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특강을 하게 될 춘천여고 지리 교사 강이석입니다. 지리는 강선생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오늘 특강의 주제이기도 한 여행 에세이 '여행이 부르는 노래‘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소개할 때 부연 설명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달갑지는 않더라고요. 원래 자기소개는 짧고 간결한 것이 더 멋있는 것이라고 어디선가 들었거든요. 그래도 저는 아직까지 tmi식 자기소개를 선호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명사(noun) 스타일의 자기소개보다는 형용상(ajective) 스타일을 자기소개를 선호합니다. 명사는 그 사람에 대해서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지만, 형용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니까요. 저는 형용사에 보다 가까운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명사, 형용사 중 어디에 가까운 사람인가요?
이번에 특강 요청이 들어왔을 때 살짝 고민을 했습니다. 기존에 준비해 놨던 특강 주제가 있는데 이 내용을 내용만 조금 바꿔서 할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특강을 준비할까 하는 고민이죠. 전자는 준비는 덜 해도 되고, 이미 여러 번 해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검증도 됐고, 저도 익숙하니까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민 끝에 새로운 특강을 준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으로 바뀌었고 저도 과거의 나와 많은 부분이 바뀌었으니까요. 그래서 강의를 완전히 새롭게 준비해봤습니다. 저는 차가운 얼음물로 가장 먼저 뛰어드는 첫 펭귄같은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오늘 여러분이 듣는 특강은 세상에 처음 공개하는 완전 따끈따끈한 신상입니다.
오늘 특강의 제목은 ‘음악과 함께 하는 북 콘서트, 여행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작년에 출간한 여행 에세이 '여행이 부르는 노래‘의 주요 챕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 음악을 듣는 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여행 에세이지만 사실 여행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까지 겪었던 순간들을 다양한 에피소드와 음악으로 엮은 소소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제가 뭐 그리 대단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입학해서 졸업하고 임용 시험을 봐서 교사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 이야기가 여러분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특강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로컬인싸 선생님의 글로벌한 여행기, 여행이 부르는 노래
1. 외국인 노동자의 첫 번째 여행
첫 번째 이야기는 제가 19살, 고3일 때 시작됩니다. 수능을 정말 망쳤습니다. 평소 모의고사보다 70점 가까이 떨어졌거든요.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수능으로만 대학을 가던 시기라서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누구가 사연은 있고, 핑계가 있겠지만 저는 당시 정말 억울했습니다. 그 이유는 조금 있다가 자세하게 해 드릴게요. 아무튼 그렇게 수능을 망치고 초점 없는 눈으로 맥없이 지하철 4호선 혜화역 플랫폼에 서 있는데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첫마디는 저를 더욱더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엄마가 암에 걸렸다”
당시 고3이었던 저는 4기, 전이율, 생존율 등 어려운 말보다 엄마가 암에 걸렸단 그 자체가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수능을 망치고 인생이 끝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있는 19살 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시간이었어요. 전화를 끊고 주변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펑펑 울었어요. 그때 귓가에 들렸던 노래가 이 노래입니다.
‘울지 말고 하늘을 봐 리틀 베이비’ 지금도 가끔씩 이 노래를 들으면 당시의 감정이 전달됩니다. 가사 한마디 한마디에서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어요.
가진 게 전혀 없었지만 자존심을 쓸데없이 하늘을 찔렀고 자존감을 바닥을 치던 시기라 원치 않은 대학은 다니고 싶지 않아서 도피 유학을 택했습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저희 집 경제 상황이 좋아서 유학을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비의 일부와 생활비 전부는 제가 스스로 감당해야 했거든요. 캐나다의 깡촌 중부 매니토바주의 위니펙에서 제가 처음으로 한 아르바이트가 일식집에서 접시 닦는 일이었어요. 처음에는 주방장 찰리에게 갖은 구박을 받으며 몰래 주방에서 울며 캘리포니아롤을 삼켜야 했지만, 점차 영어 실력도 늘고 일도 능숙해지면서 안정기에 접어듭니다.
열심히 접시를 닦던 일식집 Mooshiro
어느 정도 돈이 모이고, 운 좋게 합격한 대학에서 친구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방학이 되자 친구들은 저마다 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복작거리며 여행을 준비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지금 나의 상황이 여행을 떠날 만큼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지금 떠나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어요. 그렇게 큰 마음을 먹고 캐나다 깡촌 일식집에서 접시를 닦던 외국인 노동자는 캐나다 동부로 첫 번째 여행을 떠납니다.
