다움만을 강조했던 로코코 양식에서 벗어나 실용성에 초점을 두면서 시작했다고 해요. 이는 덴마크가 다른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유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겠네요. 또한 피오르, 빙하, 거친 침엽수림과 같은 스칸디나비아의 척박한 자연환경도 덴마크 디자인에 영감을 주었다고 해요. 과거부터 한자 동맹의 영향으로 수공업에 강점이 있던 덴마크의 기술력에 이러한 실용성과 자연 환겨이 조화를 이루면서 덴마크 디자인의 독특함이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죠.
덴마크를 비롯하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와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유독 실내 디자인이 발달하게 된 배경도 어찌 보면 이곳의 자연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이 국가들은 북위도에 위치하고 있어서 여름이 짧고 겨울이 매우 춥고 길죠. 아무래도 실외보다는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더욱 실내 인테리어에 집중을 하게 된 것이죠. 유독 북유럽에서 가구나 인테리어가 발달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많은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혹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장난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자그마한 블록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들 수 있는 레고예요. 이 세계의 어린이들의 장난감 레고의 고향이 바로 덴마크랍니다. 덴마크의 작은 마을 빌룬드에서 목수였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이 만든 레고는 덴마크어로 '재미있게 놀다'라는 뜻을 가진 'LEG GODT'를 줄인 것이에요. 초기에는 나무를 깎아 블록을 제작하였으나, 이후 플라스틱으로 대량생산을 하며 블록 완구에서는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었어요. 최근 한국에서도 개장한 레고랜드가 처음 시작된 곳도 당연히 레고의 고향 덴마크예요. 아쉽게도 레고랜드가 위치한 빌룬은 코펜하겐에서 3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있어서 갈 수 없었어요. 대신 세계의 놀이공원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티볼리 공원에 가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티볼리 공원은 무려 100년이 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만든 롤러코스터와 안데르센 동화를 재현한 이야기 기차가 유명합니다.
가장 높은 산이 100m가 채 안될 정도로 덴마크는 거의 대부분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약간 벗어나 코펜하겐의 랜드마크 인어공주 동상으로 갔어요. 인어공주는 세계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죠.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인어공주 외에도 미운오리새끼, 벌거숭이 임금님 등 다양한 동화작품을 남겼어요. 세계의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노는 레고와 세계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즐겨 있는 동화가 모두 덴마크 출신이라는 게 우연치고는 참 재밌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코펜하겐에서의 마지막 밤은 동생이 덴마크에서 만난 친구들을 소개해줘서 함께 파티를 벌였어요. 덴마크 친구들을 다들 한국의 다이내믹함이 부럽다고 해요. 최근 K-Pop이 이곳 덴마크에도 인기를 끌면서 한국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서도 다들 관심이 많네요. 그래서 이날은 특별히 삼겹살을 함께 구워 먹었답니다. 한참 얘기를 나누던 중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언젠가 한국에 방문해서 음악 방송에서 BTS를 직접 보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저는 반대로 많은 한국의 대학생들은 사회보장제도가 매우 잘 되어있는 안정적인 덴마크에서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이야기해 줬어요. 그 말을 들은 덴마크 대학생들을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여기는 너무 안정적이어서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고요. 아무리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더 부럽나 봅니다.
즉흥적으로 떠난 덴마크 여행은 크루즈와 산악열차를 타고 떠나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 이어졌어요. 구체적인 계획과 예약 없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막 성수기에 접어든 이곳에서 숙소를 잡는 것이 무척 어려웠어요.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북유럽의 물가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즉흥 덕분에 예상치 못했던 이벤트를 겪기도 했고, 우연히 만나게 된 다양한 사람들과 친해지는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스칸디나비아의 거친 자연환경과 그와 대비되는 너무도 소박한 사람들. 언젠가 다시 이곳 덴마크, 스칸디나비아를 여행하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