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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리는 강선생 Jan 25. 2023

맨체스터로 떠나는 축구 여행

맨체스터와 리버풀이 동지에서 적으로 바뀐 이유

저는 영국을 참 좋아해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첫 유럽 여행을 시작했던 곳이 영국 런던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런던은 오페라의 유령이나 레미제라블과 같은 뮤지컬이 시작된 도시이면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세계적인 유명한 팀들의 연고지이기도 해요. 대한민국의 축구 영웅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트넘 핫스퍼 팀도 런던을 연고지로 하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가 어디예요?라고 물어보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런던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 떠나볼 곳은 런던이 아니라, 영국의 북서지방에 위치한 맨체스터예요. 이유가 뭐냐고요? 저는 맨체스터에서 축구 경기를 보고 싶었거든요.

런던 사보이 호텔 앞 거리에서
런던 소호거리에서 만난 대한민국의 자랑 손흥민 선수


영국은 유럽 대륙의 서쪽에 위치한 섬나라예요. 우리가 흔히 영국을 잉글랜드로 알고 있는데, 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구성되어 있는 국가예요. 영국의 면적은 243,891 km²로 한반도의 면적과 거의 비슷하고, 인구는 6,800만 명으로 대한민국보다 많아요. 수도이면서 영국 최대 도시 런던은 잉글랜드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반면 맨체스터는 잉글랜드 북서부인 그레이터 맨체스터주에 위치하고 있어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네 개의 지역으로 구성된 영국


맨체스터는 과거 석탄공업이 활황을 이루었던 시기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였어요. 맨체스터는 주변에 풍부한 석탄 자원을 바탕으로 산업 혁명 시기에 많은 공산품을 생산했답니다. 맨체스터에서 생산한 제품을 다른 국가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항구가 필요하겠죠? 내륙에 위치한 맨체스터는 바다와 접해있는 항구 도시 리버풀과는 50km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아요. 그렇게 맨체스터에서 생산된 제품들은 가까운 리버풀 항구를 통해 수출되었기 때문에 리버풀도 덩달아 엄청한 호황을 누리게 되었답니다. 실제로 리버풀은 항구도시로서 대영제국시대에는 전 세계 무역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고 해요. 영화 타이타닉에서 미국으로 출발하는 거대한 배 타이타닉이 출발하는 항구가 바로 리버풀 항이랍니다.

해질 무렾 리버풀 항구와 머지 강


이렇게 상생의 길을 걸어오던 두 도시의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틀어지고 맙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항구의 물류비용이 부담이 된 맨체스터가 이를 절감하기 위해서 리버풀을 거치지 않고 바로 바다로 수송할 수 있는 운하를 건설하면서부터예요. 원래는 맨체스터로부터 기차로 운반되어 리버풀 항에서 수출되던 물자들이 운하를 통해 다른 나라로 바로 수출이 되기 시작된 것이었죠. 당연히 이 맨체스터 운하는 리버풀에게 크나큰 타격이 되었겠죠. 그렇게 두 도시 간의 적대감은 지역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 FC 간의 축구 대리전으로 표출되기 시작됩니다. 현재 두 팀 간의 축구 경기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도 대표적인 축구 라이벌 전으로 손꼽혀요.

맨체스터와 리버풀을 동지에서 적으로 만든 맨체스터 운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의 트래포드를 연고지로 하는 축구팀이에요. 트래포드는 맨체스터 시내와 5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 역시 맨체스터를 연고지로 하는 맨체스터 시티와는 지역 라이벌이랍니다. 현재(2023년 1월 25일 기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 4위로 최고라는 이름이 무색한 팀이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최다 우승팀이자, 잉글랜드에서는 유일하게 트레블(리그 우승, FA컵 우승,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룬 팀으로 잉글랜드를 넘어 세계 최고의 축구 명문 구단으로 손꼽힌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없이 많은 우승 트로피


제가 첫 유럽 대륙을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돈 후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오직 맨체스터에서 축구를 보기 위해서였어요. 마침 제가 유럽 여행을 한 시기는 지금은 해외 축구 아버지로 불리는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뛰고 있던 2006~2007 시즌이었었어요. 저는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유럽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박지성 선수 이름과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구하기 어렵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구장에서 열리는 경기 티켓도 구했습니다. 이제 제가 맨체스터에 도착하는 그날 경기에 박지성 선수가 선발 출장만 하면 됩니다. 벌써부터 떨리기 시작하네요.


런던에서 맨체스터로 빠르게 달리는 기차 밖 풍경은 한겨울인데도 초록빛이에요. 이렇게 푸른 잔디를 보니까 일 년 내내 이렇게 좋은 상태의 잔디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가 탄생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2시간가량 달린 기차는 맨체스터에 도착했습니다. 맨체스터에 도착해서 처음 느낀 인상은 도시가 온통 회색빛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런던에 비해 어둡고 칙칙한 건물이 많이 눈에 들어왔고, 도시가 쇠퇴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과거 석탄시대에 공업으로 잘 나가던 도시가 쇠퇴한 것을 눈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작은 도시에 세계적인 명문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온통 회색빛이었던 맨체스터


