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보면 안다. 내 몸의 1%, 2%인 그곳이 100%의 집중을 원한다. 나 좀 온전히 봐주면 안 되겠냐며 파업을 선언한다. 감기나 몸살처럼 몸 전체가 반란을 일으킬 때도 있다. 쉬어가라는 뜻이다. 밖으로, 앞으로만 뻗어있는 시선과 에너지를 거두어 내부를 바라보라는 뜻이다. 안을 챙기라는 뜻이다.
건강 문제는 자기 관리의 결과이며, 예측과 예방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불혹의 나이에 “병”이 찾아왔다. 2달 정도 나를 괴롭히다 또 그렇게 홀연히 사라졌다. 추후 공부와 검색으로 인해 일종의 공황장애가 아니겠나 짐작은 하지만 아직도 나는 그때 고통의 이름과 원인을 정확히 모른다. 온갖 검사를 해 본 당시 미국의 의사는 “육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고, 스트레스에 의한 신경과민”이라고 했다. 푹 쉬고 잘 먹는 거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때는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며 내 인생 최고로 한가롭게 먹고 놀던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내 몸이 내 의지대로 되지 않다니. 아픔도 고통스러웠지만 내 몸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병이 사라진 자리에 내 몸에 대한 앎의 욕구가 들어섰다. 전공 책 외에는 관심이 없던 내게 인문 철학 고전 책의 망망대해가 열렸다. <동의보감>이라는 책과 인연이 닿았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처럼 또 다른 좋은 책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들에 의하면 내 몸은 원래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수 있다고 믿었던 건 나의 큰 착각이었을 뿐.
최근 10년 사이, 내가 만나는 20대 청년들에게도 공황장애나 우울증이 많아졌다. 수업에 나오지 않아 궁금해질 무렵이면 무겁고 어두운 내용의 문자가 도착한다. 내가 10여 년 전 "그런 식"으로 아파보지 않았다면 사실 이해하기 힘든 사연들이다. 속상하고 안타깝다. 내 경험을 공유하며 회복과 치유의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고 한다.
막 대학에 임용됐던 30대 후반, 내게 SOS를 쳤던 한 학생을 잊을 수 없다. 몇 번이나 상담 요청을 해 놓고도 그는 약속한 날 오지 못했다. 그때마다 장문의 문자가 도착했다. 사연은 다양했다. 지하철, 버스, 택시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는 등의 드라마틱한 설명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영혼 없는 위로만 건네었을 뿐, 그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려하지 않았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고 미안하다. 부디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 줄 누군가를 만났기를, 혹은 책 속에서 지혜를 얻었길 기도한다.
나는 아직도 그때 나를 찾아왔던 “병”의 이름을 모른다. 남은 인생에서 또다시 찾아와 나를 괴롭힐지 모른다. 처음에는 반드시 원인을 찾아 내 뿌리 채 뽑아버릴 거라며 씩씩거렸다. 이제는 그게 불가능, 불필요한 일이라는 걸 안다. 병은 모르지만 몸은 알게 됐다. 내 존재에 대한 앎도 쌓였다. 병은 치유하거나 신속히 없애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내 삶의 좌표를 보여주기 위해 몸이 준비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