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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의 언어

에세이 김석용

by 화려한명사김석용

빗방울의 언어 / 에세이 김석용

오늘 아침,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타닥타닥, 처마 끝을 울리는 빗방울의 리듬이 내 귀에 들어왔다.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봄비는 언제나 특별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것은 자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자, 우리 일상에 스며드는 조용한 위로다.

빗방울은 말이 없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지를 적시는 빗방울은 씨앗에게 '이제 움트렴'이라고 속삭이고, 메마른 도시의 아스팔트에는 '잠시 숨을 돌리렴'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사람들은 비를 불편함의 대상으로 여긴다.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고, 비를 피해 뛰어다닌다. 그러나 잠시 멈춰 서서 비의 언어에 귀 기울여 본다면 어떨까? 빗방울이 우리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면, 불편함은 어쩌면 새로운 깨달음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내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은 특별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걸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는 비에 젖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빗방울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자연의 언어를 잊어버리고, 편리함과 안전함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삶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단순함의 가치를 잊는다. 바쁜 일상 속에서 빗소리를 듣는 여유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자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뜨고 지며, 비가 내리는 모든 순간이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다.

오늘 내린 봄비는 특히 그렇다. 겨울의 긴 침묵을 깨고 찾아온 빗소리는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생명이 깨어나는 소리, 단단했던 땅이 부드러워지는 소리,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함께 들린다.

창가에 앉아 빗방울의 언어를 듣다 보면, 내 안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게 된다. 바쁘게 달려온 일상에서 멈추지 못했던 내면의 목소리들이 조용히 떠오른다. 그것은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성찰의 시간이 된다.

빗방울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라."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는 자연의 지혜다. 빗방울은 떨어지는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대지에 스며들어 새로운 생명의 일부가 된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매 순간이 소중하고, 매 경험이 우리를 형성한다. 좋은 날도, 비 오는 날도 모두 우리 삶의 풍요로운 일부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있다.

빗방울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공부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복잡한 이론이나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 단순히 '존재함'의 의미를 가르쳐준다. 빗방울은 떨어지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을 바친다. 그리고 그 헌신이 결국 대지를 적시고, 생명을 키우는 원동력이 된다.

내 글쓰기의 여정도 빗방울과 같다. 한 단어, 한 문장이 모여 누군가의 마음을 적신다. 때로는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깊숙이 스며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글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고, 독자들과 마음을 나눈다.

170편이 넘는 글을 쓰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진실된 목소리의 힘이다. 화려한 수사나 복잡한 논리보다, 진심을 담은 단순한 문장이 사람들의 마음에 더 깊이 닿는다. 빗방울처럼 순수하고 투명한 글이 결국 독자의 마음에 스며든다.

'아름다운 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며 만난 독자들은 내게 또 다른 빗방울이 되어주었다. 그들의 댓글과 메시지는 내 글쓰기의 여정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서로의 이야기가 만나 더 풍요로운 대화를 이루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가장 큰 기쁨이다.

《기억은 고요히 흐른다》, 《고요한 자리 하나》, 《삶이라는 바다 한가운데서》, 《인생은 여행이다》와 같은 작품을 통해 나는 계속해서 빗방울의 언어를 배우고 있다. 가족, 일상, 계절, 삶과 죽음, 여행과 기다림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봄비가 멈추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젖은 나뭇잎들이 햇빛에 반짝인다. 빗방울이 남긴 흔적이 세상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모든 경험이 우리를 더 선명하게, 더 깊이 있게 만든다.

오늘의 비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멈춤의 미학이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그 작은 쉼표가 우리 삶에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낸다. 빗소리를 듣는 오늘의 경험이 내일의 글감이 되고, 그 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순환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작가로서 나의 소명은 명확하다. 삶의 소소한 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상의 언어를 통해 깊은 울림을 전하는 것. 화려한 수식어보다 진실된 감정을, 복잡한 이론보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 그것이 내가 계속해서 추구하는 글쓰기의 본질이다.

빗방울은 떨어지는 순간 사라지지만, 그 영향력은 계속된다. 내 글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한 번 읽히고 잊혀지더라도, 독자의 마음 어딘가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빗방울 같은 글을 쓰고 싶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자, 삶을 대하는 태도다.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치는 오후, 나는 다시 키보드 앞에 앉는다. 오늘의 빗소리가 내 안에 심어준 감각을 글로 옮기기 위해. 마치 빗방울이 대지에 스며들듯,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들기를 바라며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긴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다. 자연에서 배우고, 일상에서 느끼고, 마음으로 전하는 것. 빗방울의 언어를 배우며,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 그 여정에 함께해 주는 독자들에게 감사하며, 오늘도 나는 글의 바다에 빠져든다. 한 줄 한 줄이 모여 누군가에게 작은 파도가 되어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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