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미술, 존재의 이유

by 초록 사과 김진우

재수를 해 원하는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소질이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때의 나는, 달달달 암기한 다음, 주어진 시간 안에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는 일이 왜 어려운지 이해하지 못했다.


입학하자 다수의 교수들이 “입시 미술은 잊어라”라고 말했다. 이건 또 뭔 말인가? 살짝 황당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본격적인 대학 수업이 시작되자 비로소 그 말을 이해했다. 기발한 발상과 아이디어로 눈을 번쩍 띄게 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존재감을 드러냈다. 수업 시간은 물론 일상 속에서도 그들은 참 독특했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나와 내 작업은 늘 너무 평범했다. 미술학원에서 듣던 나의 “소질”은 디자인 대학에서 필요한 “창의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미대 입시 과목은 오히려 나 같은 사람에게 잘 못된 사인을 줬다.


2022학년도 수시 입시 전형이 시작됐다. 수험생들의 그림 수천 장을 체육관 바닥에 펼쳐놓고 나면 만감이 교차한다. 나 자신도 유사한 방법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이젠 교수가 돼서 학생작품을 평가하고 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떤 그림이 좋은 건지, 나는 무엇을 보고 아이들을 뽑아야 하는 건지.


내가 실기고사를 준비하던 때를 돌이켜 본다. 제한된 시간 안에 완성해야 하므로 자주 나오는 문제는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창의적 발상을 위한 시간이나 의미가 끼어들 틈이 없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준비하는 친구들의 그림은 숙련됨과 세련됨의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의 차별성은 거의 없다.


요즘 학생들은 최소한 2-3년씩 대도시에 위치한 대규모 학원에서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하며 미대 입시를 준비한다고 한다.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숙소도 구해야 한다. 미술대학 교수들은 학기 중에 하지 못한 연구와 집필, 충전을 위한 시간을 토막 내 입시업무에 참여한다. 그렇게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 준비하고 선발하는 미대 입시 과정이 디자이너로서의 열정과 가능성을 판단하는 잣대도 아니고, 추후 창의적인 작업을 위한 기초과정도 아니라면 도대체 뭔가?


디자인대학 실기고사 문제를 포함해서, 이 땅에서의 교육문제는 이미 너무 망가져 회복 불가능해 보인다. 아무리 이상적인 제도라도 대한민국 땅에 상륙하는 순간 왜곡되고 변질된다. 부동산 문제와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그러니 국민의 10%, 20%만 대학을 가던 시절에 입시를 경험한 정치가, 자기 자식은 국내에서 교육시켜 본 적 없는 교육 전문가들은 입을 다물자. 당사자들의 경험과 목소리 좀 들어보자. 들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내친김에 선거연령을 고2로 한 번 더 내려 그들을 표밭으로 만들어 버리면 어떨까? 기성세대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문제들이 생생하게 테이블 위로 튀어 올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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