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의 향기 - 두 번째 이야기

손끝에 남은 시간의 온도

by 화려한명사김석용

늦은 오후의 향기 - 두 번째 이야기


손끝에 남은 시간의 온도

글 / 김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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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품은 손끝의 마법

할머니의 손을 바라보고 있으면 경이롭습니다. 주름지고 거칠어진 손끝에서도 여전히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뜨개바늘로 따뜻한 목도리를 만들고, 밀가루를 반죽해 맛있는 칼국수를 만들고, 화분에 물을 주며 꽃을 피워냅니다.

젊었을 때는 매끄럽고 부드러웠던 손이 이제는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손끝에는 수십 년간 쌓인 경험과 기술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단순한 동작 하나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있고, 무심코 만지는 것마다 특별한 온기가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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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만드는 손길

손끝에는 기억이 살아있습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열이 날 때마다 이마에 올려주던 차가운 손, 무릎을 다쳐 울 때마다 아픈 곳을 쓰다듬어 주던 따뜻한 손길. 그 모든 순간들이 손끝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요리를 할 때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조미료를 넣는 양도 재지 않고, 불의 세기도 감으로 조절합니다. 수십 년간 반복된 동작들이 몸에 배어서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하세요?"라고 물으면 "그냥 손이 알아서 해"라고 웃으며 답하십니다.

바늘에 실을 꿰는 모습도 예술입니다. 돋보기 없이도 한 번에 쏙 들어가는 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손끝의 감각이 얼마나 예민한지, 세월이 무디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섬세하게 다듬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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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전하는 따뜻한 온도

할머니 손에는 특별한 온도가 있습니다. 아플 때 이마에 올려주시는 손은 어떤 해열제보다 시원하고, 슬플 때 등을 토닥여주시는 손길은 어떤 위로의 말보다 따뜻합니다.

손자들이 놀러 오면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손으로 볼을 만져보는 것입니다. "많이 야웠네", "살이 좀 빠진 것 같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그 짧은 접촉 속에서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마음의 상태까지 읽어내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이가 다쳐서 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하시며 아픈 곳을 살살 문질러주시면 정말로 아픔이 가시는 것 같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이지만, 사랑의 온도가 가진 치유의 힘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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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빚는 손의 예술

할머니의 손은 시간을 빚는 예술가입니다. 김치를 담글 때 배추 한 포기 한 포기를 정성스럽게 다루는 모습, 된장을 담글 때 콩을 삶고 메주를 쑤는 과정까지. 모든 것이 급하지 않고 차분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급하게 살아?" 하시며 느긋하게 웃으십니다. 인스턴트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여유로움입니다. 하지만 그 느린 손놀림에서 나오는 결과물들은 어떤 공장 제품보다 맛있고 정성스럽습니다.

뜨개질을 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뜨는 모습을 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습니다. "언제 완성되세요?"라고 물으면 "서두르지 말자, 천천히 하면 돼"라고 답하십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목도리나 조끼는 어떤 명품보다 따뜻하고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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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지는 기술과 마음

할머니의 손끝에서 나오는 것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기술과 함께 마음도 함께 전해집니다. 손으로 빚은 떡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정성껏 끓인 미역국에는 건강에 대한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손기술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사서 먹고, 사서 입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계로 만든 것과 손으로 만든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입니다.

할머니들이 손녀에게 뜨개질을 가르쳐주고, 며느리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알려주는 것은 단순히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정을 따뜻하게 만드는 비결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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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담긴 인생의 온도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으면 참 많은 것을 느낍니다. 거칠고 주름진 표면 아래로 전해져 오는 따뜻함, 그리고 수십 년간 가족을 위해 움직여온 손의 무게감. 그 모든 것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젊은 손은 빠르고 정확할지 모르지만, 할머니 손에는 시간의 깊이가 있습니다. 급하지 않지만 확실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진실합니다. 그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이 특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

할머니의 손끝에는 시간의 온도가 살아있습니다. 주름지고 거칠어졌지만, 그 속에는 사랑과 정성, 그리고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따뜻함과 정성이 손끝에서 흘러나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오늘도 묵묵히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계실 할머니들의 손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그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온도가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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