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시간

에세이 김석용

by 화려한명사김석용

돌봄의 시간 / 에세이 김석용

아침 7시, 복도를 가르는 발소리가 조심스럽다.
한 사람의 하루를 여는 일이란, 여전히 긴장되는 순간이다.
문을 열며 조심스레 인사를 건넨다.
“어르신,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햇살이 참 따뜻하네요.”
그 말 한마디에 눈을 뜨고 이마를 찡그리며 겨우 반응하는 어르신도 있고,
눈빛만으로 답하는 날이 있다.
말은 없어도 그 눈빛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날도, 마음이 뒤따라오는 날도 있다.
돌봄이란 그런 것이다.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바라보는 일.
그리고 그 고요한 차이를 알아차리는 예민함.
그 모든 감각이 나를 이 일에 머물게 한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모든 게 낯설었다.
삶의 후반부를 사는 분들과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일,
그들의 시간에 발을 맞춰 걷는 일이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조심스러웠다.
말 한마디, 손길 하나에도 무게가 실렸다.
지나치면 무심함이 되고, 과하면 부담이 된다.
중간의 온도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단순한 업무나 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의 하루에 내가 ‘존재하는 사람’으로 머무르는 일이다.
아무 말 없이 등을 쓸어드릴 때,
아픈 무릎에 찜질팩을 얹을 때,
함께 식사를 준비하며 밥 한 숟갈을 살피는 순간,
그 짧은 시간에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느낀다.
어르신들의 숨결 속에 담긴 세월의 무게,
그 속에서 내가 들여다보는 건 결국 내 삶의 얼굴이다.

돌봄의 시간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매일이 다르다.
어르신의 컨디션이 다르고, 표정이 다르고,
그날의 햇살과 바람도 다르다.
그 다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시간.
눈길 한 번, 손끝의 떨림 하나에도 집중하게 된다.
사람을 돌보는 일이란 결국, 사람의 마음을 향하는 일이라는 걸
매일같이 배워간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비로소 배운 건
돌봄을 통해 내가 더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감각은 나를 살아있게 한다.
어르신들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칠 때마다
나는 다시금 묻는다.
“나는 오늘, 잘 돌보았는가?”
그 물음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삶은 누구나 누군가의 돌봄 속에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에게 안기고, 먹이고, 씻겨지며
이 세상을 살아왔다.
그러니 돌봄은 삶의 처음이자 끝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오늘의 나는
그 돌봄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

돌봄의 시간은 단지 누군가를 위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며,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가장 조용한 방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어르신의 손을 살며시 잡고,
그분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이 시간을 살아낸다.
이 고요한 돌봄의 시간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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