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천천히 가도 됩니다

마음의 속도를 따라 걷는 법

by 화려한명사김석용

괜찮아요, 천천히 가도 됩니다

마음의 속도를 따라 걷는 법

글 / 김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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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너머의 목소리

전화기를 귀에 대고 형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예전보다 조금 가늘어진, 그래도 여전히 따뜻한 그 목소리입니다. "잘 지내냐"는 형님의 물음에 "네, 형님"이라고 대답하면서, 정작 제가 묻고 싶은 말들은 목구멍 어딘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감염 위험 때문에 면회도 할 수 없는 요즘, 우리는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받습니다. 10살 터울의 동생으로서, 저는 그저 형님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괜찮다고, 천천히 가도 된다고, 그 말을 건네고 싶은데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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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온 시간

2023년 7월 20일, 서울아산병원 수술실 앞에서 저는 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암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오르던 그날, 두려움보다 먼저 떠오른 생각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도 형님은 전화로 "괜찮아, 동생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술 후 회복하는 동안, 저는 매일 조금씩 걸었습니다. 병원 복도를, 집 앞 공원을, 그렇게 천천히 걸으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지금은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때 배웠습니다. 빨리 가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내 몸의 속도를 존중하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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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의 손

형수님이 형님 곁을 지키고 계십니다. 형수님도 몸이 편찮으신데, 매일 병실을 오가며 형님을 돌보십니다. 가끔 형수님과 통화할 때면, 그분의 목소리에서 피로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괜찮아요"라고 말씀하시는 그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킨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아픔까지도 품어내는 일입니다. 저는 멀리서 두 분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함께 천천히 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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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속도로 걷기

세상은 빠르게 돌아갑니다. 모두가 서둘러 어딘가로 향하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천천히 가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길가에 핀 작은 꽃,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햇살의 온기 같은 것들 말입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형님께, 저는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괜찮다고, 형님의 속도로 가시면 된다고, 동생이 여기 있다고 말입니다. 제가 수술 후 회복하며 배운 것처럼, 우리 몸은 자신만의 시간표를 갖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치유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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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다는 것

면회를 갈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됩니다. 감염 위험 때문에 우리는 유리벽 너머로만 서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곁에 있다는 것이 꼭 물리적인 거리로만 측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목소리, 문자로 보내는 짧은 안부, 그리고 서로를 향한 마음들이 우리를 이어줍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만나는 어르신들 곁에서도 배웁니다. 함께 있어준다는 것의 의미를,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의 힘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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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리고 내일

형님과 저는 각자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형님은 병실에서, 저는 일터에서, 그렇게 하루를 채워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천천히 가는 것이 포기가 아니라 용기라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수술 후 다시 걸을 수 있었던 것처럼, 형님도 자신의 속도로 걸어가실 것입니다. 그 길이 더디더라도, 때로 쉬어가더라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고, 서로를 향한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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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오늘도 형님께 전화를 겁니다. "형님, 괜찮으세요?"라고 묻고, "응, 괜찮아"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그 짧은 대화 속에 우리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걱정과 위로, 아픔과 희망, 그리고 서로를 향한 사랑이 말입니다. 세상을 향해서도 말하고 싶습니다. 괜찮다고, 천천히 가도 된다고, 당신의 속도로 걸어가라고 말입니다. 제가 형님께, 형님이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길을 응원하며 함께 갑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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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당신의 마음이 허락하는 속도로 천천히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길 위에서 작은 쉼표를 찍어도 괜찮고, 잠시 멈춰 서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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