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석용
『세상을 바꾸는 건 언제나 작고 따뜻한 말 한마디』
/ 에세이 김석용
오래전 어느 봄날, 동네 작은 슈퍼마켓에서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퇴근길에 우유 한 팩을 사러 들어갔는데, 계산대에 서 계시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의 얼굴이 유독 어두워 보였다. 늘 웃으며 인사를 건네던 분이었는데, 그날은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우유 값을 건네며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은 표정이 많이 힘들어 보이세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주머니는 내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가, 곧 한숨과 함께 털어놓았다.
"손님 중 한 분이 말이 좀 거칠었어요. 사소한 일인데도 저한테 너무 함부로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게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요."
나는 계산대 앞에서 잠깐 망설이다가 아주머니께 말했다.
"그분은 아마 자기 힘든 일을 아주머니께 쏟아낸 것 같아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늘 여기 오면 아주머니가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고마운걸요."
별것 아닌 한마디였지만 아주머니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나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렇게 알아주는 손님 덕에 또 힘내야죠. 고마워요."
그날 돌아오는 길,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상처를 주는 것도, 위로를 주는 것도 결국 우리가 내뱉는 말 한마디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다. 어떤 사람은 우리를 기쁘게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무심코 던진 한마디로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내가 던진 말 한마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리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말은 언제나 씨앗이 되어 상대방의 마음에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
한 번은 일터에서 마주치는 직원 한 분이 실수를 했다. 모두가 불편해하며 그의 실수를 지적할 때, 나는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저도 자주 실수해요. 중요한 건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거니까요."
그 직원은 내 말을 듣고는 잠시 침묵했다가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말씀이 정말 위로가 돼요. 다시 한번 힘내볼게요."
그 뒤로 그는 눈에 띄게 밝아졌고, 이전보다 훨씬 더 자신감 있게 일을 해냈다. 그때도 역시 나는 깨달았다. 누군가의 삶에 작은 변화를 주는 것은 결코 거대한 행동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작은 말 한마디라는 것을.
세상을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필연이다. 그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다. 크고 화려한 무엇이 아니라, 작고 사소하지만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통해 서로의 삶을 조금 더 견딜 만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때로는 힘들고 지쳐있다. 그런 순간, 누군가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 어떤 값비싼 보약보다 더 큰 힘을 준다. 우리 삶의 진정한 힘은 바로 그런 작고 소박한 말에서 나온다. 누구나 쉽게 건넬 수 있지만, 아무나 쉽게 건네지는 못하는 말. 바로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 말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조금 더 부드럽고 따뜻한 말을 건네 보기를 바란다. 세상을 바꾸는 건 언제나 거창한 일이 아니라, 작고 따뜻한 그 한마디의 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