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의 향기 - 세 번째 이야기

기억 속 집으로 가는 길

by 화려한명사김석용

늦은 오후의 향기 - 세 번째 이야기

"기억 속 집으로 가는 길"

글 / 김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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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남아있는 그 길

오늘도 할아버지는 산책을 나가셨습니다. 똑같은 아파트 단지를 도는 길이지만, 그분의 발걸음은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 우리 동네 길 같다"며 혼잣말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 지금 걷고 계신 길이 아닌 다른 길을 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기억 속 집으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가 아니라 흙길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질척거리고, 여름이면 먼지가 날리던 그 길. 하지만 그 길 위에는 어린 시절의 웃음소리가, 청춘의 설렘이, 그리고 가족과 함께 걸었던 수많은 추억들이 쌓여있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온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분의 마음속에는 고향으로 가는 그 길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눈을 감으면 언제든 그 길을 걸을 수 있고, 그 길 끝에 있던 집의 모습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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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풍경들

고향의 풍경은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넓은 들판은 아파트 단지가 되었고, 굽이굽이 흐르던 개울은 복개되어 도로가 되었습니다. 동네 어귀에 있던 느티나무도,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평상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끔 고향을 찾아가시지만 돌아오실 때면 항상 아쉬워하십니다. "우리가 살던 집터도 모르겠더라"며 한숨을 쉬시는 모습을 보면, 기억 속 풍경과 현실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큰지 느껴집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산의 능선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하늘의 구름도 예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람의 냄새와 새소리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분은 이런 변하지 않는 것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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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살아숨쉬는 공간

기억 속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삶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습니다. 마당에서는 어머니가 빨래를 널고, 아버지는 농기구를 손질하셨습니다. 툇마루에서는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고, 겨울밤에는 아궁이 불을 지펴 방을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는 가난했지만 행복했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 않았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고, 이웃과의 정도 깊었습니다. 무엇보다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자 추억의 보물창고였습니다.

지금 사시는 아파트도 편리하고 좋지만, 뭔가 아쉬우시다고 합니다. "벽 하나 뚫으면 옆집이고, 위아래로도 사람이 살고 있으니 답답해"라며 웃으시지만, 그 웃음 속에는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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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발걸음

산책을 하시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먼 곳을 바라보실 때가 있습니다. 분명 지금 이곳에 계시지만, 마음은 이미 다른 시공간에 가 계신 것 같습니다. 그때 그분의 얼굴에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저기 보이는 산이 우리 동네 뒷산 같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는 방향을 따라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분의 눈에는 지금 여기가 아닌 그때 그곳이 보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몸은 현재에 있지만 마음은 언제든 과거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의 삶에 위로와 힘을 줍니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지만, 마음으로는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기억 속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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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길

할아버지는 가끔 손자들에게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집 주변에는 어떤 나무들이 있었는지, 이웃들은 어떤 분들이었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십니다.

처음에는 "옛날이야기"라며 시큰둥했던 손자들도, 할아버지의 생생한 묘사를 들으면 점점 흥미를 보입니다. 직접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뿌리가 어디인지 알게 됩니다.

"너희들도 나중에 커서 이곳을 떠나게 되면, 지금 이 집을 그리워하게 될 거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집이라는 것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고향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고향은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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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

사람에게는 누구나 마음의 나침반이 있습니다.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항상 집이 있습니다. 그것이 태어난 곳일 수도 있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보낸 곳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곳이 마음의 안식처라는 점입니다.

할아버지의 마음의 나침반은 언제나 고향을 가리킵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 방향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그 길을 따라 마음의 여행을 떠나시는 것입니다.

기억 속 집으로 가는 길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길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영원히 남아서,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우리를 집으로 인도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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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기억 속 집으로 가는 길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 길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거리가 멀어져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길 위에는 우리의 뿌리가, 우리의 정체성이,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마음으로는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의 집입니다. 그 집으로 가는 길을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깊은 존경을 보냅니다. 그 길이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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