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딱 맞아떨어지는 날이 있다.
날씨가 그랬고, 사람들의 말 모양새가 그랬다.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이 그것들을 단번에 흡수해버릴 정도로 메말라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갈등의 진행단계 <발단 전개 절정 결말>에서 발단은 이제 파악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 감정의 시작은 어디인지 알 수도 없고 어떠한 이유에서 시작되었던 결말은 비슷하기때문에 사건의 발단은 어떠한 힘도 갖지 못한다.
감정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오늘 일과의 절정은 <빨래>였다.
2일 또는 3일에 한 번씩 빨래를 한다. 엄밀히 말하면 세탁기가 하는 것을 돕는 정도일지도 모른다. 어르신들 말씀처럼 예전의 집안일은 엄마가 다 했다면 요즘의 집안일은 청소기가 하고, 세탁기가 다 알아서 해주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빨래는 밥하기, 설거지하기, 청소하기와 같은 일들처럼 매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코로나로 아이들이 내내 집에 있다 보니 할 일이 몇 배는 늘어났고 우선순위에서 밀리다 보니 3일을 넘기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던 모양이다.
" 뭐야 속옷이 없잖아!"
딸아이가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
속옷이 없을 리가 없는데... 코로나로 인해 매일 집에 있으면서 운동하고 하루에 몇 번씩 씻어서 그런 건가... 갑자기 머리가 굳었다.
직무유기에 대한 죄책감이었는지 순간 움찔했고 재빨리 세탁기에 옷들을 쑤셔 넣었다.
'그렇게 내가 잘못한 일인가...?'라고 투덜거리며 그 말을 억누르는 대신 눈물이 올라왔다.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니었다. 보통의 어느날보다도 부드럽게 마무리된 대화였다.
그렇기때문에 이 감정은 낯설었고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 기분을 누르고 아이들 도시락을 싸야 했고 학원에 태워다 줘야 했다.
연예인들이 종종 개인적인 슬픈 일이 있어도 방끗 웃어야 할 때 괴롭다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별것 아닌 말에 눈물이 올라왔던 것은
어쩌면 그날 아침부터 걱정하며 '암 검진'을 다녀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난생 처음으로 친정엄마가 '몸이 좋지 않은데 약을 좀 가져다줄 수 있겠니'라고 메시지를 보내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과거의 내가 엄마한테 "왜 내가 좋아하는 옷을 빨아서 다려놓지 않았냐고" 화를 냈었던 일이 생각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의 내가 엄마를 '내 빨래를 해 놓아야 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처럼
내 아이도 나를 '내 빨래를 당연히 해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해도 마음으로는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뒤돌아 흘렸을지 모르는 어머니의 눈물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를 이해하고 어른이 된다는 말이 너무나 싫었었는데
오늘도 그 말을 되뇌며 <라떼는>하고 있다.
딱 오늘까지는 우울해도 되겠지...
날씨 탓을 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