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노라면, / 에세이 김석용
봄비가 창을 두드린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세상의 속도를 늦추는 듯하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언제나 같지만, 오늘따라 새롭게 다가온다. 아마도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이 내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노라면 우리는 무수한 선택의 순간들을 마주한다. 출근길에 어떤 커피를 마실지,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같은 사소한 결정부터 직업, 사랑, 가족에 관한 큰 결정까지. 이런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이룬다. 때로는 선택이 옳았는지 의심하며 과거를 돌아보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어제 아침, 딸아이가 학교 가기 전 건넨 포옹이 생각난다. 열 살 딸의 품에서 느껴진 따스함과 향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이 하루 종일 내 마음을 밝게 비추었다. 사노라면 이런 작은 행복들이 모여 삶의 무게를 견디게 한다.
직장에서 마주하는 동료들의 표정, 퇴근길에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들의 뒷모습, 집으로 돌아와 마주하는 가족의 미소. 모두가 내 삶의 일부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 관계 속에서 울고 웃으며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실수했을 때, 나는 그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괜찮아, 나도 처음엔 그랬어"라고 말했다. 그의 표정이 밝아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사노라면 타인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는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봄이 오면 벚꽃이 피고, 여름엔 매미 소리가 들리고, 가을엔 단풍이 물들고, 겨울엔 눈이 내린다. 계절은 변하지만 우리의 삶은 이어진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우리도 함께 숨 쉬고 있다. 올해의 봄을 지난해와 똑같이 느끼는 사람은 없다. 같은 계절도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변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된장에서 고향의 냄새를 맡았다. 하얀 쌀밥에 된장찌개 한 그릇을 먹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사노라면 음식 한 그릇에도 추억이 담긴다. 맛은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그 기억은 다시 감정을 일으킨다.
요즘 들어 자주 산책을 한다.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며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한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노부부, 자전거 타는 아이들, 달리기하는 청년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보며 내 삶도 누군가에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상 위에 놓인 책들을 바라본다. 읽다 만 책, 읽을 예정인 책, 여러 번 읽은 책까지. 각각의 책이 내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사노라면 책 속에서 만난 문장들이 삶의 길잡이가 된다. "인생은 여행이다"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맴돈다. 목적지보다 여정을, 결과보다 과정을 소중히 여기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지치고 힘들 때도 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 주변을 둘러본다. 창밖의 하늘, 책상 위의 화분, 벽에 걸린 가족사진.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사노라면 우리는 변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내일의 나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자연스럽게 바뀌듯이.
저녁이 되면 가족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운다. 아내의 직장 이야기, 아이들의 학교 생활, 내 회사에서 있었던 일까지. 사소한 대화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느낀다. 사노라면 일상의 대화가 삶의 힘이 된다.
밤이 깊어갈수록 생각은 더 깊어진다. 내일은 어떤 하루가 될까?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모르는 것이 많지만, 그래도 괜찮다. 사노라면 불확실함 속에서도 확실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가족의 사랑, 친구의 우정, 자신에 대한 믿음 같은 것들.
창밖으로 보이는 별들을 바라본다. 같은 하늘 아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사노라면 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나의 작은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잠들기 전,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잘한 일, 못한 일, 기뻤던 순간, 아쉬웠던 순간들. 모두 소중한 경험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는 다짐을 한다. 사노라면 매일이 새로운 시작이다.
문득 거울 속 나를 마주한다. 흰머리가 조금씩 늘어가고, 주름도 깊어졌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시간은 외모를 바꾸어도 마음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사노라면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젊음임을 알게 된다.
가을 단풍이 물든 산책로를 걸으며 생각한다. 인생도 이렇게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일까? 청춘의 푸른 시절부터 노년의 붉은 시절까지. 각 시기마다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사노라면 삶의 모든 계절을 사랑하게 된다.
사노라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한다. 시간, 건강, 젊음은 잃어가지만 지혜, 경험, 추억은 쌓여간다. 이 모든 것의 균형을 찾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창문을 열고 봄바람을 맞이한다. 새로운 계절, 새로운 시작. 사노라면 우리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도 나는 살아간다. 숨 쉬고, 느끼고, 생각하며. 사노라면 삶 자체가 기적임을 깨닫는다. 매 순간, 매 호흡이 소중하다. 그것을 알기에 오늘을 더 깊이 살아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