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석용
나를 웃게 한 순간들 / 에세이 김석용
1. 쉼표 같은 하루의 시작
달력의 마지막 줄, 4월 30일. 어쩌면 한 달 중 가장 바쁜 날일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쉰다는 표시 하나로 모든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침은 여느 때와 같았지만 마음은 훨씬 가볍고 느긋했다. 집사람은 출근을 서두르며 옷매무새를 다듬었고, 나는 운전석에 앉아 창밖 햇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차에 오르자마자 그녀가 말했다.
“여보, 오늘 1시까지 데릴러 와야 해.”
“왜?”
“미아리 언니들이 당신이랑 같이 돼지갈비 먹자고 하네.”
그 한마디에 나는 웃었다. 갑자기 소풍 가는 아이처럼 가슴이 설렜다. 돼지갈비도 좋았지만,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라는 말이 참 좋았다. 마치 잊고 지냈던 ‘도심의 하루’가 내게 손을 내미는 듯했다.
2. 혼자 있는 오전, 그리고 소소한 일들
미아리 약속까지는 시간이 넉넉했다. 통증의학과에서 치료를 받고, 오랜만에 차도 깨끗이 씻겨주었다. 차창에 맺힌 물방울이 햇살을 받아 반짝일 때, 문득 내 몸도 세차된 기분이었다. 치과에 들러 보험 영수증을 출력해두고는 집에 돌아와 잠시 눈을 감았다. 조용한 거실에 흐르던 정적, 그 안에서 나는 하루의 온도를 천천히 느꼈다.
3. 미아리 언니들과의 만남, 웃음이 밥이 된 자리
약속 시간에 맞춰 집사람을 태우고 미아리로 향했다. 차 안의 공기부터 달랐다. 집사람의 표정엔 오랜만의 설렘이 묻어났고, 내 눈에는 익숙한 도로가 낯설 만큼 새로워 보였다.
미아리에 도착하자 반갑게 손을 흔드는 언니들. 모두가 일흔을 훌쩍 넘겼지만, 얼굴에는 세월 대신 온기가 남아 있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돼지갈비 냄새가 반긴다. 숯불 위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언니들의 농담, 웃음, 기억들.
“자네 덕분에 고기 얻어먹네~”
“아직 요양원 갈 나이는 아니지. 100살은 돼야지~”
이 말에 모두가 빵 터졌다.
나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젓가락을 놓았다.
웃는다는 건, 순간을 살아있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 순간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4. 커피 한 잔 위로 피어난 웃음들
식사를 마친 우리는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이렇게 수다 떠는 것도 운동이야.”
“말하는데 열정이 필요하잖아~”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피어난 이야기들은 삶의 곁가지를 건드렸다.
젊을 때 고생했던 기억, 자식들 이야기, 아픈 무릎에 붙인 파스까지.
그 안에 슬픔도 있었지만, 더 많은 건 웃음이었다.
지금도 그 카페 안이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순간이 귀에 선하다.
5. 별내로 돌아오는 길, 마음에 남은 온기
돌아오는 길. 서울의 거리는 어느새 저녁빛으로 물들었고, 차창 밖으로 미끄러지는 풍경들이 참 따뜻했다.
그 하루는 특별한 여행도,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오랫동안 간직될 ‘밝은 순간들’이 남았다.
웃음은 참 고맙다.
그저 기분 좋은 감정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을 여는 열쇠 같기도 하다.
나는 그날, 잘 웃었고 잘 쉬었다.
그리고 그 하루를, 이렇게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