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카메라 좀 켜 주면 안 되겠니?

온라인 수업, 접속할 뿐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들에게

by 초록 사과 김진우

집 전화기로 연락하던 시절, 기다리는 전화가 있을 때면 전화기 옆을 떠날 수 없었다. 미팅 후 맘에 들었던 남자와 헤어진 후 며칠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전화 온 거 없었어?라고 묻곤 했다. 한 번의 주말이 지나버려 포기하기 전까지 전화기의 존재는 온 신경을 지배했다.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짝사랑하던 친구의 집으로 전화를 건 적도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친구의 목소리를 듣기만 할 뿐 나는 입도 뻥끗 못했지만, 전화 건 사람이 나라는 것을 절대로 모를 거라는 안도감에 그쪽에서 끊을 때까지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1980년대 일이다.


지금은 모두의 손에 전화기가 들려있다. 연결이 안 될 상황이란 게 얼마나 될까? 예전엔 해외에서라도 스마트폰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로밍을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검색과 결재 때문에라도 스마트폰 없는 여행은 불가능하다. 전화기를 놓고 등산을 갔다던가, 차에 전화기를 놓아둔 채 낚시터의 좌대를 탔다던가, 잠든 사이에 배터리가 나갔을 때, 입시 문제 출제 위원으로 호텔에 갇혔을 때 등이 내가 경험했던 제법 긴 불통의 경우다. 하지만 그래도 하루 이틀이면 다시 스마트 폰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고 문자, 카톡, 메일 등이 다급한 이들의 용건을 전해준다.


며칠 전 집중해야 할 일이 있어서 하루 종일 전화기를 보지 않았다. 늦은 밤 확인했을 때 오래된 친구의 이름을 발견했다. 이후 몇 번 더 전화가 왔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받고 싶지 않은 전화다. 앞으로도 받지 않을 것이다.


24시간 연결이 가능하고 그게 누군지 알 수 있는 세상에서 연결될 수 없음은 지독히 서글프다. 연결을 시도하는 쪽이나 거부하는 쪽이나 마찬가지다. 80년대에는 그래도 자기 위로형 가설이 무궁무진했다. 내가 전화번호를 잘 못 적어 줬을 거야, 혹은 그가 전화번호 적은 쪽지를 잃어버렸을 거야, 우리 집 전화기가 잘 못 놓여 있었어, 벨 소리가 꺼져있었어, 동생이 받고는 잊어버렸어...... 섭섭함, 상처, 미련이 사라질 때까지 충분한 위로를 줬다. 절대로 사실일리가 없었지만 정신건강에 좋았다.


이제는 분명하다. 공중전화, 집전화에서 1인 1 스마트폰으로 기술과 문명은 혁명적으로 발전했지만, 사람은 여전히 참 연결되기 어려운 존재다. 누군가는 연결을 시도하고 누군가는 연결되고 싶지 않다.


나는 요즘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진정으로 연결"되는 게 얼마나 힘든가 절감한다. 코로나 때문에 성큼 접어든 온라인 수업의 세상. 좌충우돌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도 이제 어디서나 쉽고 간편하게 학생들을 만난다. 온라인 수업에서 학생들이 카메라를 켜게 하는 것은 변심한 애인의 마음을 돌리는 것보다 힘들다. 안 그래도 작은 화면, 그나마 켜고 있어야 눈빛, 표정을 볼 수 있고 강의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내 얘기가 잘 전달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데, 화면 자체를 켜지 않는다. 아예 받지 않는 전화처럼 서글프다.


IT 세상은 도래했고 위드 코로나처럼 위드 온라인 수업을 피해 갈 수 없다면 켜지지 않는 까만 화면을 어찌할까? 접속할 뿐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나는 그들과 연결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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