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함께 걸을 수 있을까

에세이

by 화려한명사김석용

언제까지 함께 걸을 수 있을까 / 에세이 김석용

삶의 그림자와 마주하다

삶을 여행이라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행길은 마냥 설렘만 가득하지 않다. 때로는 여행의 끝자락에 다가왔음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이번 제부도로 떠난 가족 여행이 그랬다. 80세 큰처남부터 나와 아내를 포함한 60대 중반까지, 우리 모두는 어느덧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선 이들이었다. 출발 전엔 그저 함께 모이는 것이 즐겁고 설레는 일이었지만, 막상 마주한 여행길에서는 우리가 이제껏 외면했던 삶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다음에도 다들 건강하게 또 올 수 있을까?"

펜션 마당에 펼쳐진 작은 숯불 앞에서 고기를 구우며 던져진 이 한마디는 우리의 대화를 한순간에 멈추게 했다. 웃음과 소란으로 가득했던 공간은 잠시 고요함으로 가득 차며, 모두의 시선이 불꽃에 잠긴 숯불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부도의 바닷길 위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들

우리는 이번 여행 동안 유난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보통의 가족 여행이 그렇듯, 처음엔 가벼운 농담과 일상적인 안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조금 더 깊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우리 인생의 남은 시간, 그리고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관한 이야기였다.

큰처남은 어느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부모님 산소는 우리가 매년 찾아가는데, 우리 다음 세대는 어떨까? 자식들이 우리 산소를 찾아오기는 할까?"

그 말이 나오자 처형들도 나와 아내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세대가 부모님을 기억하고 산소를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의무였고 자연스러운 예의였다. 하지만 우리 자식 세대는 다르다. 시대는 변했고, 전통은 약해지고 있다. 자식들이 자신의 삶을 살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과연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아무도 쉽게 답하지 못한 채, 제부도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우리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바닷길이 열리는 순간을 보러 함께 해변으로 나갔다. 바다는 마치 우리의 인생을 닮아 있었다. 밀물과 썰물이 번갈아 오가듯, 우리의 삶 역시 오고 감의 연속이다. 열렸던 길이 언젠가는 다시 닫히듯, 우리 인생도 결국 그렇게 닫히는 순간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열려 있고, 그 열린 길 위를 함께 걷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처형이 말했다.

"언젠가는 우리 중 누군가는 먼저 떠날 테지. 하지만 남은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그 사람을 기억해주는 거, 그것도 참 소중하지 않아?"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무언가를 느꼈다. 맞다, 우리의 죽음 이후 누군가 기억해주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 자식 세대가 굳이 산소를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그들이 마음속에 우리를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함께하는 이 시간이 바로 인생이다

여행 마지막 날, 우리는 제부도의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행을 정리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잔잔하게 햇살을 머금고 반짝였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있었고,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어쩌면 다음 여행에서 한 사람이 비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여행 자체가 더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시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 함께하는 이 시간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고, 가장 소중한 순간이다.

우리는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눈 이야기들과 그 속에서 느낀 감정들은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피할 수 없지만, 그 그림자마저도 우리의 인생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제 돌아가는 길, 다시 한번 바닷길을 건너며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남은 삶을 더 진실하고 따뜻하게 살아가자고. 그리고 함께했던 이 순간을 잊지 말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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