세계적인 축구의 도시답게 맨체스터 거리에서는 축구베팅 가게들이 눈에 많이 띄었어요. 축구 베팅은 축구 경기 결과로 당첨금을 얻는 복권 같은 것이에요. 확률이 높을수록 배당률이 낮은데 예를 들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강팀이니까 ‘맨유의 승리’는 배당률 1.2배, 당시에도 세계적인 선수였던 ‘호날두가 첫 골을 넣는다’는 배당률 2배, 이런 식이었죠. 하지만 제가 맨체스터에 온 이유인 ‘박지성 선수가 첫 골을 넣는다’의 배당률은 무려 1:250이었어요. 이걸 보고 '오늘 경기에서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기는커녕 출전하기도 어렵겠구나!'라고 생각했답니다. 저는 피시 앤 칩스로 점심을 먹은 후 트램을 타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이 있는 트래포드로 향했어요.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에 가까워질수록 빨간색 맨유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점점 늘어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은 외관과 내부가 모두 웅장하면서도 명문 구단의 전통이 느껴집니다. 초록색 운동장과 1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좌석에 앉아 경기가 시작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장엄한 음악과 함께 장내 아나운서가 선발 출전 선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어요. 세계적인 선수들의 이름이 하나씩 하나씩 불려집니다. 그리고 장내 아나운서가 크게 소리쳤어요. “No.13 Jisung Park!!” 저는 너무도 기쁘고 반가웠어요. 그렇게 기다리던 박지성의 첫 선발 경기가 바로 오늘이라니! 그렇게 극적으로 경기는 시작했고 응원가 ‘Glory glory Man United’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습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는 TV에서 보던 것처럼 매우 박진감 넘치게 진행되었고 시간은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갔어요. 그러던 중 전반 13분 박지성 선수가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고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골!!! 저는 너무 기뻐서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어요.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박지성 선수는 이어서 결정적인 어시스트로 두 번째 골을 만들었답니다. 세 번째 골에도 기여를 하는 등 90분 동안 최고의 활약을 펼친 박지성 선수는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선발 출전한 대한민국의 자랑 박지성 선수


경기를 마친 올드 트래포드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차가운 빗방울도 승리의 열기를 식힐 순 없었어요. 빨간 옷을 입은 팬들로 가득 찬 트램은 맨체스터 시내로 향하는 내내 들썩들썩거렸고, 한 청년의 입에서 시작된 승리의 찬가 'Glory glory Man United'는 어느새 경기장에서보다 훨씬 더 큰소리로 트램 밖에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그 순간의 분위기는 마치 대한민국이 4강까지 진출했던 2002 월드컵 신화 딱 그때의 분위기였어요. 그 순간 세계 축구의 중심에서 짜릿한 승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는 동시에 맨체스터에 사는 사람들은 매주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부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맨체스터 시내에 도착해서도 그 열기는 가라앉지 않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는 제가 입고 있는 빨간 유니폼을 보시고 '오늘 축구 어떻게 됐어?"라고 물어보시네요. 할머니가 축구경기 결과를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 물어보다니! 역시 축구의 나라, 축구의 도시답습니다. 숙소에 들어오니 저 말고도 축구를 보러 아시아에서 온 여행객들이 있었어요. 중국, 대만, 일본에서 온 친구들이었는데, 저처럼 오늘 경기를 보러 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국 출신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선발 선수로 뛰는 것도 모자라 골까지 넣은 것을 보고 한국 출신인 저를 무척 부러워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제가 한국인인 게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올드 트래퍼드에서 박지성 선수 유니폼을 입고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기적 같던 하루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까 낮에 베팅 가게에서 보았던 ‘박지성 첫 골 1:250’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만약 제가 '딱 만 원만 재미 삼아 걸었으면 250만 원을 딸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처음으로 올드 트래퍼드에서 직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봤고, 박지성 선수가 첫 골을 넣어줘서 너무도 기쁜 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너무도 만족스러운 하루였다고 스스로 위로해 보았습니다. 음, 그래도 250만 원은 좀 아깝긴 하네요. 그건 세금도 안 뗀다고 하던데….




다음 날은 맨체스터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리버풀로 향했습니다. 맨체스터와 마찬가지로 리버풀도 과거에 비해 많이 쇠퇴하였지만 그래도 다시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새로운 건물물을 짓고 기존의 건물들을 리모델링하는 모습이 분주합니다. 과거에 부흥했던 제조업과 무역이 쇠퇴하였으니 도시를 되살릴 방법은 아무래도 관광업이겠죠. 리버풀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하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라이벌 팀인 리버풀 FC를 활용하는 것이에요. 거리마다 리버풀 FC를 홍보하거나 유니폼과 각종 기념품을 파는 매장이 보였습니다.

리버풀 FC의 홈구장 안필드


리버풀에서는 축구 경기는 보지 않고 리버풀 FC 홈구장인 안필드 투어를 했어요. 리버풀 FC 역시 역사와 전통이 있는 팀이에요. 투어 도중 리버풀 FC가 챔피언스리그 우승한 시즌에 시민들이 도로를 가득히 메우고 환호하는 영상을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 리버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지역 축구팀을 응원하면서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라고요. 사실 그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물론 맨체스터와 리버풀 두 지역이 과거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쇠퇴하였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팀들이 세계적인 축구팀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웰컴 투 리버풀!


경기장 투어 후 저는 리버풀의 또 다른 자랑 비틀스를 만나러 갔습니다. 비틀스는 리버풀 출신 락 밴드로 타임지에서 선정한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답니다. Yesterday, Let it be와 같은 노래는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잘 알려져 있죠. 비틀스의 멤버 중 하나인 폴 매카트니의 이름을 딴 매튜 스트리트에는 온통 비틀스의 노래로 가득 차 있습니다. 펍에 들어가서 맥주를 한 잔 하며 비틀스 음악에 취했고, 펍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에서는 리버풀 FC 경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틀스 음악이 가득 차 있던 매튜 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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