친한 중국인 친구 유웨이에게 빌린 카메라와 몇 달 동안 차곡차곡 모은 500달러 들고 떠난 여행은 한국과의 회포를 풀기 위해 코리안 타운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감자탕에 소주 한잔하고 혼자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 한국을 추억했습니다. 재즈펍에서 처음으로 재즈의 매력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여행 경비의 1/5을 넘는 돈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뮤지컬을 봤습니다. 덕분에 숙소는 무너질 것 같은 차이나타운의 게스트하우스로 했죠.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롤러코스터가 있다는 원더랜드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진다는 나이아가라를 담은 사진과 영상들은 여행 마지막 날 카메라 버튼을 잘못 눌러버려서 전부 사라져 버렸답니다.
토론토 차이나타운에서 사라져버린 나이아가라의 추억
2. Love story in Italy
캐나다에서 돌아와서 군대를 갔습니다. 제대를 앞두고 있던 겨울, 유럽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나는 로망은 누구나 갖고 있잖아요. 처음 떠나는 유럽 여행이었지만 패키지여행으로 떠나고 싶지는 않았어요. 혼자 한 달 넘는 유럽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유럽 여행 카페에 온오프라인으로 출석하며 정보를 얻으며 차근차근 유럽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다가 출발을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 유럽 여행의 동반자, 유럽 여행 카페 ‘유랑’에서 한 글을 봅니다. ‘혹시 크리스마스에 프라하에 계신 분?’ 저의 일정이 마침 크리스마스이브에 체코 프라하로 들어가는 일정입니다. 그렇게 저는 야경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프라하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게 됩니다.
2006년 12월 24일, 체코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기마상 앞에 약 30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설레는 표정으로 근처 펍으로 들어가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벌였습니다. 그때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6명과 친해졌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남자 셋, 여자 셋이었던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친해졌고, 서로의 일정을 변경해 가면서 나머지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합니다. 저는 잘츠부르크로 가는 일정을 취소하고 빈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계획에도 없던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기로 했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무리하게 일정을 바꾼 이유는 그 멤버 중 한 명, H를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크리스마스 파티 in 프라하
우리가 함께 하는 여행은 프라하에서부터 음악의 도시 빈, 스키장이 있던 바드가스타인, 그리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들은 서로 더욱더 가까워졌고, 그만큼 제가 H를 좋아하는 마음은 커졌어요. 하지만 저는 이제 더 이상 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저는 이탈리아 수도 로마로 가야 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밀라노를 거쳐 스위스로 가는 일정이거든요.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유럽에 왔는데 이탈리아 로마를 포기할 수는 없죠. 저는 왕복 여섯 시간이나 걸려가며 베네치아에서 밀라노까지 그들을, H를 마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3일 후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보름 가까이 북적이며 함께 지내다가 혼자 베네치아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저는 울적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로마로 가는 야간열차 안에서는 그토록 기다리던 로마이었건만 기쁘기는커녕 슬픈 기분이 가득했어요.
그래도 3일 후에는 피렌체에서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로마에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3일 후 새벽, 첫 번째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향했어요. 약속 시간은 12시였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피렌체에 가고 싶었거든요. 피렌체 골목길을 걷다가 아침 햇살을 반사하며 반짝거리는 유리 공예품도 H를 만나면 주려고 하나 샀어요. 그렇게 12시가 됐고 약속 장소인 우피치 미술관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거기다가 우피치 미술관의 입구는 무려 네 곳이나 있어서 연락처도 서로 없던 우리가 만날 수 없겠다는 불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합니다. 하루 종일 우피치 미술관을 몇 바퀴나 돌며, 아르노강을 서성이며, 다리를 몇 번이나 건너면서 미켈란젤로 언덕도 가봤지만 우리는 만날 수 없었어요. 해가 지고 나서야 우리가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로마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타고 돌아왔어요.
