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머물다

에세이 김석용

by 화려한명사김석용

마음에 머물다 / 에세이 김석용

오늘 아침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신기한 곳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 중에서 유독 오래 남는 것들이 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순간인데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때때로 고개를 내민다.

무엇이 마음에 머무는가. 왜 어떤 것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어떤 것들은 선명하게 남아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답을 찾으려 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런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싶을 뿐이다.

어제 길에서 만난 한 아이의 미소가 마음에 머문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옆에 있던 다섯 살쯤 된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유도 없이, 조건도 없이 그냥 웃었다. 그 순간 내 마음도 덩달아 밝아졌다.

아이의 엄마는 스마트폰을 보느라 바빴고 주변 사람들도 각자 할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만은 달랐다. 세상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지나가는 모든 것에 관심을 보였다. 비둘기가 날아가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꽃을 보면 가리키며 기뻐했다.

기억은 참 이상하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쉽게 잊혀지는데 별것 아닌 순간들이 오래 남는다. 지난주 비 오던 날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할머니의 우산도 그렇다. 작고 낡은 우산이었지만 그 우산 아래로 스며드는 빗소리가 유독 정겨웠다.

할머니는 젊은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서려다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내가 얼른 부축해드렸는데 할머니가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내 손을 꾹 잡아주셨다. 그 따뜻한 손길이 지금도 생생하다.

동네 서점에서 책을 고르던 어느 오후의 풍경도 마음에 남아있다. 한 아버지가 초등학생 딸과 함께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딸이 책을 읽어주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 평범한 일상 속 행복이 내게도 전해졌다.

마음에 머무는 것들은 대부분 소소하다.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순간보다는 일상 속 작은 몸짓들이 더 오래 남는다. 지하철에서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청년의 모습, 길 잃은 강아지를 찾아주려 애쓰는 아주머니의 모습, 횡단보도에서 어르신의 손을 잡아드리는 아이의 모습들이 모두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계절의 변화도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봄날 벚꽃이 흩날리는 길을 걸으며 느꼈던 설렘, 여름밤 매미 소리를 들으며 느꼈던 그리움, 가을 단풍을 보며 느꼈던 아련함, 겨울 첫눈을 맞으며 느꼈던 경이로움. 이런 감정들이 시간이 흘러도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때로는 슬픈 순간들도 마음에 머문다. 지난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친구의 이별 소식을 들었을 때의 착잡함, 길에서 만난 노숙자의 쓸쓸한 뒷모습. 이런 것들도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슬픈 기억들조차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 순간들이 나를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어도 작은 관심이라도 보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매일 새로운 순간들이 펼쳐진다.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같은 카페에 가도 다른 대화를 들으며, 같은 하늘을 봐도 다른 구름을 본다. 겉으로 보면 단조로워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매번 새로운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며칠 전 마주친 택시기사 아저씨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손님, 오늘 하루 어떠셨어요?"라고 물어보시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딸이 대학에 합격했다고 기뻐하시며, 20년 넘게 택시를 운전하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볼 수 있었다.

마음에 머무는 것들을 글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순간의 감정과 분위기를 온전히 전달하기 어렵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이런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언젠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따뜻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내게 주는 것은 단순한 추억 그 이상이다.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진정한 소통의 의미, 존재 자체로 전하는 위로의 힘을 배운다. 말없이도 전해지는 마음, 작은 몸짓으로 나누는 따뜻함, 바쁜 일상 속에서도 느끼는 평화로움을 경험한다.

가족과의 소소한 순간들도 깊이 새겨진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 아버지가 신문을 보며 내뱉는 작은 한숨, 형과 나누는 시시콜콜한 대화들. 이런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이가 들면서 더욱 실감한다.

혼자만의 시간도 마음에 머문다. 새벽에 일어나 마시는 첫 커피의 쌉쌀한 맛, 늦은 밤 책을 읽으며 느끼는 고요함, 산책하며 바라본 노을의 아름다움. 이런 순간들이 쌓여서 내 삶의 색깔을 만들어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하루를 되돌아본다. 어떤 순간들이 내 마음에 머물게 될까. 아마도 카페에서 만난 강아지의 꼬리 흔드는 모습일 것이다. 주인을 기다리며 꼬리를 흔들던 그 순간에 담긴 순수한 기쁨이 인상 깊었다.

마음에 머무는 것들은 시간이 흘러도 색바래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고 소중해진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서 내 삶의 토대가 되고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 나누는 작은 교감들이 내게는 가장 큰 선물이다.

앞으로도 이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마음에 머물 만한 소중한 순간들을 발견하고 간직하려 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글로 써서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삶은 결국 마음에 머무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그 순간들을 얼마나 깊이 느끼고 소중히 여기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나는 오늘도 그런 순간들을 찾아가며 하루를 보낸다. 마음 깊은 곳에 따뜻한 기억들을 쌓아가며, 그 기억들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가 일상에서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이다. 마음에 머무는 것들의 소중함,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가는 삶의 의미를 매일 새롭게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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