해닐녘까지 서성였던 피렌체의 아르노강과 베키오 다리
다음 날, 바티칸 투어가 예약되어 있었지만 전혀 감흥이 없었어요. 그냥 대충 둘러보다가 얼른 로마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베드로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줄을 서있는데, 그 순간 뒤에서 누가 저를 부를 거예요! “어? 오빠 여기서 뭐 해?” H였어요! 어제 피렌체에서 약속을 정하고도 못 만났는데, 훨씬 더 큰 로마에서 우연한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거죠! 저는 티는 안 냈지만 너무도 기뻐서 만약 제가 강아지였다면 꼬리를 마구 흔들었을 거예요. 그렇게 저는 그날 저녁 스위스 베른으로 떠다는 기차표를 다시 한번 취소하고 로마에 하루 더 있기로 합니다. 그래도 내가 3일 동안 먼저 로마에 있었으니까 로마를 가이드해주기로 했거든요. 로마의 명소를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추억을 쌓았어요. 그리고 해가 질 무렵, 과거 로마의 흔적인 포로 로마노가 한눈에 보이는 로마 시청 건물 옥상 카페에서 그녀에게 어제 피렌체에서 산 선물을 전해줬습니다.
로마를 떠나 저는 스위스, 프랑스, 영국 런던으로 왔습니다. 저도 이제 여행이 막바지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럽 여행에 대한 내공이 쌓인 상황이었어요.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게 마치 제가 유럽 여행을 준비하던 당시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이제 막 유럽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어요. 그들에게 제가 한 달 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도시별로 갈만한 곳을 추천해 줬어요. 그때 게스트 하우스에는 저와 비슷한 일정을 다녔던 일본 사람이 있는데 그도 자신의 사진을 공유하면서 함께 여행을 이야기했어요. 그때 주변 사람들이 그가 로마에서 사진 한 장을 보면서 저에게 이야기했어요. “야 이거 혹시 너 아니야?” 그 사진은 바로 제가 로마 시청 옥상 카페에서 H에게 선물을 주고 수줍게 웃고 있는 순간을 담고 있었어요.
저 또래 남자분들은 많이 공감하실 거예요. 아들은 아버지와 친해지기 참 힘들다는 거요. 처음부터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지는 않았어요. 어릴 적 제가 가장 좋아하고 또 닮고 싶은 사람은 아버지였으니까요. 그림도 잘 그리고 무엇이든 잘 만드시는 아버지는 어린 저에게 우상이었어요. 8살 생일 선물로 받은 아카데미 m16 비비탄 총을 밤새 조립하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 순간이 제가 아버지를 가장 좋아하던 때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딱 그때까지였어요. 저에 대한 기대가 컸던 아버지는 저에게 여간해서 칭찬을 해주시는 일이 없었어요. 훈계와 명령, 꾸짖음만 있었어요. 중학교에 올라가자 저도 반항을 하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이후로는 아버지와는 대화를 나누는 일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고3 수능 하루 전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긴장해서 잠 못 이루는 저에게 분노의 사자후를 외치셨고, 저도 참지 않고 그동안 아버지에게 쌓였던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어머니는 울면서 두 부자를 말리셨고, 저는 해가 뜰 때까지 화를 삭이지 못했고 눈물을 흘리며 밤을 새웠습니다. 이게 저의 고3 수능 전날 벌어졌던 상황이에요. 그리고 결과는 처음에 말씀드렸죠.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저의 인생에 참 태클을 많이 걸었던 것 같아요. 무관심한 아버지의 자녀 교육 방식을 그냥 쭉 유지하셨으면 오히려 좋았을 것 같은데, 아버지는 저의 중요한 순간에 계속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셨어요. 수능 전날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제가 캐나다 유학을 한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꿈,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던 때에요. 군대 휴가를 나와서 횟집에서 술 한잔 하며 아버지에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저의 꿈을 이야기했고, 그 순간 함께 상과 함께 광어는 뒤집어졌고, 저의 꿈 또한 무너졌죠. 저는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디자인 입시를 준비해서 원하는 학과에 실패했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저의 용기부족으로 결국 디자인과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버지에게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전혀 원하지 않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사범대 지리교육과에 다니면서 처음에는 방황도 많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대학 생활에 적응을 했어요. 특히 여행을 다니면서 마음의 치유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와의 관계도 점차 괜찮아졌어요. 저와 아버지 둘 다 나이를 먹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아버지와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멀어져서였을까요. 아버지는 제가 다시 대학을 다닐 무렵 30년 넘게 다니시던 회사를 나와 베트남으로 사업을 하러 가셨어요. 출국하던 날 공항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에서 가장의 쓸쓸함과 늦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대한 불암감을 봤어요.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던 모습이 아니라서 아들로서 조금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 해, 베트남 여행을 계획했어요. 평소 가보고 싶기도 했고, 그래도 아버지가 계시니까 얼굴은 한번 봐야지라는 마음으로요. 호찌민 공항에서 어색한 부자간의 상봉을 한 후, 숙소에 들어가서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불쑥 “내일 메콩 델타로 같이 여행 안 갈래?”하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대화를 하기도 어색한 사이인데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이라니!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제안에 저는 거절하지는 못 하고 ”내일은 일정이 있으니 모레 가죠 “ 다소 퉁명스럽게 대답했어요. 그렇게 25년 만에 처음으로 부자간 처음으로 여행을 가게 됐습니다. 메콩 델타 정글 숲을 카약을 타며 여행했고, 베트남 전통 모자 논을 쓰고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어요. 하루 종일 여행을 한 후 호찌민으로 돌아와서 평소 아버지가 자주 가신다는 식당에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호찌민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와 소주 한잔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예요.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인 할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셨어요. 할아버지도 아버지에게 기대가 많았고 칭찬보다는 훈계와 강요가 많았었다고. 그래서 그게 참 힘들고 싫었는데, 본인도 아들인 나에게 그렇게 한 것 같다고. 그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아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나와 참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제가 아버지 아들이니까요. 둘 다 소주를 좋아하고,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시와 윤동주를 좋아하고, 역사와 철학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닮으셨듯이, 저도 아버지를 꼭 닮아있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28살이 되었고 졸업을 앞두었지만 사회로 나갈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저는 무척이나 불안했습니다. 사범대를 다녔지만 임용 시험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 2년 넘게 대학원 유학을 준비했지만 능력과 노력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경제적 상황 여의치 않아서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공포스러웠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도 28살 때 다니시던 회사를 그만두시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상황에서 고시공부를 시작하셨거든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때 28살의 아버지는 무섭지 않았는지,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진심으로 물어봤습니다.
한참 묵묵히 들으시던 아버지는 저에게 “너는 뭘 하든지 잘하고 어디 가서 든 기죽지 않잖아. 뭘 그렇게 무서워하냐. 별 것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세상에서 나랑 가장 닮은 남자가 하는 별 것 아닌 그 한 마디가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아버지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학원 유학이라는 꿈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어요. 물론 유학에 필요한 학점을 맞추고, 필요한 영어 점수를 획득하고, 각종 논문 공모전에 참가하는 등 준비를 게을리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꿈을 준비한다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확실히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거의 모든 대학원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한 군데 연락이 온 곳에서는 장학금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불완전한 합격이었습니다. 유학에 대한 두려움을 알고 있었고, 경제적 부담도 컸던 상황이라 저는 2년 간 열심히 준비했던 유학이라는 꿈을 그 순간 포기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평범한 사범대생들처럼 임용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까 마땅히 할 일이 없었어요. 아는 선배의 추천을 받아서 교육 관련 스타트업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곳에서 당시 떠오르고 있던 '자기주도학습'을 활용한 학습법 코칭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운 좋게 저는 준비 작업부터 거의 모든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저의 성격에 잘 맞았어요. 법원에 가서 법인을 설립하고, 변리사와 연락해서 상표를 등록하고,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서 채용글을 올리고 지원자 면접을 보는 등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제가 그곳에서 1년 간 온몸을 부딪치며 배우며 일했던 과정은 힘들었지만 정말이지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스타트업이 자리를 잡고, 거액의 투자를 받아서 번듯한 강남에 사무실로 열고, 유명 언론사와 협업을 하면서 우리 회사는 이쪽 시장에서 꽤나 유명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는 초반의 열정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실 그것보다는 사교육 특성상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강남 센터장이면서 프로그램 상담 역할을 맡은 저는 반드시 성적이 오른다는 일종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초반에 받던 월급의 배 이상을 받고 있었지만, 저는 점차 일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잃어버렸고 여름이 막 시작되던 어느 날 고민 끝에 스스로 모든 것을 준비하고 만들었던 회사를 자진해서 그만두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날 인터넷에서 어떤 기사를 봤어요.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노래가 참 좋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기사를 보자마자 불현듯 저 노래를 직접 여수 밤바다를 보면서 들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직업도 없으니까 시간도 많겠다 여수까지 걸어가면 좋겠다! 출발 지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춘천으로 정해야지!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결국 바로 그날 저녁 친한 친구가 있는 춘천으로 향했고, 다음날 새벽 배낭을 메고 여수로 출발했습니다. 총 800km를 걷는 이 도보여행의 이름은 '내 생애 단 한번'이라고 정했어요. 지금 이 순간은 단 한번뿐이니까요.
춘천 여수 도보여행, 내 생애 단 한번
한여름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하루 종일 걷는 것은 누구에게는 정말 고되고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저는 걷는 모든 순간순간이 행복하고 의미가 가득했어요. 특히 춘천에서 여수까지 걸어서 여수 밤바다 노래를 듣는다는 너무도 확고한 목표가 있고, 하루를 걸으면 그 하루만큼 목표가 달성된다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으니까, 다리가 정말 아프고 물집이 잡혀서 터지는 고통이 있더라도 도보여행의 순간들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21일 만에 소박한 여수 구항이 보이는 돌산에 올랐고, 거기서 처음으로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노래를 들었습니다. 행복한 눈물이 흘렀고, 지금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갑자기 너무도 허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마 너무도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다가 목표를 이루는 순간 그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일 거예요. 그때 느꼈습니다. 물론 꿈을 달성하면 너무 행복한 동시에 허무함이 밀려오지만, 행복하기 위해서는 항상 마음속에 꿈을 지니고 있으면서 그것을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요! 21일 동안 걸려서 걸어온 길은 돌아갈 때는 KTX를 타고 2시간 만에 갔어요. 모두 다 빠름과 효율을 추구하면서 남들 시선을 의식하는 시대에 그렇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제 모습이 순간 뿌듯하다고 느꼈고, 불현듯 베리스모 오페라의 시초 격인 까르멘의 작곡가 비제가 떠올랐어요. 비제는 비록 시기를 잘 못 타고나서 생전 빛을 못 봤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빛을 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돌산대교와 소박한 여수 밤바다
Epilogue. 평범한 하루가 여행이 될 수 있다면
고등학교 시절 일본은 저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노벨 문학상 작가 가와타바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좋아해서 꿈의 여행지가 니가카이기도 했고, 산길에서 레이싱을 펼치는 애니메이션 이니셜D의 배경 군마현을 꼭 가고 싶다고 했죠. 오죽하면 당시 가장 좋아하던 가수가 일본 락 밴드 Spitz였고, 행복의 3요소를 'Spitz+샤워+바람'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으니까요. 아무튼 저도 이런 덕후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제가 회사에 취업을 하고 가는 첫 워크숍으로 일본 도쿄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도쿄 시내까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수백 번도 넘게 들은 가장 사랑하는 Spitz의 Robinson을 들었습니다.
공식적인 회사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날은 온전히 혼자 보내는 자유시간이었어요.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근처 카페로 갔습니다. 카페에 앉아서 여행을 정리하며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불현듯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분명히 여기 도쿄 이이다바시 역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며 여행하고 있는데, 제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일본 사람은, 그리고 유리창 밖으로 바쁘게 출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분명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여행이 아닌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분명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데 누구는 여행을 하고 다른 누구는 일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도쿄의 평범한 일상과 노을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하루 똑같이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도 그 하루를 여행처럼 살 수는 없지 않을까? 매일매일을 여행처럼 산다면, 평범하게 일어나는 아침을 여행자의 마음가짐으로 한다면 다가올 하루가 잔뜩 기대되어서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에요. 그래서 매일매일 신나게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루라는 여행을 준비하지 않을까요?
사실 같은 장소여도 그 장소를 받아들이는 느낌, 그리고 추억은 각자 다르게 적힙니다. 정동진은 누군가에게는 가족들과 새해 일출을 보러 갔던 추억이 있는 장소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첫 키스의 추억이 있는 장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쓰디쓴 이별의 장소일 수도 있으니까요. 평범한 일상의 장소, 학교 앞에 있는 벤치, 너무나도 익숙한 동네도 누군가에게는 아기자기한 추억이 있는 장소일 수 있는 것이죠. 결국 장소를 바라보는 마음가짐(attitude)이 그 장소를 의미 있게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매일의 일상도 그저 그런 하루가 될 수도 있지만,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서 의미 있고 설레는 여행의 한 순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저와 여러분의 내일 아침도 두근거리면서 하루를 계획하는 설레는 여행의 아침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